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대한민국 최초 공개방송 스무고개 여성 패널 이경희박사

이장춘 2014. 5. 2. 12:57

 

 



 



대한민국 최초의 공개방송,

최고의 인기프로그램 "스무고개"가 1947년

 8월 KBS 라디오에서 선을 보였다. 6.25 전쟁중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랜세월 지속되어 1958년까지 이어졌고 포맷이 다소

변경된 퀴즈 올림픽, 재치문답으로 이어져 1970년대까지 최고

인기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 했다. 학식과 덕망을 겸비한

젊잖은 인사들이 이 프로그램에 나와서는 재치와 

유머로 즐거운 시간을 마련 해주었다.  

 

 

대한민국 최초 공개방송 스무고개  여성 패널 이경희박사

 

 

1945년 해방되어 대한민국 국민정서에 맞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스무고개, 천문만답,

거리의 화재, 희망음악 등 여러 프로그램이 편성되었어도

오랜세월 그 명맥을 이어간 프로그램은 스무고개였다. 그때의

담당프로듀서는 대한민국 방송기자 1호로 널리 알려진 문제안으로 

미국고문들이 가져온 미국식 프로그램을 검토하던 중 스무고개를 채택

해서 덕망있는 인사 사회부 차관이며 사회학박사인 김학묵(金學默), 전

아나운서 송진근(宋珍根), 이대교수 조명국(趙炳國), 작가 최요안의

 누님 최구(崔鳩)씨 등 네분을 주축으로 하고 가끔 교채 멤버를

채용하기도 했다. 사회는 윤용노(尹用老) 아나운서가

테이프를 끊고 나중에 홍양보(洪陽寶),

 서명석(徐明錫)으로 이어졌다.

  

 

 

 

 좁은 스튜디오에서 일제강점기에

경성회관이라고 불렸던 대한상공회의소로 옮겨

 많은 방청객을 모시고 흥미있고 활기차게 진행했지만 

6.25로 어려움을 겪었다. 부산 피난시절에도 스무고개는 있었

어도 제대로 된 공개방송은 아니었다. 부산피난시절 스무고개

모습을 본다. 비좁은 스튜디오에 노천명, 조남사와 또 한분의

패널박사가  앉아있는 가운데 장기범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53년 방송국이 부산에서 서울로

돌아오면서 정동 임시방송 스튜디오에서 이

프로그램을 최초로 창안한 문제안, 6.25전 KBS연출과장을

지낸 이덕근 등 저명인사가 되어 있었던 두분이 출연하고 여성

박사로는 이경희 등이 출연했다. 이때의 프로듀서는 문시형이고

이 프로그램의 최초 창안자 문제안의 동생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정동방송국의 스튜디오에서 하다가 1955년 5월 27일을 기해서

동화백화점으로 옮겼다. 그때 촬영한 사진이다. 

 

 

 

 

동화백화점은 우리나라 최초로 1924년

12월 9일 시험방송을 한 오복점 자리다. 1930년

그 오복점 자리에 미스코시(三越) 백화점을 세웠고 해방

되어 동화백화점으로 되었다가 삼성에서 인수하면서 신세계

백화점이 되었다. 이곳에서 1964년 12월 TBC 동양방송이 시작된

곳이다.  이 동화백화점에서 스무고개와 함께 노래자랑 공개방송이

실시되면서 그날이면 동화백화점에 설자라기 없었다. 이경희여사의

 말을 들으면 출연자도 출입이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 매웠다.

때로는 유리창이 부서지고 기물이 파괴 되었어도 방송국에서

하는 일이라 백화점측에서는 잘 이해 해 주었다고 했다.

 

 

 

 

1955년 5월 27일 동화백화점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에서 스무고개와 노래자랑 첫방송을

하고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위 사진 출연자는 문제안, 이덕근

이경희, 김복경, 노경래 님이다.  아래 사진은 스무고개에 출연한

문제안, 이덕근, 이경희 박사와 사회 임택근아나운서, 문시형 프로듀서가

 함께 했고 노래자랑 사회를 맡은 장기범 강영숙, 아나운서 프로그램을

맡은 김창구,  기술을 맡은 한기선, 김성열, 편성책임 노정팔 

경음악단 지휘 손석우님등이다. 밑부분에 내역이 있다.

