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님과 함께

사진과 함께 보는 김명희여사 인생 파노라마 / 1950년대 KBS 음악 PD

이장춘 2011. 4. 3. 22:10
1970년 태국에서 I. C. W 제19차  
세계여성단체 협의회 총회가 열렸습니다.
이때 한국대표로 참석한 김명희 여사님이
총회 개막식장에 들어가면서
타놈수상과 며느님
,
헌표욱 태국주재대사,  태국 I. C. W 관계자
들이 함께한 기념사진입니다.
 


사진과 함께 보는 김명희여사 인생 파노라마
1950년대 KBS 음악 PD
 


김명희님 얘기를 듣다보니
85년을 살아오신 모습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저 마음을 끌었습니다. 그 얘기들을
기회 될때마다 여기에 올려서 같이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1926년 6월 3일 배산임수의 산수 좋은곳
서울,  용산, 보광동, 명문가에서 5남매중 막내딸로
테어나셨습니다. 1930년에 촬영한 위 사진 상해나 마카오에사나
구입할 수 있었던 아사 치마저고리를 입은 어머니의 모습, 귀여움이
넘쳐나는 그 모습을 칼라사진으로 촬영했던 김명희님의 모습으로
미루어 어떤 삶을 살아 오셨는지 짐작이 가는 부문입니다.  이토록
김명희님은 어려서부터 부러운것 없이 살던터라 특기도 충분히
 살려 나갔고 타고난 아름다운 목소리는 님을
성악가로 성장시켜 주었습니다.
 


김명희님이 말하는 어린시절 .
 
 
내가 어린시절 작은 아버지가
북간도, 상해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셨고
 작은 할아버지를 따라 아버지도 국경을 넘나들며
독립운동을 하시던 분들과 뜻을 같이했다.
 
보광동에서 살던 나는 이태원 소 학교를
다녔다. 이태원 소학교는 김석원장군이 세운 성남중학교와
같이 있던 학교로 명문학교로 널리 알려져 있는 학교이기도 하다.
 학교가 많지 않았고 또 여학생 수가 적었던 때 나는 유난히도
주위사람들의 귀여움을 받았다. 어머니는 막내딸 명희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주셨고 옷 깃에 손수 수를 놓아
아름다운 옷을 지어 입혀 주신곤 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신기하리만큼
어린 내가 주판도 잘 놓았고, 암산도 잘 했으며
육상도 잘 했다.  선생님들은 유난히도 나를 얘뻐 해 주셨다.  
교장선생님이 부임 하실 때면 꽃다빌을 전해 드리고 꽃을 달아 드렸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경기  보통 고녀에 합격했다. 이태원 소학교에선
나 혼자였다.  이때 가족과 함께 만주로 가려던 아버지는 경기에
가는것을 반대하셔서 그 학교에 갈 기회를 놓혔다.
 
결국 만주에 가지 않기로 했을때는
경기여학교에 갈 기회를 놓혀 버린때라 용곡 보통 고녀엘
가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때 일이고 지금은 없는 학교다. 노래나 체육등
여러방면에 취미와 특기를 가졌던 나는 이곳에서 스케이트를 했다. 
딩시 올림픽에서도 이름을 떨치던 이효창선수가
나에게 스케이트를 직접 지도 해 주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서울역 앞에 있던
남대문 교회를 다녔다. 해방되고 해외 애국지사들이
국내에 돌아 오시면서 김구, 김규식선생님을 비롯해서 훌륭하신
분들이, 이 교회에 많이 나오셨다. 김구선생님이나 김규식 선생님은
이 교회의 장로님이셨다. 작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이 어른들과
독립운동시절부터 친분이 있으셔서 나도 어른들을 따랐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유석진박사와
결혼을 하기까지 26년간의 남대문교회 성가대였다.
유명한 음악가 박태준 선생님은 이 교회의 오랜 지휘자다.
나는 어려서부터 부민관 등의 공연이 있을때면 그
무대에 섰고 박태준 선생님은 혜성같이 나타난
 김명희라면서 칭찬 해 주셨다.   






