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방송 드라마 등에서 사용되는 효과음은 디지털 녹음기 등의 활용과 저장장치의 발달로 편리하게 채음되고 저장되어 필요할 때 적절히 활용된다. 옛날 녹음기가 없을 때나 또 원시적인 녹음기나 저장장치가 사용되던 되던 방송 초기에는 어떠했을까. 방송사 연구가 고 유병은 선생님이 써서 KBS가 1998년에 발행한 “방송야사”에서 글을 인용한다.
방송초기 효과음과 채음작업 彩音作業
젊은 사람은 희망에 살고 늙은 사람은 추억에 산다고 하니 후에 방송인에게 암흑기의 방송 한 토막을 소개코자 한다. 반세기전에 저자가 몸소 채험안 일이다. 저자가 “의음”이라는 특수용어를 처음 들어 본 것은 JODK 경성방송국에 입사하여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때 한국의 마르코니라고 불리던 한덕봉선배가 스튜디오장비를 설명하면서 들려준 말이다. 1933년 방송드라마 전성기의 일간신문이 보도한 의음장치에 관한 기사도 흔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의음장치라는 말을 우리사전에서 찾아보면 “라디오 드라마나 연극 등에서 각종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음향효과 도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녹음기라는 괴물이 1939년 방송현업에 도입되었는데 테이프 녹음기와 같이 편리하고 성능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의음과 채음에 관한 업무는 녹음중계반의 소관업무이며 1927년 개국 때부터 스튜디오를 관리 해 오던 한덕봉 부과장이 이남용과 같이 전담했다. 연극을 담당한 최승일, 이서구 등과 공동으로 연구하고 개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하니 그들이 소리의 마술사 즉 효과음의 개척자인 샘이다. 한덕봉과 이남용의 고증을 들어보면 드라마 중에 사람이 웅성거리는 군중소리를 비롯한 박수소리, 걸어 다니는 소리 등등이 필요 할 때는 방송국 직원을 동원하여 스튜디오에 대기시켜 연기자들과 같이 실재로 소리를 내면서 실감나는 효과음을 냈다고 하니 지금 생각하면 원시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녹음기로 필요한 소리를 채음해서 효과음으로 쓰기 시작하여 일대 혁명이 일어났 으나 원시적인 녹음기로 채음하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일로 강철선(wire)에 녹음하는 “와이어 녹음기”는 철사가 자주 끊어지는 사고로 원만한 재생이 어려웠다. “원반(disk)"는 78회전으로 원판 한 장에 겨우 2분 30초밖에 녹음되지 않아 15분 강연을 녹음하려면 무려 6장의 녹음판이 소요되었다. 국내생산이 불가능한 비싼 디스크의 가격과 재생산의 난이도가 커 방송도중에 말이 많이 끊어지거나 같은 말이 두 번 방송되는 일이 번번이 일어나 와이어나 디스크 두 녹음기는 모두 모두 유명무실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해도 지자치지 않을 것이다.
원판 녹음기 한 대의 무개은 약 40Kg이나 되는 중량급으로 채음작업을 나갈 때에는 기운 센 장정 두 사람이 들고 다녔으며 먼 거리는 지게꾼을 불러 지개에 지고 다녔다. 한번은 저자가 육당 최남선의 녹음을 담당한 일이 있었는데 옆에서 구경하던 복혜숙이 못 쓰는 판에다 내 목소리를 녹음 해 달라고 부탁하기에 녹음해서 즉석에서 들려주었더니 “이게 내 목소리가 아니다” 고 펄쩍 뛰던 기억이 난다. 이는 녹음기의 음향특성이 좋지 않았던 시절을 대변 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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