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부 : 서금랑

서금랑 전 KBS 아나운서, 눈뜨기 어려운 병고를 극복하며 그려낸 매니큐어그림 이야기

이장춘 2014. 6. 9. 23:16
 

 
 "매니큐어그림 이야기" 매니큐어로
그림을
그린다는것, 생각도 못했고들어
보지도 못했다.
매니큐어가 붓 끝에 찍히는
순간
굳어버리는 특성때문에
그것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세계 어느나라, 어느누구도 매니큐어로
그림을 그렸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고
전문가에게 물어도 그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금랑은 그것을 해냈다.   
더군다나 "갑상선 기능항진"으로 수년간
고생
해왔고, "눈꺼풀 연축"이라는 까다로운 난치
질환으로 고통을
겪고
있어서 잠시라도 눈을 뜨고
있기가 어려운    서금랑이 이것을
해냈다.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 수 있었을가.




서금랑 전 KBS 아나운서, 눈뜨기 어려운 병고를 극복하며 그려낸 매니큐어그림 이야기


 손톱에 매니큐어라고는
발라본적이 없던
 서금랑이 
15색으로 된 
매니큐어 한새트를
샀다.
 (그 사연은 생략). 그러나 그
매니큐어는 한번 바르고 난후
더 이상
바를 수가 없어
결국 책상구석에서 
잠자게되고
굳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 잠에서
 깨어나 집에 있던 낡은 항아리며
화분
 빛바랜 장난감에 매니큐어로 
그림을
그려보았다.  낡고 퇴색해
버려진 것들이
화사하게
웃으며
살아났다. 

새벽 1시나 두시에 일어나는
서금랑의 생활습관,
그보다
두시간정도
 뒤에 잠에서 깨어나는  이정부 아나운서기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며
극찬했다.
이정부아나운서의 말을 빌리면 서금랑은
자신보다 다섯배 빠른
 손놀림과
놀라운직관력, 타고난 색채감각

 
또 간절한 소망이 구현될
 때는
눈 뜸이좀 더 지속되어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
다고 
한다.

이정부 아나운서의 글을 일부 인용한다.





 희귀병으로  눈 뜨기가 어려운
 서금랑이 그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글 쓰기에 정진 이미 96년과 2010년
두 차례 수필집을
 발간한 적이 있으며, 2011년에는
수필춘추에
정식 등단, 수필가로서 글을 게재해 왔다.
이번에는 일반인이 손톱치장에만
 주로 쓰는 매니큐어
물감과 낡은 화분등 폐품을 활용해 독특하고 화사한
색채를
창조해내는 예술성과 실용성, 절약정신을
실천해 보이는 독특한 작업을 해
작품집까지
간행, 주위를 놀라게 한 것이다.

매니큐어란 극히 적은 양이
 공기와 접촉하면 순식간에 굳
버리는
속성 때문에 빠른 속도로 붓을
놀리지 않으면     큰 면적에는 제작이
 불가능해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는
세계 최초의          아이디어와
작업이라는 데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새로 발간된 책이  2014년
5월 29일
"한국아나운서클럽"
참여자들에게주어지고 또
아나운서
 동기이자 친구 이혜옥여사와 남편 이정부
 아나운서
    동기 김규홍 아나운서의 발표를
통해서 상세히 알려진
 것이다. 6월
15일자로
 발행될 '한국아나운서클럽회보" 14호에도
내용이 상세히
 전해질 예정이고
 SBS        "세상에 이런일이"
프로그램에도 방송될
 
예정이다.
  

들으시는 육성은  그날 발표
되었던    김규홍 
부회장과 이혜옥
아나운서 얘기를 요약한 것이다.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나
수도여자고등학교와
서라벌
예술대학 연극 영화과를 졸업하고 
1969년
 아나운서가 된 서금랑은 1년 선배
아나운서 이정부와 결혼,   
행복한 삶을 누려
오던중 뜻하지 않은 희귀 난치병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늘 긍적적으로 살며 새로운
삶을 창조 해 나간다.  

남편 이정부
 아나운서는
어려움에 처한 부인 서금랑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다.
시장보고  
밥을 짛는 등 가정사도 이정부 아나운서의
몫이고 
서금랑이 눈 장애로
할 수
없는
 일을 돕는다.