올해 87세의 김명희 여사님! 1950년대의
KBS 음악PD로 부터 시작된 삶의 얘기를 듣노라면
시간 가는줄 모릅니다. 부드럽고 다정 다감한 음성으로 친절
하게
이어지는 지난날의 얘기는 그 자체가 김명희님의 인생
파노라마입
니다.
올해로 87세라지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모습입니다. 듣고
계시는

그리운
금강산은 KBS 음악PD 재직시
특별한 인연으로
작곡되어 일생동안 즐겨
부른
 가곡으로 1995년 70세 되던 해에 부르신 노래입니다.
글쓰기에
 앞서 김명희 여사님이 60년에서 80년간
오랜세월 소중하게
간직해 온 사진
장을 골라 올렸습니다
 


 
김명희 여사님의 아버님 김용제(金用濟)선생님 젊은모습니다.
80여년을 보존 해 오다 보니 사진 상태가 안 좋아져서 안산 부곡동에
있는 부곡 스튜디오 에서 원래의 사진으로 복원 해 주셨습니다.

어머니 김애기(金愛基) 여사님입니다.


학창시절부터 더없이 친했던 친구분 이경숙(李慶淑)여사님과
함께 한 사진입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3학년 재학중이던 1954년에
 촬영햔 사진으로 이경숙여사님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를 역임하셨고
 지금도 김명희 여사님과 용인 삼성 노블카운티에 같이 기거하시면서
 예나 다름없는 우정을 나누고 계십니다.  



김구선생님과의 인연


나는 어려서부터 서울역 앞에 있던
남대문 교회를 다녔다. 해방되고 해외 애국지사들이
국내에 돌아오시면서 김구, 김규식선생님을 비롯해서 훌륭하신
분들이, 이 교회에 많이 나오셨다. 김구선생님이나 김규식 선생님은
이 교회의 장로님이셨다. 작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이 어른들과
독립운동시절부터 친분이 있으셔서 나도 어른들을 따랐다.
김구선생님은 어린 나를 너무 귀엽고 노래도 
 잘 부른다면서 사랑 해 주셨다

1949년 6월 김구선생님이 안두희의 흉탄에 
세상을 뜨셨다. 애도의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7월 5일 국민장이 있던날 그 장례식에 참여해서 추모곡을
부르고 장례 행열따라 동대문의 서울 운종장에서 명동을
지나 효창공원에 이르는 길을 함께했던 일은 62년이
지난 오늘에도 머리에 생생하다.

  


김명희님 최근의 모습을 담은
간단한 동영상을 올려봅니다. 젊은이들과 어울려
즐기는 모습이며 문교부장관을 지내신 권이혁박사,
공보부장관을 지내신 오재경선생님등 각계 인사와 만나
얘기를 나누는 모습 또 스스로 작사하신 노래를 공식
석상에서 부르시는 모습등 87세의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동영상 보기
 

  
동영상 보시기전에 위 음악을 꺼 주셔요.





적우와 함께
 


 
  
 
 
방송국과의 인연 1950년대의
KBS음악방송 PD
 

방송국 직원이 국가 공무원이던 시절
행정주사, 지금이야 행전주사가 많아졌고 그 위의
직급도 많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경찰서장의 직급이 
주사급이었으니 행정주사도 많지 않은 시절에,  
공보부에 미쓰김이라고 불리는 단 한사람의
 행정주사 김명희 PD가 있었습니다.

 

 
김명희 PD! 잠시 거쳐 가려던
방송국에서
 7년을 지내며 많은 음악프로그램과
어린이 프로그램을 맡아
밤, 낮없이 바쁜생활을 했던
일들이 머리를 늘 머리애 생생하다고 하셨습니다.

1956년 9월 1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족한 KBS 교향악단의 산파역을
맡았던 
담당 PD로서 매주  방송되던  이 프로그램을 
5년 여에 걸쳐 200회 이상을 제작방송한 
일이나 한동일,  
백건우, 김덕주,  정명화,  김영욱, 이대엽, 김태자님 등 
그시절 유학을  가고 싶어도  교통,  통신등  여건이
어려워  실행하지  못했던 때에  
녹음테잎 등을

 
제작해서 외국의  지망하는 학교에 보내
그 테잎을 기초로 실기시험을 
치루고 힙격해서
 유학을 하고  훌륭한  음악가로 성징 힐수 있도로 도와준
일등은
 보람있는 일로 기억된다고 하십니다.

