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성우 윤미림

이장춘 2014. 12. 8. 02:28

 

원로성우 (KBS 1기) 윤미림님 삼가 명복을 빕니다.

 

 

2020년 5월 18일 원로성우

윤미림님의 조카 황성혜님으로부터

영면소식을 전해 오셨기에

원문을 올렸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1기 성우였던 윤미림님의

조카입니다. 저희 이모가 5월16일

토요일 새벽 숙환으로 별세하셨습니다.

저희가족끼리 조촐하게 장례식을 마쳤습니다.

그간 원주에서    생활하셨지만 고인의 동생이

지난12월 서울로 모셔서 돌봐드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모가 성우로 활동하시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고 이야기로 전해 들었을 뿐이지만 옛날 윤미림

성우를 기억하시는 분들께 어떻게든 알려드려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춘하추동방송 블로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윤미림성우에 대한 글도 올려

놓으신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실례임을 무릅쓰고

몇 자 적었습니다.

 

황성혜드림

 

 

윤미림!  고은정, 김소원, 김수일,

박용기, 오승룡님 등과 함께 한 1954년의

대한민국 제 1기 성우다.   그로부터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라디오 청취자들의

 마음을 끌었던 윤미림선생님(이하 존칭생략)은 그동안 수필가로

소설가로 평론가로 살아오면서 80을 바라본다.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던 윤미림이 강원도 원주에서 살고 계신다는 얘기가 들리더니

지난달   미국에 살고 있는  최세훈 아나운서의 딸 최철미님이

 찾아와 윤미림 얘기를 하기에   어떻게 알았느냐? 고

했더니 자초지정을 얘기해서 소식을 알았다.

 

 

성우 윤미림

 

 

20여년간 컴을 두들기며 글을

써 오셨다고 했다. 200편에 달하는

한편에 책 3페이지씩만 계산해도 600페이지의

책 분량이다.   이 내용 속에는 윤미림 자신의 인생이

있고 삶이 있다. 그리고 49편의 아픔의 시간들 방송에

 관한 얘기가 있다. 방송에 관한 글은 그의 방송인생이자 라디오

방송의 역사다.  얘기는 1954 군방송의 성우로부터 시작된다.

뒷날 우리나라 최초의 TV, HLKZ, MBC, KBS TV, 동아방송

창설 주역이 된 육군중위 군 방송실장 최창봉의 만남

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성우생활, 방송생활의

 기록은 이나라 라디오방송의 산 역사다.

  

필자가 이메일 한통을

 보내드렸더니 「춘하추동방송」에

 관한 예기를 알고 계셨다는 듯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간단

하지만 깊은 뜻이 담긴 답장이 왔고 KBS 라디오,

 라디오 드라마에 관해서 알고 싶은 점이 있으면

 아는 대로 설명해 주겠다. 고도 하셨다.

 

방송에 관한 글, <아픔의 시간들>은,

동아누리 -> 사는이야기 클릭하고, 작성자

 윤미림으로 검색하면 <아픔의 시간들> 이 뜬다고

하셨다.  아래 그 글을 바로 보실 수 있도록 연결

 놓았다. 오늘은 윤미림의 소식을 간단히 전하면서

 방송에 관한 글 아픔의 시간들  49편중에서 

한편을 인용하고 이미 올린 청실홍실 출연기

 글을 연결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아픔의 시간들 - (10)

 

 

 

나도 작가님한테 잘 보이고 시포여...

 

지금 TV 시대에는 도시나 농촌이나 거의

상식이 평준화되어, 정치문제를 얘기해도 스포츠

얘기를 해도 말이 다 통한다. 그러나 라디오 이전 시대

에는 문맹이 많고 신문도 읽는 일이 없는 시골사람들과

도회인들과는 문화의 차이가 커,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다. 나 역시 KBS 처음 들어가서는 아무

하고도 얘기를 하지 않았다. 공통된

화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KBS는 조금 특이하다고 할까,

인물에 자신이 있는 여성들이 노크하는 곳,

방송국은 아름다운 여자들이 많다고 보면 틀림 없다.

