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방송과 함께하신 최계환 아나운서가 세상을 뜨셨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향년 91세 <!--[if !supportEmptyParas]--> <!--[endif]-->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954년 KBS중앙방송국에서 출발한 최계환 아나운서는 1961년 MBC 첫 아나운서실장이 되었고 1964년에는 새로 탄생한 RSB 라디오 서울 아나운서실장으로 옮겨 또 새로운 방송이 탄생했음을 알렸습니다. 듣고 계시는 목소리는 최계환 아나운서의 RSB 첫 방송입니다.
1973년 KBS가 한국방송공사로 새 출발하면서 떠났던 KBS로 돌아와 공영방송 KBS의 첫 아나운서실장이 되었 습니다. 이로서 새로 발족한 공. 민영 방송 3사의 아나운서 실장을 두루 거치면서 국민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방송3사 아나운서실장을 지낸 최계환 아나운서
1929년 8월 19일 경기도 장단에서 태어나 개성 상업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아나운서의 꿈을 키운 최계환은 잠시 초등학교 교사를 하기도 했지만 6.25를 만나 피난 중 1951년 부산에서 실시한 아나운서시험에 응시했습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한 님은 1953년부터 청주방송국에서 임시 아나운서를 하다가 1954년 다시 중앙방송국 아나운서 공개방송시험에 합격해서 정식 아나운서가 되었습니다.
KBS에서 뉴스나 퀴즈 프로그램 누구일까요, 퀴즈 올림픽 등으로 사랑을 받았고 MBC에서 아마추어 노래자랑, 노래 실은 역마차등 오락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 명사회자로 널리 알려 졌습니다. 뉴스캐스터, MC, DJ, 스포츠 캐스터 등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최계환 MBC초대 아나운서실장 다음은 MBC 2기 공채로 들어온 아나운서들과 함께 한 사진이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한덕찬, 조규원, 조봉남, 최남규, 정흥숙, 김경준, 서천석, 하성해, 백혜정, 안영희 그리고 성우들과 이호로 음악과장, 배준호 방송부장, 최계환 아나운서실장, 민창기 아나운서다.
아래 1963년 MBC아나운서들의 회식사진이다.(정흥숙 아나운서제공)
1964년, 라디오 서울로 옮겨 여기서 첫 아나운서실장이 된 님은 첫 방송 개시맨트를 시작으로 뉴스나 공개방송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최계환 아나운서 사회로 진행된 장수무대는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1965년부터 아나운서실과 보도실을 관장하는 보도부장을 지내셨고 뒤이어 주일 특파원, 기획위원등으로 활동하며 일본 특파원 시절 게이오 대학에서 1년간에 걸쳐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한 님은 퇴직 후에도 각 대학의 교수직을 맡으시는가 하면 아나운서클럽 고문, 음향회사와 광고회사에서 회장, 고문으로도 활동하는 등 늘 건강하고 바쁜 일정을 보내셨습니다. 2004년에는 방송인의 영광인 방송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셨습니다.
최계환님이 KBS 친정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1973년 KBS가 국영방송 에서 공영방송으로 새 출발할 때였습니다. 다시 돌아온 KBS에서는 아나운서실장, 심의실장, 부산방송국장, 방송위원등을 역임하시다가 1980년 퇴임하셨습니다.
1964년 9시 KBS TV스튜디오에서 사회보는 최계환님입니다,(출연자 호현찬 님이 출연하고 최계환, 박찬숙 아나운서가 함께 사회보는 모습입니다.)
최계환님 글 이동방송차의 추억 1957년
송신기 녹음기를 비롯한 방송기재가 빽빽히 구비되어 있는 차이기에 차안에는 앉을 자리도 변변히 없었다. 운전대 옆이나 스피어 다이어 위에 앉고 서서 달리는 여행이었으나 기차 여행보다 지루하지 않은 것이었다. 앞으로 1개월간 같이 지낼 방송국이 바로 이 방송차였다. 서울로 부터 아득히 떠나와 순천, 광양, 하동을 지나 섬진강의 가경을 뒤로 흘리면서 진주 근교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넘어간 저녁 무렵이었다.