때로는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도 직접 부르시고
여성단체 영화부 위원장으로 있었던 님은 최무룡, 문정숙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유전의 애수" 등의  주제곡도 부르고 또
방송국 현업에서 떠난 뒤에도 1970년대 KBS 라디오 인기프로
치문답의 박사로 출연 하는 등 지난 삶을 되돌아 보면서
가슴 벅찬 감격의 모습을 보여주시기도 하십니다. 
 
그 어렵던 녹음일을 도와주시던 방송 엔지니어  
김성열님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고  있다면서 임원식님을
 지휘자로 교향악단이 창단된지 벌써 5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의
 일을 생생하게 떠 올리시곤 합니다.  지금도 중요한 모임이 있을때면 그때
 그 방송프로그램 씨그날로  사용하던 풋치니의 오페라 자니스키키 중,
 "오-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멋지게 부르시곤 합니다. 다음에
 같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겠습니다.

 

 
 
 
음악에 소질있는 젊은이들이 기회를
얻지 못해서
그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움이
있을때는 신인음악회등에
출연 기회를 주어 음악가로
성장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등
방송국에서 여러 일들을
하시다가   1962년을 끝으로 방송국을   물러나
사회활동도
하고
결혼생활도 하고 여러차례의 국제행사에도
참여 했지만

그래도 7년간 고생하며 정들었던 방송국이 마음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서 방송을 잊지 못하고
빙송인들의 모임에는
자주
그 모습을 보이십니다.
 

  
 

김명희님 모습이1927년 2월 16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방송을 내 보낸

경성방송국은 정동 1번지에 있었습니다. 
6.25때 완전히 폭파되어
흔적마져 없어졌습니다.
1987년 
원로방송인들이 성금을 모아 옛날 그터에

 첫 방송터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이때 그 기공식과
 
 제막식에 참석하신
모습이 담긴
 사진입니다.
  
위 사진은 제막식때의
 사진이고 아래는
 
기공식때의 사진입니다.



 


그로부터 방우회는 해마다 4월이나
5월이 되면 첫 방송터를 찾습니다.  아래는
1994년 첫 방송터를 찾아 방우회 총회를
이곳에서 가졌을때의 사진입니다.
 
아래는 2008년 년 첫 방송터를 찾았을때의 가졌을때의 사진입니다.


 



 2010년 5월 8일 첫 방송터을 찾았을때의 사진입니다.


위사진은 행사가 끝나고 촬영한
기념사진이고
아래 사진의 김명희 여사님과
악수하시는 분은  5.16 첫 방송으로
널리 알려진 
박종세님이고  가운데 분은 
이름있던\ 황우겸라아나운서,

그리고      옆분은 1954년에 KBS에 들어와 1963년
동아방송국 
아나운서실장,
1980년 KBS 아나운서
실장을 지낸 전영우 아나운서입니다. 




아래 사진은 첫 방송터 유허비에서

김영해 현 KBS부사장님, 원로방송인 박경환
권영원님과 함께 한 사진입니다.
 
    

 
 
위 사진은 2009년 방송의 날에
당시의 KBS 이병순 사장님을 비롯해서
문복순, 장금자, 김영효님등 방송인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입니다.
 
 

 

원로방송인 모임 사단법인 한국방송인 동우회(방우회)

방송의 바른말 사용을 생활화하기 위해 바른말보도상을 마련해서
방송에서 바른말 사용을 위해 힘을 기울인 가자를 선정해서 표창을 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1992년 바른말 보도상 수여식겸 방우회 송년모임에
참여하셨을때의 김명희님이고 아래는 2009년 바른말 보도상
시상식에 참여한 김명희님 모습입니다.
 


 
아래사진은  중견방송인 모임인
여의도 클럽에서 2010년 3월 23일 김인규
 KBS사장 초청 강연회를 갖고
촬영한 기념 사진입니다. 


   

 
1986년 5월 12일! HLKZ 창립 30년이
되던 날 방우회는 눈으로 보는 TV30년을 출판하고
많은 방송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출판기념회를 가졌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때 촬영한 기념사진입니다.  앞줄 오른쪽부터 강찬선,
김명희, 김창구, 김기호, 이상만, 현미,  신상운, 한사람건너
 방흥안, 뒷줄 오른쪽 두번째 조돈준님입니다.

