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전후, 라디오께임, 재치문답을 즐겨 들으시던 분들은 최세훈 아나운서를 기억하십니다. 최세훈 아나운서는 1954년 아나운서 공개 채용 때 들어와 방송을 했습니다. 어느 일자리보다도 아나운서의 인기가 높던 시절이라 많은 경쟁자가 있었지만 타고난 재능과 목소리 덕분에 경쟁의 문을 뚫고 아나운서가 되었습니다. 감사원장을 지내신 법조계의 원로 한승헌님은 지금도 그때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했다가 최세훈 아나운서에게 고배를 마셔 인생의 진로가 바뀌었다는 얘기를 기회 있을 때마다 합니다. 필기시험에서는 앞섰으나 목소리가 허스키여서 맑은 목소리를 지닌 최세훈 아나운서에게 고배를 마셨다는 얘기입니다. 이토록 최세훈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재능은 타고났습니다.
최세훈 아나운서
이리방송국에서 잠시 아나운서 생활을 했던 최세훈 아나운서는 중앙방송국으로 진출하면서 뉴스나 공개방송에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특히 공개방송, 재치문답과 라디오 께임은 최세훈 아나운서에게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이었습 니다. 지금 듣고 계시는 육성은 1962년 최고의 인기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던 재치문답을 진행하는 최세훈 아나운서의 목소리입니다. 오랜 기간 방송을 하셨던 노정팔 선생님은 자서전 한국방송과 50년 자서전에서 쓰기를 “라디오 께임” 하면 최세훈씨를 연상하게 된다. 프로그램과 아나운서는 서로 밀착하여 함께 웃고 함께 고민하여야 그 프로그램이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라디오 께임은 최세훈과 동반자 관계에 있었다. 라고 썼습니다. 주변상황에 적절히 대처하면서 분위기를 잘 이끌어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재치와 유머 등으로 거침 없이 잘 진행 해 나갔습니다.
최세훈 아나운서는 현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자료를 모으고 글을 쓰는데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침착하고 중후한 인품에 남다른 문장력을 지녀 아나운서실에서 글을 써야 할 때는 스스로 맡아서 쓰기도 하고 본인이 진행하는 공개방송 원고를 비롯해서 희망의 속삭임 등의 방송 원고를 쓰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종합적인 방송사가 처음 나온 것은 1977년 방송 50주년을 맞이해서 이지만 그보다 훨씬 전 1967년에 "앵무새의 증언"이라는 자서전 초판이 나왔을 때, 그때까지 수집한 얘기를 그 책에 수록해서 후세에 전하기도 했습니다. 앵무새의 증언 증보판은 1982년에 발행되었습니다.
최세훈 아나운서가 KBS에서 재능을 한참 발휘하면서 인기를 모아가던 1964년, KBS아나운서 실장이던 임택근 아나운서가 MBC방송부장으로 옮길 무렵 최세훈 아나운서도 MBC로 옮겨 최계환 아나운서에 이어 두 번째의 아나운서실장이 되었습니다. KBS에서 아나운서실장과 선임 아나운서로 한 사무실서 일하다가 두 분 동시에 MBC의 방송얼굴이 되었습니다.
임택근 아나운서가 상무, 전무로 MBC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동안 아나운서 실장을 하던 최세훈 아나운서는 1977년 전주 MBC상무, 1981년 대전 MBC상무, 1983년 마산 MBC이사를 지네다가 1984년 2월 11일 51세의 젊은 연세로 세상을 뜨셨습니다. 두 분은 KBS와 MBC에서 오랜 기간 함께 일하면서 깊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사는 최세훈 아나운서 딸 최철미님은 아버지가 세상을 뜨시던 때 먼 길까지 오셔서 조문해 주신 일에 대해서 잊지 않고 늘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고 했습니다.
