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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관현악단의 발자취와 사진으로 본 그때 그 모습, KBS경음악단

이장춘 2012. 1. 6. 00:16

  

 

시청자들은 공개방송이나 그 밖의 여러 무대에서

 연주하는 악단의 모습을 봅니다. 이 악단은 방송에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것이고 이 악단을 규모나 구성에 따라 대체로

경음악단, 관현악단, 교향악단이라고 부릅니다. 일제 강점기 때의

 악단이나 해방공간의 악단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에 써 올린 적이

있으므로 끝 부문에 그 글을 링크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6.25후의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위 사진은 KBS TV 개국무렵 (1961년 12월 31일)에

당시의 최고 히트곡 손석우 작사 작곡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를 김광수님이 지휘하는 KBS HLKA 악단의

반주에 맞추어 열창하는 한명숙님이고 아래는 TV 개국식

진행장면의 일부입니다. 

 

 

 

방송 관현악단의 발자취와 사진으로 본 그때 그 모습

 

 

 

 

부산 피난시절에는 방송국 전속악단이라기보다는

방송국에서 필요 할 때 그 시절 부산에서 활동했던 김광수

악단이나 이재호님 등의 악단, 해군 군악대 등 외부 악대의 협조를

 받아 활용했습니다. 1953년 8월 서울로 돌아온 방송국은 1955년부터

노래자랑, 스무고개 등 공개방송을 했고 음악방송에도 악단이 출연 할

필요가 생기면서 경음악단이 운영되었습니다. 이때의 경음악단은

6.25전 KPK악단의 멤버로 활약했던  손석우님과 송민영님이

주축이 되었고 노명석, 황병갑님이 참여했습니다.

 

 

 

 

정해진 악장은 없었고 방송 출연 때 마다

사례를 받는 형태로 운영되었습니다. 그 생활이

고달팠어도 방송이라는 공익적 매체에 마음이 끌려

헌신적으로 힘을 기울였습니다. 방송국 직원이 아니었어도

 방송국직원이나 다름없이 방송국을 사랑하며 일했고 정기적인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가수도 길러 냈습니다. 훌륭한 가수를

길러내면 본인이 인기도 같이 올라가는 것이어서 훌륭한

 노래를 작사하고 작곡해서 전속가수에게 주어

 잘 부르도록 열심히 지도했습니다.

 

 

 

 

송민영님은 그때의 톱가수 송민도님의

친동생으로 6.25전부터 대단한 쇼맨십을 발휘하면서

 인기몰이를 하던 분이었습니다. 누나 송민도님의 노래는

송민영님의 뒷받침으로 더 빛났습니다.   그때의 멋진

동영상들이 있어서 본 블로그에도 올라 있습니다.

 

 

동영상, 송민영 악단 반주에 맞추어 노래 부르는 송민도

 

 

음악을 먼저 끄셔요. 

 

 

 

 

 

 

 

 

손석우님의 눈부신 활동에도

불구하고 직접 연주하시는 동영상을

구 할 수가 없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때의

전속악단 운영을 알아 보기위해 손석우

님에게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때의 악단은 음악계장 김창구 씨의

 진력으로 어렵게 결성 됐는데 누가 악장이라는

명시는 없었어요. 계장이 아래와 같이 역할을 안배하고

 우린 그에 따라 책임 수행을 했던 거죠. 그리고 일정한 보수도

없었어요. 이름도 "전속악단" 이었고요. 방송이 끝나면 그 때마다

방송사례로 치러졌었죠. 애당초 보수가 좋아서 참여한 게 아니고

영리단체가 아닌 공익방송 이기에 가담했던 거죠. 보수

문제로 가담을 거부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계장이 말한 적도 있어요.

 

역할 담당 : 수요일 밤의<노래와 경음악>은

송민영(tb) 씨가 편곡과 지휘를 토요일 밤의 <대북

방송>은 노명석(acco) 씨와 황병갑(bass) 씨가 교대로

일요일 밤의 <노래수첩>은 저 손석우가 편곡, 지휘를 맡아 했죠.

정규방송이 아닌 가요방송 땐 주로 제가 지휘를 맡아 했고요.

그리고 <노래자랑>이나 <가수선발> 때는 주로

송민영 씨와 제가 "심사원"으로 참여했고요.

 

그때 박춘석님이 KBS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거나 KBS악단을 지휘했다는 얘기가

있어서 그 말씀도 여쭈어 보았습니다.

 

박춘석 씨는 이 악단과 무관했어요.

