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방송

KBS 광주방송총국의 어제와 오늘 ( 1 )

이장춘 2011. 7. 17. 11:19
 
 
 
 
 
 
KBS 광주방송총국의 어제와 오늘 ( 1 )
광주 방송국이 광주시 사동 177번지에
자리잡고 첫 전파를 발사한 것은 1942년  3월
21일이었습니다. 출력은 50W이었고 우리말과
일본어 이중방송이 동시에 발사 되었습니다.
 
광주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사직공원
언저리에 자라잡아 풍광이 아름답고 방송국 터로
 훌륭한 입지를 지녔습니다. 다른 방송국들은  처음방송을
실시한 곳에서 몇 번씩 옮기기도  했지만  광주방송국은
2000년 지금의 치평동으로  옮길 때 까지 한 곳에서
 60년가까운 세월을 지냈습니다.
 
 
 
터만 넓었으면 영원이 옮기지 않았어도
 좋았을 곳입니다.  봄이 오고 벚꽃이 피면 공원에는
관광객이 줄을 이었고 사원들은 이곳에서 즐거운 날들을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시,청취자들을 초청해서
다과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약 1,800평의 대지에 실제로 쓸 수 있는
땅은 1,600평 정도였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1975년과 1987년  두 번에 걸쳐 6년을
근무했던 곳입니다.
 
 
 
 
 
 
방송국 초창기 얘기를 하겠습니다.
 
 
 
처음 전파가 발사 된 것은 1942년
 3월 21일이었지만 조선방송협회가 이 곳에서
일을 시작 한 것은 1939년 4월부터였습니다.
라디오 보급과 설치에 따르는 일을 해주고
 청취료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출장소를
만들고 일을 보았습니다.
 
 
 
광주 출장소가 새로 생길 때의
직원사진과  명단입니다. 공사 된후
퇴직하신 한영희님의 명함도 보입니다
.(아래 내용있음)  초대 소장은 일본인이 했지만
1941년에 취임한 3대 소장은 한국인 김학만님
이었습니다. 님의 성함은 일본식으로는  金林學万
이었는데 1942년 3월 21일  방송국이  정식으로
문을 열면서 초대 방송국장을 하셨습니다.
 
 
 
한국인으로 김학만님이 광주 방송국장이 
된것은 이례적이었습니다.  일제때 한국인으로
지방 방송국장으로는 1938년 10월 30일 노창성님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곳 광주방송국장의 임명이
처음이었고  마지막 이었기   때문입니다. 4년이상 이곳
 책임자로 계시다가  일본인에게  물려주었고 그 일본인은  
해방 될 때 까지 근무 했습니다.  이 때는 방송과장도
 업무과장도  모두 일본인이 했습니다.
 
 
 
 
 
엄상선 해방후 초대 방송국장  
 



 
개국시의 업무과 직원 명단이군요.
공사 후에까지 계시던 조남두님도 보이고.
해방될 때 우리방송인은 엄상선, 한영신님이
계셨는데일본인이 완전히 물러나면서 10월
 2일자로 엄상선님이  해방 후 첫
방송국장이 되셨습니다.  
 
 
  1942년 개국실황을 중계방송하는 모습입니다.
 
 
 방송초기에는 아나운서가 제대로
없어서엔지니어를 방송취급자로 선정 간단한
 방송을 하기도 했습니다.1945년초 엄상선,
김남득님이 이런 분이었습니다.
 
해방될 때 제주도 까지 포함한
전라남도의 라디오 총 수는  1만 3천 367대
이었는데세대 당 2.5% 보급률 이었고 그것도
우리나라 사람이 갖은라디오는 7,266대에 불과
 했습니다. 나머지는 일본 사람 것이었습니다. 해방 후
1946년 출력이 50W에서 500W로  늘어났습니다.
워낙 없이 살던 때라 라디오는 안 늘어나
1947년 초까지 7,285대에
불과 했습니다.

 
 
 
 
6.25전란으로 1950년 7월 23일부터
10월까지 약 3개월간 방송이 중단 된 적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파괴 된 상태에서 처음에는 임시로 시설을 마련 해서
임시로 방송을 하다가 시설이 복구 되고 정규방송을
하게 된 것은 1951년 5월 8일의 일이었습니다.
 
1951년 10월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광주에서 
  전국 체육대회가 열렸고  열렸고 여기에 따른 방송은
광주방송국이 주축이 되어 실시했습니다. 이 때도
 정부나  중앙방송국은 부산에 있었습니다.
 
광주방송국이 광산 신촌리에
넓은 부지를 잡아 처음으로 송신소를
설치한 것은 1961년의 일로 출력 1KW가
 이 때부터 10KW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곳에 광주 비행장이
들어서게 되어 1963년 운암으로 옮겼고
지금의 대 출력 비아송신소는 1971년 4월
24일부터출력 50KW로 전파를
발사하게 되었습니다. 
 
 
무등산 TV송신소 모습입니다. 
 
광주지역에서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한 것은
 1966년이지만 이 때는 30W로 가 시청권이 극히
제한되었습니다.  광주 인근에서 나마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것은 1969년 말부터였고 무등산에 10KW를 설치해서
전남지역 대부분 지역에서 텔레비전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1971년 3월의 일이었습니다.
  
