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공간의 방송

8.15 광복 68년 해방 , 대한민국 건국 65년의 날에

이장춘 2013. 8. 11. 14:18

 

 

 

1945년 정오! 압박과 설움 속에서

신음하던 대한민국에 햇살이 비쳤다. 모든

 전쟁에서 이긴다고만 하던 그 기세 당당 했던 일본이

 패망하고 신이라던 일본의 천황이 만인 앞에 나와 떨리는

 목소리로 항복을 했다. 항복의 목소리마저 옥음(玉音)이라며

 차려 자세를 취하게 하고 방송을 듣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꺼져가는 일본의 패망의 목소리였고

우리에게는 광명의 목소리였다.

 

 

8.15 광복 해방 대한민국 건국과 오늘

 

 

그 방송이 라디오 전파를 타고

들려 오던날 방송국에서는 대한민국 사람들과

일본인들이 그 방송을 함께 들었다. 방송 상태도 나쁘고

너무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라 떨리는 그 목소리가 무슨 뜻인지를

 잘 몰랐어도 일본 천황의 항복 목소리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 방송을

들은 사람들은 다 같이 눈물을 흘렸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눈물은

해방을 맞은 기쁨의 눈물이요. 일본인들의 눈물은

패망한 슬픔의 눈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독립은 아니었다.

압박과 설움에서 헤매던 우리민족의 독립을 맞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었고 피나는 노력이 깃들여 있었지만

8.15 그날은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승국들의 승리로 그들이

 이 땅에 들어왔기에 그들로부터 또 다른 독립을 얻어야 했다. 소련은

 전쟁 중인 1945년 8월 9일 두만강 국경을 넘어 대한민국 땅에 들어와

일본군과 전쟁을 하는 중에 일본의 항복을 맞았기에 일본의 항복과

 동시에 전승국들의 사전약속에 따라 북한 땅을 점령 해 버린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던 미군은 9월 8일 인천에 상륙해서 9월 9일에

중앙청에서 일본의 아배총독에게 항복문서 조인을 받고

그날 오후 4시 중앙청 광장에 성조기를 올렸다.

 

 

 

 

대한민국 땅이 대한민국 사람들도 모르는

 사이에 3.8선으로 갈려 남과 북으로 나뉘었다.

동시에 북한에 중계방송 되던 서울방송이 끊기고 전기가

끊겼다. 3.8선의 왕래가 자유롭지 못했다. 일제의 압박에서

풀려나야 된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을 때는  우(右)도 좌(左)도

하나의 민족이었다.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세력이 들어오면서

사상적 갈등이 심화되어 적대적으로 되어갔다. 북한에도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남한

에도 공산주의 신봉자가 있었다.

 

 

 

 

 남한의 공산주의 신봉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북한을 따랐다. 나라의 운명을

 가름하는 신탁통치 안이 나왔을 때 처음에는 다 같이 절대

반대를 외쳤지만 북한의 지령을 받은 공산주의자들은 찬탁을

외치면서 갈등이 깊어졌다.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은 때로는 폭동을

일으키고 위조화폐를 찍어내어 경제를 혼란시키는 등 도저히  묵과

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그러면서 공산주의는 불법화되었다.

이런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등

그토록 독립을 위해서 힘을 기울이던 인사들은

흉탄에 쓰러져 산화되었다.

 

 

 

 

남과 북이 하나 된 정부가 수립 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을 때 남한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수립하자며 UN감시 하에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되었다. 1948년 5월 10일 그 유명한

 5.10선거다.  헌법을 만들어 7월 17일 공포하니 이날이 오늘의 제헌절이고

이 헌법에 따라 정부가 수립되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건국이다.

일제 강점기로부터 벗어난 지 3년만이다. 올 8월 15일은 그로부터 65년이

 날이다.  그 65년 짧다면 짧고 길다. 면 긴 세월 남과 북이 갈라지기 시작

 할 때는 한민족 한 나라로 다 같이 아시아의 변방 작은 못사는 나라로

출발해서 6.25의 잿더미 속에서 출발했지만 한쪽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했고 한쪽은 공산주의를 지향해서 살다보니 남과 북

사이에는 너무나 큰 거리가 생겼고 남과 북이

하나 될 기미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뜻에 따르는 정부를 수립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한 이 땅의 통일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여러 편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올해는 정전 60주년을 맞아

비무장지대를 평화공원으로 조성하지는 박근혜대통령의 제안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통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런 하나하나의

 과정을 거쳐 평화가 정착되고 궁극적으로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린다. 이 땅에서 이 민족에게 그토록 못된

짓을 했던 죄 값을 안고 패망한 일본이 아직도 헛소리

하는 것을 보며 이제라도 더 깊은 죄의식을

갖고 반성  해 주었으면 한다.

 

 

관련 동영상 보기

 

 

동영상 보시기 전에 음악을 끄셔요.

 

 

  

 

히로히토 항복 그때 그 목소리

 

 

 

 

 

1945년 광복의 날 방송국에선

 

 

 

 

 

이승만 독립운동과 1942년 단파방송 

 

 

 
 

 

동영상 미주리함 항복 조인식 실황-1945년 9월 2일-

 

  

 

 

재구성한 히로히토 항복

 

 

 

 

 

관련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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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하던 날 & 초대내각,1948년 8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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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후의 방송 이면사 송영호님 (해방전후->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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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최초로 선임된 전국 방송국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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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의 미군진주와 일본 항복서명. 그때 그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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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북 분단 비극의 싹 8.26 북한의 남한방송 일방적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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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야의 정세와 경성방송국에서 있었던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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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방송국 일본 방송인이 말하는 8. 15의 패망의 날!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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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의 일본 방송인이 말하는 8. 15의 패망의 날!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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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을 맞던날 방송국에선, 그때 아나운서들의 회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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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의 날을 맞은 경성방송국, 그 최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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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정국의 최대 이슈 신탁통치 소용돌이와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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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정 3년간 실질적인 통치자 존 하지장군 (John Reed Ho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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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안 선생님 육성과 영상으로 보는 8.15 해방의 날

http://blog.daum.net/jc21th/17780164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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