서금랑이 2010년
"개도 인간이다"
수필집 발간을
계기로
카페를 개설했지만 운영이
어려워 블로그로     
바꾸어
개설하는 등
정력을 쏟아 붙는다
.
         
이정부, 서금랑
가정을 아는 주변분들은    그
아름다운
사랑얘기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이정부는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한 화가이자  조각가이고
아나운서다. 국전에 조각작품을 출품 입선한
적이
있고      수필가로도
 활동한다.   이번에 
서금랑의
"     매니큐어그림 이야기" 와 함께
방송생활에서 겪고 느낀얘기들을 모아,  
수상집 
이정부의        "방송안녕
하십니까" 가  발행되었다.
 

   
 서금랑 아나운서는 지금
(2014년 12월)도 그 어려운 매니큐어
 그림을 그리고 있다. 화분, 도자기나, 찻잔,
그릇에는 물론 냉장고도 에어콘도 그 그림으로 
 색칠 해졌다. 무려 1,000여점을 그렇게 그렸다고
한다. 이 가운데서300 여점을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고두 편을 춘하추동방송에 보내
오셨다.그 중의 한편을 여기 올린다.


동영상 보기
 
 
음향을 먼저 끄고 보셔요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이정부 아나운서와 방송 & 강아지 아범 
http://blog.daum.net/jc21th/17782053

 1969년 KBS아나운서들의 목소리 1969년이여 안녕
!
http://blog.daum.net/jc21th/17782085
 
1991년 KBS 아침종합뉴스 이정부, 박경희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2096

 
이정부 아나운서 블로그 바로가기 영문자 클릭 
  http://blog.daum.net/iiipaaap
 

이정부, 서금랑 부부! 둘은
 같은 길을 걸어온 아나운서이자
화가이고 수필가다.  두분의  아름다운
사랑 얘기와 함께 서금랑, 불굴의 의지로
살아가는그 모습은    많은 분들의 마음속에 
깊히
새겨질 것이며 본보기가 될 것이다.  
두분의 건강과 행운을 빕니다. 


김두석 선생님 글

안녕하세요. 서금랑 이정부 아나운서님!
참으로 오래간만에 컴퓨터를 켰었답니다.
명색이

1994년 부터 이메일을 했던 이땅의 컴퓨터1세대 김두석
이가요. 1998년 만기 정년을 하고 고향 파주에 자그마한
주말농장을 만들어 애경사나 모임이 없는 날은 봄부터 가을
까지는   늘  농장에 내려가 무념무상으로 고향하늘을 보며
지냅니다. 화요일엔 아코디온 공부를 하구요. 오래간만에 
컴퓨터 앞에 앉으니 비밀번호를  다시 입력하라는 둥
시스템이 많이 바꾸었더라구요. 간신히 복구를
했지요. 헌대 서금랑동기의 얘기가
뜨겁더군요. 깜작 놀랐어요. 
 
순간 눈물이 왁칵 쏟아지더군요.
제가 마음이 좀 여리거든요.  부군 이정부
아나운서는 제 고교 후배이기도 합니다. 무척 오래전에
두사람 가정사의 슬픈 얘기를 전해 듣곤 참으로 가슴 아파
했지요. 일부러 전화 안했었어요. 하여튼 서로 편한날 얼굴
 한번 보기로 해요.    사회부기자시절 김영자아나운서
이혜옥 아나운서, 김성응 피디와 영등포에서 한잔
한게 아련한 옛이야기가 됐네요.
 
