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공간의 방송

해방후 첫 3.1절 기념행사가 있던날

이장춘 2011. 8. 12. 03:07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1919년 3월 1일 ! 암울한 세상에서 나라를 찾겠다고

목숨을 걸고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던 그날로 부터 27년의

세월이 흘러 나라를 찾고 처음맞는 3.1절이었습니다.  그 감격적인

날에 보신각을 중심으로 종로 일대는 태극기를 든 사람들로 가득 메웠고 

해방후 처음으로 울린 보신각 종소리에 맞춰 행사는 진행되었습니다.

해방되던 날 울렸어야 할 보신각종이 해방의 날은 엉겹결에 그대로

지나가 버리고 이날 뜻 깊은날에 울리게 되었습니다.

 

 

해방후 첫 3.1절 기념행사가 있던날

 

 

 

 

 

KBS는 이 뜻깊은날의 행사를 중계방송 했습니다.

위사진은 그때 그 행사 모습과 중계방송석을 촬영한 사진으로

그때의 방송기자 문제안 선생님이 지금토록 가지고 계시는 사진입니다.

3.1절 민족대표 33인을 상징하는 보신각의 종소리는 오랫만에 들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보신각의 관리도 허술했고 종소리도 울리지

 않았습니다. 그 보신각에서 그리고 그 종소리에 맞추어 3. 1절의

감격을 안고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모여 들었습니다.

 

 

 

 

27년전 기미년 3월 1일 정오를 기해서

나라를 찾겠다고 불길처럼 일어난 독립운동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국내동포들 뿐만 아니라 만주에서,

 중국에서, 미국에서, 소련에서, 우리 동포들이 있는 곳이면 목이

터져라 독립만세를 불렀고 임시정부를 수립했으며 독립군을 창설해서

일본과 싸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압박과 설움의 세월을 지나 해방을 맞이

했습니다. 집집마다 태극기를 걸고 방송과 신문은 3.1절 얘기로 채워졌습

니다. 그때의 동아일보 지면을 올렸습니다. 1945년 11월 23일, 12월 1일을

기해서  다시 창간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날의 3.1절 행사로 지면을

체웠습니다. 방송도 보신각 행사와 이날 오후 2시부터 세시간에 걸쳐

덕수궁 중화전에서 있었던 여학교 합창 경연대회 실황을

중계방송 하는 등 처음 맞는 3.1절 행사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군정청과 국민들의 추앙을 받는
이승만, 김구,

김규식님 등이 大韓國民 代表民主議院을 구성하고 거국적인

3.1절 행사를 하려고 했지만 신탁통치을 놓고 생각이 달라진 좌익계열

사람들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생각으로 기념행사를 가젔고 민족의 비극은

깊어 갔습니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독립을 맞았건만 3.8선이

그어지고신탁통치라고 하는 생각치도 않았던 걸림돌로 나라가

갈라지고 생각이 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서울운동장 삼일절 행사장에 나온 인사들입니다. 오른쪽에서부터 오세창,

신익희, 이범석, 윤치영, 임영신,뒤에 얼굴 보이시는 장택상님입니다.

 

 

 삼일절행사는 서울에서만도

네 군데에서 열렸습니다. 좌익계열로 구성된

3·1記念全國準備委員會는 남산에서, 민주주의민족전선은

탑골공원에서, 또 일부우익단체는 보신각의 행사와는 시간을

 좀 달리해서울운동장에서행사를 가졌습니다. 삼팔선이 그어지고

1946년들어 찬탁, 반탁하면서 서로가 등을 돌리고 돌아선 가운데 처음맞는

삼일절 행사는 민족의 분열이 깊어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면서 이후에

있을 각종 행사는 대립과 분열로 얼룩져버리고 마침네6.25를

 맞이했고민족의 비극은 계속되었습니다.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69년전 해방후 처음 맞이하는

3.1절의 감격은 어찌보면 해방의 기쁨에

 버금가는 날로서그날 국민 모두의 감격은 어떠

했을지 상상해 봅니다. 해방을 위해, 목숨걸고 일본에

항거하신 분들의 충정을 가슴깊이 되새기게 되는 글을

자세히다시 읽을 수 있도록 게시해 주신 국장님

고맙습니다.국장님의 건안을 빕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46년 3.1절 오디오.mp3

 

 

 

46? 3.1? ???.mp3
2.51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