참가했다면 초기 잠간동안 이었을 거예요.

 pianist 로 權寧鎬 씨가 있었으니까요.

 

 

이무렵 나화랑, 전오승, 박춘석님이

KBS와 깊은 인연이 있었고 명국환, 등 그

애제자가 KBS 전속가수로 활동했어도 방송국

그 무렵에 악단의 지휘를 맡은 것은 아니었고

나화랑님은 1962년 김광수님이 kbs를 떠난후

악단장을 맡은적이 있습니다.

 

 

 

 

15인으로 구성되었던 KBS경음악단이,

23인으로 확대되면서 서울방송 관현악단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것은 1958년 4월 1일이었습니다.

그때는 박시춘님이 지휘를 했습니다. 박시춘님은

해방공간의 KBS 경음악단 지휘를 한 이래

두 번째의 악단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박시춘님의 바통을 이어 받은 분이

김광수님이었고 손석우님은 MBC가 창설될 때

 MBC악단을 지휘하면서 박목월님이 쓴 MBC사가를

작곡하셔서  2010년 무렵까지 MBC 방송 개시와

끝날 때 방송 되었습니다. 지금도 춘하추동방송

 블로그에서 노래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mbc는 손석우님이 오아시스 레코드로

옮기시면서 잠시  金虎吉님이 악단을 조직하고

 지휘하다가 1963년과 64년에는 KBS 악단을 지휘하던

 김광수님이 지휘를 맡았으며 김광수님은 다시 RSB가 개국하면서

라디오 서울로 옮겼습니다. 1961년 12월 31일에 KBS TV가 개국할때

 김인배님이 지휘하는 KBS TV악단이 탄생했고 1963년  KBS 악단을

지휘하던 김광수님이 MBC로 옮기면서 김강섭님이

 KBS악단 지휘자로 등장합니다.  

 

 

 

 

또 TBC 동앙방송에는 이봉조님이 지휘하는

악단이 탄생하고 DBS 동아방송에도 노명석님이 지휘하는

악단이 생겼습니다.  KBS에 라디오와 TV악단이 있고 각 민영방송

별로 악단이 탄생한 것입니다. KBS는 서울중앙방송국과 서울국제방송국,

서울텔레비젼 방송국으로 나뉘어 있던 남산의 방송국들이  1968년

 7월 25일을 기해 중앙방송국으로 통합하면서 관현악단도

 통합의 필요성이 생겨 결국 김강섭님이 지휘하는 

악단으로 통합되었습니다.

 

 

 

 

 

1980년 12월 1일 기해서 뜻 밖에 방송

 통폐합이 이루어지면서 동양Radio (김인배악단)

동양TV (이봉조악단) 동아Radio(노명석악단)이 KBS로

왔습니다. 김인배님과 노명석님은 오랜만에 KBS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김강섭님도 계속

KBS에서 악단을 지휘했고요.

 

 

 

 

여러 약단의 지휘자 중에 일찍이

세상을 뜨시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갔지만

 김강섭님은 KBS에서 활동을 계속 이어가 1995년

정성조님에게 지휘봉을 물려 줄때까지 오랜 세월 KBS

악단의 지휘를 맡으면서 작곡활동을 했고 또 비록 지휘봉은 

물려주었지만 명예단장, 객원지휘자 등의 이름으로 가요무대 등의

악단을 지휘하며 상당기간 활동을 하다가 2005년에 이르러 무대를

떠났습니다. 2005년3월 정성조 단장이 악단을 떠남에 인터넷 공모를

 통해서 선임된 악단장이 지금의 김대우님으로 두 번에 걸친

 KBS 악단장을 지낸 김인배님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KBS 관현악단은 때에 따라 경음악단,

관현악단 등으로 이름이 바뀌고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꾸준히 발전해 왔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요즈음은 해외활동도 잦아졌습니다. 오늘은 이만 줄이고

 부족한 점 잘 못 된 점은 다음기회에 보완 하도록 하겠습

니다.  지난날의 악단에 관한 얘기는 아래 영문자를

클릭하셔서 보실 수 있습니다.

 

 

경성방송국 양악을 이끌었던 사람들/ 홍난파, 박경호, 김생려

http://blog.daum.net/jc21th/17780883

 

JODK오케스트라(교향악단)에서 KBS교향악단까지

http://blog.daum.net/jc21th/17780948

 

박시춘 손목인, KBS 최초 전속 경음악단 지휘자

 http://blog.daum.net/jc21th/17780881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나하나만의 사랑.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