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전방의 도시 속초! 아직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초가집이 즐비하던 어항 속초에 전쟁 중 이동방송용으로 사용되었던 방송차를 속초시 중앙동에 고정시키면서 속초이동방송국이 되었습니다. 이곳에 고정된 이동 방송 차는 1952년에 들어와 주로 전선 따라 이동방송을 하다가 1954년 군 야전사령부가 있는 원주에 고정해서 방송했습니다.
속초방송국의 추억
최전선에서 북한방송의 침투가 심하던 지역에 우리방송을 들려주어야 했고 또 동해안의 어업을 위한 방송 필요성이 절실 해 지면서 이동방송차를 속초에 옮겨 출력 300W, 주파수 1,000Khz, 호출부호 HLCS로 방송을 하기 시작 한 것은 1956년 7월 23일이었습니다. 속초에 아직 전기가 들어가지 않을 때여서 발전기에 의존했습니다. 제가 속초에 처음 간 것은 1965년이었는데 그때까지도 속초는 전깃불 없는 어둠 컴컴한 도시였습니다.
그때의 방송요원은 오랜 기간 그 이동 방송 차와 함께 전선지구를 돌아다니며 방송활동을 했던 신경석님을 국장으로 하고 김점학, 김영길, 박찬규, 김옥영, 김중기, 박석규님등이 근무했습니다. 신경석님은 이 나라 방송이 처음 시작되던 때 경성방송국 업무요원으로 들어와 오랜 세월 방송국에서 근무했고 6.25때는 해상 이동방송을 하다가 1952년 이동방송차가 들어오면서 이 방송 차와 함께 방송을 해 오던 분이었습니다. 그때 연세 50세로 오랜 기간 속초방송국장을 지내시다가 퇴직 후에는 방우회 회원으로 활동하셨습니다.
박찬규님은 1970년대까지 속초, 강릉 등지에서 방송과장을 하시던 분인데 일찍이 세상을 뜨셨습니다. 산언저리 자그마한 집에서 방송을 하던 속초방송국이 동명동에 새로운 청사를 마련해서 옮긴 것은 1968년 12월 23일이었습니다. 1960년대 북한방송의 침투로 어려움을 겪던 동해 북부지역과 동해안에 산재한 도서지역의 난청 해소를 위해 1971년 5월 15일을 기해서 양양에 50Kw 대 출력 송신소를 세웠습니다. 이때의 송신탑이나 송신기 등은 정동연주소나 연희송신에서 사용하던 기재를 활용 했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 관광과 피서가 중시되기 시작하면서 설악산 등 명승지와 해안의 피서객들이 늘어나고 남북을 오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여기에 부응하는 활발한 활동을 벌렸습니다. 속초 설악제, 양양 현신문화제, 고성 수성 문화제 등 지역사회에 기여 하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항구의 새아침, 설악의 메아리 등 지역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방송했습니다.
반세기를 이어오며 동해 북부를 대표하던 속초방송국은 새로운 시대 상황에 맞추어 2005년 7월 1일을 기해서 강능방송국으로 통합 흡수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습니다. 이때 속초를 비롯해서 태백, 공주, 여수, 군산, 남원, 영월이 통폐합되었습니다.
1972년 공시되기 직전 근무 하시던 분
국장 김덕수
방송과장 박찬규 기술과장 김광모 양양 송신소장 이병구
강진희, 박창근, 김명희, 김진호, 전인규, 진동열, 황창건, 이진만, 유경혁, 이윤식, 윤희원, 하홍대, 시강덕, 최우규, 유용우, 오대환
2,000년에 이곳에서 근무하신분들의 성함입니다.
국장 최상호
방송부장 백봉기
심진업, 이정환, 신승표, 유영배, 안종호, 이재경, 윤석황, 김영선, 김옥녀
기술부장 이창수 김종진, 최종남, 안승철, 최명덕, 용순문, 김승천, 오수기, 김동주, 장주홍, 이경복, 최창기
총무부장 윤영한 고인재, 심재현, 정춘오, 김인래, 함길호, 이재현, 권성은
전선따라 이동방송 하던때의 이동방송 차
1968년 12월 28일에 신축이전한 동명동 첫사
1993년 8월 20일 사명동 청사 준공 기념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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