김두석드림 


남초 이정부 아나운서


감두석 선배님 반갑습니다. 이정붑니다.
저희들 관련 페이지를 이장춘 선배님이 새롭게
꾸며 놓으신 것을 발견하고 돌아보다가 오늘 처음
선배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고교시절 존경했던 선배님이
방송사엔 기구하게도 한해 뒤에 들어오시는 바람에 제 한해
후배인 집사람과 동기생이 되시는 기구하고도 반가운 사태가
 일어났죠. 선배님은 방송국에서 가장 바쁜 보도국 기자로 활약
하시게 되어 재직 중 몇차례 뵙지도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한국 최고의 방송블로그    '춘하추동방송' 덕분에 다시 뵙게되어
 감 무량합니다.     집사람에게도 빨리 알려줘야겠습니다.  
주말엔 고향의 흙 냄새를 맡으며 지내실 수 있다니 정말
부럽고 축하드릴 일입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즐거운
 나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좋은 글 남겨
주셔서 거듭 감사드립니다.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 글  
 
 
한번도 뵌적은 없지만,
춘하추동 방송을 통해서, 인터넷상으로

알게된 강아지아범 이정부 아나운서님과 부인 되시는
서금낭님의 사연을 감동깊게 읽었습니다. 누구나 일생을 통해
즐거운 일과 어려운 고비들을 반복하며 살아가지만, 그런 일들을
견디며 극복하고 승화시킬 수 있는 있도록 서로 아끼고 힘이 되며
 따뜻한 동반자로 멋지게 완주하시는 두분의 사랑에
 깊은 존경의 마음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정부(남초) 아나운서님 글


유카리나 선생님께 
이장춘 회장님(연봉없음)이
제작하신
 유카리나 선생님의 활동과
아름다운 오카리나
멜로디로 된 역작들은
춘하추동방송을 통해 이제
지구촌의 모든
동포들에게 거의 알려지다시피 했습니다.
 
방송후배인 저희보다
훨씬 앞서 이장춘
회장님의 활약에
 박수를 보내오신
선견지명과
 예지의 예술가

유카리나
 여사님이 매번
제게도 보내주신 큰 성원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더욱 건강하신 가운데
지금까지 들려주셨던 그 아름답고
격조있는
 연주를 계속 들려
주시길 기원합니다.




김영우 선생님 글 (미국 LA)


이 국장 님, 연휴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 
 이곳 미국에서도
  Normandy 상륙작전
70년을
 마지한 
 
기념헹사가 방송     메디어를

통해 소개 됐습니다.

오늘 이 국장님이 불록에
올린 서금랑 아나운서
이야기와 이정부
아나운서 아야기 등 
모두 감명깊게
 보았슴니다. 
서금랑 아나운서가 매니큐어로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와 화면등은 저도 처음 보고
놀랬습니다.  저도
홍대미술학부
 서양학과 출신으로 공부를 하고 있을
그 댱시 저의  단임
김환기
선생께서 늘 우리에게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가.
 " 미술작품 제작이란
자료의
구애를 받아서는 
 않는다. 단 뭣을
어떻게 그리느냐가
 중요한 소재다 "

서금랑 아나운서가 매니큐어색채를
 선택하고 색바렌 항아리와 접시등 자료의
구애
없이색의 조화와 구도의 조형등 남들이
하지못한 
훌륭한 작품을 장조해 냈습니다.
비록
눈 장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새로운 미술을 창작한다는
 마음으로
용기백배하여
좋은 작품
많이 남기십시오.....

특히 이정부 아나운서는

홍대미술학부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들었습니다.

 
나는 홍익대학이 신촌
산 언덕위에
 새워진
건물에서 공부를
시작할 때 다녔던
서양학과 출신
입니다
젊은 한때 그림에 미쳐 미술학교까지
나오곤
했으나
방송으로 운명이 박귀어진 다음부터는
작품을 못해 화(畵)학도라
불리우기엔 부끄러울
다름입니다.       나의 선배로 운의식,
박보석씩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고싶은 방송으로
 
50편생을
지내다 보니 못다했던
 미술작품생활에 아무 미련도 없읍니다.  
이정부 아나운서도
조각을 전공
했으면서도
방송게에 입문해News caster 와
 Sports Caster 
그리고
 MC
등으로 활약 하고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동영상으로
 소개된 음성도
잘 들었습니다 . 이정부
아나운서의 소개와 같이
 내가 남긴
동영상 작품
(자랑스런 한국안들)들을
춘하추동 방송.의
 아장춘 국장님의 도움으로 빛을 보고
있습니다.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수고들 많이 하세요.
 


