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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본 초기 TV방송 화면 디자인 작품과 KBS TV 정규봉, 김순옥

이장춘 2011. 12. 28. 04:58

 

  

 

오랜기간 화면 디자이너 업무를 수행한

정규봉님이 1972년 방송사상 최고의 시청율을

보이면서 돌풍을 일으킨 여로의 주인공 장욱재님과

함께 사진입니다.   정규봉님이 손수제작한 수많은 TV

화면디자인 작품과 함께 그 시절 장욱재님의 실재사진을 구하기

어렵던 차에 이 사진의 제공으로 춘하추동방송의 내용을 한층 더

풍부하게 해 주셨습니다.     정규봉님의 디자인 작품과 그 시절

장욱재 실재 사진은 춘하추동방송 여러곳에 활용되었습니다. 

 정규봉님은 세상을 뜨셨어도 그의 작품은  춘하추동

방송을 통해서 영원히 남습니다.

 

 

사진으로 본 초기 TV방송 화면 디자인작품과 KBS TV 정규봉, 김순옥

 

 

TV방송초기 생방송을 하던 때나 ENG 카메라나

문자발생기 또는 컴퓨터 등이 보급되기 전에는 사람이 손수

 디자인을 해서 그림을 그리거나 스틸 사진위에 적절한 그림을 가미

하고 글자를 써 넣어 활용했으며 또 화면상의 필요한 글자도 모두 손으로

써서 활용했습니다. 각종 프로그램 예고나 행사 예고, SPOT, 자막방송 등

STATION BLANK 등에 그런 화면들이 많이 활용되었고  프로그램의

테마 화면에도 활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일을 하는

디자이너의 역할도 중요시되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옛 얘기일지라로 TV방송의

 발전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국 안에는 보관 되어있는 작품들이

 적습니다. 작품들이 분실된 경우도 있고 또 디자이너들이

분실을 우려해서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방송 박물관이 설립되고 그런 작품의 중요성이

 인식 될 때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은 박물관으로

모아 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업무 책임을 맡았던 분은

TV벙송 개국때부터 60년대 말까지 김영우, 박중서, 최학수, 한영수님

이고 서울대학교 미대를 나온 김영우님은 공사 된 뒤 1980년대에도 미술책임을

맡았습니다. 이 일을 가장 오랫동안 수행한 디자이너는 고 정규봉님이고 이 외에도

초기에 김순옥, 김동진, 심재영, 강인춘님 등   이 업무를 수행한 분들이  여러분

계십다. 71년 말 현재 근무한 디자이너를 보면 정규봉, 강인춘, 윤인섭,

유범웅, 하양동, 한동수, 이명선, 정영애, 권혁준, 장창현,

 조희도, 박부남님이 재직 하셨습니다. 

 

 

 

2015년 7월 필자와 반세기가 넘는 세월

가까이 지내던 김헌수형이 무대계가 출범하던

시절 자세한 설명을 붙인 위의 사진 한장을 보내

오셨다. 감회어린 사진, 글과 함께 올린다.  

 

 

김헌수님 글

 

어렵고 힘든 여건에서도 열심히 일했던

사진 속의 사람들, 사진 제일 뒷쪽 안경을 낀 사람

소도구 김성호, 바로 앞 흰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이 무대

총감독 겸 세트디자이너 장종선, 그 바로 옆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이 목공 조장 이복덕, 아랫줄 맨 왼쪽은 타이틀 디자이너순옥,

그 옆 바지차림의 아가씨는 세트 디자인을 도와 일했던 김화자, 사진

 맨 오른쪽에서 도봉산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검은 모자를 쓴 사람이

 작화 이한우, 기타 세트맨들, 앞줄 맨 오른쪽, 허리춤에 팔을

 대고 반동자세로 서있는 사람이나 김헌수이다. 나는

무대용품을 지원하고 서무를보고 있었다.

 

 

 

 

KBS TV 개국 초창기, 밤을 새워가며

묵묵히 일했던 무대 목공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부서단합을 겸해 도봉산으로 떠난 1963년 10월 30일

야유회 때 찍은 사진이다. 가을이 한창일 때이지만 흑백

사진이라 화려한 단풍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우뚝

 솟은 바위산의 장엄함이 느껴지는, 그러나 내겐 옛날을

생각하게 해주는 그리운 사진이다.

