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세계유산

종묘 최초의 세계문화 유산 등재, 종묘와 전주이씨 대동 종약원

이장춘 2011. 2. 18. 20:19

 



유네스코가 1996 종묘와 종묘제례를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문화유산 으로 지정한
저는 그 첫번째인 1996년 5월 5일의 종묘대제 제례에
 참여해서 조선조 마지막 임금 순종황제의  제를 모신 적이
있어 그때의 체험을 바탕 으로 2011년  2월 춘하추동방송 블로그에
 이 글을 써 올렸습니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경주 석굴암과 해인사
대정경판, 경판고가 함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처음 열린 1996년 제례여서 관심도 많았을 때였습니다. 1996년
에는 이구 황세손이 일본에 사시고 계실 때라 이 제례에
참여해서 조선조 제 1대  태조 대왕과 
목조의 제례를  올렸습니다.


세계문화 유산 종묘와 전주이씨 대동 종약원



 

 
조선조 때는 임금이 초헌관으로
제례를 올리고 영의정이하 정승들이 참여해서
 국가적인 제례로 모셨지만 지금은 사단법인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주관하고 문화관광부, 문화재청,
국립국악원, 서울특별시 등이 후원해서
 제례를 올리고 있습니다. 
 

 

 

종묘는 태조 3년(1394)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그해 12월에 착공해서
 이듬해 9월에 완공했습니다. 곧이어 개성으로부터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탁조, 환조의 신주를 모시고,
이곳에서 대제를 올리기 시작한지 600여년이 흘렀습니다.
조상을 숭상하는 효심이 담긴 종묘제례의 미풍양속을
높이 평가해서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
되는데 기여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세계문화 유산이
종묘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종묘 그 자체가
세계문화 유산인 것으로 아시는 분이 많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 담긴 종묘제례가 더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종묘는 왕조 선대의 신을 모시고 제례를 
올리기 위해서 마련된 시설입니다.   
 

 

 

 

제례를 올리는 것은 정전과
 영녕전에서 올리고 제례 명을 정식으로
부를 때 는 종묘대제라고 부릅니다.  종묘의
내역을 살펴보면 종묘 자체는 사적 제125호로 지정
보존되고있고 종묘의 정전은 국보 제22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영녕전은 보물 제82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종묘제례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이고
종묘제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종묘제례에는 기악과 춤과, 노래로
이루어진 종묘 제례악이 곁들여 집니다.
 

 

 

 
정전에는 제 1 호실부터 19호실까지가 있고
 영녕전에는 제 1실부터 16실까지가 있습니다. 제가
제례를 올린 곳은 정전 19호실로 이조 마지막 임금  순종황제의 

제례였습니다. 정전에서는 태조대왕을 비롯해서 왕과 왕비 49명의

신위가 모셔져 있고 영녕전에는 그 밖의 왕과왕비, 추존된 왕과

왕비 등 34명의 신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정전의 남쪽에는

공이 많은 공신 신주도 모셔져 있습니다.

 

 

 

 

위 사진은 이구 왕세손과 이날의 종묘제례에

 참여했던 19호실 초헌관을 비롯한 제관들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가운데 분은 이구 황세손이고 그 오른쪽은

 19호실 초헌관으로 제례에 임한 필자입니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 유산은
1990년대 초 까지 세계 142개국에서
440개의 세계 문화 유산이 지정되어 있었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한건도 등록된 일이 없어서 전주이씨
대동 종약원에서는 1994년 1월 부터 이 종묘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각종 자료를 수집 하는데서 부터 문서를
작성 제출하고 1994년 12월 태국에서 열린 세계
문화유산 총회에  정부와 함께 참여해서  우리나라 문화재가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 될 수 있도록  협조 요청 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1995년에 유네스코의 엄밀한 조사결과종묘를 비롯한 우리나라가

 요구한 세건의 문화재가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는  판단이 내려져 1995년 

12월 처음으로우리 문화재가 유네스코에 세계 문화 유산으로등록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뒤 네건의 문화재와 한건의 자연문화재가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 되었고, 또 세월이 흐르면서 조선 왕릉이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는등 여러건의 유내스코

문화유산이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가 1996년 2월 종묘와 종묘제례를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문화유산 으로 지정한
저는 그 첫번째인 1996년 5월 5일의 종묘대제 제례에
 참여해서   조선조 마지막 임금 순종황제의  제를 모신
 적이 있어 그때의 체험을 바탕 으로 2011년  2월 춘하추동
방송 블로그에 이 글을 써 올렸습니다. 수많은 분들이 이 글을
 보셨고 오늘날 춘하추동방송 가족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은   이 글을 계기로    2013년
3월 31일부인연을 맺어 3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3년 세월이 흐른 유카리나
여사님은 또 글을 남기셨습니다.

