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역사 90년

한국방송 역사 90년 (9) 송영호, 홍은순 방송사료로 본 방송역사

이장춘 2017. 2. 15. 10:01

 


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VL5vBShI5ck


 

 일민 송영호 선생님은 1938년

아나운서로 방송국에 들어와   JODK

경성방송국 편성업무를 보다가 해방을 맞아

해방송간에서 편성계장, 연출과장등 중책을 맡았고

 6.25 전시방송장을 역임하신 분이다. 해방공간에서 그분의

역할이 중요했고 특히그시절의 방송사료를 목숨같이 중요시

 여겨귀중한 사료를 피난지 부산까지 가지고 보존했다가

님의 아들 송현식님이 춘하추동방송에 제공해서

소중한 방송역사 사료로 쓰이고 있다.





송현식님의 어머니 홍흔순여사

 역시 방송계에  혁혁한 공을 쌓으신 분으로

 송영호, 홍은순 두 선생님이 직접써서 남긴 기록과

함께 방송역사 사료를 모아 한국방송 역사 90년 한편의

 글로 올린다.  여기 올라있는 방송사료는 사진도  있지만 

해방 전후의방송극 대본을 포함한 방송원고, 린이 신문

 등 송현식님 만이 소장 할 있는 소중한 방송사료로 

 방송역사를 연구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사료들 이다.  현식님과 협의 하면서

차츰 더 보완 할 것이다.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헌법이 제정 공포되었다. 국회의장

이승만 박사가 방송을 통해 헌법을 공포 하던  

역사의 현장을 담은 사진이다.     국회의장 이승만(중)과

당시의 중앙방송국장 홍양명(좌), 편성과장 송영호(뒤) 오른쪽

분은 조선방송협회 회장 이정섭으로 추정되지만 더 확인 해 보아야 할

일이다. 7월 17일 헌법공포에 이어 7월 20일 국회에서  이승만 박사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8월 15일 역사적인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했다.

송영호, 홍은순 부부는 이 역사적인 사진들을 6.25전쟁중에도 가장

소중하게 간직해서 오늘에 이르고 그 아들 송현식은 그 사진을

"춘하추동방송"에 제공해서 세상에 빛을 보게했다. 위 사진은

돌石판 같은 단단한 판에 특수처리해서 작은 액자로

보존되어 있어서 오랜세월에도 변치 않았다.

 

 

 

 

 

부친 송영호 선생님은 1915년

서울에서 테어나 보성전문(고려대학교 전신)

법학부를 나온후 1938년, JODK 경성방송국 아나운서로

방송에 입문, 편성원으로 해방을 맞아 편성계장, 기획과장, 편성과장,

문예과장, 1949년 6개월간의 미국연수를 거쳐 6.25전쟁 중 전시 중앙방송국

방송과장 전주방송국의 전신 이리방송국장,그리고 1960년  대한민국 방송의

최고 책임을 맡은 공보부 방송관리국장을 지내면서 해방후의 이나라

 방송의 틀을 확립하고 많은 방송관련 기록을 남겨 방송의 큰 별로

 추앙 받고 있다.  방송영상산업진흥원에서 실시한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어머니 홍은순 여사는 일제강점기

교수의 꿈을 안고 일본 유학, 玉成 보육사범

연구과를 졸업하고 동경 야지시밤대학 사범과를 수료

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아나운서가 되려는 생각을 한적도

있지만 결국 어린이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1940년  송영호선생님과

결혼 그로부터 어린이 교육을 수행하면서 방송활동을 전개 많은

업적을 남겼다. 1965년 방송문화상과 1979년 국민교육포장,

1987년 국민교육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송현식선생은 1968년 KBS아나운서로

방송에 입문 오랜세월 방송을 했다. 필자와는

1969년부터 한 사무실에서 일한 45년 지기 친구다.

송선생에게는 이나라 방송의 뿌리 아버지와 방송인이자

교육계의 원로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방송생활을 통해

이룩한 발자취와 역사적인 방송사료들을 보유하고

있다.  송선생이 아니면 보유할 수 없는 그런

 방송사료들이다. 오늘 그 일부를 올린다.

