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음악 백년

방송과 가요 50년, 반세기 (3) 종합편

이장춘 2011. 3. 1. 20:50

 

 

 

방송과 가요 50년,  반세기 (3) 종합편

 

 
방송이 있었던 시절부터 가요 프로그램은
있어왔습니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음악방송은
국악중심이어서 가요가 많지 않았고 해방되고도 여러가지
여건상 국악이나 양악편성 비율이 높았지만 방송국에서 가요를
 위한 전속가수를 선발 양성하고 녹음기술이나 레코드 제작이
 활발해 지면서 가요가 프로그램이 확대되었습니다.   

 

6.25 전쟁으로 여건이 어려워졌지만
1955년부터 노래자랑이 주간 기본방송순서에
편성되고 뒤 이어 KBS향연 프로그램이 새로 등장하면서
방송은 대중이 듣는 방송 위주에서 스스로 참여하는 시대로
 접어 들었으며 방송국에는 공개방송을 방청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6.25후 최초로 동화백화정메서 노래자랑과

스무고개를 마치고 촬영한 사진으로  노래자랑 사회를 맡은 장기범 강영숙,

아나운서 프로그램을 맡은 김창구,  기술을 맡은 한기선, 김성열,

편성책임 노정팔,  경음악단 지휘 손석우님과 스무고개 박사

문제안, 이덕근, 이경희님 사회 임택근아나운서,

문시형 프로듀서가 함께 한 사진입니다. 

 

 

 

해방되고 우리 방송인들이 방송을
하게 되면서 편성과에는 음악계가 새로 마련되고
그뒤 연출과가 발족하면서 음악계는 연출과로 옮겨갔습니다.
해방직후 음악방송을 담당하시던 분은 도오꾜오에서 음악학교를 나와
작곡과 지휘를 공부한 임동혁님과, 비욜라 명연주자로 알려진 안성교님
두분이었습니다.  안성교님은 문학준, 김생려, 이강열등 네분이
현악 4중주단을 구성해서 활동하는 등 해방후의 악단을
주름잡은 분이기도 했지만 6.25때 납북되셨습니다. 

 

임동혁님의 뒤를 이어 음악계장이 되신분은
음악평론가 박용구님으로 열심히 일 했지만 상사와 뜻이

맞지않아물러난 후 합창지휘자 최희남씨가 음악계장이 되었습니다. 

 님은 서울방송합창단의 지휘자이기도 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작곡가 박태현,

작곡가 나운영, 전형철님으로이어 오다가 부산 피난시절부터 서울대학교

 음대 성악과 출신 김창구님이 음악계장이 되어  오랜기간 음악과 함께

 하시다가  전주, 대구방송국장 등을 하셨습니다.

 

 

 

부산 피난길에서 환도한후 음악계장
김창구님은 노래자랑 프로그램을 새로편성
제작하는등 방송음악 발전에 기여 하셨고 이 무렵애
 방송국에 들어온 조백봉, 송영수님은 가요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방송가요의 중심역할을 했습니다.  동아방송이 새로 발족하면서 조백봉님은
동아방송 음악과장으로 옮겨가고 KBS에 남은 송영수님은 KBS방송가요의 중책을
 맡았습니다.  라디오 방송만 실시하던 시절,  PD는  밖으로 나타나지 않은
 실력자였습니다. 방송에서 노래 한곡 히트하면 가수의 삶이
 한결 새로워지고 앞길이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미자의 혜성 같은 출현과
 패티 킴의 대 활약,  뒤를 이은 남진, 나훈아. 김상희, 조용필의
 대 스타 탄생은 방송의 영향하에서 순식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들 가수와 한 배를 탄 작곡가 박시춘, 손석우, 백영호, 박춘석,
전봉조등 한 시대를 휩쓸고 간 이들의 밑바탕에는 
방송이라는 전파메체가 있었습니다.

 

 

 

 1954년, KBS에 입문한 송영수님은 정동시절부터

대중가요와 함께 해 오시면서 대중가요의 산파역을 했다고
할 만큼 대중가요와 인연이 깊었습니다. 송영수님은 대중가요 때문에
 웃고 울었던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 시대에 많은 대중가요 가수들이
송영수님의 프로그램에서 탄생 했습니다.  50 여년간 가요계에서 제왕
자리를 지켜온 이미자님도 송영수 님이 마련한 60년대 초의
한 무대에서 그 빛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 시대의 명가수들이 송영수님과
인연이 없었던 가수가 없을 만큼 폭이 넓었고
영향력이 컸습니다. 만년 음악PD 송영수님은 공사가
 되면서 본사차장을 거쳐 여수 방송국장을
지내셨습니다. 

 

 


라디오의 PD 송영수님이 활동하던 시절
 TV에서는 황재목 님이 초기 쇼 프로그램등을 맡았습니다. 