 

 
  방송인의 모임을 비롯해서 뜻있는 행사가
열릴 때는 축가 등을 불러 그 행사를 밫내주고. 많은
분들을 즐겁게 해 주셨습니다.  아래 사진은 1945년부터 
방송생활을 하시다가 KBS이사회 이사장을 끝으로 은퇴 하셔서
1995년 일생동안의 방송생활을 총 결산하시는 노정팔 선생님의 
자서전 출판회에서 축가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70세때의
모습이지만 그때의 노래는 젊은이를 능가하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방우회 이사, 한국 여학사협회 문화 교류부장,
한국여성 단체 영화부 위원장,  여성 전문직 연합회 이사,
한국 성악회 부회장, 한국 주부 클럽 협회 이사, 서울대학교 총 동창회
이사, 여의도 클럽 이사, 공화당 정책위원, 민정당 초대 부 위원장, 국제 로터리
3650지구 부인 합창단 창단, 단장, 국제 인너 휠 새서울 창립  1대. 9대 회장, 한국
음악 요볍 연구회 회장임과 동시에   일본 예술 요법학회 회원으로서  유석진박사와  
공동으로 1986년도 학술발표를 하셨고 1987년도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음악요법에 조예가 갚은 님은  순천향 대학 병원  신경정신과,  
배드로 신경 정신과 의원 등에서 음악요볍, 댄스요법, 미술요법
봉사활동을  전개하시는 등 일생을 늘 바쁘게
 살으셨고 노래도 부르셨습니다. 
    



 
김활란 여사와의 만남과 활동
 한국 여학사 협회, 여성단체 연합회를 창립하던 때  
 


필자는 여학사협회를 창립 할때부터
오랜기간 깊은 인연을 멪으면서 활동 해 오셨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는지라 어떻게 그리도 깊은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를 들어 보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내시고 그때 문교부장관으로
계시던 최규남선생님과 그 부인 최선엽여사는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내가 KBS 음악 PD로 있을 때였는데 최선엽여사가
나에게 말하기를 여학사협회를 새로 구성하는데 도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길로 여학사협회를  찾아 갔더니
김활란여사, 박마리아 여사를 비롯해서 이름만 대면
아실만한 분들이 많이 와 계셨다.
 
여기에 마음이 끌려 여학사협회를
결성하는데 힘을 기울이기로 했고 나는 이사로
취임했다. 이로부터 50년이 념는 세월 여학사협회와
인연을 맺어왔고 국내외 주요모임이나 행사가 있을때는
바쁜일들을 뒤로 하고 그 일에 매달렸다.
 
여학사협회를 창설하신 김활란 박사는
나를 극진히 사랑하셨고  어려운 일들이 있을때는
나에게 일을 맞겼다. 그 일로 외국에도 여러차례 다녀왔다. 
 젊은이들이 이끌고 있는 오늘날에도옛일에 관해서
 여러가지 상의를 해오곤한다.  
 

 
한국 여학사협회 1971년 총회에서는 회원님들에게
반공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까 부시러 왔다"는 김신조를 초청해서 그때 그 얘기와 북한의 실정을
들었다. 여학사 협회 이사를 맏고있던 나는 여성들이 북한을 알고 반공의식을 
확고히해야  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면서 그때의 행사를 추진했다. 사진은
여학사협회 회장이시던 김옥길 이화 여자대학교 총장님을 비롯한
회원님들이 함께 해서 김신조의 얘기를 듣고 있는 모습이다.
  





