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역사는 기술인들이 이룬 시설에서 기술인들이 발사한 저파로 부터 빈롯됩니다 기술은 바송의 뿌리입니다.
최충웅 박사님이 천기태님에게 그때 그 일을 기록으로 남기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셨어요.(2024년 5월 28일 춘하추동방송 카톡방)
실로 이 나라 방송엔지니어 분들 머릿속에 든, 말로 하는, 손으로 하는, 제 생각으로는 천재적인 실력이어요. 그런데 그 분들이 기록을 못 남기시거나, 안 남기셔요.
정항구님, tv방송국에 충계차가 없어 옛날 이동방송차를 tv중계방송차로 만들어 10여년간 tv중계방송을 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FM방송 서울 FM방송국이 있었어요. TBC로 갔다가 지금도 KBS에 그 채널이 있습니다. 정항구님이 설계해서 세운 방송입니다. 말씀으로는 겪었던 모든 얘기들을 다 하시는데 그런 얘기를 기록으로 못 남기신다는 거예요. 왜냐구요? 글 열 줄만 쓰면 앞에 쓸 말 뒤에 쓸 말이 뒤죽박죽이 되어 다른 분들은 그 내용을 모른 다는 거예요. 제가 가끔 그분의 말씀을 인용해서 글을 써 올렸는데, 어느 날 저에게 「네이버에서 정항구를 검색 해보니 54건이나 되더라.」는 겁니다.
조찬길 이라는 분이 계셔요. 못하시는 일, 모르는 것이 없으셔요. 1960년대 중반에 여수방송국 안테나가 고장이 나 방송을 할 수 없었데요.(김선초님의 말) 설날이라 기술자 구하기도 힘들고, 본사에 연락했더니 조찬길님이 내려와 철탑위에 있는 안테나를 수리해서 방송을 했답니다. 1960녀대 이래 세워진 대한민국 방송시설 대부분 이 분의 손을 거쳤어요. 그걸 말씀으로 듣자면 한이 없어요. 제가 만날 때마다 기록으로 남기시라고 하니까. 그런다고 하셨어요. 글을 얼마나 쓰셨냐고 물으면 많이 쓰였데요. 어느 날 이분이 세상을 뜨셨어요. 아들 조나라님께 전화를 걸어서 아버지 유품 중에 쓰시던 글이 있을 터인데 그 글을 보내라고 했어요.
아들 말씀이 그런 것 없데요.
최당이라는 분이 계셔요. 라디오 서울 개국 시 20KW송신기를 직접 조립해서 송신소에 세웠어요. 이분 방송역사에 소중한 분이여요. 그런데 그분이 쓴 기록은 없어요.
장도형이라는 분이 계셔요. 1960년대 70년대 우리나라에 세워진 송 중계소 송신기는 이분이 제작 한 것이어요. 하루에 2시간 잠을 잘 수밖에 없을 만큼 바삐 일 하신 분 이어여요.
그런데 그분들이 남긴 기술적인 기록은 없어요.
제가 늘 얘기합니다.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이 분들 말씀이 봉급 받고 살기 위해서 한 일인데, 이게 무슨 대단 한 게냐? 이거예요.
항일단파방송연락운동으로 많은 분들이 옥고를 치르고 또 옥사를 하신 기술인 분도 계셔요.
제가 그 분들의 업적을 길이 보존해야 한다고 하면 그분들 방송국에 근무하다가 쓸데없는 짓해서 그리 된 거라고 얘기하신 분이 계셔요. 이렇게 말씀 하신 가운데는 한국방송 60년사 발행 시 집필위원이었던 분도 계셔요.
유병은이라는 분이 계셔요.
방송역사 연구가로 대접 받으시지요.
그런데 엔지니어 분 가운데는 엔지니어가 쓸 데 없는 대만 머리 쓴다고 하신분이 계셔요.
이분 마지막에 방우회가 힘을 기울여 방송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 했어요.
이 방에도 엔지니어 분들 여러분 계시는데 외부인이 볼 때는 대단한 일로 보여도 이분들 스스로는 그리 생각하시지 않은 분들이 많거나 또 표현을 하시가 어려우신 분들 많으셔요.
저는 이런 일들이 오늘날 기술관련 기록이 적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천기태님은 그 생생한 기록을 남기실 수 있는 분이고 또 그러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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