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DK오케스트라(교향악단)에서 KBS교향악단까지
방송과 학계에서 적극적인 음악활동을 하던 홍난파선생님이 경성방송국 JODK오케스트라를 결성한 것은 1935년 4월 13일의 일이고 이것이 우리나라 오케스트라 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전에도 오케스트라라고 불리는 악단이 있었지만 실내악의 범주를 멋어나지 못했습니다. 1927년 경성방송국의 개국 축하 연주를 했던 중앙악우회가 구성된것은 1926년의 일이고 이 악우회를 한층 발전시켜 1928년 KBS전속악단을 구성하는 등 그때까지 15명 정도의 관현악단이 연주도 하고 가수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반주도 했던것을 1935년, 새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는 30명 내외의 단원으로 이때부터 방송국의 양악은 그 폭이 넓어지고 깊어졌습니다.
우리나라 음악벌전에 큰 획을 그었던 JODK교향악단은 1941년 홍난파선생님이 세상을 뜨면서 계정식님이 지휘를 맡고 악장으로 있던 김생려님이 운영을 맡았지만 곧이어 제2차 대전이 일어나고 또 운영책임을 맡았던 일본인 업무과장은 엉터리 지휘자를 데려다가 악단을 운영 하면서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단원들은 개선을 건의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남아있을 단원들이 많지 않아 10여명의 단원만 남아서 관현악단 수준으로 운영되다가 해방되면서 아예 해체되고 민간이 운영하는 고려교향악단이 탄생했습니다.
1945년 9월 15일에 발족한 고려교향악단은 현제명(玄濟明)교수를 이사장으로 해서 1945년 10월 계정식님의 지휘로 수도극장에서 창단기념공연을 갖고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초기에는 JODK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은 적이 있던 계정식(桂貞植)님이 주로 지휘를 했고 김성태(金聖泰)님과 문교부 음악과 협동과장이었던 해군중위 포크너(Faulkner) 등이 맡기도 했습니다. 다음 사진은 1946년 3월 20일 미. 소공동위원회 개막식에서 고려 교향악단이 축하 연주를 하는 모습입니다. 태극기와 양쪽에 미국의 성조기, 오른쪽에 소련기가 걸린 가운데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1946년 계정식님이 사임한 후 임원식(林元植)님이 상임지휘자가 되었고, 현제명교수가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독고 선(獨孤璇)님이 이사장으로 취임, 악단을 이끌어 갔지만 임원식 지휘자가 도미하고 또 재정난등 여러 어려움으로 1948년 10월 24일, 25일 시공관에서 김인수(金仁洙)님 지휘로 개최된 제26회 정기연주회를 마지막 해체되었습니다.
JODK교향악단 악장을 맡다가 홍난파선생님이 세상을 뜨신후 운영등을 맡았던 김생려(金生麗)님이 중심이 되어 JODK 오케스트라 시절의 단원과 함께 새로운 단원을 모아 1946년 6월에 구성한 악단이 서울 관현악단이었습니다. 이 악단은 1948년 고려교향악단에서 온 단원들을 받아들여 40명의 단원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악단은 중앙방송국의 연주실을 연습장으로 활용하면서 중앙방송국 미군 고문관 놀프 자코비(Rolf Jacoby)의 지휘로 정기 연주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놀프 자코비의 헌신적인 지원은 그가 귀국하던 1949년까지 이어졌습니다. 맥을 이어가던 교향악단의 활동은 6.25전쟁으로 1956년 9월 1일 KBS교향악단이 창설되기까지 오랜 기간 교향악단다운 교향악단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갈홍기 공보실장 후임으로 1956년 7월 공보실장이 된 오재경실장은 취임하면서 부터 방송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하면서 그해 9월 1일을 기해서 임원식님이 지휘하는 KBS 교향악단을 출범시켜 12월 20일 역사적인 창단연주회를 가졌습니다.
위사진은 1956년 9월 1일 창단한 KBS 교향악단이 1957년 1월 29일과 30일 양일간 시공관에서 제1회 연주회를 가졌을때의 모습이고 아래는 1958년 KBS교향악단 단원일동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영어명칭으로는 KBS Symphony Orchestra 라고 했던 KBS교향악단은 임원식이 1970년까지 지휘를 맡으면서 제자리를 잡아갔습니다.1957년 말 KBS가 남산에 새로운 연주소를 마련하면서 연주활동이 원활해졌고 국내공연 외에도 1958년 한미친선음악회 및 동남아 순회공연 등 장기간의 해외 순회공연을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 했습니다, 다음 58년 동남아 순회공연중 교향악단 지휘자 임원식님과 작가, 김영수선생님과 무용가 김백봉님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1969년 KBS교향악단이 국립극장으로 운영권이 넘어가 국립교향악단 창단을 보았습니다.
교향악단의 활동 폭을 넓혀보려는 것이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1971년, 명칭은 그대로 국립교향악단으로 두고 운영은 KBS에서 했고 1972년 다시 국립극장으로 넘어가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1981년 KBS로 이관되는 것을 계기로 이강숙님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을 재창단하고 영어명칭으로는 Korea Philharmonic Orchestra라고 했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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