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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문화방송 MBC와 전성천 공보실장(장관) 방송역사의 아이러니

이장춘 2017. 7. 24. 21:29

 

 


방송역사의 아이러니란

이런 경우가 딱 어울리는 것 같다.

전성천 공보실장(부를 때는 장관리라고

했음)은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 라디오 방송

부산 문화방송을 최종 허가해준   주무부처

수장이자 그 부산문화방송에서 본격적으로

 방송한      3.15부정선거  보도로 해서

1년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던 주인공이다.   



부산 문화방송 MBC와 전성천 공보실장(장관) 방송역사의 아이러니



부산문화방송이 설립되던 시절은

 우리나라에서  국영방송국  KBS 외에

민영방송을 세운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1954년 기독교방송을 세운 적이 있지만 보도나

평론 기능이 없는   순수 선교방송이었고

1956년에 세운 민영 TV방송도 사실상

운영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에서

민영 상업방송이 세워진 것은

부산지역에 일본방송 침투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정부의 특별배려였다. 이 상황을

 간파한 일제강점기 조선방송협회 시절부터 방송에

 인연을 맺었던 정환옥의 부산에 방송국을 세우고저

 하는 생각과 재력가 김상용의 생각이 맞아 떨어져

부산문화방송 설립허가를 적극적으로 추진

했기에 방송국을 설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58년 자유당 공천을 받아

동대문 갑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한

 자유당의 핵심인사    전성천 全聖天은 

 민주당전략적 무공천에 민주당의 지지를

 업고 출마한 민관식 (민병연 아나운서 작은

아버지)에게 패배했다. (민관식은

곧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 선거에서 패배한 전성천은

1959년 1월 31일 오재경 실장에 이어

 제8대 (1대부터 6대까지는 처장) 공보실장에

 취임한다. 이때는 부산문화방송이 假허가 상태로

 설립이 진행되고 있었고 전성천은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부산문화방송국 건립이 완공되어

정식허가가 나오고 1959년 4월 15일을 기해서 출력

 1Kw, 주파수 1035Khz, HLKU 부산문화

 방송전파가 발사되었다.





 전성천은 성대하게 치러진

이 행사에 방송주무관청 수장이자

특별손님으로 초대되어 환대를 받았다.

기자회견도 하고 기념축사도 하고 주변순시나

관계기관 시찰도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도

채 안되어 전대미문의 3.15부정선거가 치러

졌고 거기에 반기를 든 학생들의

대모가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마산에서 ‘김주열’군

 疑問의 실종사건이 발생하고 며칠 후

김주열군은 시체가 되어 물위에 떠올랐다.

  그 사실은 제일먼저 보도한 언론매체가 바로

부산 문화방송이었다. (그 상황은 다른 글에

 있어 아래 연결함) 부산 문화방송의 보도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시위에 기름을

부어 불길이 타 올랐다.


정부 안에서는 ‘이런 방송국을

누가 허가 해 주었느냐?’ 고 야단법석이

났다. 전성천은 그로 인해서 1960년 4월 7일

공보실장 직을 뒤로했다.  시위는 더 가열 차게

진행되어 국민적인 저항으로 번져 결국 ‘4.19혁명’

으로 이어졌다. 5.16이 일어나 헌법전문을 개정하면서

 '4.19의거'라고 바뀌었지만 한때는 헌법상 4.19혁명이라고

 불렸다. 4.19혁명으로 새워진 정부는 부산 문화방송의

공을 치하했고 그때 그 상황은 방송역사에 길이

보존되어야 할 기록이다. 부산 문화방송은

서울 문화방송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른다.





5.16 후에 세워진

울 문화방송의 모체가

부산 문화방송이다. 자세한

기록은 뒤에 연결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전성천 실장의 전임   오재경은

4.19와 5.16 격동기를 지나면서 최치환,

서석순, 심흥선 잠시, 잠시 수장들이 거쳐

 간 자리에         5.16 직후인 1961년 7월 7일

공보부장관으로 다시 부임 1962년 6월 17일까지

  지금의 KBS TV를 설립하는 등 1956년 7월 23일

부터 1959년 1월 30일까지     재직했던 

공보실장 시절에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시켰다.


*. 방송인들 간에는 전성천

 얘기를 하면 고 이상설이 화제에

오른다. 이상설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낸 인연으로 전성천 국회의원 선거사무장으로

 영입되어 공보실장 비서실장(별정직 사무관)을

거쳐 중앙방송국 편성계장으로 부임 방송

통폐합시절 KBS 파견 MBC 감사를

 마지막으로 퇴직 할 때까지

방송과 함께했다. 







화      보




MBC 부산문화방송 개국기념사진과

그날의 전성천 실장의 모습을 국가기록원

사진으로 담았다. 전성천 실장을 비롯해서.

공보실에서 온 이규일 방송관리국장,

등의 모습이 보인다.  


1959년 4월 15일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부산 문화방송 mbc HLKU 최초의 라디오 상업 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116

  

부산 MBC 문화방송 HLKU 탄생의 역사적 의미와 초기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2570


부산 MBC 초기방송비화 특별좌담, 이성화, 전응덕, 최광민, 김능화, 김영효, 정풍송, 김기자

http://blog.daum.net/jc21th/17782558   


사진으로 본 최초의 라디오 상업 방송 부산 mbc 문화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990


방송인 전응덕, 광고단체 연합회 회장

http://blog.daum.net/jc21th/17782030


이성화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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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5개월 여만에 TV방송을 내보낸 오재경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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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김지태 5.16장학회 정수장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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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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