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음악 백년

동영상, 최초의 여성 보컬그룹 김 씨스터즈와 봄맞이

이장춘 2010. 10. 11. 13:39

 

 

 

동영상, 최초의 여성 보컬그룹 김 씨스터즈와 봄맞이

 

 

 우리나라에서 보다도 미국과

 유럽에서 더 많이 알려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딸들 김 시쓰터즈는 천재 작곡가이자

가수 김해송과 이난영의 딸입니다. 김씨스터즈가 대중 앞에서

처음 노래를 부른 것은 1951년 부산가는 미군열차에서였습니다.

열 살을 갓 넘은 영자, 숙자, 애자, 새 자매는 영어로 된

노래의 뜻도 모르고 세계적인 히트 곡

두곡을 흉내 내어 불렀습니다.

 

 

가사도 틀리고 노래가 서툴렀지만

 어쨌든 그로부터 그들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6,25로 아버지를 잃고 먹고 살길이 없던 부산 피난시절의

어렵던 생활에 먹을 것이 생긴다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고

그렇게 시작된 이들의 노래생활은 혹독한 어머니 이난영의

노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와

미 8군에서 노래를 부르던 김씨스터즈의

 노래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방송국 공개방송에도

 출연했고 극장무대에도 섰습니다. 오늘의 동영상은

그때 김씨스터즈가 KBS 공개홀에서 부른

“봄 맞이" 입니다.

 

동영상 보기

 

음악을 먼저 끄시고 동영상을 보셔요.

 

 

 

 

 

 

 

김씨스터즈가 미국으로 떠난것은

 1959년의 1월의 일입니다. 큰 언니 영자 대신에

 외사촌 민자가 팀에 합류한 것은 이때였습니다.  39년생

샛째 딸 숙자와 40년생의 냇째 딸 애자 41년생의

외사촌 민자로 팀이 구성되었습니다.

 

동양 쇼의 메니 져 톰 볼스와

18개월 계약으로 라스베가스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주급 500불을 받아서 적은 돈이 아니었지만

 워낙 써야 할 곳이 많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국내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성공하기 전에는 돌아 올수 없다는 어머니

이난영의 완곡한 뜻으로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그의 명성이 알려 지면서 1964년

주급 20,000불을 받기로 이름 있는 쇼단과 계약이

채결되어 일약 대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전 미국에

 알려져 미국을 돌며 공연을 가졌고 그때마다 갈채를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로마, 파리, 런던 등 전 유럽을 순회하며

공연을 가졌고 가는 곳 마다 아리랑을 불러 갈채를

받으면서 대한민국을 알렸습니다.

 

 

막내 민자가 사정이 생겨 탈퇴하고

 큰 언니 영자가 다시 팀에 합류 한 것은

1973년의 일이고 1975년, 1980년에는 내한

공연을 가져 갈채를 받았습니다. 

 

 

 

춘하추동방송.

 

 

김끼스터즈 봄맞이.mp3

김끼스터즈 봄맞이.mp3
1.42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