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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탄생 100주년 기념 도예전 작품들과 피카소의 생애, 1982년 KBS개최

이장춘 2011. 11. 6. 00:46

 

 

 

 

우리시대 최대의 예술가로 불리는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1881-1973)가

생전에 남긴 작품 수는 4만 점 정도로 이 가운데 도자기

작품은 3.000점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피카소가 남긴 1885점의

유화나 판화, 조각, 댓상등은 널리 알려졌지만 1947년부터 시작된

도자기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고 대규모의 도자기 작품 전시도 많치

 않았습니다.   한점에 수백억, 수천억원의 값이 나가는 작품이라 출품을

요구하기도 어렵고 이동이나 관리가 어려워 장소를 이동하는 전시회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입니다. 이 전시회를 1982년, 피카소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 기념전으로  KBS가 서울과 부산, 광주 ,

전주등지를 순회하며 4개월 이상 관심을

모은 가운데 열었습니다. 

 

 

 KBS 1982년 피카소 탄생 100주년 기념 도예전과 그의 생애

 

 

 

 

 

 출품작 수로 보나 관람인원등의 규모로 보아

오늘날까지도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그 예가 드문

전시회였습니다. 2003년 9월부터 10월말까지 60일간 열린 제2회

 경기도 여주 세계도자 비엔날레에서 피카소 도자 특별전이 열렸을때

 70여점의 작품이 출품되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그보다 20년이 앞서 열린 1982년의 KBS 특별전은 피카소의 딸

 위드 마이어에게 상속된 비장의 작품 186점이 출품된 것으로

국내외적으로 큰 관심을 모은 전시회였습니다.

 

 

 

 

가는곳 마다 수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고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때의 피카소전은 KBS가 장기간에 걸쳐 기획한

 역점사업으로 문교부, 문화공보부, 주한 프랑스대사관, 주한 스패인 대사관,

일본 국제 문화 교류협회 후원으로 열려 피카소 예술의 진수가담긴 병, 접시 등

각종 도예작품이 186점이 전시되었습니다.  피카소 도예전의 실무 책임자 송병현님은

이 행사를 성공리에 이끄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오늘 글은 송병현님의 자료를

바탕으로 올렸습니다. 지역의 전시회는 방송책임을 맡으셨던 전주 채유석

 국장님, 광주 안표순 국장님, 부산 조창화 본부장님이 힘을 기울이셨

니다. 그때의 전시회 얘기는 아래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서서 더 보실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jc21th/17780985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의 생애와 작품  

 

 

 

 

피카소는 1881년 10월 25일 투우의 나라

 스페인의 남부 말라가라는 작은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호세 루이스 브라스코는 델모 공예학교의 미술교사였습

니다. 어린 아이 때 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피카소는 1889년

 피카또루 (투우사)를 제작했고 이때 동판화에도 흥미를 가졌습니다.

1895년  14살 때,아버지가 비르세로나 미술학교로 옮기면서 문화의

도시인 바르셀로나의 론잔 미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모든 입시

과제를 하루에 완수하면서 상급반에 입학하고 스페인의

 거의 모든 미술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9살 때인 1900년에 바르셀로나에서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바르셀로나 뒷골목에 있는 선술집에서

150점의 스케치를 전시한 전시회를 열고 화가로 데뷔했습니다.

1900년 잠시 파리에서 활동했던 피카소는 부모와 같이 지내기 위해

바르세로나로 왔지만 그에게 바르셀로나는 너무 좁아서 그 다음해에

파리를 찾고 그로부터 세계적인 무대 파리와 바르세로나를 오고 가면서

 활동 했습니다.   프랑스의 몽마르트로 가 그곳 빈민촌에서폴 고갱,

고흐, 드가 등과 어울리며 그의 청년기를 지냈고 1911년 뉴욕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였습니다. 이 무렵부터 화면에 숫자와 문자를

넣기 시작했습니다. 1919년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면서

 폴 러젠버그 화랑에서 개인전을 거졌습니다.  

