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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기자, 사회부장으로 빛나던 이혜복 선배를 추모하며/이병대

이장춘 2013. 10. 7. 06:03

 

 

종군기자 사회부장의 대명사로 통했던

이혜복 선생님이 2013년 8월 1일 별세하셨습니다.

선생님은 1946년 당시 민주일보기자로 출발 6.25 전쟁 때는

 경향신문 종군기자로 국군의 평양탈환을 특종 보도했고 그 후 동아일보

 사회부장등으로 활동하다가 1972년 7월부터1980년 1월까지 KBS해설위원

방송연수원장등을 지내면서 명해설자로 이름을 날렸으며 1979년에는 한국

방송대상 해설부문상을 받았습니다. 1991년 1월부터 1993년 1월까지 KBS

 이사를 지낸 선생님은 1,990년부터 2,000년까지 5회에 걸쳐 대한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오늘 글은 대한 언론인회 부회장이자 KBS

사우회 회원이시기도 한 이병대님이 쓴 글로 선생님의 삶이

 압축되어 있는 글입니다. 이병대님이 쓴 "종군기자

 이혜복" 은 아래 영문자를클릭하셔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혜복 6.25 종군기자 백선엽, 노영서 장군의 생생한 채험기록 / 이병대

http://blog.daum.net/jc21th/17781886

 

 

이병대님

 

 

이혜복, 종군기자 사회부장으로 빛나던 선배를 추모하며/이병대

 

 

소로(小露) 이혜복(李惠馥)선배님!

말복의 문턱에서 그 덥고 습하던 지난 8월 1일

 어찌 그리도 홀연히 떠나셨습니까? 소천하시기 한달 조금전

저를 비롯한 몇 후배들과 건강한 모습으로 식사를 함께 하시면서

병원에서 체크해보니 몸에 전혀 이상이 없으시다면서 건강 조심하라고

 당부하시더니 이 무슨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소식입니까? 작년 11월

후배들이 당신의 구순(九旬)을 기념하여 평전을 발행하면서 책 제목을

‘종군기자, 사회부장, 빛나던 이름 이혜복’이라 짓고 선배님의

 일생을 가장 정확히 요약 했다고들 했습니다.

 

소로 선배님은 당신의 아호가 풍기듯

한방울의 ‘작은 이슬’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하게 일생을 사시면서 언론창달에 온 몸을 던지셨

습니다. 소로선배님은 보성전문 재학시절 일제의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해방 이듬해 민주일보에서 수습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뒤 경향신문, 동아일보, 그리고 KBS에서 근무

 하셨지요. 기자가 되려고하자 선친께서는 세가지

당부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첫째 돈에 집착하지말라,

둘째 정당에 가입하지 말라,

셋째 사실대로 써라.

 

이때 선친의 당부가 평생 기자생활의

 좌우명이 됐다고 하셨지요. 선배님은 한국전쟁때

반격에 나선 국군이 ‘50년 10월 19일 평양을 탈환할때 1사단

 (사단장 백선엽)과 함께 평양에 입성하면서 경향신문에 ‘국군정예

선착도하(先着渡河)’제하의 ‘평양 대동강에서 본사 특파원 이혜복발’

기사를 톱으로 특종보도하여 주변을 놀라게 하였고 직접 찝차에 싣고

 뿌린 이 신문을 읽은 평양시민들은 공산독재에서 해방 됐다는

희망에 부풀어 눈물까지 흘렸다지요.

 

선배님의 평양탈환 특종 기사는

 6.25전쟁 동안 대한민국 기자가 특종한

 몇 안되는 기사 가운데 가장 주목 받는 기사중

 하나로 한국 언론사에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사회부

데스크로서 선배님은 항상 신속, 정확, 공정한 뉴스를

 주문 했었습니다. 제가 ‘65년 동아일보 수습기자로 입사

했을때 사회부장 이셨던 선배님은 다툼이 있는 기사의

 경우 명백히 잘못이 있는 당사자의 반론도 반드시

 기사에 싣도록 주의를 당부 하시는등 공정한

보도에 접근하는 냉정한 자세를 통해

무언(無言)으로 많은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취재 현장에서

전화를 통해 기사를 말로 부르면 안에서 내근하던

 기자들이 잉크에 찍은 펜으로 기사를 받아 적던 때였습니다.

마감시간이 가까워 일손이 모자랄 때면 직접 기사를 받으셨는데

기록하는 속도가 부르는 말의 속도와 거의 같게 빨라 혹시 받아 쓰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어 물으면 계속해서 기사를 왜 부르지 않느냐고

 야단 치시는 등 그 빠른 기사정리에 모두들 감탄했었습니다.

 

그래서 해방후 3대 명(名)사회부장의

한분으로 언론계에서 회자(膾炙)되어 왔었지요.

선배님은 1972년 KBS 해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겨 해설주간,

연수원 원장등 10년간 방송해설과 좌담등 수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공익에 기초한 균형있는 비판으로 공영방송으로서 KBS의 품격과 성가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셨다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기자 입문때 직접 수습을

받았던 저는 KBS에서 다시 만나 모시고 일하다가 선배님에 이어 같은 곳에서

언론 현장을 마감한 특별한 인연에 대해 항상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선배님은

특히 1991년 퇴직기자 모임인 대한언론인회 회장을 맡으신뒤 중임한 10년동안

언론인 기금 10억원 확보를 비롯하여 복지 기초를 마련하시는등 대한언론인회의

오늘이 있게한 중심에 서 계셨습니다. 일생을 언론창달을 위해 온몸을 던지신

소로 이혜복 선배님! 이제 못다하신 일은 의사, 변호사로 훌륭하게

 성장한 삼남매와 저희 후배들에게 맡기시고 편히 쉬소서!

 다시 한번 명복(冥福)을 빕니다.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이병대

 

 

윤주영(전 문공부장관) 선생님 사진작품 전시회에 나온  "대한민국 인물사진 100인상" 이혜복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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