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난영은 잘 알아도 이난영을 길러낸 오빠 이봉룡은 잘 모르는 경우가 있고, 김시스터즈는 잘 알아도 그 그룹 막내 민자의 아버지 이봉룡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1914년에 목포에서 태어난 이봉룡은 1933년 토월회가 태양극장으로 이름을 바꾸어 목포공연에 나섰을때 박승희 단장을 잦아 이난영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그것이 인연이 되어 뒷날까지 이름을 떨친 명 가수가 되었고 김씨스터즈와 김보이스를 길러내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자신은 200여 곡의 명 가요를 만들어 내면서 알아주는 작곡가로 성장했다. 이난영이 불러 히트한 목포는 항구다, 장세정의 연락선은 떠난다. 박경원의 나폴리연가, 고운봉의 선창, 백년설의 고향설, 그가 작곡한 노래는 오랜기간 사랑을 받으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작곡가 이봉룡과 남인수의 노래 낙화유수 조명암작사 박남포개사
낙화유수 落花流水, 김다인으로 발표된 그시대 최고의 반열에 있던 문학가이자 작사가 조명암의 가사에 이봉룡이 곡을 붙혀 최고의 가수 남인수가 부른 낙화유수 1942년에 발표된 노래다. 그 낙화유수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 노래의 원작가 조명암이 월북해서 금지곡이 되자 박남포가 곡을 바꾸어 불렀다. 박남포는 박창오, 진방남, 반야월의 또다른 이름이다. 1962년 남인수가 세상을 떴을 때 낙화유수 처럼 세상을 떴다며 그 낙화유수 노래와 남인수의 떠남을 연계시키기도 했다.
1. 이 낙화유수를 강남달과 혼동하시는 분들이 있다. 1927년 상영된 영화 낙화유수 에서 부른 주제곡을 "강남달" 이라고 한다. 강남달이 그 낙화유수의 주제곡으로 불렸기 때문에 혼동이 일어난듯 하다. 본 블로그 “춘하추동방송”에도 이정숙이 부른 강남달과 신 카나리아가 부른 강남달이 올라있다.
2. 일제강점기 조명암과 쌍벽을 이룬 또 한분의 작사가로 박영호가 있다. 수 많은 노래가 박영호에 의해서 쓰였고 조명암이 나오기전 박영호는 최고의 작사가로 통했다. 이 박영호가 사용한 김다인이라는 필명은 조명암도 함께 썼다. 그래서 종종 조명암 작사노래와 박영호 노래가 혼동되는 수가 있다. 이 낙화유수는 조명암의 작품이다.
3. 조명암이 월북작가여서 오랜동안 그 주옥같은 노래가 금지곡이 되었다. 그것을 안타갑게 생각한 작사가들이 그 노래를 자기 이름으로 다시 불리게 했거나 노래 가사를 일부 바꾸어 부르는 경우가 생겼다. 조명암의 노래가 추미림이나 박남포 등으로 되어있는 노래들이 많다. 추미림이나 박남포는 당대 최고 작사가의 한사람인 박창오, 진방남, 반야월이다. 조명암의 노래가 금지곡으로 되어있을때 그 노래를 관리 해준 샘이다. 박창오는 2012년 3월 26일 세상을 뜨셨다. 조명암 노래는 이분 외에 다른 분 이름으로 불리다가 조먕암으로 바로 잡히는 경우도 많음을 말해 둔다. 조명암에 관해서 쓴 글을 연결한다,
이봉룡, 조명암, 이난영 노래 더 보기
작사가 조명암과 그의 노래 모음 http://blog.daum.net/jc21th/17781638
이난영 김해송가족과 가요 노래 남행열차 http://blog.daum.net/jc21th/17781944
진달래 시첩 조명암작사 이봉룡작곡 이난영 노래 http://blog.daum.net/jc21th/17780293
이난영,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목포 시립교향악단 동영상 http://blog.daum.net/jc21th/17781371
1949년 KBS전속가수 고대원과 판문점의 달밤 작곡 이봉룡 http://blog.daum.net/jc21th/17781075
장세정 1936년 평양방송국 개국무대, 노래 연락선은 떠난다. 데뷔곡 조명암작사, 김해송작곡 http://blog.daum.net/jc21th/17781504
inf247661님(지만원 시스템 클럽)이 2013년 10월 25일 낙화유수에 관한 댓글을 남기셨기에 본문에 옮겼씁니다. inf24766을 클릭 하시면 지만원 시스템으로 바로 갑니다.
落花 流水! 이 노래 시작 부분 ~
첫 2 소절까지! 듣는 이들의 심경을 한없이 맑은 정서와 순수함으로 유도케하는 마력이 있죠. '"이 강산 낙화유슈 흐르는 봄에" ,,. '남 인수'생가를'남 인수' 가옥'으로 명칭을 바꾸었다는 기사가 오늘 2013. 10.25(금) 조선일보에 보도,,. 작사자 '조 명암'이가 빨갱이로 자진 월북한 것은 큰 죄악인데,,./ '조 명암, 이 가실, 김 운탄'등의 筆名 - - - 本名 '조 령출(趙 靈出)!' = = = = = '金 茶人(김 다인)'은 '처녀림', '추미림'등의 필명을 지닌 본명 '박 영호(박 영호)'로 압니다만,,. ^*^ 둘 다 일본 '와세다{早稻田(조도전)'대학 졸업자. 둘 다 준 빨갱이 KAPF 출신. 둘 다 해방 후 자진 월북!,,. 지금 북괴 실정을 보면서 '착각은 자유가 아니라 범죄!'로 되어질 수도 있음을 敎訓으로 삼아야,,. 고맙습니다.
이 音源 '낙화 유수'를 '휴게실(2013.1025)'에 게재합니다! ,,. 모든 진실을 좀 더 알고 감상한다면 음미하는 바도 한결 더 깊겠으리라 믿! ,,.
餘 不備 禮, 悤悤.
낙화유수
조명암 작사 박남포 개사 이봉룡 작곡 남인수 노래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젊은 꿈을 엮은 맹서 야 세월은 흘러가고 청춘도 가고 한많은 인생살이 꿈 같이 갔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잔디 얽어 지은 맹세야 세월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
이 강산 흘러가는 흰 구름 속에 종달새 울어 울어 춘삼월이 냐 봄버들 하늘하늘 춤을 추노니 꽃다운 이강산에 봄맞이 가세 이 강산 흘러가는 흰 구름 속에 종달새 울어 울어 춘삼월 이냐 홍도화 물에 어린 봄 나루에서 행복의 물새 우는 포구로 가자
사랑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 오면은 가는 것이 풍속이더냐 영춘화 야들야들 곱게 피건만 시들은 내청춘은 언제 또 피나 사랑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 보내고 가는 것이 풍속이더냐 영춘화 야들야들 피는 들창에 이 강산 봄소식을 편지로 쓰자
1939년 OK악극단시절의 연예인들입니다. 이철단장님과 이봉룡, 남인수를 비롯해서 손목인, 이난영, 서봉희, 이화자, 김정구등 그 시절의 이름있던 연예인들이 함께 했습니다.
가요무대 1,000회 특집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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