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방송

여수방송국의 추억

이장춘 2012. 2. 21. 00:44

 

 

 

1957년 두 대의 이동방송차가 들어와

전국을 돌며 3차에 걸친 이동방송을 실시하고

 그 이동 방송차를  그해 10월부터 어업 기상통보 등

 방송 필요성이 절실하면서도 방송 사각 지였던 해안도시

 포항과 여수에 배치하면서 앞서 들어와 이동방송차가 고정

배치된 속초를 비롯해서 포항과 여수가 이동방송국이

되어,  세 곳의 이동방송국이 생겼습니다.

 

 

여수방송국의 추억

 

 

 

 

 고정된 방송국이라 굳이 이동방송국이라

 할 것도 없었지만 법률로 정해진 직제가 없어서 임시로

 설치 되었다는 의미로 이동방송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동

방송차에서 방송하던 250W출력에 주파수 1,360Khz, 호출부호

HLCY로 방송을 시작했고 5.16이 일어나면서 6월 22일부터 바로

방송국으로 승격해서 여수방송국이 되었습니다. 이동방송차로

 방송하던 여수방송국이 여수시 중화동에 사옥을 갖춘 것은

 1964년 일이고 그 다음해 11월 20일 순천에 250W

중계소를 세워 청취권이 확대 되었습니다.

 

 

 

  

1968년 신월에 10Kw송신소를 세워

남해안 일대의 방송기지로 역할을 수행했으며

1974년 4월 망운산에 TV중계소를 세워 서부경남과

 전남의 동부 그리고 남해안 섬지역의 TV시청이 가능해졌습니다.

고흥에 중계소를 세우는 등 라디오&TV시청권 확대 등을 통해서 육지와

해안 그리고 남해의 다도해를 어우르는 지역사회에서의 방송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89년 2월 17일 기해서 새로운 청사가 마련되어

지역사회의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 수행에도 기여했습니다.

그 청사는 원래의 생각과는 달리 지반이 암반으로 되어

있어서 기공으로부터 준공까지는 공사기간도 

길어졌고 많은 우여 곡절이 있었습니다.

 

 

 

 

여수방송국은 1957년 이동 방송 차에서

 방송을 하던 때로 부터 오랜 세월 괄목 할만한 발전을

가져오며 지역사회에 공헌했지만 위성방송과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2005년 7월 1일을 기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비록 방송국은 갔어도 50년 가까운 세월 동부 전라남도와

서부 경상남도 그리고 광대한 영역의 다도해 주민들과 이 지역에서 어업

활동을 하던 어민들의 벗 여수방송국이 있었음을 기록으로 남기고

 또 추억을 되 살려보는 의미로 이 글을 올립니다.

 

 

 

 

1957년 이동방송 개국시 근무하시던 분들

 

이종만, 김병기, 최규중, 곽경자

 

 

1961년 개국시 근무하시던 분들

 

 

국장 이종만,

 

 

방송과장 김봉완,

 

아나운서 곽경자, 이명열,

 신숙희, 김명자, 최운하

기자 김상진, 행정 이기동

 

 

 기술과장 고문석

 

엔지니어 서구호, 임계주, 명선태

 

 

1972년 말에 근무하시던 분들

 

 

국장 조남두

 

 

방송과장 이태원 

감용래, 우재희, 박영학, 김성옥,

박봉열, 이신웅, 김순기, 차영주,

 최성덕, 이양자, 송진부,

 

기술과장 서구호  

윤효중, 김천주, 김길채 

 

신월 송신소장 오이열 

이수웅, 이덕만, 김정열 

 

순천중계소장 김정규 

문기언, 정장록, 성안민, 강병식,

여경남, 이은옥  (순천중계소는 1976년

7월 1일 방송국으로 승격되었습니다.)

 

 

1976년 여수방송국 입구 계단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번호따라 1.곽봉천 2.김남수기자 3.김용래선배 4.신영옥아나운서

 5.김상천기자(?) 6.이원배방송과장 7.김선초국장 8.서구호기술과장 9.최성덕PD

 10.이종호업무과장 11.우재희기자(?) 12.? 13.? 14.정채권 청경 15.김x PD(?) 16.이혜자

아나운서(?) 17.?18.? 19.정재철씨(기술) 20.? 21.김동희(신월 송신소장) 22.김정빈

 23. ? 24, 이광수, 25.남기용), 그때 여수방송국에 근무하셨고 뒷날

남원방송국장을 지내신 이광수님이 설명을 붙혔습니다.

(사진제공 : 김선초국장님) 

 

 

   

 

2,000년에 이곳에 계시던

성함을 올립니다. 이분들 가운데서

 여수방송국의 마지막을 보신분들이

 믾으실 줄 압니다. 

 

 

국장 윤재홍

 

방송부장 강정기

 

지창환, 윤형혁, 정병준, 정길훈, 박정수, 박영학,

서재덕, 권완석, 최명순, 박종만, 명관웅, 황정화

 

기술부장 박명대

 

이금열, 주임창, 김일곤, 전희백, 김정근, 김병수,

최석준, 장진영, 김형섭, 이승관, 이창윤

 

총무부장 조호윤

박승철, 범낙규, 김종일, 장영대, 황준순,

이혁범, 백숙희, 정은정, 김은경, 김혜정

 

방운산 송신소장 최삼국

조두길, 박병기, 구용훈, 김용열, 오중환,

류광진, 조경석, 유수현, 정종완, 강상원

 

 

 

    

 

이동방송국 때의 여수방송국입니다.

 

여러개의 사진속에는 이곳에 근무하시던 조남두, 

 

안현태, 김병기, 윤미자님등이
보입니다. 조남두님은

 

일제강점기 광주방송국
개국때부터 계시던분으로 여러곳의

지역방송국장을 지내셨습니다. 여수방송국에서 출발한

안현태님은 광주에서 근무하시다가 중앙방송국을

거쳐 순천방송국장하셨습니다.

아래 사진은 남원방송국 김봉완 방송과장,

우제탁님등이  이종만 여수 이동방송국장 시절 

여수에 갔다가 이종만님 등 여수방송국 직원들과 함께 한

사진입니다.이동방송국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어서 여기에 올렸습니다.

 

조남두 국장님과 이병열 아아나운서, 김병기 기술과장님, 중앙방송국

 박노설 아나운서의 동생(여자 아나운서)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1971년 남해의  800M이상되는 망운산 TV중계소가 세워지면서 동부전라남도와 서부 경상남도의 TV시청이 가능 해 졌습니다.

 

1971년 여수방송국에서는 향토예배군을 돕는 자선음악회를 열었습니다.

 

공사창립의 틀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관리실 관리부장이던

전옥배님과 차장이던 이장춘이 1973년 9월부터 10월까지 약 한달간에 걸쳐

전국 KBS시설에 관한 현장파악차 현지 출장을 한적이 있습니다. 여수방송국 소속

남해 망운산 TV중계소를 오르다가 산 중턱에서 배다를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걸어서 오르내리던 시절, 아침 일찍 여수를 출발해서 김선초 여수방송국장님과 함께 비탈길을

올랐습니다. 저는 평소에 산을 잘 올라서 해수면에서 부터 오르는 800고지라 해도 오르는데 자신이

 있었지만 전옥배님이나 김선초님은 힘들다는 말을 되풀이 하며 산을 올랐습니다. 새찬 바람과

외로운 고지의 사원들이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오록 하기 위해 탁구시설을

갖추었고 월동준비도 미리 하도록 했으며 본사의 임원들이

위문을 하도록 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샌디에고의 새소리 음양.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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