 

 

 

 

스무고개 방송이 나가는 날이면 사람들은

미리부터 라디오 앞에 모여들었다. 이 프로그램 출연자

분들은 원래부터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사들이지만 또 이

스무고개에 출연하면 그로부터 세상사람들은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한국남(韓國男), 엄익채, 안의섭(安義燮), 이경희(李京姬), 문제안

(文濟安), 강소천, 신태민(申泰旼), 최요안(崔要安), 김형근(작가 김석야의

본명-金亨根), 윤길숙(尹吉淑) 그스무고개로부터 재치문답에 이르기까지

 패널 박사들이다. 시대를 사시던 분들 지금도 그 이름을  기억한다.

사회자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아나운서, 장기범, 임택근, 전

영우, 박종세, 최세훈 등이 담당했고 이 프로그램과

더불어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1953년 김학묵, 문제안, 이덕근이 출연하던

 6.25 후의 초창기,  스무고개에 출연할 마땅한 여성박사를

찾을 수가 없어 어려움을 겪던 프로듀서 문시형이 학생의 날, 계기성

프로그램에 출연한 학생 중에서 재치와 아름다운 음성을 겸비한 서울대학교

이경희를 발견하고는 그 학생을 아예 고정 패널 박사자리에 않히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20세의 젊은 학생이 박사석에 앉아서 저명 인사들과 

겨룰 수 있을 것인가. 의구심이 있었자만 그녀는 날이 갈수록

척척박사가 되고 방청석에서는 물론 청취자들

에게도 큰 인기를 모아갔다. 

 

 

 

 

 

비밀실에서 아나운서가 문제를 제시하면

방청석에서나 청취자들은 알게되지만 그 문제 답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박사들은 땀을 빼며 문제의 답을 추적 해

나간다.  위 사진이 비밀실 장면을 담은 것이다. 임택근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는 프로그램에서 윤영중아나운거가  답을 말해주고 있는 장면이다.

출연박사들이 한고개, 한고개를 넘으면서 스무고개가 넘기전 까지 비밀실에서 제시된

 문제에 대한 답을 맞추어 나가는 것이다. 아슬 아슬한 순간들을 넘기면서 재미있게 엮어진다.

막히는가 하면 풀리고 풀리는가 하면 막히면서  한고개  한 고개 넘다가 결정적인  아슬 아슬한

 순간에 막혔다. 하면 이경희에 이르러 어려운 문제가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 담당 프로듀서 문시형이

때로는 이경희에게만 문제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냐 하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는 얘기를 털어

놓기도 했다. 스무고개 문제는 청취자들에게도 출제가 개방되어 있었고 스무고개 박사들이

그 문제를 풀지 못 하는 경우에는 문제 출제자에게 상금을 주기도 해서 상금을

 탈 수 있느냐? 없느냐? 또 누가 상금을 타느냐?도 관심거리가 되었다.

이경희 때문에 상금을 놓혔다면서 무릅을 치곤했다. 

 

 

 

 

이래 저래 젊은 이경희에게 관심이 모아지고

인기가 올라갔다. 고정패널 박사가 바뀌어도 그는 오랜

세월 박사석을 지키면서 1953년 스무고개로부터 시작되어 1959년

 퀴즈 올림픽, 1961년 재치문담으로 이어지면서 종종 중간에 사정에

 따라 쉬는 경우도 있었지만 20년가까운 세월을 이어온것이다. 라디오

 아니라 텔레비젼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우리나라

최초 TV방송 HLKZ의 "나는 누구 일까요." 1962년부터 정규

방송을 시작한 KBS의 "나는 누구 일까요." 에도

출연해서 번득이는 재치를 보여주었다.