1950년대 중반에도 그랬다. 물론 중부지방 산속에서 살다 온

나는 예외였으나, 1955년 1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KBS 전속극단원들

 가운데 서울출신 여성들은 대개 인물이 좋았다. 신인 가운데 김연임과

 정동은이 주위의 시선을 더 끌었다. 정동은은 이대 무용과 재학중

으로, 몸매가 좋고 귀 및 머리 숱이 많으며 웃는 모습이

아기자기하게 예쁜 고전미인형, 김연임은 은행 출신

으로 얼굴 윤곽이 뚜렷한 현대형,프랑스의

잔느 모로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조남사(趙南史)님은 30대 중반의

작가겸 연출계장, 연출계장은 지금의 TV

방송사 제작국장과 같은 지위.김연임이라는

이름이 방송에서 얼른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김소원(金素媛 : 현재 TV 탤런트)"으로 바꿔준 것도

 조계장님이었다. 거기에  그녀는 언행이 똑 떨어지는

 지적인 여성으로 머리 회전이 빠르고 똑똑하여 처음

부터 조남사 연출계장님의 사랑을 차지.

잡지의 좌담회가 있어도 조계장님은

김소원씨를 데리고 가셨다.

 

 

성우 김소원

 

 

 

실제로 후에 드라마에서 지적인

 여성 역에 그녀를 따를 연기자는 없었다.

조계장님은 모든 드라마에 배역을 선정할 권한이

있는 분, 그 분한테 잘 보여야 방송에 뽑힌다는 걸 나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세련된 서울 아가씨 김소원씨는

 조남사계장님뿐만 아니라 선배연기자들에게도

 때와 장소에 알 맞는 화제를재치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잘 만들었다.

 

 

 

그녀가 부러워,

 

나도 어떻게 조남사 계장님의

관심을 끌어보고 싶었으나, 아무리

 머리를 짜봐도 적당한 화제가 영 생각나지

않아 고민만 하다가, 하루는 큰 결심을 하고,

조계장님 책상 앞으로 갔다. 그리고 몹시 긴장하여

골낸 표정이 되어, 거북한 말을 꺼내느라고, 어색하게

몸을 비틀어가며개미 목소리로 간신히 부탁 말을 꺼냈다.

 

"조 선생님! 저도..., 이름 좀, 바꿔주세요!" 그 말을 하기까지

나는 여간 망설이지 않았는데,나를 옆 눈으로 흘끔 쳐다본

조계장님 대답은 한 마디로 거절.  "어? 윤미림이는

이름 좋아! 그 이름은 바꿀 필요 없어!" 그걸로

그만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더 말을

걸어볼 화제가 없었다.

 

그런 못난 나 자신에 실망,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 긴 나무 의자

끝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아, 나는 왜 이렇게

똑똑하지 못할까! 하고 한숨을 쉬면서 뿌루퉁하게

입을 내밀고 괴로워하기만 했다. 방송국 들어가 처음

몇 년은 그런 실망의 날들을 보냈다. (계속)

 

 

관련 글 보기 영문자 클릭

 

 

1기 성우 윤미림이 말하는 그때 그시절 1954년 군방송실

http://blog.daum.net/jc21th/17782583

 

성우 윤미림님, 최초의 멜로드라마 청실 홍실 출연기

http://blog.daum.net/jc21th/17780749

 

임택근 아나운서 그때 그 목소리, 대한민국 성우 1기 윤미림님 글

http://blog.daum.net/jc21th/17782417

 

아픔의 시기간들 더보러가

  

 

 

윤후현 (팔방미남)선생님 글

 

 

1954년도 이면 저 어린 시절부터
성우를 시작하셨군요.우리나라 라디오

방송의 산 역사 이신 윤미림 선생님! 존경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최초 멜로드라마"청실 홍실!"과
수필집"아픔의 시간들!" 잘 감상 했습니다.
곁들여서 kbs 성우님들!의   소식도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1959년 남산 스카이 라운지에서 있은

성우송념모임에서의 추억의 사진이다. 왼쪽부터

장민호, 이혜경, 김수일, 홍은순, 이미경, 방송관리국장

이규일, 구민, 고은정, 최길호, 한분건너 전성천공보실장,

 한분건너 최을선, 이경희, 방송과장 노정팔, 최옥경,

천선녀, 오승룡, 중앙 방송국장 이운용님.

 

아래는 박용기, 복헤숙, 이향자, 이혜경,

윤미림, 박병호, 구민, 심영식, 고은정, 최옥정,

장서일, 강문수, 김소원, 김정옥, 박순옥, 주상현,

김수일, 오정한,  유병희, 장민호, 박신호,

오승룡, 남일우, 이창환, 최길호님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샌디에고 새소리 금잔디.w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