 

그 무렵, 영화나 수입 다큐멘터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스튜디오생방송이었다.

스튜디오가 부족해 한쪽에서 는 좌담이나 뉴스를

 생방송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드라마, 쇼프로그램 세트가

 조립되곤 했다. 이로 인한 망치소리, 톱질소리로 방송담당자와

 목공들간에 마찰이 빈번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시 인원은 총감독 디자이너 1명, 디자이너

 보조와 작화 3명, 세트목공(대도구) 12명, 소도구 1명,

물품지원 겸 서무 1명, 타이틀 미술 약 5명 등

 모두 23명 정도로 기억한다.

 

그 후 TBC, MBC TV가 개국하면서

한꺼번에 5~6명이 옮겨갔다. 이른바 스카우트

됐던 것, 그여파로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지만 KBS가

 그런 경험있는 방송인력을 공급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음이

뿌듯하다. 그 때는 디자이너의 경우, 디자인 1장 하는데 얼마 하는

사례형식으로 보수가 지급되어 전문직이면서도 대우가 박했던 터라

어떻게 해서라도 디자인 작품 수를 늘려 더 받으려는 디자이너와 지원업

무를 담당하는 내 생각이 달라 종종 충돌했다. 초창기에는 서무과 아래

 지원실이라는 이름으로 있다가 기구 개편으로 TV제작과 무대계가 되었다.

초대 무대계장에는 서울 미대출신 김영우 씨(사우회 원로회우)가 발탁

되었다. 그 후 제작지원국 미술부 등으로 확대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사진속의  53년 전 인물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다. 이산가족처럼 소식 끊어진지

오래지만 한번 만나고 싶다.

 

 

 

 

그시절 제작된 화면 디자인 작품

정규봉님의 소장품은 필자 이장춘에게

있습니다. 보관한 앨범의 질이 좋질 않아서 

일부 작품의 다소 변질된 것이 흠입니다.

 그 작품 중에서 일부를 골랐습니다.

 

 

 

방송 시작 전에 타령과 함께 꾀 긴 시간

보여주던 화면조정시간에 활용하던 작품입니다.

 

 

연말연시에 썼던 작품들입니다.

 

 

 

 

 

 

 

 

 

 

 

 

 

 

위, 이래 화면들을 보면 처음에는 서울채널만

소개 되다가 청주, 대전, 소개되고 차츰 서울에서 먼지역

추가 됩니다. 이것은 서울로부터 가까운 지역부터 중계소가 설치

되면서 텔레비전 시청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마이크로웨이브나

동축케이블 등은 엄청난 비용부담 때문에 현실적으로 사용이

 불가능해서 고지와 고지를 연결하는 중계시설을

 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대전에서 서울의 TV를 직접 받아

중계방송 할 수 없어서 흑성산에 TV중계소를 먼저 설치

하고 그 방송을 식장산에서 받아서 방송하고 또 그 식장산의 

방송을 이리 미륵산에서 받아 방송을 해야 했기 때문에 서울에서

가까운 지역부터 방송을 시청 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래 방송망 

확장상황을 참고 해 주시기 바랍니다)  TBC가 부산에서

 방송을 했지만 그것은 서울에서 방송된 필름을

 수송해서 방송하는 절차를 밟았습니다.

 

 

 

 

 

방송망 확장상황

 

 

1966. 6. 20 천안 흑성산 CH6 100W

1966. 7. 27 김천 금오산 CH2 300W

1966. 8. 17 전주 미륵산 CH6 600W

1966. 8. 20 대전 식장산 CH4 1KW

1966. 8. 26 광주 무등산 CH3 30W

1967. 11. 21 춘천 용문산 CH3 500W

1967. 12. 30 부산 봉래산 CH5 500W

1969. 5. 7 대구 범어동 CH7 2KW

1969. 5. 9 마산 불모산 CH8 500W

1969. 12. 24 안동 학가산 CH9 500W

1969. 12. 31 남산 출력증강 CH9

2KW->12.5KW

 

 

 

 

  

 

 

위는 정규봉님이 프로듀서  이해욱(이잔욱) 

탤런트 정혜선님 등과 함께 한 사진입니다.