 

 

 

 

1977년 방송 50년이 되던날 스무고개를 재현

하는 특집방송을 했다. 1953년부터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학묵, 문제안, 최요안 그리고 홍일점 여성박사 이경희가 출연해서

그때의 사회자 장기범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았다.  오늘 녹음물은 이 특집방송

에서 땄고 사진은 6.25 피난시절 부산방송국으로 부터 모을 수 있는 자료를 다 모아

동영상으로 제작하고 그 일부를 글과 함께 올렸다. 스무고개가 방송된지 오래된 일이어서

 그 프로그램에 출연 하셨 분들은 대부분 떠나셨어도 젊은 학생시절에 출연했던 그때의

 인기 패널 박사 이경희 여사는 올해 83세로 젊은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과는 유치원 동창생으로 동갑이다. '백남준이야기'

(2000), '백남준 나의 유치원 친구' (2011), 두권의 책도 쓰셨고, "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백기사)" 공동대표, "백남준 문화재단" 이사로 활약하고

 계신다. 수필가로 활동하고 계시는 이경희 여사가 오래전에 쓴 수필  

"현이의 연극"은 30년간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올라있다.  

 

 

 

 

방우회가 주최하는 2014년 4월 26일

첫 방송터 기념식에 나오셔서 옛 스무고개 얘기를

 들려주시고 필자와 따로 만나 여러 얘기도 나누었다.

스무고개에 관한 얘기는 1995년에 출판된 노정팔선생님의

 "한국방송과 50" 자세히 쓰여 있어서 그 글을 어래 옮기고

더 자세한 얘기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노정팔 선생님의 한국방송과 50년 글

 

 

스무고개는 한 고개 한 고개 넘으면서

아슬아슬하게 접근하는 스릴과 사회자 출연자가

하나되어 재치와 유머로 웃음을 선사하는 데서 재미를 느낀다.

때로는 엉뚱한 미로에 들어가 천방지축 이리저리 해맬때는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기상천외로 단계를 뛰어넘어 척척 맞출때는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이런것이 스무고개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스무고개를 처음 시작한것은 

우리나라에- 미국식 프로그램이 도입되던 1947년 8월이었다. 미국 고문들이

 미국 디스크를 주면서 이런종류의 방송을 해보라고 권고했다. 처음에는

좀 망설였다. 이런 퀴즈프로그램이 우리나라 풍토에 맞을것인가.

젊짆은 교수들이나 박사들이 자세를 흐트리고 재치있개

호응 해 줄것이냐?가 염려됐지만 우선

시작을 해 보기로 했다.

 

먼저 프로그램 제목을 정해야 하는데

미국처럼 '스무가지 질문'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 의미가 포함된 의미로 하자고 했다. '스무대문' 이란 의견이

나왔지만 그것은 일본식이니 '스무고개'로 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결국

한 고개, 한 고개 넘으면서 이 프로그램의 묘미를 살리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출연진으로는 사회부차관이며 사회학박사인 김학묵(金學默), 전 아나운서

송진근(宋珍根), 이대교수 조명국(趙炳國), 작가 최요안의 누님 최구(崔鳩)씨 등

네문을 주축으로 하고 가끔 교채멤버를 채용하기도 했다. 사회는

윤용노(尹用老) 아나운서가 테이프를 끊고 나중에 홍양보

(洪陽寶), 서명석(徐明錫)으로 이어졌다.

 

정동 마루턱의 제1스튜디오에 20-30명의

 방청객을 모아놓고 공개방송으로 진행했다. 시작하고보니

 처음 기획단계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장소가 좁아

 많은 방청객을 부 를 수 없으니 박수소리가 약하고 공개방송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1950년 5월에는 소공동에 있는 대한상공회의소

 강당을 빌려쓰기로 했다. 여기는 일제시대 조선일보가 라디오 실험방송을

시작하던 유서 깊은 곳이라 방송과 인연이 있다. 이렇게 스무고개가

바깥나들이를 시도하자 청취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모여들어

대성황을 이루어 기마대까지 동원해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인기를 누리던 스무고개는

 6.25동란으로 자취를 감추고 전시프로그램에

가려 질 수밖에 없었다. 1953년 서울에 환도하여 자리가

잡히고 시민들이 안정을 도로 찾자 옛날의 명성을 다시 찾기위해

새로운 단장을 하고 부활하였다. 스무고개 박사 에는 김학묵(金學黙), 문제안

(文濟安), 이덕근(李德根), 이경희(李京姬)가 출연했고, 그후 재치문답으로

 이어지면서 최요안(崔要安), 한국남(韓國男), 엄익채, 안의섭(安義燮),

신태민(申泰旼),김형근(金亨根), 그리고 여류박사에는 이경희,

윤길숙씨 같은 분들이 오래 인기를누렸다.

