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방송

1970년대 TV드라마의 돌풍 아씨와 그 주제곡

이장춘 2011. 7. 16. 15:50

 

 

 

아씨! 본격적인 TV  일일 연속드라마 효시

 대힌민국  본격적인 TV방송시대를 연 1970년 그 드라마

TV수상기 40만대이던 시절 안방을 뜨겁게 달군 그 드라마

라디오방송 전성시대, 극장영화 전성시대를 마감케 한 주역 아씨!

방송사에 길이 빛날 아씨! 그 드라마가 방송 된지 그로부터 43년! 강산이

 네 번이 바뀌었다. 세상은 농경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바뀌고 아날로그 흑백 

 TV방송시대에서 디지털 위성방송시대로 바뀌었다. 이 방송드라마를 방송했던

TBC 동양방송사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되었어도 이 드라마의 족적은 방송사에  길이 남고

그 영상을  볼 수 있어서 천만 다행이다.

 

 

아씨의 줄거리

 

1930년대부터 50년대까지를 시대 배경으로
여필종부를 미덕으로 하는 한국 여성상을 그려 갔다.
극중 아씨(김희준)는 남편(김세윤)이 신여성과 공공연히 외도를
일삼았지만 삼종지덕 여자의 길을 따르면서,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구박을 참아내며 남편이 밖에서 낳아온 아들까지 친자식처럼 키워

가는 전통적인 한국 여성상을 그려내는 드라마였다. 극중이라고는

하지만 못된짓을 하는 남편, 구박하는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시청자들로 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아씨는 칭찬을
받은것은 지금보다 훨씬 더 했다.

 

 

아씨! 마지막회 동영상보기

 

 

동영상을 보시기전에 음향을 끄셔요.

 

 

 

 

 

 

 2013년 5월에 올린 동영상 전편

 

 

 

2013년 5월에 올린 동영상 후편

 

 

 

아씨를 끝내면서 출연진 특집좌담

 

 

 

 

2012년에 올렸던 동영상

 

 

 

TBC동양방송이 1970년 3월부터
71년 1월까지 253회에 걸쳐 방영한 아씨는
최초로 성공한 TV일일 연속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로부터 라디오시대는 뒷전으로 가고 또 영화계도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텔레비젼 방송시대가 열리면서 TV방송 3사는
드라마와 쇼프로그램을 통한 극심한 경쟁상태에 빠져들어,
1980년 방송 통페합이 이루어질때까지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보여 주면서 한 시대의 획을 그었습니다.

 

 

 

 

1960년대까지 TV에서 단막극이나
주간 연속극은 있었지만 일일 연속극은 사실상
어려웠습니다.  생방송이라는 제약과 제작비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가 없었습니다. KBS가 1969년 5월 주간 기본방송

순서에서 일일연속극을 편성하고, 5월 21일부터 당시 최고 반열에

있던 임희재 극본에, 최고의 연출력을 보여준 이남섭이 연출 봉을

쥔 신부 1년생이 30회를 방송 하면서 일일극의 가능성은 보여

주었지만 시청자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습니다.

 

 

 

 

1970년을 전후해서 방송국 사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완전치는 않았어도 TV 전국방송망이
갖추어지고, 국산 텔레비젼이 보급 되면서 TV수상기가
 급속히 늘어 났습니다. 때를 맞추어 MBC가
1969년부터 TV방송을 했습니다.
 