약 300여리의 먼지속을 달려오니 일행 5명은 모두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먼지 투성이가 되었고 몸은 피곤 할대로 피곤했다. 진주 사범학교 앞길을 지나 저녁 노을 속에 잠겨있는 진양고을의 모습을 보니 훈훈한 역사의 향기같은것을 느끼기도 했다. 반만년 억사의 아롱진 문화의 소산들이 고이 잠들고 있는 고장이었다. 서장대, 복장대, 촉석루 논개사당등 갖가지 역사와 전설이 얽힌 유적들은 이루 해아릴 수 없이 많았다. 말하자면 역사를 거슬러 온 기분이라고나 할까.
함께 끌고온 발전기를 돌려 행진곡을 흘리면서 간단히 이동방송차의 취지와 인사말을 방송하면서 우선 시내를 일주했다. 남녀노소가 다같이 길가에 나와 신기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맞아 주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진주시장을 방문했다. 이동방송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즉시 시청 뒷 마당에 방송차를 고정시키고 안테나를 세우고는 당일에 초청된 기관장 회의에 나가 방송 프로그램 편성에 대해 논의했다.
1964년 인천에서 열린 제45회 전국 체육대회 중계방송을 마치고 중계방송반이 함께한 사진입니다, 최계환, 아광재아나운서와 이명환PD, 엔지니어 고흥복, 박상수, 조찬수님이 함께 했습니다. (사진제공 : 고흥복)
그로부터 14일간 진주시내 각 기관장과 시민 여러분의 돈독한 협조아래 서울방송의 중계는 물론 " 내 고장의 이모저모" "학원의 모습" "마이크 인터부" "노래와 경음악" "문학의 밤" "노래자랑" 등을 가지고 진주시민 여러분이 바라는 지방방송을 할 수 있었다.
첫날부터 우리방송을 듣기위해 남녀시민이 시청앞에 모여 들었으며 심지어는 "학교시간에 왜? 우리 학교는 학교순서의 뒷쪽애 넣었느냐?"고 항의해 오는 국민학교 선생님도 있었다. 우리 벙송이 끝나니까방송치에 매달려서 아쉬운 듯 매달리는 사람도 부지기 수였다.
방송차를 견학 온 학생들만도 2천여명에 달했으며 길거리에 나가면 인사받기가 바쁠 지경이었다. 이동방송차에는 항상 걷잡을 수 없는 낭만이 서려 있는것 같다.
최계환님이 KBS에 근무하던 시절 정동연주소를 남산으로 옮기고 첫해 연말특집 아나운서 언 파레이드를 마치고 촬영한 사진입니다. 박종세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장기범, 민병연, 강영숙 ,황우겸, 김인숙, 최세훈, 송석두, 윤영중, 이현숙, 장금자, 송영필, 박종세, 이광재, 임택근, 강찬선, 임동순, 문복순, 강익수, 최계환님이 함께 했고 박종세, 이광재, 임동순님은 1956년 KBS아나운서 입사 동기였습니다. 아래는 1958년 연말특집 아나운서 언파레이드를 마치고 촬영한 기념사진, 1.송영필, 2.강익수, 3.장기범, 4.임택근, 5.박종세, 6.최세훈, 7.이규영, 8.강영숙, 9.전영우, 10.황우겸, 11.유석춘, 12.강찬선, 13.김동만, 14.최계환, 15.최두헌, 16.문복순, 17.장금자, 18.유창경, 19.이광재, 20.한경희 21.김준철, 22.최만린, 23.이현숙, 24.윤영중, 25.조영준, 26.이본 아나운서
1958년 방송문화상이 발족하면서 장기범아나운서가 보도부문의 제1회 방송문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날 시상식이 끝난후 장기범 아나운서와 1.최계환, 2.강익수, 3.김인숙, 5.윤길규 방송과장, 7.문복순, 8.민병연, 9.강찬선, 11.이규영, 12.황우겸 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입니다. 1957년 그때의 아나운서들이 함께 하셨군요. 1.유창경, 2.김인숙, 3.이현숙, 4.장금자, 5..최계환, 6.민병연, 7.장기범아나운서입니다.
