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과 최초의 여기자 최은희님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라면 최은희기자가 쉽게 머리에 떠오르지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전파에 음성이 실린 여성이 누구냐고 하면 잘 모르시는 분이 많으실 줄 압니다. 최은희기지가 아나운서는 아니어서 최초의 아나운서는 이옥경을 떠 올리지만 최초로 방송에 목소리를 실려 보내신 분은 최은희 기자였습니다. 최은희 기자는 1924년 12월 조선일보사 시험방송 때 사회를 보았고 1926년 조선일보 부인견학단을 인솔하고 총독부 시험방송을 견학 하면서 방송과 깊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최은희 기자 시험방송 체험기
1926년 4월 18일 그날은 일요일
이었다.그날 오후 2시 조선일보사에서 벌써
3년 동안이나거듭하여 주최하여 온 부인 견학단을
인솔하고 나는 총독부 체신국안에 실험적으로 장치한
무선 전화 방송소를 보러 가게 되었다.
물론 나는 그 전 해에 조선일보사에서 주최한
이 무선전화방송 공개시험 방송에서 직접 사회를 맡아
방송을 하기는 했으나 첩첩이 문을 닫은 사장실 한구석에
앉아 있었을 뿐으로 이편 소리가 멀리 저편으로 한편의
오차도 없이 조용히 공중을 날아서 전파된 그 신비로운
소리를 단 한 마디도 들어보지는 못했다.
그랬던 만큼 이날이 나는 더욱 흥분과
긴장과 기대가 컸었다. 이날 2,500명을 돌파한 우리
부인 견학단 일행은 우리를 위하여 특별히 체신국 뜰 앞에
임시로 설비해 놓은 수신기와 시험방송실 내에 장치하여 놓은
송신기를 그곳 국원들의친절한 안내로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모두 한결같이 그 신기한 기기들을
마치 무슨 보물단지 바라보듯이 하였다.
이렇게 한 바퀴 잘 들 견학하고 나자
우리 견학단 부인들 보고 직접 방송해 보고 또
그 소리를 들어 보라면서 우리 단원중의 몇 사람에게
그런 기회를 마련하여 주었다.
마침 단원 중에서 꽃보다 아름다웠던
박경식 양과 장덕희 양이 소프라노 병창을 하였고
이어서 전도라 양의 풍금 독주가 있었다. 그 후 주최 측인
나도 인사말을 방송하였다. 이 밖에도 신나는 “ 유성기 ” 의
밴드소리가 나올 때 마다 가늘은 공중선을 쳐다보며
또는 체시국 뜰 가득히 쾅 쾅 울려 퍼지는 수신기를
둘러싸고 그만 감탄만 연발하는 것이었다.
“귀신이 곡 할 노릇이지”
“ 꼭 요술 같다니까” 하고
1904년에 황해도 연백에서 테어나 어린시절 해주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했던 최은희님은 경성여자 고등 보통학교 (경기 여자고등학교 전신)를 나욌습니다. 학교에 다니던중 16실때 3.1운동이 일어나 만세를 부르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고 그 후에도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유학을 갔습니다.
일본 유학중 조선일보 기자로
추천되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1924년 10월 5일,
조선일보 기자가 되었습니다.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여기자였습니다. 여기자가 한 사람밖에 없던 시절에 최은희 기자는 입사하면서 부터 여러방면에
두각을 나타 냈습니다.
조선일보가 시험방송을 하게 되면서
그 진행을 맡아 최초로 방송을 한 여성이 되었고
신문에 가정면을 두어 가정생활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부인 견학단을 만들어 부인들의 견문을 넓혀 주었고
여성들의 사회 참여나 권익향상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1927년 비행기를 타고 취재활동을 한
최초의 기자가 되었고 독립운동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1942년 남편이 사별한후 어려운
생활을 했지만 여러 사회활동을 계속했습니다.
독립기념관을 세울때는 많은기금을 내 놓았고
1983년여기자를 위해 최은희 여기자상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1984년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활동 하셨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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