김정수( Robert Kim) 미주방송인협회 회장님 글
김정수 회장님이 MBC재직시절 최세훈 아나운서 실장님과 관련된 옛 추억담을 보내오셨군요. 추억은 아름답습니다. 이 아름다운 추억을 올리고 또 기회되면 별도로 글 한편을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안녕 하세요? 미주 방송인협회장 김 정수입니다. 인터넷 때문에 이렇게 연락이 가능 하군요. 참으로 좋은 세상이구나 싶습니다. 오래전 최 세훈실장님과 MBC에서 함께 일 했을 때 추억어린 추억 담입니다. 아버님 최실장님의 말씀이 생각 납니다. “우리 mbc 방송사에는 대머리 직원들이 비교적 많아 모두들 대 머리에 대한 콤프 렉스 가 있었지요? 나역시 실장님과 같은 생각을 했는데, 어느날 최실장님의 부인과 집에서 이런 저런, 남성들의 고민꺼리인 대머리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답 니다. 당시 최 실장님의 사모님(부인)께서 해외여행을 다녀 오시는 기회가 있어서, 미국을 다녀오신 후 미국의 현실을 눈여겨 보시고 오신 소감을 말씀 하시는 가운데 미국 사람들의 머리 상태를 잘 살펴 보시고, 오신 소감을 최 실장님께서 저의 사무실에 오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어머님께서 미국 사람들은 대머리가 많았지만, 아프리카 같은 후진국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머리가 빠진 대머리가 된 사람들이 없더라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미국등 문화가 잘 발달한 국가를 살펴보면, 대머리들이 많터라고 하시면서~ 남편인 최 실장님에게 선진국 국민들의 대 다수가 대머리이니, 기 죽지 말고 긍지지를 가지 라며, 농담하시던 말씀이 생각 납니다.
그래서 우리 대머리 MBC 동료들은 그후 최실장님을 비롯하여 차 인태씨, 저 김정수,등 우리는 문화인이다.하고, 긍지를 가지자며 많이 웃던 추억이 생각 납니다. 그 당시 보도국 김 종세 기자도 대머리였는데, 중국에 취재를 갔다가 대머리 약으로 인끼가 많았던 101대머리 치료제를 사 가지고 와서 쓰고 있다고 자랑하여, 우리 모두는 부러워했던 일화를 공개 합니다. 우리들은 그때부터 우리는 문화인이다라며, 돼지도 않은 생각으로 살았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때 최 실장님께서 이제부터는 우리 들은 문화방송백팔번뇌 조직을 만들자고 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어, 그때 그 시절 추억을 최실장님 자녀님께서도, 미주방송인협회 싸이트를 찾아주시니, 반가워서, 아버님 소식 전 합니다
전주방송국 초창기 귀중한 역사사료다. 1954년 8월 15일 송영호 선생님이 이리방송국장 시절 이리방송국 직원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이리방송국은 전주방송국의 전신으로 1958년 전주에 사옥을 짛고 1959년 4월부터 전주방송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전주방송총국에서 2010년 방송역사 동영상을 제작한다고 해서 춘하추동방송에 있는 모든 사진을 제공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사진이 없어서 아쉬움이 있었다. 뒷면에 송영호선생님 친필 성함이 쓰여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윤영중, 홍성완, 김남북, 이을우, 김중식, 김광선, 최세환, 강재룡, 박한묵, 조지식, 이종만, 송영호, 전주오, 김윤석, 정윤량 순이다. 한쪽 눈을 가린 최세환이라고 쓰인 분은 최세훈 아나운서인데 그때 최세환 이라고 불렀는지 오자인지 확인이 안된다. 이때의 이리방송국 아나운서로 재직했던 이용훈. 이순길 두분은 이 사진 촬영에서 빠졌다. 아나운서 윤영중, 최세훈은 송영호 선생님이 다시 중앙방송국 방송과장으로 돌아온후 서울로 옮겼다. 윤영중은 1962년까지 아나운서로 재직했고 퇴직후에도 프리랜서로 연속낭독 등에 참여했다. 최세훈은 1964년 MBC아나운서 실장을 거쳐 대전, 전주, 마산등지에서 상무로 재직하던 중 1984년 1984년 2월 11일 51세의 젊은 연세로 세상을 뜨셨다. 이순길 아나운서는 서울로 왔다가 생활고를 기관하다가 불귀의 객이 되어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종만은 목포방송국장 등을 지내다가 또 박한묵은 전주방송국 서무과장으로 재직하다가 공사발족후 1974년 정년퇴임했고 전주오는 남원기술과장 재직중 정년퇴임했다.
MBC아나운서실 축구팀
최세훈 아나운서 딸 최철미님이 쓴 "아버지와 딸" 재미 한국일보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최세훈 아나운서 재직 중의 사진
KBS 중앙방송국 시절
1958년 연말특집 아나운서 언파레이드를 마치고 촬영한 기념사진입니다, 앞줄 왼쪽부터 1.송영필, 2.강익수, 3.장기범, 4.임택근, 5.박종세, 6.최세훈, 7.이규영, 8.강영숙, 9.전영우, 10.황우겸, 11.유석춘, 12.강찬선, 13.김동만, 14.최계환, 15.최두헌, 16.문복순, 17.장금자, 18.유창경, 19.이광재, 20.한경희 21.김준철, 22.최만린, 23.이현숙, 24.윤영중, 25.조영준, 26.이본 아나운서입니다.