155마일 휴전선 취재에 나선 프로듀서 김석호님과 최계환 아나운서 kbs야구단 왼쪽 검정옷
이강석은 이승만대통령 양자이고 방송인들을 따르며 친숙했습니다. 이 사진은 KBS가 정동에서 남산으로 옮긴후 이승만 대통령의 기념식수 앞에서 아나운서 실장 장기범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강찬선, 최계환, 방종세 아나운서와 함께한 사진입니다. 최계환 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 1965년 장기범 아나운서, 서울시 문화상 수상을 기념하는 사진으로 중앙방송국 현관에서 촬영한 사진 . 1.송한규, 2.김주환, 3.인주희, 4.배덕환, 5. 6. 송정기,7. 8.박상진, 9. ,10.김정자, 11.박종설 (장기범 아나운서 부인), 12.장기범 (방송과장-서울시 문화상 수상자), (앞 어린 아이 장기범 아들 화용, 준용) 13.이홍수 (중앙방송국장), 14.이광재, (아나운서 실장), 15. 정인식(편성과장), 17.최계환(라디오 서울 아나운서실장), 19. 서종화, 20. 전영우(동아방송 아나운서실장), 21.김동건 , 23.이상만(효과, 연출), 24. 25. 26. 27.박종세(동양 TV아나운서실장), 28.박은상(서무과장), 29.인주희, 30.유병은 (기술과장), 31. 32. , 33.최규락, 34.최두헌, 35. 36.이규항, 37.변정호 (장기범 아나운서의 에치켓 선생 담당 프로듀서)님 위 라디오 서울 장수무대 아래 토요초대석 진행장면
위, 아래 사진은 1966년1월에 아리랑 시상식무대에 오른 최계환 아나운서다. 이때 시상대에 함께 섰던 분들 최계환아나운서 성우 오승룡님의 모습과 그리고 수상하는 모습을 담았다.
위, 1966년 1월 임국희, 최계환 아나운서와 이영주는 수상자이고 수상을 축하 해 주러 온 김동건, 박종세 아나운서(왼쪽부터)와 함께 한 사진이다.
2010년 1월 25일 최창봉선생님 자서전 방송과 나 출판기념회에서 방송인들과 자리를 함게한 사진입니다.
최계환, 김인숙 두 아나운서 참으로 오랫만의 만남입니다. 1954년 공채 아나운서 최계환과 김인숙 두 아나운서는 청주방송국에서 방송을 시작했고 아나운서의 재능이 발휘되면서 얼마 않있어 바로 중앙방송국에서 방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성은 결혼을 하면 아나운서생활을 은퇴하던 시절이라 김인숙 아나운서는 가정으로 돌아갔지만 최계환 아나운서는1980년대까지 방송에 종사했습니다. 2009년 방송의 날 두분이 만나는 모습을 두분 모르게 슬쩍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2016년 6월 12일 한국아나운서클럽 정례회의에 참석한 둘째아들 최춘식 아나운서 바다건너 이역만리 미국에 사시는 김영우 아나운서로부터 1961년 MBC 입사시절 최계환 아나운서 실장과 함께 한 추억이 담긴 사진과 함께 사연을 담아 보내 오셨기에 여기에 그 사진과 사연을 올립니다.
김영우 선생님 글
최계환 선배의 이야기를 잠간 드리겠습니다. 1961년 5월 쯤 MBC 문화방송에 아나운서 1기생으로 입사해 교육을 받고 12월 2일 개국 할 당시 KBS 에서 아나운서 실장으로 오신 최 실장님의 음성이 역사적인 문화방송의 개국 아나운스멘트를 전파에 실어 서울 창공을 누볐습니다. 최 실장은 저보다 2년 연배로 가까히 지냈으며 나는 형님처럼 모셨습니다. 어느날 최실장은 내가 뉴스를 끝내는사간 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나아가 대포도 같이 하곤 했습니다. 동봉한 사진은 지난 2012년 제가 40년만에 고국을 찾았을떼 촬영한 모습입니다 . 이장우 아나운서는 다리가 불편하여 일본에 가고 원종관 아나운서는 연락이 않되 최 선배 혼자 나와 만났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진은 1962년 대전에서 벌어진 제1 회 전국 채전떼 최 실장과 같이 중계방송을 준비하고 있는 장면 입니다.