 

시간이 날 때, 우연히 컴산책을 하다가
 들어오게된 춘하추동방송 블로그, 그 규모와 방대한
 규모만큼이나 알찬 내용들을 보고 내심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방 저방으로 연결하신 주소를 찾아 기사들을 읽어보며, 읽어보고 그냥
나가기에는 너무도 아쉽고 죄송하여감사와 감탄과 느낌의 글을 달기 시작한
 세월이 어느덧 3년이 흘렀나봅니다. 오늘 여기 들어와 보니, 제가 자물쇠를
 잠그고 블로그 주인장님께 드렸던 글들이    다 공개되어 있군요.^ ^
언제나 들어와서 배우고 가는 것이 많아서, 새 글이 올라오면,
읽고, 한말씀 남기고, 인사드리고 나가는 것이
이제는 일과가 되었지요.


지금 연세에도 젊은이들 못지않은

 열정으로 이곳 저곳 향하여 취재하시고 또한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편집방식과 능력으로

 블로그를 채워가시니, 동료이셨던 이정부 아나운서님의

표현대로  청사없는 방송국의 연봉없는 국장님이라고 하신

 표현이 어쩌면 그리 적절한지요.국장님, 건강도 타고나신것 같고,

뒤에서 말없이 힘을 주시는 사모님의 힘 또한 큰 언덕이시니

무한대의 청사   춘하추동방송국을  책임맡아 운영을  자진하신

 역시 연봉없는   관장님  이복예 관장님의 열과 성을 힘입어,

동우회 회원들의    대화의 장인 카페가 날로  관람객이

 많고, 훈훈한 카페로 발전해 나가리라 믿고 바라며,
이 기사를 제 블로그로 분양받습니다.


그때는 비밀글로 자물쇠를 채워놓았던
유여사님의 글이었지만 비밀이랄것도 없어 모두
공개해서 올렸습니다.     필자는 종묘제례 이 글을
올린 이래   여러편의  세계문화유산에 관한
글을 섰기에 그 글들을  연결했습니다.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

 

 

그로부터  2년여 유경환여사님과

이장춘, 유카리나와 춘하추동방송 참 이런

인연도 세상에 또 있을까? 그토로 날이면 날마다

춘하추동방송에서 함께 해온 세월,   성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유카리나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음악계의 거성

송방송박사의  성, 이름도 몰라 전주이씨냐고 묻던 그날의

 글,  2년 여가 지나 오늘에 다시새롭게 읽으며 본문에

 옮긴다. 그때는 비밀글로 쓴 글이 지금보니

비밀글도 아니어서 모두 공개한다.

 

 

유카리나  2013.03.30 05:28

제 남편이 이 종묘제례 행사를 찍겠다고,

작년 행사날 갔다가 너무나도 붐비는 인파에 밀려

행사장 담 밖에서 헤매다가 돌아왔습니다. 올해는 또

어느 사진작가님이 함께 가자고 하시는데, 암튼 국민들의

인식도 열의도 점점 높아지고있어서 흐뭇합니다.

국장님께서도 자랑스런 후손이시군요.

 

┗ 이장춘  Y 2013.03.31 03:01

남편분도 전주이씨 이신가요.. 제가

 초헌관으로 참여했던 때는 그렇게 붐비지는

않았던 것 겉은데요. 막내아이가 와서

 몇장의 촬영하고 했어요.

 

유카리나  2013.03.30 05:34

제가 어느 헌책방에서 왕세손 이구님께서

누구에겐가 싸인을 해서 주신 책이 한 권 눈에

띄어서 사다가 보관하고있는 책이 한권 있습니다.