1958년 봄 남산 중앙방송국 스카이라운지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민병연 아나운서와 장기범 아나운서실장을 비롯한 아나운서들, 그리고 이승만대통령의 아들 이강석이 함께 한 사진이다. 1.최두헌, 2.유창경, 3.최세훈, 4.한경희, 5.민병연, 6.문복순, 7.황우겸, 8.장기범, 9..이강석, 10.강익수, 이강석은 틈이나면 남산에 있는 방송국을 들렸다. 이강석과 남산의 방송인들과 촬영한 사진이 많다.
1962년 KBS 중앙방송국 아나운서입니다. 동아방송과 동양방송이 발족하기 전이었습니다. 1 배덕환, 2 박종세, 3 이광재, 4 장기범, 5 강찬선, 6 임택근, 7 최세훈, 8 한경희, 9 최두헌 10 홍종선 11 김주환 12 이규영, 13 길종휘, 14 유영옥, 15 이정희 16 최승일 17 김인권, 18 박노설 19 최정현 20 인주희, 21 이규항; 22 송영규;, 23 이병열. 24 송한규 아나운서입니다.
국제방송국이 남산으로 옮기던 때 남산 국제방송국 현관에서 방송국 간부와 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입니다. 1.송한규, 11.김주환, 12.이병열, 14.장기범, 15.김영호, 16.노정팔, 18.강찬선, 19.유병은, 20.전영우, 22.김인권, 25.최세훈 아나운서입니다.
야외 공개방송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최세훈 아나운서와 박종민 담당프로듀서의 모습입니다. 1945년 이래 일생을 방송과 함께
하셨던 노정팔님은 자서전 한국방송과 50년에서 쓰기를 “라디오 께임” 하면 최세훈씨를 연상하게 된다. 프로그램과 아나운서는 서로 밀착하여 함께 웃고 함께 고민하여야 그 프로그램이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라디오 께임"은 최세훈과 동반자 관계에 있었다. 라고 썼습니다.
남산으로 옮긴 첫해 1957년 연말특집 아나운서 언 파레이드를 마치고 앞줄 오른쪽부터 장기범, 민병연, 강영숙, 황우겸, 김인숙, 최세훈, 송석두, 윤영중, 이현숙, 장금자, 송영필, 뒷줄 왼쪽부터 보면 박종세, 이광재, 임택근, 강찬선, 임동순, 문복순, 강익수, 최계환.
1960년 KBS가 안익태선생님 초청연주회를 갖고 특집방송을 하는 장면입니다.
1954년, KBS아나운실에 들어와 오랜세월 최세훈 아나운서와 함께 근무했던 전영우 아나운서는 최세훈 아나운서가 방송도 잘 하고 성격도 원만 할 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소질이 있어서 시와 수필에 능하고 자유문학의 시인으로 등단되었다고 했습니다. 위 사진은 최세훈아나운서와 함께한 전영우 아나운서입니다.
1961년 1월 16일자 TV방송을 처음 시작 하던 때 동아일보에 난 기사 한편을 참고가 되실까 해서 옮겼습니다.
실내 체육관이 없던시절 서울(동대문)운동장에서 주요경기를 했습니다. 그 시대의 최고의 인기절정이던 임택근, 이광재, 강찬선, 최세훈 아나운서가모두 참여한 중계방송이었습니다
MBC 문화방송시절
최세훈 아나운서가 MBC 문화방송 아나운서 실장으로 부임하던 시절 1964년의 MBC 문화방송 아나운서입니다. 앞줄 왼쪽부터 백혜정, 장인숙,김상옥, 안영희, 임국희, 뒷줄 왼쪽부터 조규원, 최승일, 송영규, 오남열, 최세훈, 김순환, 이철원, 유창경, 최정연입니다.
MBC방송부장 임택근, 아나운서실장 최세훈님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최세훈 아나운서는 MBC 재직중이던 1968년 그시대에 방송인으로는 최고 영예의 상방송문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최세훈 아나운서가 1962년에 쓴 책 눈으로 보는 퀴즈 프로그램에 관한 1962년 1월 23애ㅣ일자 동아일보 글 한편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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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71년 MBC모닝쇼를 진행하는 최세훈 아나운서 입니다. 1960년대 말 임택근 아나운서의 인기를 프로그램에 반영하면서 진행자의 성함과 함께 하는 모닝쇼 프로그램이 탄생 해서 임택근, 정순일, 최세훈님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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