 

 

 

 

1941년 6월 이라고 쓰여있는것을

보면  송영호선생님이 평양방송국 아나운서

 시절이고그곳에서 사실 때라  평양방송국에서

 홍은순여사의 방송모습인듯 하다. 그러고 보면

 74년의 세월이 흘렀고 평양방송국 개국후

 4년 7개월이 된 때다.

 

 

 

 

1949년 10월 16일 송영호, 송현식 부자가

 당시의 국무총리 철기 이범석장군과 창경궁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청산리 전투의 명장 이범석 장군과

이때 35세의 송영호선생님이 9세의 큰 아들 송현식과

 촬영한 사진으로 뒷면에 송영호 선생님의 친필 설명이

 있어 함께 올렸디.   그시절 창경원이라고 부르던

곳의 명칭을 "Palace"로 표현한것이 특이하다.

  

 

 

 



참으로 희귀한 크리스마스 카드다.

VUNC재직중이던 위진록(뒤 좌), 홍양보(뒤 우)

김복자 (전 좌), 유덕훈 (전 우)아나운서의 사진을 담아

송영호 부처에게 보낸 성탄카드로  본 "춘하추동방송"에서

늘 보아온  얼굴이지만 이런모습의 사진은 처음 보았다. NHK

마이크 마크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아직 오끼나와로 옮기기전 

1950년대 초 보내온 성탄카드다. 홍양보, 위진록, 유덕훈님은

KBS아나운서로 재직하다가 6.25가 일어나 국내방송이 마비

되자 갑자기 VUNC가  새로 발족 되면서  신 분이고

 김복자님은 KBS성우출신으로  VUNC에서 아나운서,

 성우등의 영역에 해당하는 여러 일을

한분이라고 들었다.

  

 

 

 

전주방송국 초창기 귀중한

역사사료다. 1954년 8월 15일 송영호

선생님이 이리방송국장 시절 이리방송국 직원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이리방송국은 전주방송국의 전신으로

1958년 전주에 사옥을 짛고 1959년 4월부터 전주방송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전주방송총국에서 2010년 방송역사 동영상을

제작한다고 해서 춘하추동방송에 있는 모든 사진을 제공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사진이 없어서 아쉬움이 있었다.

뒷면에 송영호선생님 친필 성함이 쓰여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윤영중,

홍성완, 김남북, 이을우, 김중식, 김광선, 최세환,

강재룡, 박한묵, 조지식, 이종만, 송영호, 전주오, 김윤석,

정윤량 순이다. 한쪽 눈을 가린 최세환이라고 쓰인 분은 최세훈

아나운서인데 그때 최세환 이라고 불렀는지 오자인지 확인이 안된다.

이때의 이리방송국 아나운서로 재직했던 이용훈. 이순길 두분은 이 사진

촬영에서 빠졌다. 아나운서 윤영중, 최세훈은 송영호 선생님이 다시 중앙방송국

방송과장으로 돌아온후 서울로 옮겼다. 윤영중은 1962년까지 아나운서로 재직했고

퇴직후에도 프리랜서연속낭독 등에 참여했다. 최세훈은 1964년 MBC아나운서

실장을 거쳐 대전, 전주, 마산등지에서 상무로 재직하던 중 19841984년 2월

 11일 51세의 젊은 연세로 세상을 뜨셨습니다. 세상을 뜨셨다. 이종만은

 목포방송국장 등을 지내다가 또 박한묵은 전주방송국 서무과장으로

재직하다가 공사발족후 1974년 정년퇴임했고 전주오는

남원기술과장 재직중 정년퇴임했다.

 

 

 

 

송현식 어린시절 친구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KBS TV 1기 탤런트로

오랜세월 시청자와 함께 한 김혜자는 송현식과

동년배로 함께  자랐다고 했다. 송현식은 KBS

어린이 합창단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참으로 희귀하고 의미있는 사진이다.

고려문화사, 어린이 신문부는 송영호, 홍은순

부처가 앞장서서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다.

 어찌되었던 위, 위안회를 주관한 고려문화사, 어린이 신문부,

조선아동예술연구회는 송영호부처와 밀접한 인연이 있음에 틀림

없다. 이 단체가 주체가 되어 1946년 추석을 맞아 9월 10일 전재동포

위안회를 가졌고 그 행사내용을 담은 7장의 사진을 당시는 앨범이

없었는지 두꺼운 상자종이를 오려 끈으로 묶어 만든 

 앨범에 사진 한장씩을 붙여 보존되어 왔다.  