 미국 LA에서 김영우 드림  




이정부 (남초) 아나운서님 글
 
 
재미 김영우 선배님께-
 
방송만 선배이신줄 알았는데 학교까지
제 홍대 선배님이시라는 말씀 듣고 한편으론 놀랍고,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홍대 출신이 KBS 미술실에
(오명헌, 이석우,윤범등)는 몇사람 있었으나, 아나운서는 듣지 못했습니다.
조국이 가난했을 때 외국 생활에서 겪어야 했던 슬픔과 환멸, 그로 인한

 고독을 방송활동을 통해 떨어 내시고 교민들을 위해 방송인의
 사명을 다하며 꿋꿋이 살아오신데 대해 존경의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더군다나 그러한 소중한 발자취를

후진에게 전해 주시기 위해 남다른 열정으로
기록 보존하시고, 오늘날 웬만큼 살만해졌으나 철학이
없는 저를 포함한 후배들에게 꼭 필요한 교훈으로, 자긍심으로
 선물해주시는 선배님의 애국심과 방송 사랑에 더욱   감사합니다.
저 역시 김환기선생님이나 이마동 선생님이 미대학장일때 서양화과로

입학, 3학년때 조각과로 전과해 이것 저것 섭렵은 했으나, 방송에 미쳐
 아직 미술에 깊이 미쳐보지 못한 아쉬움이 많기에 뒤늦게라도 고향에
 가보려고 몸부림을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각별하신 격려
말씀에 감사드리며, 부디 건강하신 가운데 하시는
일이 순조로우시길 빌겠습니다




박서림(극 작가) 선생님 글

  이정부 ANN와 서금랑 전ANN의 가정에
그런 시련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어느 가정이나
크고 작은 시련은 있게 마련이죠 시련에 절망하지 않고
예술로 승화시킨 굳은 의지를 칭송합니다. 앞날에
 무한한 행복이 깃 들기를 빕니다.
 
 
이정부 (남초) 아나운서님 답글 


아주 오래전 부터 존경해온
드라마 작가
박서림 선생님이 이곳
까지 오신 줄 몰랐습니다.
(죄송하게도
오늘에야 선생님 글을 발견했군요)
kbs
특히
남산 시절, 박서림작...xxx연출로 시작되는
드라마앞뒤
멘트를 넣으러 부지런히
드라마 스튜디오를 들락거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덕분에 그곳에서 오승룡씨
고은정씨등 훌륭하신
성우들의
실지 모습도 뵈었고 연기장면도 부럽고
놀라운
마음으로 지켜보았으며, 그분들과
자연히 거의   매일
방송국에서 인사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선생님이 좋은
드라마를
많이 써주신 덕분입니다.
이곳까지 오셔서
 따뜻한 격려의 글 남겨주신
데 대해 거듭 감사와
송구스러운
마음을 전해올립니다
 


박서림 선생님 답글 

이정부
선생 반갑습니다.

오란스럽지 않은 차분한 음성
지금 기억합니다. 부디 행복한
 나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박서림 배.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아, 김영우 아나운서님께서
홍대시절 김환기 화백께 사사하셨군요.
목포의 압해도에 새로지은 신안군청에 가면,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 있는 전시실이 있더군요.

지난 5월        그곳에 들리게 되어 그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답니다.


김영우(미국 LA) 선생님 글  
유경환 여사님께

김영우 입니다.   가끔 조언과
격려의 말씀을 추하추동방송 불록에서
접했습니다만 제가 인사를 늦게들여 죄송합니다.
일전에도 김환기 선생 이야기 중 김화백 전시장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하셨디고 하기에 무척 반가웠습니다.
우리나라 조형미술의 선구자 중의 한분인 김환기 회백은

학생들을 지도하는데에도 열정적이였숩나다.

그림을 열심히 그려야한다 라는 표현을
" 그림에 미쳐라, 그림에 미치지않은 사람은 지금부터

 이 화실을 나가 돈버는 일을 해라 그게 너의 장래를 위해 더
좋을것니다". 극히 극단적인 표현이었지만 그 한 마디가 학생둘에개
큰 용기른 안겨다 주었습니다. 나는 일을 할때마다 "미처라"라는 단어를
 기억합니다. 제가 미국에 온 얼마 후 김 선생님은 뉴욕에서 
사시다가 새상을 뜨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유 여사님의 오카리나 영주와

영상등 춘하추동 동영상에서 뵈었습니다.
저도 음악을 좋아하는편이라 유 여사님의 아름답운
 선율에 시 한수라고 을퍼 보구 싶은 충격을 느겼
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나날 보내세요.... 


