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가 중경을 출발 하면서 찍은 기념사진입니다.
김구선생님 귀국 방송 제 1성, 1945년 11월 23일
중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바로 귀국을 서둘렀지만 사정이 허락치 않아
11월 들어 중국을 출발했고 그것도 개인자격으로
입국 할 수 있었습니다. 김구선생님 일행은 11월 23일
여의도 비행장에 내려 곧바로 KBS방송국으로
향해서 간단한 귀국방송을 하셨습니다.
1945년 11월 26일 자유신문에 있는
글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金九는 전국민에게 환국인사의 말씀을 하고자
23일 夜 8시에 경성방송국의 마이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간단한 방송을 하였다. 방송에 앞서 약 15분전에 嚴恒燮, 尹致暎 양씨를
대동하고 방송국에 이르러 同 국장실에서 잠시 休懇한 후국장 李惠求의
안내로 방송실로 들어 갔는데 실외에서 유리창을 통해서 선생의 방송하는
근엄한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불과 2분가량의 방송이 끝난 다음
同局幹部 군정청 보도부장 뉴맨大佐 이하 미군장교 10여명
신문기자와 사진반 등 수십 명에 에워싸인 채로
방송국을 떠나 숙사로 돌아갔다.
방송내용 전문은 다음과 같다.
“친애하는 동포들이여 27년간이나 꿈에도
잊지 못하고 있던 조국강산에 발을 들여 놓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나는 지난 5일 중경을 떠나 상해로 와서
22일까지 머무르다가 23일 상해를 떠나 당일 경성에
도착되었습니다. 나와 나의 閣員 일동은 한갖 평민의
자격을 가지고 들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여러분과 같이 우리의 독립완성을
위하여 진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전국동포가 하나로 되어
우리의 국가독립의 시간을 최소한도로 단축시킵시다. 앞으로 여러분과
접촉할 기회도 많을 것이고 말할 기회도 많겠기에 오늘은
다만 나와 나의 동료일동이 무사히 이곳에 도착
되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지금 들려오는 육성은
방송기자 1호 문제안선생님이
김구선생님을 처음 만나셨을때의
얘기를 들려 주소 계십니다.
2009년 8월 녹음
이 사진은 1945 12월 19일중앙청광장에서 열린 임시정부 환영대회 모습으로 오른편 분이 김구 선생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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