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

최초의 TV중계방송 그때 그 모습, 국립극장 개관식 1962년 3월 21일

이장춘 2012. 6. 5. 02:47

 

 

  

 

우리나라에서 텔레비전 중계방송은

 1962년 3월 21일 국립극장 개관식을 계기로

실시되었습니다. 1961년 12월 말일을 기해서 TV전파를

발사했지만 방송준비가 제대로 된것도 아니고 장비가 갖추어진것도

아니어서 영화 등의 프로그램을 하루 겨우 4시간 정도의 흑벡 TV방송을 내

보내던시절 1962년 3월 21일 명동의 국립극장이 개관을 보게되어 그 실황을

중계방송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충무로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

하면서 세운 명치좌를 개조해서 국립극장으로 만들어 개관하면서

 그때로서는 큰 행사여서 역량을 모아 처음으로 연주소

밖에서 거행된 행사실황을 중계방송했습니다.

 

 

최초의 TV중계방송 그때 그 모습, 국립극장 개관식 1962년 3월 21일

 

 

이때까지만 해도 중계방송차가 마련되지 않아

방송용으로 또는 직원 출근차로 활용하던 HLKA 버스에

중계방송에 필요한 카메라와 파라보라 안테나 등 필요한 장비를

싫고가 현장에 설비를 하고 중계방송을 했습니다. 카메라 한대박에는

사용할 수 없던 시절이라 카메라를 중계현장에 설치하고 극립극장 난간에

삼각대를 세워 마이크로 웨이브 전파를 통해 남산송신소에  영상과 음향을

 보내고 다시 송신소에서 수신한 신호를 연주소에 보내  최종 편집 완성된

 프로그램이  남산송신소를 통해 방송되면  그 프로그램이  

안방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첫 중계방송은 1962년 3월 21일 저녁 7시반부터

8시 45분까지 1시간 15분간 실시되었고 같은 달 30일에

역시 국립극장에서 있었던 제1회 대종상 시상식이 중계방송 되었

습니다. 4월 19일에는 서울 운동장에서 있었던 두 번째 4.19기념식을

중계방송 했고 5월 19일 씨름대회 중계방송, 6월 12일에는 야구중계방송을

했습니다. 이때까지는 중계방송차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위와같은 방식으로

 중계방송을 했고  간단한 이동중계방송은 KBS 웨곤 차 위에 카메라나 파라볼라

안테나를 세워 실시했습니다. 이시절에는 강진구, 김성열, 오승룡, 정항구,

홍대규, 김태욱, 마종훈님 등이 TV중계방송을 위해 힘을 기울였습니다.

 강진구님은 뒷날 삼성전자 회장을 지내신 분으로 그때는

 KBS TV기술과 계장이었습니다.

   

 

 

 

TV중계방송차가 최초로 마련된것은

바로 이 무렵으로  1957년에 이동방송용으로

들어와 포항에서 방송을 하고 있던 이동방송차를 개조해서

TV중계방송차로 활용한것이었습니다. 이 중계방송차는 어찌보면

외국에서 들여다가 사용한 중고버스에 우리 기술진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국산 중계방송차였습니다. 이 중계방송차

 제작을 위해서 정항구, 조찬길님이 밤 낮없이

힘을 기울였습니다.  

 

 

 

 

이렇게해서 최초르 마련된 TV중계방송차는

정말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그 시절 그 많던 중계방송은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 중계방송차와 시설을

 활용해서 방송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체육관 장충체육관이

문을 연 것은 1963년 2월 1일로 이 개관식 역시 중계방송 되었고, 그 안에서

이루어진 김일, 천규덕, 장영철 등 국민이 환호하던 그 프로레스림이며 권투

그리고 야외에서 벌어진 각종 스포츠경기가 중계방송되었습니다.  

1963년 2월 27일 시민회관에서 있었던 정국수습 선서식등

수많은 행사가 중계방송 되었습니다.

 

 

 초기 중계방송 요원 (번호따라 1.이만희,

2.오승룡, 3.홍대규, 4.박상수, 5.박경환, 6.윤은상,

7.김장식님)중계방송차 앞에 섰습니다. 가운데는

 그 시절에 중계차에서 사용되던 TV카메라입니다.

 

 

 

 

TV카메라 한, 두대로 현장의 분위기를

모두 잡아내고 이동 중걔방송차나  FM카 위에

 아슬 아슬하게 TV카메라나 파라볼라 안테나를 설치해서

 중계방송을 하러 다니던시절 그러다가 안테나나 카메라가 현수막이나

전기줄에 걸려 어려움을 겪기도 했던 그시절!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오늘날

중계방송차 한대에 17대의 현대식 카메라가 장착된 거대한 중계방송차를

활용해서 중계방송을 하는 오늘날과 비교하면 5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격세지감이 있지만그 시절에는 그 시설로도

국민의 환호를 받으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오늘 글은 사진 자료를 보내주신

오승룡선생님과 그때 TV중계 방송차

제작에 참여하시는 등 초기 TV방송의 정착을

 위해 힘을 기울였던 방우회 정항구 이사님의

 설명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국립극장 난간위에 마이크로 웨이브 안테나와 오승룡, 홍대규님이 서 있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역마차.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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