 

 

 

 
제작비에 제약을 덜 받던 TBC가 야심찬
 일일연속극에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임희재 극본,
고성원연출의 아씨가 1970년 봄 프로개편에 중심에 자리
잡았습니다. 8개월전에 방영된 임희재극본 KBS신부 1년생이
시청자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아씨는
처음부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TV가 아직 100만대가 보급되기 전이었지만
 텔레비년을 갖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씨의 방영시간이면
 TV화면앞에 시선을 집중했습니다. 그 시간이 되면 거리가 한산해
질 정도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대 성공을 거두면서
다음해인 1971년 1월까지 253회가 방송 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대 힛트였습니다.
작가 임희재는 중간에 건강이 나빠져 이철향이
 대필했지만 그 인기는  시들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영화는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씨는 TV의 후광을 업고
당시의 대 스타들이 총 출동해서 영화를 제작해서 TV드라마가

끝날 무렵 상영되었지만 큰 재미는 못 보았습니다. 아씨 작가

임희재는 얼마 안 있어 그해 3월에 세상을 떴지만 최고의

극작가로 추앙 받았고 뒷날 고향 충청남도 금산에서는

그를 기념하는 문학비 건립을 비롯해서

여러 행사가 행해집니다.

 
 

 

 

 이 프로그램을 대필한 이철향님도
 대 작가 반열에 올랐습니다. 배역진  김세윤,

노주현, 여운계, 사미자, 선우용녀, 김용림 등은 이로부터

 대 스타가 되었습니다. 잡지나 신문은 아씨에 관한 자주 얘기를

썼고 특히 여 주인공  김희준에 관한 얘기는 화제였습니다.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던 때 미국엘 가게 된다는 얘기가
있어서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습니다. 김희준

얘기는 뒤에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의 김창세는 김세윤으로,
노운영은 노주현으로 이름이 바뀌어 스타로서의 그 위치는
 확고부동 해 졌습니다.  동양방송 아씨의  열기는  1972년
 KBS 여로로 이어져  전무 후무한 시청기록을 세우면서 
라디오와 영화를 뒤로 밀어내고 TV가 새로운
 매체로 각광을 받게되었습니다. 
  

 

 

 

아씨! 그때 방송된 253편중에서 마지막 편

한 시간 특집 프로그램이 지금까지 남은 유일한

 작품입니다. 1972년 방송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보여주었던

 전설적인 방송드라마 KBS 여로는 전편이 1회분이라도 그대로

보존된 작품은 없습니다. 그 시대 상황이 그랬었기 때문입니다.

아씨가 한편이라도 전편이 그대로 남아 있음은 천만다행이고

드라마를 블로그 “춘하추동방송”에서 본다는 것도 방송사에

큰 의미를 지닙니다. 한시간 원본에서 스팟트 드라마

광고와 손상되어 도저히 볼 수 없는 10초만을

제거하고 두편으로 전량을 올렸습니다.

 

 

 

 

춘하추동방송에서 이 드라마 방송녹화분을

윤성현선생으로부터 제공받았을 때 그때는 실로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 방송드라마를 제작 할 때 

기술감독이었던 윤선생은 이 최종회 한편을 고히 간직했습니다.

필자와는 각별한 관계에 있던 님으로부터 오랜전부터 그 드라마 원본

녹화분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막상 그 드라마가 든 녹화 테잎을

찾을 수가 없어 고민 하던 중 집 정리를 하다가 발견되었다면서 전해 주셨습

니다. 이를 방우회 노익중님이 디지털로 바꾸고 편집해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두 분께 진심으로 고마운 말씀을 올리며 그동안

 춘하추동방송을 아끼고 성원 해주신 분들에게 다소라도

보답 할 수 있게 되었다는 흐뭇한 마음입니다.

 

시험방송 때부터 이 나라 방송사를 영상으로

볼 수 있는 각종 사진이나 동영상을 제공 해 주신 여러분

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서 진심으로 고마운 말씀을 올립니다.