 


이승만 대통령 영부인 프란체스카여사와의 만남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 영부인 프란체스카여사와
함께한 사진이다. 1979년 6월 15일은 프란체스카여사 8순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하얏트 호텔에서 단촐하게 치뤄진  8순행사에 초대받은
김명희님은 이날의 자리를 함께하며 축가도 부르면서  만수부강을 기원했다.
프란체스카여사는 1992년 3월 19일 93세로 세상을 뜨셨다.2011년 7월 19일은
 건국대통령 46주기를 맞는 날이다.  이날 서울 국립 현충원 현충관에서 있었던
추모행사와 묘소를 참배했다. 아래 사진은 현충관에서 원용덕장군의
 손녀 원길자 여사와 함게 한 사진과 묘소에서 방우회
김영효 이사와 함께 한 사진이다,


  




오재경 전 공보부장관과의 인연



 오재경 전 공보부장관과는
KBS음악 PD시절
깊은 인연으로 맺어졌다.
오재경장관 부인 신재덕여사는 안병원, 권길상님과
더불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처음부른 봉선화 동요회를
창단하신 분으로 음악에 조예가 깊으셨고 그런 저런 인연으로

나는 신재덕여사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내가 PD를 히던
시절에는 방송국에 돈이 없어
음악인들이나 합창단등을
방송국에 초청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음악방송 프로그램은
공연현장을 찾아 현장녹음으로 방송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는 심야에 방송국 자동차를
탈 수가 없다는 상황에 처해서  발이 묶이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 일이 있었다.

밤 12시가 되어 통행금지 시간을
맞으면서 부득이 장관 부인이던  신재덕
여사에게
연락했고 덕분에 방송국 차를 타고
방송국에 돌아 올 수있었지만
이 일로 해서
방송국은
이운용국장님을 비롯한 전 간부가 당황하는 상황이
되었고
이 얘기는 오랬동안 화제거리로
방송국내에서 전해져 내려왔다.


방송국에 재직시절에는 부하직원
으로
늘 아껴주셨고 그로부터 오랜세월
친분을 이어왔다.
로타리 크럽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장관님은 내 남편
유석진박사와
한국 로타리 크럽의 총재를 전, 후로 맡으
면서 더욱 돈독한
관계가 되었다.

지금도 기회가 되면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눈다. 위, 아래 사진은
 2011년 3월 8일
오재경 전장관이 나와 신제덕여사의 여동생이
살고 있는 수원
삼성 노블카운티에 방문해서
만나셨을 때의 모습이다. 옆에 함께
촬영하신
분은 오재경장관 부인
박보희여사와 이화옥여사의
부군이시다,
   
 



 


홍난파 선생님과의 인연

홍난파선생님은 어린시절에 세상을
뜨셔서 그때는 잘 몰랐지만 선생님 미망인과의
만남을 통해서 홍난파선생님의 음악세계를 알게되고
자주 만남을 가졌다. 경기도 화성에 홍난파선생님 기념공원을
조성 할 때는 미망인과 함께 현장을 찾았다.  명동 미도파 백화점 부근의
삼화빌딩에서 삼화다방이라는 고급다방을 하던 미망인은 늘 나를
반겼고 격의없이 대해 주셔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 주신 결혼사진 한장을 올린다.





 

  대법원장 민복기님이 서울대학교 총 동창회장을 지내시던 1973년.
서울대학교 출신인 유석진박사 (김명희 여사님 남편으로 왼쪽 두번째)를 비롯해서 
초대 가정법원장을 지내신 경기고등학교 동기인 권순영(왼쪽 첫번째)변호사, 전 민주당 정책위원
박일의원 부인 김영춘 여사  (민복기 대법원장 오른쪽) 그리고 김명희(왼쪽에서 네번째)
 여사님이 서울대학교 총동창회에 참석해서 함께한 사진이다. 
 
 
작곡가 김성태선생님 부부와 김명희 여사님 부부
 
 



 
해방공간에서 KBS와 인연을 맺은이래
KBS사가에 곡을 붙이는 등 KBS인들과는
가까히 하셨던 김성태 선생님이 2012년
4월 21일 102세
(1910년 11월 19일출생)로
세상을 뜨셨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한 선생님께서
저의 곁을 떠나셨다니 가슴이 찢어질듯
아픕니다. 특히 명희에게 베풀어주신 큰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두 손 모아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5회 졸업
KBS 50년대 PD 김명희 올림


김명희 여사님은 김성태선생님의
제자이고또 1956년부터 1961년 까지 KBS
음악 PD로 재직 하는 동안 깊은 인연을
맺어 오신 분입니다.
 
