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방송

1960년대 방송 상황과 민영방송 탄생

이장춘 2011. 10. 7. 02:35
 
  
 
일제강점기부터 JODK로 시작된 우리나라 방송은
 6.25전쟁기간까지 KBS단일 방송체제였습니다. 해방 후부터
추진되었던 기독교방송이 1949년 방송서치허가를 받아 기계를 도입
하던 중  6,25가 일어나 1954년에야 종교방송 기독교방송이 문을 열었습
다. 1956년 HLKZ라는 TV방송이 문을 열었지만 제반여건이 성숙되지 않은데다가 
1959년 2월 뜻밖의 화제로 그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워 결국 폐쇄되고 말았습니다.
1960년대를 전후해서 전쟁의 상처도 차츰 아물어가고 다양화된 사회가
형성되어 가면서 국민의 욕구도 새로운 양상을 띠어 가던 때에
 4.19와 5.16이라는 대 격변기를 맞으면서 새로운
 방송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1960년대 방송 상황과 민영방송 탄생


 정부의 경직적인 정책으로  4.19전에는
서울에서 방송국 설치허가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랜 세월 방송국을 자기 손으로 새울
꿈을 실현시키려는 인사가 있었습니다,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나
 일본유학을 마치고 1930년대부터 조선방송협회에서 근무했던 정환옥
(鄭煥玉)이었습니다. 서울에 방송국을 새우려는 꿈을 가졌지만
 그 허가가 불가함을 알고 여건이 좋은 부산에서 그 꿈을
 실현시켜 부산문화방송을 설립했습니다.
 
 




(부산 문화방송 편 참조 ) 정환옥의 꿈은
 1961년 서울 문화방송 개설로 이어지고 1964년 라디오서울,
 동양TV등으로 이어졌으며 1968년 남산 종합타워 건설로 그 결실을
보았습니다. 4.19는 그동안에 싸인 국민의 다양한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되던 시기였습니다. 이를 전후로 그동안 억제되었던
 서울에 네 개나 되는 방송국 설립허가 나왔습니다.


 부산문화방송도 설립허가서를
냈지만 문화방송의 설립허가는 나오지 않았어도
최두선 사장명의의 동아일보사, 김규환 명의의 천주교, 고희동
명의의 민간방송 주식회사, 김상용 명의의 서울 문화방송 주식회사
이 네 방송국의 설립허가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 가운데서
 김상용명의의 서울 문화방송만 5,16후에 설립허가가 취소
되고 세 개의 방송국은 모두 문을 열었습니다.
 
 




김상용은 정환옥과 함께 부산문화방송국을
세운 사람으로 부산 분화방송에서 어려움이 겹쳐
 김지태에게 넘기고 재빨리 서울에 방송설립허가를 신청해서
허가를 받아 방송국 설립을 추진했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세월이
 흘러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허가가 취소되었습니다. 이때 허가가
나와 방송국 설립이 실현된 3개의 방송국은 1961년의 문화방송과
 1963년의 동아방송, 1964년의 라디오 서울입니다,


서울의 문화방송은 부산문화방송이 세운 방송국입니다.
김상용과 함께 부산문화방송을 세웠던 정환옥은 김상용과는 달리
서울에 부산 문화방송계열의 방송국을 새울 뜻을 가지고 부산 문화방송
사장임과 동시에 부산일보 사장이며 조선 견직회사의 사장으로 재력이 뒷받침
 되어 서울에 방송국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정환옥은
김지태와 협력해서 서울에 방송국 설립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그 허가부터가 나오질 않았습니다.
 
KBS에 근무하던 고희동의 사위와 친분이
있었던 정환옥은 고희동의 방송국 설립이 어려움을
알고 그분과 접촉해서 그 허가를 인수받아 1961년 초부터
 방송국 설립을 추진 그해 12월 2일 서울문화방송이 문을
 열었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합니다)
 
 


다음 문을 연 것은 1963년의 동아방송으로
최두선 사장명의 의 허가에 따라 설치된 것이어서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설치된 방송국이 1964년의
라디오서울이었습니다. 이 방송국은 천주교 김규환 명의의
 허가서로 설치되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민영방송
 라디오 서울 편에 있습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울에 3개의
민영 상업방송이 출연하고 또 종교방송으로 탄생한
기독교방송이 1962년 상업방송을 겸하는 허가를 받으면서 네 개의
민영 상업방송이 탄생 했습니다. 한편 라디오 방송만 하던 국영 KBS가
 1961년부터 TV방송을 실시했고 TBC가 1964년부터, MBC가 1969년부터 TV방송을
실시하면서 1960년대는 다원화된 방송환경과 극심한 경쟁체제가 형성되어
 갔습니다. 국영으로서는 한계에 부딪혀 1973년 3월 3일부터
 공영방송 한국방송공사가 탄생했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나 하나의 사랑.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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