 

사회는 오래도록 장기범 아나운서가 담당했다.

젊잖은 음성,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의 고저를 조절 해 가면서 때로는 박사들을 미궁에

몰아넣기도 하고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주기도 하면서 능수능란하게

이끌어가는 모습은 가히 일품이었다. 출연진에도 다재 다능한 인사들이

많았다. 한국남박사는 산부인과 의사로 얼굴에 웃음하나 띄지않고 능청맞게

우스운 소리를 해서 인기를 끌었고 엄익채박사는 다 벗어진 머리를 긁적거리며

사뭇 심각한 얼굴을 하다가도 영감이 갑자기 떠오르는지 눈이 빛날때면 처척

맞춘다. 안의섭화백은 만화를 그리듯 유머스러웠고 신태민 박사는

매우 온건하고 착실한 외형이지만 기자적 샌스와

정확한 추리로 문제를 파고들었다.

 

이경희 박사는 머리회전이 빠르고

대담하게 핵심을 찔러 여류박사로 인기를 독점했다.

김형근은 김석야의 본명으로 편성계장이 된 후로는 박사자리에서

내려않고 그밖의 분들은 교채멤버로 가끔 얼굴을 비쳤다. 문제도 아기자기

하고 재미있었다. 담당 PD 문시형은 출제에 매우 신경을 썼다. '단벌 신사복에 튄

흙탕물', '주머니 속에 들어간 쌈짓돈', '입에 붙은 표주박', 등 역사, 고전, 속담 같은데서

인용하기도 하고 평소 잘 쓰이는 말 같은데서 따오기도 하는데 진행은 그냥 넘기지 않고 세태반영

이나 사회 고발을 하면서 유익하게 문제를 이끌어 나갔다. 출연자와 PD문시형, 사회자 장기범,

 세 기둥의 손발이 척척 맞아서 비로소 "스무고개"라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탄생하는 것이었다.

장기범 아나운서는 스무고개에서 얻은 관록으로 "재치문담", "에티켓 선생"등 많은 프로그램을

담당하면서 프로그램을 잘 소화해냈다. 그리하여 전국 청취자들로부터 팬레터는

물론 데이트신청도 쇄도했다. 텔레비젼이 없던 라디오시절 KBS가 혼자

 독점 하다시피 하던 때 장기범, 임택근 아나운서의 인기는

절정에 달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1959년 스무고개특집방송 모습이다.

남산 연주소에서 진행된 이 특집방송에는 그동안

출연했던 박사들가운데 남성팀 네분과 여성팀 네분이 나와

 깨임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때 나온 남자박사로는

안의섭, 강성득, 신태민, 서임수이고 여자박사로는 이경희,

권찬숙, 강신재, 정충량님이 출연했으며 사회는

 강익수 아나운서가 맡았다.  

 

 

  

   

 

 

워낙 인기가 높던 스무고개는 노래자랑과 함께

방송국을 떠나 군부대 등에서 진행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위는 1956년 대구에 있는 공군부대 막사 안에서 스무고개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안의섭, 한국남, 이경희, 신태민, 김석야 박사 등 박사들이 출연한

가운데 임택근 아나운서 진행으로 제작되었다. 담당프로듀서는 문시형이었다.

  군 막사 지금 보기에는 너무 허술 할지라도 이 안에서 즐겁고 화기 애애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또 방송전파를 탈때는 모두가귀 기울이며 재미와 즐거움에 마음을 모았다.