 
 
 
공사전후의 광주방송국 전직원이 함께한
사진을 구하려고 했으나 여의 치않아 못 올렸는데
한영희 선생님 정년퇴임에 참여 하셨던 송재극 선배님이
위의 사진을 보내 주셔서 올렸습니다.
 
 
공사되기 직전의 인원구성
 
 
국장 김 동 석
 
 
방송과장 윤 기 범
 
 
조창동. 정석균. 양율희. 전해진.
김창순. 기용서, 장영길, 박병무, 김수일, 김경선
박원철, 윤동원, 주건국, 강태서, 김영용, 정찬무
이덕소, 이연수, 양기두, 조영기,


기술과장 한영희
위준양 문관철 유재중 오재환 하희호 박종욱


비아송신소장 박제복
강석두 최판원 양정준 이계명 노홍용 이종배


보성중계소장 노병국
안규갑 박철호 임경택 박청희


장흥중계소장 윤길중
이규형 윤수각 윤호철 고정식


구례중계소장 조 웅
김영배 김홍삼 김태주 권완석


광주방송국에 근무하시던
분가운데 kbs사우회나 방우회에서
활동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구능회 선생님 글 (2021년 6월 6일)
 
 
제가 1970년 8월 21일에
광주TV중계소에 부임하니 다른 곳은
고지에 시설이 있는데 이곳은 광주방송국 경내에
시설이 있었죠. 그 해 9월부터 무등산으로 파견 근무를
시작해서 이듬해(1971년) 3월에 출력을 10키로로 증강해서
이전하였습니다. 당시에 저는 무등산에 근무 중이라
현장 공사감독 대행 역할을 좀 했고요.
 
당시에 광주방송국장이신
김동석 국장님은 제가 듣기로는
김동건 아나운서의 형님으로 들었고요.
무등산에는 오현수, 이영현, 김영기, 한진식,
박태문, 박길재 사우들이 초창기에 고생들을
하셨습니다. 기술과장 한영희 과장님은 기술계의
원로급이셨고, 저를 많이 귀여워(?) 해주셨지요.
TV중계소가 이전한 장소는 수신료 출장소로
사용하였고 당시에 소장은 김형준
(전 부사장) 님이셨습니다.
 
광주방송국 기술과에 근무하셨던
변영준, 박안남, 유재중,이계명, 하희호,
오재환, 박종욱 같은 분들의 이름이 낯익고...
방송쪽에는 정석현, 김수일, 김규홍, 윤동원,
양율희 아나운서 분들과 종종 만났구요.
사직공원 경내에 자리잡았던
그 시절의 광주방송국
참 그립습니다.
 
저는 1974년 1월 10일자로
대전방송국으로 옮겼습니다. 1973년
공사 발족 후에 초대 무등산 TV중계소
장은 최판원 님 이셨습니다.

공사가 되기 전에 무등산으로
TV중계소를 이전하고; 새 시설에서
나뉘어졌던 동료들과 함께 만나 가족적인
분위기로 근무하면서, 산위에서 광주시내와
주변의 농경지들을 바라보며 어줍잖은
시를 한편 만들어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題 : 於無等山(무등산에서)
 
湖 南 名 山 立 鐵 柱
千 里 沃 原 飛 電 波
遠 近 列 邑 漸 漸 明
吾 等 力 務 不 輕 事
 
호남의 명산위에
쇠기둥(안테나)을 세워서
천리 기름진 들에 전파를 보냅니다.
원근에 여러 고을들이 (방송으로) 점점
문명화된다 하니 우리들 힘써서
하는 근무 가볍지 않아라
 
대략 이런 의미로 만들어
본 것인데 1971년 경에 써본 것이니
꼭 반세기가 되었습니다.
 
이래 저래 광주와 무등산은
젊은 날의 저의 삶에 깊은 추억을
안겨 준 곳입니다.



 1975년 최창봉 부사장님이 광주방송국을 들리셨을때 광주방송국 간부들과 함께
광주방송국 뜰에서 촬영했습니다. 최창봉 부사장, 전옥배 광주방송국장님을 비롯해서 윤일우,
 이동린, 김선초, 임동익, 박창학, 이성수, 박재복, 장영길, 임연택, 이장춘이 함께 했습니다.  




1975년 광주방송국장 재직시 홍경모사장 광주국 순시때 광주방송국 간부들과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앞줄 왼쪽부터 윤일우, 변형하, 전영효, 전옥배, 홍경모, 임준택, 전응우, 임동익, 뒷줄 왼쪽부터 이성수,
오이열, 장영길, 임연택, 이장춘, 박재복, 조웅, 위준양, 변영준님이 함께 했습니다.
 



 
사직공원내에 있던 광주방송국은 꽃피는 4월이면 아름다움을 더 합니다.그 아름다운 공원안의 방송국 정원에서 여직원들과 함께 한 사진입니다. 이 여직원들이 지금은 60대가 되었습니다. 김수영, 민경남, 임정신은 이름까지 기억나는데 다른 여직원은성만 기억이 되고 임름이 기억 나지않아 미안한 마음을 같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광주방송국 직원들과 무등산 송신소를 들려서 무등산 직원들과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김상근, 조호윤, 김동희, 김진용, 민경남. 이름을 기억하는데로 써 올리겠습니다.
  
 
광주방송국을 배경으로 최종림 이장춘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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