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천주교 명동성당이 있기까지
우리민족의 현대사와 함께 숱한 사연을 지닌
명동성당은 1898년 그 모습을 들어낸지 110 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구한말의 천주교 박해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새로운 시대를 예견하고 잡은 터가 지금의 명동성당 자리이고
박해가 사라지면서 이 땅에 대 성당을 지었습니다.
듣고 계시는 음악은 KBS 사우회 중창단
명동성당 초청 연주곡입니다.
성당의 모습을 들어낸지 얼마 안 있다가가
한일합방이라는 치욕의 역사를 겪었고 민족의 설움을 같이 했습니다.유신독재와 신군부 하에서는 종교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되찾고 국민들에게 바른길을 안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새로운 시대를 마지 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마는 명동성당은 이민족의
애환을 담고 있어 명동성당 얘기를 씁니다.
명동성당은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서울 중구 명동2가에 있고 사적 제258호로
정해져있습니다. 2006년 12월부터 2008년 6월까지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습니다. 이 터는 천주교가 이 땅에 들어 올 무렵부터 천주교와 인연을 맺어왔고 1882년 한미수교 조약으로 천주교 박해가 사라 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땅을 사서 1892년부터 1898년까지 성당을 지었고 지하에는
순교자의 묘소도 조성했습니다.
명동성당은 벽돌로 쌓은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이며, 한국 근대 건축사상 규모가
가장 큰 최초의 고딕양식 건축물로 언덕에 높이 솟은 성당건물은 가리는 곳이 없어 잘 보였습니다.
다음 사진은 해방되기전에 덕수궁에서 찍은 사진으로 반도호텔과
조선호텔사이황궁우 넘어로 명동성당이 가깝게 보이고 있습니다.
명동성당 앞의 고갯길은 북고개 또는
북달재라 하고 한자로 종현(鐘峴)이라 불러서
처음 이곳의 성당을 종현성당이라고 부르다가 해방되면서
명당성당으로 바뀌었습니다. 명동성당이 들어섰을 때는 진고개로 널리 알려진 고갯길에 평민들이 드문드문 살고 있어서 시골풍의 마을에 성당이 들어섰고 명동시가지가 들어선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일본인
세상이 되면서 명동부근에 일본사람들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1912년에 조선은행을, 1913년에 철도호텔이라고 불리는 조선호텔을 짓고 1915년 경성우편국을, 1930년에 미스코시 백화점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과 제일은행을 그리고 또 상업은행을 지으면서 일본사람들의 상권이
이곳에서부터 형성되어 해방 될 때까지 명동이
서울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6.25때는 그 주위가 모두 폐허가 되었지만
60년대와 70년대를 지나는 동안 명동성당의 주변은
상가와 빌딩으로 가득 찼고 최대의 번화가가 되었습니다.
1972년의 10월의 유신독제가 시작된 이래 명동성당은
민주화운동의 본산이 되기도 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6.25직후 남산에서 본 명동성당 주변모습이고
아래 사진은 파괴된 명동성당 주변의 모습입니다.
10월 유신이 선포되던 1972년 그해
성탄절 심야 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유신을 비판하는 미사를 올렸습니다. KBS 텔레비전을 비롯한 전파매체가 그날의 미사를 중계 방송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유신비판으로 방송진행자를 비롯한 관련자들이곤욕을 치렀고 그 뒤로부터 미사 중계방송은 중단 되었습니다. 그때의 방송관련자들로 부터 들은 얘기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합니다. 70년대와 80년대, 독제시대를 지니면서
명동성당은 민주화 운동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민주화운동을 하던 인사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면
명당성당을 찾아 피신했습니다. 이 때문에 명동성당이
군화 발에 짓밟힐 때도 있었습니다.
명동성당은 그 건축물이 이 땅에 들어온
최초의 근대식 대형 건축물이라는 역사적인 의미와 함께
길고 긴 세월, 이 땅에 천주교를 전파하는 중심적 역할을 하면서
국민의식을 일깨우고 국민의 미음을 모으는 지주가 되어 왔습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면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기둥이 되어
왔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비록 천주교인이나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명당성당을 바라보거나 그 앞을 지나노라면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 숙여집니다. 명동성당에
얽인 사연은 많기도 많고 길기도 길지만
개략적인 얘기만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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