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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신궁, 이토오신사비, 황국신민 서사비

이장춘 2013. 3. 31. 19:54

 

 

 

1918년 남산의 허리를 자르고

서울을 지키기 위해 쌓은 성을 헐어

384계단의 돌계단을 쌓고 거기에 조선신궁을

지었다. 남대문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남산의

성은 이때 헐어서 하 광장, 중 광장, 조선신궁에

 이르는 계단과 신궁을 짓는데 썼다.

 

 

일제강점기 조선신궁 이토오신사비, 황국신민 서사비

 

 

 

 

남대문에는 커다란 안내 비를 세웠다.

조선 사람들의 사상을 바꾸어 천황의 신민으로

만들려는 책략으로 이곳을 참배하게 했다. 이밖에도 남산

에는 경성신사, 노기신사를 세웠고 지방에도 전국 곳곳에 신사를

세워 조선 사람들로 하여금 신사참배에 나서도록 강요했다. 사람들은

인솔자 따라 땀을 뻘뻘 흘리며, 또 추위에 떨며 남대문이나 서울역

등지에서 384계단이나 되는 그곳에 올라 마음에 없는

 주문을 외우며 참배를 했다.

 

신궁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면 걸어가던

자동차를 타고가든, 전차를 타고 신궁 앞을 지나갈 때는

 그곳을 향해 고개를 숙여야 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매달 1일을 소위 애국일이라고 해서 신사참배는 물론 궁성요배,

히노마루 (일본기) 게양, 근로봉사 등을 월례행사로 강요당했다. 

또 일제 강점기에는 서사 낭송이라는 것도 해야 했다. 황국신민

 서사라는 것을 만들어 외우게 하고 행사 때나 기회 될 때마다

 낭송하게 하는 등 우리국민을 황국신민으로 만들어

가는데 혈안이 되었다. 충청남도 목천에 있는

독립기념관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홍성군 결성읍에 세워졌던 황국신민

서사비를 해방되어 땅에 피 묻어버렸던 것을

이곳에 옮겨 비치 해 놓은 것이다. 그 내역이 적혀있다.

독립기념관에는 또 이토오 히로부미 신사탑 (伊藤博文 神社塔)

이라는것도 있다. 조선을 식민자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가

안중근의 총에 맞아 쓰러진 이토오히로부미 (이등박문- 伊藤博文)가

일본에서 가져다가 후암동 사택에 새워놓고 아침저녁으로 그 앞에서

 조선을 그 수중에 넣게 해 달라고 빌었다. 는 그 비다.

 

 

 

 

이등박문은 쓸어졌어도 조선은

 1910년 8월 29일을 기해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들은 기쁨에 넘쳐 전차는 꽃차로 단장하고

길거리에 나와 춤을 추었다. 조선을 식민지화 한 그 해에

발행된 영문판 홍보책자에서 발췌한 사진이다. 오랜세월

KBS 홍보를 담당했던 고 정규봉님의 자료에서 본

사진이다. 그리고 남산에 기념탑을 세웠다.

 

 

 

 

그들의 기쁨은 우리민족의 슬픔이요

그들의 행복은 우리민족의 불행이었다. 그로부터

 일본은 35년간 식민지 조선 땅에서 갖은 못된 짓을 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의롭지 못한 일본은 물러가고 조선 땅은 조선인이

 자랑스러운 나라를 이루었다. 조선 신궁을 향해서 올라가던 하 광장,

중 광장은 애국자 김구 백범광장이 조성되고 성재 이시영선생님의

동상이 들어섰다. 조선신궁이 있던 그 자리는 이등박문을

 쓰러뜨린 애국자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이 서고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광복을 맞던 그날 시인이면서 방송국직원으로

근무하던 모윤숙님은 신사참배를 해야 한다고 독려하던

서무과장을 향해서 이제 당신들 시대가 끝났음을 얘기했다.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는 우리 정신문화를 자기들의 정서에, 사상에 맞도록

바꾸러는 것이었고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피곤하게 하는 것이었다.

 학생시절에 먼 길의 신사참배를 강요당했던 방우회 박경환님은

남산의 조선신궁이 있는 곳까지 가서 또 384계단을 오르면

마음도 괴롭고 몸도 피곤했던 일들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하셨다.

 

 

 

 

필자가 남산방송시절 오랫동안 남산을

오르내렸어도 방송국 부근에 있었던 조선신궁이나

경성신사, 노기신사 등이 남산 어디에 있었는지를 잘 몰랐다.

필자도 그렇지만 지금도 이곳을 지나는 분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의

 분들은 그런 것을 잘 모른다. 제가 방우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선배님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그 시대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 현장을 가고 자료를

조사하면서 그런 일들을 알았다. 지난날의 슬픈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바탕위에 오늘이 있고 내일을 살아가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지난 역사의 현장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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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역사탐방 (1) 숭례문(남대문)에서 남산성곽 따라, 사적 제 10호

http://blog.daum.net/jc21th/17781821

 

 

 

 

 

 

 

 

 

 

  

  

  

 

 

 

 

노기신사는 1904년 노, 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노기장군을 영웅화 하면서 세운산사로  경성신사 경내에

 있었다. 경성신사는 조선총독부와 맞닿아 있었고 지금으로 보면

옛 남산 라디오방송국과 접해있었다. 지금 리라초등학교를 포함한 

부근 학교와 주변 숲지대가 거기에 해당 할 것이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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