 

 

 

 

피카소가 도자기에 그림을 시작한 것은

 1947년으로 프랑스의 도자기 도시인 발로리(vallauris)

였습니다. 평화운동(peace movement)에 참가하면서 한국에서

6.25전쟁이 일어나자 발로리 성당에 "전쟁과 평화"라는 대형 벽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피카소는 자신의 조국 스페인에서 발생한 내전 때문에

 조국을 등질 정도로 평화에 대한 신념이 투철했기에, 한국전쟁에서 벌어지는

 살상에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한국의 평화를 특별히 염원 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쟁과 평화 벽화 중 평화 부분에

 한국을 상징하는 태극문양을 그렸고, 그 당시 한국에서의

 학살을 유화로 그렸습니다.

 

 

 

 

피카소는 발로리로 온 이후 25년 동안

도자기그림에 열중했습니다. 마지막 예술혼을

도자기그림에 쏟아 부으면서 훌륭한 작품을 남겼고

딸에게 상속되어 1982년 피카소 탄생 100주년 가념전에

 출품된 작품도 그 중의 일부입니다. 피카소의 삶에

 있어서 여성을 그린 그림이 많고 또 여성에

 관한  얘기가 많습니다.

 

 

 

 

그는 1920년부터 7명의 여성과 결혼을 했거나

 동거를 했다고 합니다. 여성이 달라질 때마다 화풍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여성을 그린 작품중에는 뛰어난 작품들이

많고 7번째의 마지막여성  작크리느 (위 그림으로 기념전에 출품된

작품임)는 1961년 80세때 결혼한 40년 년하의 부인이었습니다. 깐느

북쪽에 있는 무쟁에 노틀=담=드=비 종을 사들여 생을 마감 할때까지

 여기서 거주하면서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중간에 해어졌던 피카소의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피카소가 생을 다할 때까지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피카소를 행복하게 해준 여인이었습니다. 피카소가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었던 것은 작크리느의

 헌신적인 내조의 힘이 컸다는 얘기를 합니다.  

 

 

 

 

1973년 92살이 된 피카소는 파리 루이즈

바이리즈화랑에서 156점의 판화로 근작전을 갖고

4월 8일 무쟁의 노틀담 드비에서 세상을 떴습니다. 데상에서 

유화, 조각, 판화, 도자기 그림 등 다방면에 걸친 미술의영역을 

넘나들며 40,000여 점의 세계적인 작품을 남긴 천재 예술가

 피카소는 20세기 최대의 예술가라는 평을 들으며

 1973년 4월 8일 삶을 마쳤습니다.

 

 

목신의 얼굴

 

 

목신의 얼굴

 

 

목신의 얼굴

 

 

얼굴

 

 

목신의 얼굴

 

 

얼굴

 

 

페리스 접시의 얼굴

 

 

페리스 접시의 얼굴

 

 

세개의 얼굴

 

 

투 우

 

 

투  우

 

 

화병에 그려진 화병

 

 

고기와 태양

 

 

세 여인

 

 

두마리의 새

 

 

푸른 배경의 두 얼굴

 

 

창 꽃

 

 

 

여자

 

 

두개의 얼굴

 

 

모양있는 화병

 

 

아르르의 여인

 

 

 

 

두개의 얼굴

 

 

정물

 

 

끄로드의 얼굴

 

 

반인 반말의 괴물

 

 

풀밭위의 오찬

 

 

얼굴

 

 

얼굴

 

 

목신의 얼굴

 

 

얼굴

 

 

수염있는 얼굴

 

 

투우사가 쓰는 리본달린 창

 

 

올빼미

 

 

올빼미

 

 

눈과 태양

 

 

얼굴

 

 

 

 

 

 

 

 

   

덕수궁 담벽 피카소 도예전 홍보 포스터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조수미 아배마리아 슈배르트-1.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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