 

 

 

 

위는 정규봉님이 1964년 디자인 작품

전시회를 열고 있는 모습이고 아래는 1968년

중앙방송국 텔레비젼 청사 앞에서 디자이너 들이 소속된

 무대계 직원들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그  때 계장님은 한영수

이고 정규봉, 김동진, 심재영님이 일했습니다.  

 

 

 

 

아래 사진 KBS TV 최초 화면

 디자이너 김순옥님입니다. 김순옥님은

 서울 미대를 나와 초기에 타이틀 디자이너로

 일하던 중 미국에 채류하다가 돌아와서 1970

년대 까지 미술실에서 근무했습니다.

 

 

 

 

MOEX 선생님 글



90년대 초반, 그러니까 KBS-3TV가

교육텔레비전으로 독립하고 EBS 극초창기에

이르기까지,  이런 손그림을 ID화면으로 쓴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KBS-1TV와 2TV가 모두 동영상

 ID를 쓸 때도,   3TV는 유독 이런 손그림 ID를 썼었죠?)
다만, 이   때는 이미 컬러화가 진행된 지 한참이라
손그림

ID도 당연히 천연색으로 그렸다고 이해는 할 수 있는데...

흑백으로 방영하던   60-70년대에는 저렇게 손그림 ID도

흑백으로 맞춰서 그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는지요?
워낙 궁금해서 얼마전에 NHK박물관 직원분에게

물어봤는데, 확신은 못하겠다고 하시면서도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아마 흑백환경에서 더 명확하게 보이려고

고대비효과(High-Contrast)를 노린 게 아닐까요?"
그럴싸한 설명이긴 했습니다만, 정말 그런 의도로

 작업이 된 건지...당시 일하셨던 선배님으로서

설명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김헌수 선생님 글



방송사료를 찾아 열심을 다 하시는

 춘하추동방송 이장춘이사님의 열정에 스스로

머리숙이고 감사인사를 새롭게 드립니다.   올리신

글을 통해 당시 tv타이틀 미술실 개국과 함께한 옛 동료가

생각 납니다....강 ? ? (옛 일이라 이름미상 ), 김동진 (국립극장장)

 심재일   (추계미술대학교수)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정규봉(사망)

김옥순 (위 사진에 뜬 김순옥 같은데요? 그리고 막내 고유철(사망)

 ......아아 그립다 살아 있으면 춘하추동방송을 찾을법 한데.......

이장춘회장님 항상 영육이 강건하시고 아름다운 노년 

 더 활기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이장춘 회장님

김순옥이 한국에 있는지 보고 싶네요.

  연락 좀 주세요



강춘 선생님 글

 

 

반갑습니다.
남산 tv시절 가지고 있는

id가 몇장 있습니다.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kic2806&folder=15&list_id=12134477


위에 제 사진도 살짝 보입니다.
정규봉씨 옆.^^*

 

 

답  글



잘 보았습니다.

강춘님!
얘기를 들었습니
다.
강인춘님 이시지요.

정규봉님은
저와 참으로 오랜세월

 함께 했습니다.
부인께서 지금도 전화가

오시지요.

이것 저것 자료
승용차 한차분을 저에게
남기고 떠났습니다.
빙송국에서 필요 하다기에

id와 그 시대의 필름 등 조금

 빌려주었는데


잘 보관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아직 많은 양의

 id가 있습니다.


kbs가 잘 보관할 준비가 되면
kbs에 넘기려고 합니다.

강선생님 작품도
제 블로그에 올릴 수 있으면
강선생님 제공으로

올렸으면 합니다.

아마쪼록 소원성취하시고
행운이 함께 하심을 기원합니다. .



강은영 선생님 글

 

 

아...저는 현직에서 방송디자인 일을

하고 있는 프리랜서 자막디자이너입니다.
지나가다가 이렇게 좋은 자료를 소장하신 걸 보고

감탄스러워 글 남깁니다. 선대의 훌륭하신 선배님들이

계신 덕분에 방송디자인이 나날이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더 방송디자인 분야를 전문 분야로 개선발전하고자

 이번에 이러한 주제로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합니다. 자료를

찾던 중 오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뿌듯하게

둘러 보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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