우리들의 표상이기도 했다. 아래는 타고갔던 비행기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스무고개 팀과 노래자랑 팀 그리고 군 장교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이때의 노래자랑에서 타이피스트 김정애양이 KBS전속가수로

 발탁되어 훌륭한 가수가 되었다. 이런 얘기들은

 "춘하추동방송" 다른 곳에 쓰여있다.

 

 

 

 

위 사진 : 3.김인숙, 4.이경희, 5.송민도, 8.김석야,

12.김창구, 13.유해룡, 14.노명석, 17.손석우, 20.김성열,

21.송민영, 22. 5공군단장, 23.임택근, 24.송영수, 26.문시형,

27.명국환, 28.장기범, 30.이상만님이고 아래사진은 여성

출연자들과 함께한  5공군단장. 장금자 아나운서(왼쪽),

이경희박사 (왼쪽 두번째) 김인숙아나운서 (세번째),

송민도(오른쪽 끝)님의 모습이다.

 

 

 

 

위, 아래 사진은 백령도 해병대 군부대에서

실시한 스무고개의 후속으로 편성된 퀴즈 올림픽

 프로그램 녹음장면이다.  1961년 4월 14일이다. 왼쪽

부터 안의섭, 문제안, 윤길숙, 이경희, 그리고 해병대

장교 두분이고 최계환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

되었다. 오른쪽에  박종민 PD가 보인다. .

 

 

  

 

 

스무고개, 노래자랑 팀이 비행기를 타고

백령도로 향한다. 비행기 안에는 방송팀도 타고

 쌀 가마니 등 군부대와 백령도 주민들에게 전달할

위문품도 실려있다. 위사진 왼쪽부터 문시형, 이경희

윤길숙, 송영수, 아래는 왼쪽 두번째 부터 송민도,

송영수, 문시형, 이경희, 윤길숙님.

 

 

   

 

쌀가마니가 실린 비행기안에 왼쪽부터 임택근,

김성열, 문시형님등이 함께게 타고 있는 모습,

 

 

 

백령도 공개방송을 마치고 군(軍), 막사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1,  2. 최계환, 3.박종민,  4.김용국,

  5. 김성열, 6.송영수, 7. 조갑준(조백봉),  9.이기우, 12.손석우,

13. 김영호, 14.임택근,  16. 문제안, 17,손대철, 18.윤길숙, 19. 문시형,

20. 이경희, 21.송민도, 22.나화랑, 23.도미, 26.최종호(박종호)  아래는

포항 해군부대에서 공개방송을 마치고 촬영한 기념사진입니다. 

아래는 포항 해군부대에서 공개방송을 마치고

촬영한 기념사진립니다. 

  

 

 

 

 

 

1962년 KBS  생방송으로 TV특집방송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계시는 분은 유한철님이고

앉아계시는 분 첫번째 이경희, 두번째 천경자, 

세번째 이진섭, 네번재 박용구님이다.

 

 

 

 

위는 1964년 4월 13일 육군사관학교

재치문답 녹음을 마치고 이경희, 복혜숙, 조경희

박사가 함께 촬영한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1961년 10월

14일 박사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으로 앞줄 왼쪽부터 문제안,

최계환, 장기범, 강소천, 박종민님 뒷줄 한국남, 정희경,

 이경희, 윤길숙, 정연희, 안의섭님이다.

 

 

 

 

유경환 (유카리나)여사님 글

 

 

이분들 중에 건강하셔서 현재에도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니 감사한

입니다. 무려 50여년이 지나간 일인데, 방송 역사의

 일면을 증언해 주실 수 있으니, 그분들 자체가 역사이시군요.

이경희 여사님은 지금도 건강하시고 아름다운 모습이셔서 그저

 시내에서 지나쳐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옹색하고 어려웠던

 부산 피난시절의 '스무고개' 장면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동영상 다시 보기

 

   

 

 

1.강영숙, 2.이경희, 3. 4, 5. 6. 7.한기선, 8.

9.김성열, 10.손석우, 11.박능상, 12.문제안, 13.노정팔, 

14.이덕근, 15. 16.임택근, 17,유해룡 18. 19.문시형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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