국제 인너휠 클럽 창립과 초대,  9대회장
  


고  
 
1991년 5월 국제 인너휠 새서울 인너 휠
클럽을
창건하고 회장님으로 취임해서 1992년까지
활동 하셨고
또 9대회장도 하시면서 국. 내외  여러
활동을 전개 하셨
습니다.
   국제 로터리 3650지구
부인 합창단을 스스로 창단해서 단
장을 맡고
스스로 지휘를 하시면서 여러 활동을
전개하셨습니다. 
.



 
새서울 인너휠이 창립되던 1991년 10월
김명희 회장님은 영국에 있는 국제 인너휠 본부를
방문헤서 국제 인너휠 회장 Mrs. Isabel Mcknight님을
만나 I.I.W운영에 관한 지식을 전수받등 여러 활동을
전개해서그해 11월 21일에는 국제 인너휠
가입증서가 전수되었습니다,  

 

김명희 회장님(왼쪽)이 영국에 있는
I.I.W 본부를
방문 Mrs. Isabel Mcknight
국제회장님과 만나 I.W에 관한
지식을 전수
받으며 환담하는 모습
 

 

I.I.W 본부에서  Isabel Mcknight
국제회장님과 새서을 인너클럽 

김명희 회장님이 배너를
교환하고 있습니다.  



 
성악가로 국제 로터리 3650지구 부인
합창단을 
창단해서 단장으로 또는 지휘자로
 
국, 내외 행사 있을때면
스스로 합창을 지휘하고 노래도
불러 행사의 의미를 드 놉혔습니다.   위, 아래 사진은 1991년도
국제 로타리 제 3650지구대회에서 고운 화음으로 대회를
더욱 빛내준 로타리 부인 찹창단원과 김명희
 단장님의 모습입니다. 

 
 
     이수성 선생님이, 국무총리시절 전국여성 지도자
신년 하례회에 오셔서 김명희 여사님과의 환담하시는 모습
입니다. 평소에 잘 아시는 두분의 만남이 이날의 만남을 더 반갑게
하셨나 봅니다. 멋있는  장면을 잘 잡은 사진이군요. 왼쪽에
보이시는 분은  2010년 4월 현재 한국 여성단체
 협의회 김정숙회장님입니다.

 
 
 
 
2011년 2월 23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서울 대학병원과 서울 의과대학 발전 후원의 밤에서
이날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 영부인을 영첩하는
김명희 여사님입니다.
 
 
 
 
 
 
 
 
의학박사로 서울대학교 총장과 문교부장관을 지내신
권이혁박사는 유석진박사와 절친한 사이여서 유석진박사가 세상을
뜨셨어도 김명희 여사와의 만남은 반가움으로 다가 옵니다.
 

법율적인 어려움이 있을때마다 도움을 받는 이인재 변호사는
친 아들과 같은 사이라고 했습니다. 이인제 변호사는 명절이면 가족과 함께
김명희 여사를 찾아 뵙는답니다.  김명희님 개인적인 송사가 일반법원에서
정상적인 판결을 받을 수 없는 사안이 되자 헌법소원까지 제기해서
당해 송사를 승소했던 이인제 변호사입니다. 




 2011년 11월 15일 서울대학교 병원
발전 후원회가 연 
작은 음악회에서 큰 며느님
(오른쪽)과 정준기교수님이 함께 한사진입니다.
큰 며느님은 연극을 하신 분으로KBS 드라마에
출연하셨던적이 있습니다,

서울
대학교역사박물관장이기도 한
정준기 교수는 국제적으로 알려진 핵
의학
전문가로
 김명희 여사와는 늘 가까운 사이입니다.
아래사진은 서울대학교 병원 발전
후원회장인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님과 함께한
사진입니다.





  




2012 서울대학교병원 발전후원의 밤


김명희 여사님은 서울대학교 전신 경성제국대학을
 나와 우리나라 정신신경의학계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전개 해오신
고 유석진박사님과 내외분으로 서울대학교병원과는 오랜세월 깊은 인연을
 맺어 오셨습니다. 해마다 참여 하시는 서울대학교 발전후원의 밤이어서 올해는
질환으로수술까지 받아야 했던 해이지만 어려움을 뒤로하고 참여 하셔셔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기에 그 장면들을 모두 담아서 올렸습니다.








위는 정희원 서울대학교 병원장님과
1950년대 KBS음악 PD 김명희여사님, 1950년대
인기아나운서 문복순여사님이 함께 한 사진
입니다.