LA에서 김영우 드림  
 
 
  

 재스민 화분 음식믈 쓰레기통
전체 그림사진과  부분 그림 사진을
확대해서함께 올린 사진이다. 서금랑
아나운서가스스로 쓴 사연이다.   
104면의   
화집속에는     여러
 이름이 붙은        매니큐어

그림들이 들어 있다.
  
 


 
1969년 대구KBS 아나운서 온 파래이드에서 노래하는
이정부(중앙) 선배에게 매료된 서금랑 아나운서 (맨끝)
 
 
 
  서금랑, 이정부 아나운서 얘기를 들려주는 이혜옥(위) 김규홍(아래) 아나운서
  
 
 
 
 이정부아나운서 조각,  1967년 국전작품 124, 126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한
이정부 아나운서가 2014년 4월 8일부터
7월 6일까지 열린 국립편대미술관 최만린 선생님
 초대전에 올린 글과 작품사진을 옮겼습니다.


  
 최만린 아(雅) 철조 - 1975년



이정부 아나운서님 글


서양화를 공부하다 뒤늦게 조각에 매료되어
 궤도수정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어느날, 昨醉未醒인 채
 조각과로 전과를 감행했던 때가 바로 1960년대 후반이군요...
당시의 한국 미술계는 50년대 후반부터 몰아닥친 이른바 '뜨거운 추상'
혹은 '추상 표현 주의의' 라고 불리는 물결이 성숙기를 지나 잦아들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추상은 침잠기를 거치면서 좀더 정제된 얼굴로 새로운 조형언어를 모색하기
 시작 한것입니다. 그러나 60년대 초반, 회화, 조각을  중심으로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러한 기류가 젊은 작가들의 심장과 뇌리에서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50년대 후반 부터 60년대에 걸친 선배들의 작업과
발언이 워낙 뜨거웠고 영향이 컸던 때문이라고 기억됩니다.
 
분명 그런 거센 물결의 진원지였으며 중심에
서 있었으면서도 관념적인 주장보다 묵묵히 자신만의
내면세계를 다져가고 있는 선배들이 몇분 계셨는데 그 가운데
 최만린 최기원 교수님 박종배 박석원 선배님 등예술혼이 담긴 작품으로
 말해주시던 몇분이 또렷이 기억납니다. 학교가 달라 가까이에서 가르침을
받지 못한 탓에 ...당시 최만린 교수께서 KBS 아나운서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죠. 파리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출품하는 패기와 역량 넘치는
 추상미슬의 전위 작가라는  부러운 사실 말고는...
 
68년 KBS 아나운서로 들어와보니 아나운서실 족보에
낯 익은 이름이 있어 혹시 동명이인이 아닌가 했는데 동명동인
이었습니다.그후 조각하는 사람들과 만나면 우리 아나운서 선배님이라고
 자랑하고, 아나운서들과 얘기할 땐 조각계의 선배님이라고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교수와 작가를 병행하기도 쉽지 않다는데, 교수,학장, 아나운서, 작가, 미술행정가 등
1인 4역에,  방송사에 남을 모뉴멘트를 제작해주시고 아나운서 클럽까지 맡아 주셨으니
후배들에겐 그 이상의 가르침이 없을 듯 합니다. 특별 전시회 축하드리며, 남산에서
함께 일했던 김소원 여사님과( 드라마 멘트 많이 넣었습니다) 양최, 양김 네분이
 이루신 예술 가족모두의 건강과 끝없는 발전을 기원합니다.
 
 
 
최만린 「이브 Eve」120 cm 40cm 브론즈(Bronze) 1964년 4회 파리 비엔날레


 
최기원 브론즈(Bronze)-1975년

 
박석원 초토 (焦土) 철조 66년 국전



"최만린崔滿麟,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보기  영문자 클릭

http://blog.daum.net/jc21th/17782111 




   서금랑 김규홍 이헤옥 수정.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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