황금시간대라고 불리던 8시대애 방송되던 TV그랜드 쇼등황재묵님의

역할을 컸습니다. 황재목님은 1956년 HLKZ창립 요원이었지만 HLKZ가

방송을 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최창봉님과 함께 KBS-TV창설시부터 PD로

활약하신 분이고 초기의 쇼프로를 개척하신 분입니다. 1964년 황재묵님과 함께

촬영한 사진 올렸습니다.  황재묵님을 비롯해서 그뒤 방송계에서 활동하신

김영희, 김영효, 이태원, 김근호, 정덕용, 홍종태, 이종훈, 조길자,

이기송, 이귀영, 필자 이장춘 등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70년대 방송의 무게중심이 TV로 옮겨지면서

라디오 음악계에 근무 하시던 오용한님과 연예 프로를
맡으시던 박효서님이 TV쪽으로 옮기고 김창수님과 이흥주님도
 TV음악 프로를담당 하면서 그 폭이 점차 넓어졌습니다.
 
오용한님은 은종합창단에서 일 하다가
라디오 음악프로를 하던 중 68년 3국 통합 이후에
TV방송의 음악프로를 하셨는데 뒤에 목사가 되셨다는군요.
박효서님은 드라마 효과를 하시다가 즐거운 우리집등 라디오
 드라마 프로그램을 제작하시던중 TV로 옮겨 음악 프로그램을
담당했고 원주방송국장등을 엮임 했습니다.

 

 


그 시절 가요와 관련되는 대표적인
라디오 프로그램으로는  노래자랑,  KBS향연,
즐거운 한나절, 가요수첩, 오늘도 명랑하게 등이 있었습니다. 
 즐거운 한나절이나 가요 수첩, 노래의 꽃다발 등은 프로그램 명칭이나
방송시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오랜 기간 동안  가요 D. J 프로로서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청취자들의 신청곡을 받는 프로 그램들이 큰
인기를 끌던 때도 이때 이었는데 신청곡을신청하는 엽서가
그야말로 주체할 수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신청이 많은 순서로 인기를 매기기도
 했고 그 순위 안에 들어가려는 가수들의 경쟁도
있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가수들이 레코드판을 들고
 음악 PD를 찾는경우도 많았었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 가정에
라디오가 보급되고 텔레비전수상기 보급이
 빠르게 확대 되자 방송이 국민 생활전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모든 생활패턴이 빠르게 변화되던
시대에 방송을 통한 대중가요와 드라마는
그 중심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때에 대중문화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이끌어 보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머리는 어떻게 깎아라. 치마는 무릎 밑으로 얼마이상
내려와 한다. 관혼상재는 어떠해야 한다, 등 변화되어가는
 대중문화 전반을 권력의 힘으로 이끌어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일 중에서 방송에서도
 여러 가지 규제가 있었고 특히 대중문화
전파의중심에 있었던 대중가요의 방송에 관한
 규제가심화 되어 갔습니다.
 
대표적인 규제가 방송 금지가요의
지정이었습니다. 일본노래나 중국노래 북한에서
 부르는 노래는 더 다시 말씀드릴 필요가 없었고 월북 작가의
 노래나, 저속, 왜색, 표절가요라고 낙인찍히면 방송을 할 수 없게 되었
습니다. 방송을 못하면 그 노래 생명 다 하는 거죠. 1965년부터 시작되어
 1971년 8월 까지 금지곡으로지장된 노래는 이미자님의 동백아기씨,
황포돗대, 은방울님의 삼천포아가씨 그리고 작사자가 월북한
 마의태자, 천리타향 등 무려 511곡에 달했습니다.

당시의 인기가요는 다 묶인 샘입니다.
민주화가 이루어 질 때 까지 금지가요는 늘어만
갔습니다. 방송금지곡의 지정 등으로 인해서 가수들의
 활동 무대가 제약을 받기는 했지만그런 가운데서도
많은 가수들이 등장해서 대중문화에
깊숙이 파고들던 시대입니다.

6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TV의 방송시간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TV방송으로 방송의 중심축이
옮겨감과 동시에 장비나 기술적인 보완이 이루어지면서
TV의 가요 프로그램들이 비중을 더 해 갔었습니다.

TV방송 초기에는 방송시간도
 4시간밖에 되지 않고 장치, 조명등도
잘 것이 없었으려니와 생방송의 제약 등으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외화중심의 영화 필름을 이용한
방송이 주를 이루던 상황에서 TV의 초기 가요 쇼 프로그램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보잘 것은 없었어도 시청자의 관심을
끌만한 최소한의프로그램은 편성 했습니다.

1962년의 경우
월요일 7시에 텔레비전 그랜드 쇼,
목요일 7시에 금주의 가요 바라이어티, 토요일 7시30분에
금주의 가요 파레이드가 편성 되어 있었고 각종 행사에 공개방송 쇼를
 등장시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라디오와는 달리 가수들의 영상이
 곁들여 져야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의 편성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때 TV 주요 프로그램을 보면
노래의 메아리, 노래의성좌, 아빠의 노래 수첩,
 KBS가요제, 가요 대행진 등이 있었고 오늘날에는
 열린 음악회와 가요무대, 노래자랑이 주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1957년 12월 남산 방송시절이 열리면서
1976년 여의도로 옮길때까지  그시절, 방송 프로듀서와
작곡가, 그리고 방송무대에 자주 등장했던 가수들을
종합해서 올려 드리면서 오늘 글을 마칩니다.
 