동영상 보기






후원의 밤 종합


 
 


김명희 여사님, 문복순 여사님과 또
김명희 여사님과 함께 참여한 외교관 출신 김윤열,
이화옥님
내외분, 그리고 박명순님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신현호 변호사 내외분을 만났을때입니다.








김명희 여사님께 늘 관심같고 돌보아 주시는 김남경님과 함께 한 사진입니다.


















2012년 첫 방송터 기념식




50년, 60년대가 함께 한 KBS 방송인입니다.
왼쪽과 오른쪽 두분은 1960년대부터 활동하신 정경래,
김규홍아나운서이고 가운데 두분은 1970년대부터 활동하신
박민정, 황인우 아나운서 그리고 가운데 분은 1950년대부터
PD로 활동하신 김명희 여사님입니다.


2012년 11월 6일 서울대학교병원 발전후원회 작은음악회
  






 
김명희 여사님이 1월에 대장암 수술을
빋으시어 오랫만의 만남이었습니다.
4월 첫방송 터
행사와 6월 오재경 장관님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후
5개월만의
만남이었습니다. 삼성 노블 카운티에서
이화옥여사님과            또 한분이 같이 오셨고

서울에 사는 1950년대의 문복순 아나운서가
오셔서 함께 한 사진입니다.







 
김명희 여사님이 문복순 아나운서와
함께 한 사진입니다.
김명희 여사님 90을 바라보고
문복순 아나운서 80을 바라보지만
마음은 소녀같으십
답니다. 겉 모습도 생각도 모두 젊으십니다.

 

2013년 3.8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열린
기념식과 한국여성단체 ◆여성폭력없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기념식과 대토론회장에
참여하실때는
춘하추동방송 필자와 함께
참여해서 사진도 촬영하고
여러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2013년 3월 8일 오후 2시부터 국회
헌정
기넘관
 2층 대강당에서 열린 행사에서
 
주황색 바탕에검은
글씨로 "여성폭력 뿌리뽑자"
쓰인 헝겊을 들고
행한 퍼포먼스를
하시는 장면입니다.





참여자에게 나누어준 종이비행기에 소망을 적어 날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삼일동지회 회장이신 이화옥 여사님이 
2013년 3.8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열린

한국여성단체 협의회 기념식과 대토론회에
김명희 여사님과 함께 참여 하셨습니다.








 
 
2012년 12월 16일 김명희 여사님
남편이자
한국 정신의학계의 태두  고 유석진
박사님에  관한 
인물   
발표모임이 있었습니다.
조두영교수의  주제발표와
토론회로
 진행된
 이날 의모임에는 그 모임의 회장 최종고
 교수님을 비롯해서
 30여명의 인사가
참여하셨습니다.

유석짐박사님과 오랜세월 친분을
이어온
 최서면박사도참여키로 했으나
사정이 생겨 자료와 실황녹음 CD를 대신
 
전달
했습니다. 위 사진은 최종고회장님이 고
유석진박사 미망인
김명희 여사에게 전한
꽃다발을
다시 이날의 주제발표를 한
 조두영 교수님께 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참여하신 분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2012년 12월 11일 방우회가 주는
제21일회 바른말 보도상 시상식에서 올해
88세가 되신 방우회 원로 회원님께서 축가를
 열창 뜨거운 박수를 받으셨습니다.
















2013년 3월 25일 삼일동지회 창립
46주년을 맞아
3.1운동을 이끈 여성 독립운동가
김영숙의 삶과 독립운동에
관한 글을 발표한 민족역사
문화원장 이정은박사(위)와 함께 한 사진과
외교관
출신 김윤열선생님꽈 함께 한 사진입니다. (아래)






2013년 대한민국 해군의 어며니
홍은혜여사 자서전 출판기념회에 참여하셨
습니다. 아래는 김명희 여사와 홍은혜여사, 그리고
작가김광휘님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아래는 마산여고 졸업생들과 함께한
홍은혜여사님과
김명희 여사님이 함께한  사진
오른쪽은
이인재  변호사 부인, 
시인 "김바다".
김명희님은 마산여고
출신은 아닙니다.
 