  

 

 

 

조선재외전재동포구제회란 일제강점기

중국, 일본, 만주 등  각처에서 어렵게 살던 수백만의

동포들이 국내에 돌아왔어도 막상 갈곳이 없어 이들을 보호

하기 위해 사회각계각층 인사들이 동포들을 구원하고자 8月 31日

오후 1시 경성부 壽松町 中東學校 대강당에서 유지 다수 참석하여

 "조선재외전재동포구제회" 창립 총회를 열고 활동을 전개하면서 돈이고

물건이고 힘 닿는 대로 유지들의 기부금을 모아 전달하고  위문공연

등으로 이들을 위안했다. 이런 활동은 전재동포들이 돌아오는

부산, 인천 등 항구등의 수용소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필자도 말만 들었지 그때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처음본다.  

 

 

 

 

동요제창하는 출연자들의 성함이 쓰여있다.

조성녀, 고순애, 홍은순, 이정숙, 반주 조금자, 일제

강점기부터 방송활동을 해 오셨던 이분들은 해방공간에서

방송원고,   방송출연 등을 통해서  활동한 분들로 널리 알려진

 분들이었다. 조금자에 관한 글은 "춘하추동방송"에 여러편이 올라있다.

1933년 콜럼비아 레코드사가 최초로 전국을 대상으로 공모한 가수선발에서

최종입선 1934, 35년 가수로 이름을 날린 분이고 10여곡의 노래가 전해와서

 "춘하추동방송"에도 여섯곡이 올라있다.    1960년대까지 방송과 인연을 맺고

 많은 활동을 벌렸다. 아래 그 모습이 답긴 사진이 또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 방송드라마의 선봉에 서서 활동한 김영수선생님의

부인으로 그시대를 사신 분들은 김영수님을 모르는 분이 없을 도로

유명한 분이었다. 지난세기 재미작가로, 교육자로 널리 활동한

김유미선생님은 그의 둘째딸로 LA에 살고있다.

 

   

 

  

 


아래 사진은 송현식님이

 김수환 추기경님과 함께 촬영한

 사진으로 뒷면에 1981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송영호, 홍은순 선생님 방송史料 보기

 


현대적인 방송의 틀을 확립한 송영호님

  

해방 전후의 방송 이면사 송영호님 (해방전후->군정)

http://blog.daum.net/jc21th/17781617  


1946년 KBS 3.1절 특집동요극 안석주 작 (안병원 아버지), 봉선화동요회

http://blog.daum.net/jc21th/17782515


해방공간의 어린이 신문 / 송현식님

http://blog.daum.net/jc21th/17782511



우리의 노래, 해방기념호 1946년 7월 20일 봉선화회 발행

http://blog.daum.net/jc21th/17782275

 

윤석중, 동요선-1939년 발행 「尹石重 童謠選」홍은순 보존

http://blog.daum.net/jc21th/17782268

 

해방직후 미농지 美濃紙에 쓴 방송 드라마 대본 윤일파 작 너도 독촉이냐

 http://blog.daum.net/jc21th/17782518

 

해방공간 봉선화동요회가 제작방송한 동요극 꽃동산 김갑순지음

http://blog.daum.net/jc21th/17782522

 

1930년대 송영호 선생님 육성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699

  

송영호, 홍은순, 송현식 선생님의 방송사료를 통해본 방송역사

http://blog.daum.net/jc21th/1778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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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세시풍속과 환갑 상의 모습을

보기위해 1949년 송영호선생님 아버지 환갑기념

사진을 올렸다. 35살의 송영호 선생님, 33살의 홍은순

 여사님, 9살의 송현식의 모습이 보이는 사진으로

그 시절의 풍속을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사진이라고 생각해서 올렸다 

 


홍은순님이 훈장을 받고 최규하 축무총리와 함께 한 사진

 

 

미국 연수유학을 마치고 귀국 때의 송영호선생님 모습









 

 

샌디에고 새소리 금잔디.w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