 
라디오 음악계장 
 
김창구, 조백봉, 강정수(1963) 
이희목 (1964)  이상만 (1972 )

라디오 프로듀서

송영수, 오용한, 최지송, 이동혁,
조용호, 이경남, 권오성, 홍보영, 서정애,
박녹자, 박창학, 이공진, 노덕래, 박세정,
배동순, 김춘희, 조희숙, 노원정 님등

TV 음악계장

1971년에는
이해윤님,  72년에는 변형하

TV프로듀서

황재목, 오용한, 김창수, 윤재경,
박효서, 이흥주, 임태순, 정관영, 백대웅,
김승종, 이재석, 김현숙, 이현자님 등
 
 작곡가
 
박시춘, 이봉조,백영호, 하중희,
이희목, 김광정, 길옥윤, 박춘석, 손석우,
김강섭, 김희갑, 김인배, 최창권, 전수린님등이
계셨고 또 가수가 직접 작곡 경우도 종 종 있었습니다.
나훈아, 은희, 윤항기, 한복남, 설운도, 현철님등이
가끔가다가 자작곡을 불렀습니다.

작사자로는 따로 작사만 하시는 분도
계셨지만 작곡가 분이 작사까지 해서 작곡 하는
 경우가 많았고 드라마 주제곡의 경우는 드라마 작가가
 바로 작사자 이었으며 또 노래를 부르는 분이 작사,
작곡까지 하는 경우가 있어서 작사자 소개는
여기서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방송출연이 많았던 가수


최희준, 남일해, 송춘희. 이금희, 은방울 자매, 토끼소녀,
이씨스터즈. 김씨스터즈, 최양숙, 혜은이, 하춘화, 정훈희, 문주란.
김세레나, 오기택, 봉봉 4중창단. 박가연, 김상국, 진송남, 곽순옥, 이미자.
위키리, 김계자, 현미, 한명숙, 비둘기 자매, 백야성, 최숙자, 패티킴, 안다성,
성재희, 정미조, 김부자, 조애희, 아리랑 씨스터즈, 배호, 남진, 김세레나,
나훈아, 원방현, 김용만, 유주용, 이금희, 박재란, 윤일로, 남상규,

자니부러더스, 불루밸스, 정원, 차중락, 최백호.

송민도, 권혜경, 김하정 님등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나간 시대에 이름 날리던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기로 하겠습니다.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일선 위문공개 방송때의 사진입니다, 시민위안

공개방송 또는 각종 행사에 축하공연 등 많기도 많던 공개방송에

 비행기로, 열차로 버스로 또는 군추럭을 타고 전국방방곡곡을 누비던 

연예인들이 바쁘기만 했습니다. 아래는 1956년 대구 5공군단에 타고갔던

비행기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스무고개 팀과 노래자랑 팀 그리고

군 장교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때의 노래자랑에서

 타이피스트 김정애양이 KBS전속가수로 발탁되어

훌륭한 가수가 되었습니다.  

 

 

 위사진 : 3.김인숙, 4.이경희, 5.송민도, 8.김석야,

12.김창구, 13.유해룡, 14.노명석, 17.손석우, 20.김성열,

21.송민영, 22.5공군단장, 23.임택근, 24.송영수, 26.문시형,

27.명국환, 28.장기범, 30.이상만님이고 아래사진은 여성

출연자들과 함께한  5공군단장. 장금자 아나운서(왼쪽),

이경희박사 (왼쪽 두번째) 김인숙아나운서 (세번째),

송민도(오른쪽 끝)님의 모습이다

 

 

 

 

1961년 4월 14일  노래자랑, 퀴즈 올림픽

 공개방송을 위해 백령도로 떠나는 배행기 안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가수 송민도, 프로듀서 송영수,

문시형,  퀴즈 올림픽 박사 이경희, 윤길숙,

 등의 모습이 보입니다.

 

 

 

  

  

백령도 공개방송을 마치고 군(軍), 막사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1,  2. 최계환, 3.박종민,  4.김용국,

  5. 김성열, 6.송영수, 7. 조갑준(조백봉),  9.이기우, 12.손석우,

13. 김영호, 14.임택근,  16. 문제안, 17,손대철, 18.윤길숙, 19. 문시형,

20. 이경희, 21.송민도, 22.나화랑, 23.도미, 26.최종호(박종호)

아래는 위 공개방송을 위해 간 분들이 비행기에서 내려

왈영한 사진입니다.

 

 

 

 

  아래는 포항 해군부대에서 공개방송을

마치고 촬영한 기념사진입니다. 아래는

포항 해군부대에서 공개방송을 마치고

촬영한 기념사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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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전속가수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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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과 가요 50년, 반세기 (1) / 정동방송시절 6.25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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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과 가요 50년, 반세기 (2) / 6.25에서 남산방송시절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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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과 가요 50년, 반세기 (3) 종합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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