김명희 여사님과 김바다님 



 
 
 2013년 9월 2일 제 50회 방송의 날에
방송인들과 함께 한 김명희 여사님입니다.  
 
1966년부터 함께 한 원로방송인들의
모임
방우회 회원님들이 행사장 뒷 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앞줄 왼쪽부터 강영숙, 송현식, 김명희,
한영섭 회장님, 강정도,
정항구, 권영원, 이철호, 박경환,
두번째 줄 세번째부터 이장춘,
문복순, 김영효, 김탁,
고흥복, 오승룡, 이용실, 이정오, 김기호
님입니다.

80세 내외의 원로방송인들이십니다.
아래 사진
역시 방우회 회원님들 모습으로
 위 사진에 안 보이는
노익중, 김진, 조부성,
한이수님 등이 보입니다.


 


2013년 11월 22일 서울대학교
역사문화원 주최
의학의 전환과 근대병원의
탄생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
참여했을때의
김명희 여사님입니다.
 

핵의학의 거두 정준기교수와 김명희 여사
 
 
1950년대 KBS음악PD 김명희 여사와 김상태교수
김명희 여사 남편 정신의학의 태두 유석진박사가 일생동안
공부하며 모으고 아껴온 서적 3만권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기증,  이 서적을 기초로  박물관을 세웠고  김상태교수는
이 박물관을
관리  해 오면서 두분의 인연이 깊어졌다.

김상태교수는 서울대학교
역사문화원과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의학사 정리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심포지엄을 여는데도 큰 힘을 기울였다.






국회의장을 지낸 김재순님과는 연세도 비슷하고 서울대학교
동문이며 여러 인연으로 가까이 지내신다. 이 사진은 2013년 1월 9일
서울대학교 신년교례회 만찬장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김재순님은 서울대학교
 총 동창회장, 샘터를 설립 이사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고문으로 계신다.
 


남편 유석진 박사님과 김명희여사가 가까운 사람들과 촬영한
 사진이다. 왼쪽은 KBS탤런트 출신이기도 한 큰 며느리이고 두번째는
 그 유명한 원용덕장군 손녀 원길자다. 세번째는 김영삼대통령 비서,
네번째는 이필원여사 오른쪽분은 조카딸 이지연 여사다.
 


1991년 9월 로타리 클럽 3650지구대회
지구 부인 함창단 연주 지휘를 마치고 합창단과
함께 한 사진이다. 반주는 민은경이 맡았다.






김명희 여사님은 해마다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2013년 장학금을
수여하고
장학금을 받은 조아영
학생과
함께 한 사진이다.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 글



참으로 다복하신 김명희 여사님의
화려한  인생 파노라마입니다. 어찌보면,
역대 어느 영부인보다도 숱한 중책들을 감당해
내시며 일생을 달려오신 분이시군요. 프란체스카 여사로
부터 김윤옥 영부인 까지 정권은 바뀌지만, 김명희 여사님
께서는 방송, 문화, 예술, 여성계, 의학계등 역사가 요구하는
필요한 자리에서 주어지는   중책에 따라 기꺼이 나라를
 위해 중책을 감당하신 드물게 다복하신 분이셨군요.

이장춘 국장님께서 자료도 많이

가지고 계시지만, 두분의 남다른 친분으로
이렇게 심혈을 기울이셔서 편집해 올리시니
보다 더 많은 사람들도 알게되는 계기가 될 것 같습

니다. 김명희 여사님도, 이장춘 국장님도 앞으로도
하실 일이 많으시니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좋은
본이되시고 늘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이 다시 글을 써 주셨습니다.

 
2016.12.20 23:13
국장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편집해
 올리신 이 게시물 하나로 김명희 여사님의
자서전이 되기에 충분할 것 같아요. 불과 4년전만
해도 왕성한 활동을 하셨으니 놀라운 일이고, 평생을
 다복하고 건강하게 90을 넘어    노년을 편히
 쉬시고 계시니 그 또한 복이십니다.


아래 영문자 주소를 클릭 하시면 김명희 여사님에 관한 더 많은 얘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명희님이 말하는 1950년대의 KBS음악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396


한국 신경 정신의학의 선구자 유석진박사
http://blog.daum.net/jc21th/17781338


 
 
 춘하추동방송 이장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