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유병은 단파방송독립운동 방송박물관 4주기

이장춘 2013. 8. 24. 22:16

 

 

유병은 공개행사에서 한 생전의

마지막 목소리와 단파방송으로 전해오던

그때의 이승만 박사 목소리를 듣고 계신다.

요양원에 계시던 유병은 선생님은 출입이 어려

우셨지만 이때 나오셔서 명예의 전당 헌정식

 참여하시고 그 해 8월 24일

세상을 뜨셨다.

 

 

유병은 단파방송독립운동 방송박물관 4주기

 

 

1943년 「단파방송 밀청사건」이라고 불렸던

 단파방송 독립운동으로 수많은 방송인들이 감옥에 가고

 또 방송국에서 쫓겨나면서 방송인들이 턱 없이 모자라 방송인들을

공개모집할 때 들어온 분 가운데 유병은이 있었다. 유병은 은 그때부터

단파방송 밀청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그리고 어떤 결과를 가져 왔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잡혀가고 감옥살이를

 하고 일제가 그 일에 그토록 집착을 했던 것인가? 이것이 유병은의 최대의

관심사였다. 더군다나 그 사건의 핵심인사의 한사람이었던

 성기석은 학창시절부터 둘도 없는 친구였던지라

그에 관한 관심이 더 깊었다.

 

관련 인사를 만나면 그런 얘기를 나누고

 기록했으며 방송국에서 쓰던 물건이라면 크고 작고

 비싸고 싸고를 막론하고 간에 관심을 가졌고 본인의 손 안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손 안에 넣었다. 길을 지나다가

「남의 집 대문에 붙은 라디오 수신 장」을 보고 그것을

얻으려다가 안 되어 잡히면 벌금 물 각오로 벌금을

준비하고 밤에 그 물건을 몰래 뜯어냈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토록 유병은 은 방송 본연의 업무 외에

방송역사에 관심을 가졌고 방송에 쓰인 기계나 부품,

방송관련 기록을 모으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필자보다는 20년

 방송선배지만 필자가 그런 방송관련 자료를 접할 위치에 있을 때는 필자에게도

 여러 차례 찾아와 그런 물품을 내 놓으라고 졸라댄 적이 있으시다. 이렇게

모아진 각종 방송자료를 유병은 은 세 분야로 역어 정리했다.

 

 

 

 

첫 번째로 선보인 것이 1977년 가을

서울 동숭동 옛 서울대학교 자리에 있던 출판문화

협회강당에서 연 청원방송 박물관 소장품 전시회로

 전시회를 본 박송인 들과 학계에서는 방송초창기부터 사용

되던 방송역사물의 전시품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1932년

부터 우리말 방송에 힘을 기울여 왔고 해방되어 초대 중앙

방송국장을 지낸 이혜구 선생님의 말을 인용한다.

 

 

 

 

「1977년으로 기억되는 어느 초 가을날

 청원방송박물관의 소장품 전시회를 구경하러

전 서울대학교 문리대 강당에 가 보았더니 그 옛날이

저절로 회상되는 희귀한 방송기재와 각종 문헌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한국방송사를 한 눈에 보는 것과 흡사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혼란했던 8.15해방, 뜻하지 않았던

6.25사변, 부득이 했던 1.4후퇴 등 수 많은 역경을 겪으면서도 이러한

 물건들이 오랜 세월 흐른 오늘까지 보존되어 왔다는 것은 오로지

 유병은의 끈질긴 집념과 인내와 노력의 결집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찬사를 보낸바 있다.」

 

유병은 선생은 그로부터 청원방송

 역사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다가 KBS가 방송박물관을 세운다는

얘기를 듣고 모두 KBS에 넘겨주었지만 재정이 어려워

지연되고 있다. 선생이 모은 기록 자료는 1977년 한국방송

 50년을 맞아 발행된 「한국방송사」의 기조자료가 되었고

또 KBS가 발행한 두 권의 책으로 집대성되었다. 「일제하

경성방송국 단파방송 연락운동」과 「한국방송야사」가

그것이다. 이 두 권의 책은 우리나라 방송사의

기본 자료가 되고 있다.

 

「일제하 경성방송국 단파방송 연락운동」은

 말로만 또는 지엽적으로 전해오던 단파방송 독립운동에

관해서 관련자의 증언과 각 기관에서 보유한 재판기록, 경찰, 검찰

 신문자료 등의 기록을 비롯해서 제반 기록물을 분석 종합 정리해서 집대성한

 것으로 이 책을 바탕으로 국가는 단파방송 독립운동을 정식 독립운동으로

인정하면서 이 책이 발행 된 이래 성기석, 홍익범, 조종국, 이창득,

박용신, 김동하, 이근창, 등 7명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나

건국포장이 수여되었고 KBS 안에는 이를 기념하는

 물망비를 세우는 한편 해마다 기념,

추모모임을 갖고 있다.

 

 

오재경 전 공보부장관

 

 

전에 공보부장관을 지낸 적이 있는

오재경선생은 추천사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일본 관헌의 눈을 피해 방송국 직원이 중심이 되어 미국의

 이승만 박사와 중경의 김구선생이 고국동포에게 보냈던 단파방송을

밀청하고 여기에서 얻어진 값진 정보로서 일본의 패전을 예고하고 조선의

 독립이 내다보이는 희망의 소리를 전하고 연락한 운동은 일본 관헌의

 총칼 앞에서 위험을 무릅쓴 값진 거사였던바 이 애국운동이

독립운동의 하나로 인정되어 세분에게 건국훈장이

 수훈되었고 이것을 기념해서 물망비가

 세워진다니 반갑다.」

 

 

 

 

「한국방송야사」는 야사라는 말이 붇기는

했어도 사실에 입각한 자료들을 기초로 쓴 책이라

 방송사의 기초자료로 쓰이고 있다. 유병은 선생이 2009년

 8월 24일 세상을 뜨신지 4주년이 되었다. 이날을 맞아 선생님의

뜻을 되새기며 박경환, 우제탁, 권영원, 지승표, 필자 5사람이 경기도

 남양주 금곡에 있는 묘소를 찾았다. 마침 같은 시간에 현장을

 찾은 가족들이 함께 만나 참배를 끝내고 사진을

 촬영했기에 여기 올린다.

 

 

 

 

가족으로는 큰 딸 유호재, 큰 사위 장석철과

 큰 아들 유건재, 둘째아들 유원재 부부 그리고 손주들이

 참여했다. 선생님의 자손으로는 미국에 있는 셋째 아들 부부와

막내 딸 부부 그리고 손주들이 있지만 이번에는 참여

하지 못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유원재님이 보내오신 메일 (유병은 선생님 아들) 

 

 

이선생님,

 

 24일 저의 아버님 4주기에

친구분들과 무더위에도 불구하시고

와주신거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의 식구들이 너무 감동 받았습니다.

특히 젊은 손주들은, 잘 이해 못할 참 값진

교훈이 되었답니다. 할아버지 세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셨답니다.

 

가족들은 지금도 이선생님의

노고 덕택으로 아버님이 명예전당에

 들어가신 것을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

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다시 한번 감사드랍니다.

 

유원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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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년 9월 제 9회 방송문화상을 수상하고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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