원로 방송학자 한분이 저를 만나 “춘하추동방송 은 방송역사를

새로 쓰는 것" 이라고 격려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필자 이장춘이 들었지만 춘하추동방송을 함께 하는

모든 분들에게 들려주시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춘하추동방송 블로그를 쓰는 것은 비록

이장춘일지라도 여기에 올라 있는 자료는 제공 받은

자료이고 선배, 동료, 후배들로부터 들은 얘기에 이미 써 놓은

기록을 바탕으로 써 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춘하추동방송을 아끼

시는 모든 분들, 격려와 성원을 아끼시지 않은 모든 분들에세 잔심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성심성의를 다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글 쓸 공간을

 제공 해주시고 널리 알려주신 다음, 네이버, 구글을 비롯해서 춘하

추동방송과 연결된 모든 사이트에 대해서도 심심한 사의를

 표하며 특히 500M의 동영상을 올릴 수 있도록 허용해

 주신 다음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아씨 제작진과 주요 배역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극     본 임희재

연     출 고성원

기술감독 윤성현

 

 

출     연   진

 

 

 

 

 

 

김희준, 김동훈, 여운계, 복혜숙,

주선태, 사미자, 김창세, 선우용녀, 김용림

임왕, 김종결, 남수연, 김명순, 이때 출연한

 김창세는 김세윤으로 노운영은 노주현

으로 이름이 바뀌어 오랜세월 인기

탤런트로 활약했다.

 

 

해설 유병희

 

 

미술감독 장종선

영상 장승천

조명 민화식

녹화 유복일

음향 이광수

마이크 함영태

프로젝타 서영철

분장 전예출

소품 주원용

음악 백명재

타이틀 김복균

 

주제가

 

 

작곡 백영호

노래 이미자

촬영 전한익

카메라 최희원, 김사성

황기득

 

 

 

주인공 김희준의 숨은 뒷 얘기 

 

  

김희준의 화면에서 본 마지막 모습

 

 

유카리나님 (유경환여사)이 댓글로

그때 외국에 가 계셔서 주인공 김희준에

 대해서는 모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유여사님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그 유명하던

탤런트 김희준의 그 이후 행적에 대해서 궁금히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 유여사님 댓글의

  답글을 이곳에 옮겼습니다,

 

 

여자 주인공 김희준은 그때

국내에 안 계셨으면 잘 모르실겁니다.
그 프로그램을 끝으로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한 가정주부가 되어있던 김희준은 아씨 출연중에도 

아이를 출산해야 하는 등 여러 사정들로 더 이상 출연을 할 수가

없어 외국유학을 떠 난다는 등  여러 얘기를 했지만 시청자들의

성화로 결국 프로그램을 끝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이 끝난뒤로  행방을 감추었습니다.

 

 방송계에서는 그를 다시 출연시키려는 노력이

이어졌고 그때 KBS TV 드라마제작의 중심적 위치에

 있었던  PD 김연진이 "파도" 연출을 맞게 되어 그 주인공을

맡을 만한 적절한 탤런트로 김희준을 지목하고 수소문 끝에 김희준을

찾기는 했지만 그의 부모님이나 김희준 자신이 더 이상 얘기 하지 말라고

오히려 애원 하다 시피 해서 출연교섭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파도는 신인

이효춘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파도는 히트작이 되었고  이효춘은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래 탤런트로 대성했습니다.  김연진과 필자와는 아주 가까운 사이여서

그 얘기를 알지만 일반인들은 김희준이 외국으로 떠나버려서 더 이상 화면에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위 사진은 아씨 마지막회

 좌담회 출연 모습으로 김희준은 그로부터 행방을 감추었

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씨 주제가

 

 

임희재 작사

백영호 작고

이미자 노래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 탄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여기던가 저기던가
 복사꽃 곱게 피여 있던 길
 한 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엔 노을이 섧구나
 
 옛날에 이 길은 새색시적에
서방님 따라서 나들이 가던 길
어디선가 저만치서
뻐꾹새 구슬피 울어 대던길
 한세상 다하여 돌아가는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드라마가 끝나고 작가 임희재  출연진 김희준, 주선태,

복혜숙등에게는 표창장이 수여 되었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파일:16]

 

 

 

 

 

  

아씨 마지막001.wma
2.84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