관련글 더 보기 영문자 클릭 최계환 아나운서 사회로 듣는 퀴즈 올림픽, 이경희, 강소천, 정희경 http://blog.daum.net/jc21th/1778216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 박민정 (한국아나운서클럽 감사) 2019년.5.25 09:02 <!--[if !supportEmptyParas]--> <!--[endif]--> 故 (언론인)최계환님께서 05월 24일 별세 하셨기에 알려 드립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빈소 여의도 성모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 5월 27일 월요일 장지 호국원 <!--[if !supportEmptyParas]--> <!--[endif]--> 상주 (前SBS스포츠국장)최춘식 (前KBS)최인석,(목사)최인수,최인실, 최혜정 배상 <!--[if !supportEmptyParas]--> <!--[endif]--> [황인우] [오전 9:12]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윤영중] [오전 9:16]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윤한] [오전 9:26]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김윤한 배상 [이계진] [오전 9:52] 빛이 되신 대 선배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계진 합장 _()_ [박찬숙] [오전 9:53] 최선배님의 명복을 빕니다. [정흥숙] [오전 10:14] 얼마전에 가서 뵈었는데 이렇게 빨리 가실줄 몰랐네요. 한 번 더 뵙지 못한 것이 한이 됩니다.문화방송국에서 고인과 함께 방송을 시작한 저에겐 너무나 큰 슬픔이 엄습해 옵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세진] [오전 10:22] 언제나 청년이셨던 최계환실장님, 명복을빕니다. [이보길] [오전 10:30] 故人의冥福을 祈願합니다. [이장춘] [오전 10:39]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님은 가셨어도 님의 족적은 영원 할 것입니다. [김병래] [오전 10:49] 인생무상입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빕니다 <!--[endif]--> [김재익] [오전 10:50] 저 세상에서의 영원한 삶을 믿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창학] [오전 11:03] 사진 [박창학] [오전 11:04] 미국에서.박창학배상. [구본출] [오전 11:14] 사진
[김무생] [오전 11:26] ●머리숙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정흥숙] [오전 11:18] 2월8일 대명요양병원에서. [김규홍] [오전 11:20] 사진 [박광희] [오전 11:26] 고인의 명복을 빌며~♡ [정흥숙] [오후 12:01] 사진 [정흥숙] [오후 12:02] 둘째아드님, 최인수목사님 [고광수] [오후 12:20] 신체와 정신이 건강하셨던분 ! 삼가 옷깃을 여미고 명복을 빕니다! [진무세] [오후 12:26] 세월의 무상함^^봄이가고 여름이 오면 꽃은 떨어지고 이윽고 가을이 오고-!!! 시간의 수레를 타고 오늘도 우리는 어디론가 떠나고 있지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영웅] [오후 12:27] 대 선배님 삼가 명복을 빕니다 [정흥숙] [오후 12:29] 이때 2월8일에 정신은 똑똑하셔서 연세 많으신 아나운서님들을 한분 한분 안부를 물으셨고 옛날에 하셨던 방송멘트도 말씀하셔서 놀랬습니다. [김주혜] [오후 1:04] 간간히 최실장님 소식들으면서 한번 봬야지,.. 맘뿐이었음이 죄스럽습니다. [배학철] [오후 1:33] 촤선배님 적고하심에 애도를 표하면서 이장춘국장님 헌산적 활동에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종표] [오후 1:51]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황규환] [오후 2:15] 자연의 순리를 따라 가셨으니 머리숙여 명복을 빕시다 고인의 명복을 엎드려 빕니다 ! [김규홍] [오후 7:16] 한국아나운서 클럽어서는 ??차인태회장 명의로 근조화환을 보냈으며 ●근조 깃발도 이미 빈소에 설치가 되었습니다. [김규홍] [오후 7:17] 사진
[차 기정] [오후 7:20] 여러모로 수고 많으십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형균] [오후 7:45]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
'방송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우 김세원님과 동아방송 밤의 플랫폼 (0) | 2010.03.01 |
---|---|
천부적으로 타고난 방송국 아나운서 윤용로님 (0) | 2010.02.09 |
동영상, 방송역사 살아있는전설 최창봉 회장님 출판기념회 (0) | 2010.01.26 |
정순일, 일생을 방송과 함께 하신 정순일님 (0) | 2010.01.18 |
시인 모윤숙님의 방송생활과 삶,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0) | 2010.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