 

┗ 이장춘2013.03.31 03:00 유카리나님이 

이토록 깊은 관심을 가져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짧은기간동안 일생을 살아온 친구처럼 느껴질, 아니

더 가까운 느김을 받는 유카리나님입니다. 시간이

허락하시면 만나뵙고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유카리나  N 비밀 2013.03.31 19:31

 저도 한국인이니까요. 제 남편은 성이 宋이구요,

이름은 芳松이라는 사람인데, 평생을 우리 국악을 연구해온

 사람입니다. 인터넷 검색에도 조금 나오지요. 평생 출판한 책이

수십권이니, 옆에서 책 내는것을 하도 많이 보아서 국장님의 대댠한

자료들을 보니, 그 자료들을 모아서 책을 쓰셨으면하는 마음이 들었어요.^0^

┗ 이장춘 이장춘 N 비밀 2013.03.31 20:37 송방송 선생님! 대한민국 음악계의

산 증인이시네요. 송방송 선생님의 음악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겠습니다. 젊은

연세에 국립국악원장님을 지내셨으니 국악계의 거성이시군요. 초대 중앙

방송국장을 지내신 이혜구선생님이 일생동안 국악에 힘을 기울이셨습

니다. 흔치 않은 금관 문화 훈장을 받아셨지요. 1909년에

태어나 2010년에 세상을 뜨셨습니다. 뜨시는 날까지

 방우회 회원으로 계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유카리나  N 비밀 2013.03.31 21:03

아, 네, 이혜구 선생님의 제자입니다. 이혜구

 선생님께서 초대 중앙방송국장을 지내신줄은 이제

처음 알았습니다. 방우회 회원이셨음도 당연하셨겠구요.

백수를 넘기고 사셨으니, 복이 많으신 분이시지요.

 

┗ 이장춘 N 비밀 2013.03.31 21:22

 이혜구선생님은 1932년 부터 방송을 시작해서

해방되면서 중앙방송국장을 하시다가 서울대학교로

가셨습니다. 1949년 8월에 다시 중앙방송국장으로 오셨지만

기어이 학교로 가신다면서 3개월만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노라노의

 아버지 노창성님이 중앙송국장이 되셨지요.  노창성선생님은 최초의

아나운서 이옥경의 남편이고노라노는 그 둘째 딸입니다. 일제강점기에

함흥방송국장도 하고우리말 방송 최고 책임자인제2방송부장을 한 분으로

이혜구 전생님보다 대 선배지만 1943년 항일 단파사건으로 자리를 물러

났습니다. 1949년 이혜구선생님이 방송국장을 사양하면서노창성선생님을

 추천 6.25를 거쳐 1955년 세상을 뜨실때까지 우리나라 방송의 최고

책임자로 있었습니다. 끝으로 안기영 선생님 노래를 보내

드려는데메일을 안 보신듯합니다. 예기가

 길어 졌군요. 편히 주무셔요.

 

유카리나 Y 2013.03.31 22:33

제가 메일로 받은 음악을 어떻게 저장해서

 듣는지 할줄을 몰라서 조카한데 물어서 하느라고

 좀 늦었어요. 바탕화면에 띄워서 저장해놓고 들어

보았어요. 아주귀한 자료 보내주셔서 가끔 들어

보고 싶을 때 듣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이장춘 Y 2013.04.01 01:09

오카리나 음악 악기에 대해서도

 관심 갖겠습니다.

 

 카리나  Y 2013.04.01 06:28

고맙습니다. 저도 소리가 아주 맑고

청아해서 노후 여가선용의 대책으로 배웠

는데, 아주 좋은 애인이 되었어요.

 

유카리나  Y 2015.04.25 06:20

 춘하추동방송 개설하신지 10년의 글을 읽다가,

 제가 처음 인터넷에서 '종묘'에대해 검색하다가 우연히

국장님의 이 춘하추동방송 블로그에 들어오게된후, 국장님께서

연세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과 능력으로

 이렇게 많은 자료와 편집능력을 가지고 계신데 놀랐고, 배울것이

 많아서 매일 들오기 시작한 계기가 된 이 기사를 다시 들어와서

봅니다. 종묘제례의 초헌관으로 참여하신 국장님의 사진이

국장님이 이왕조의 자랑스런 후손임을 말없이 나타내고

있습니다.  모쪼록 건강하셔서 많은 지식의

보고로 만들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윤후현(팔방미남) 선생님



잘 보았습니다.이장춘사장님,이

종묘대제에 초헌관으로 집전을하셨구만요.
기사를 읽다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세계문화유산
등재부분이 저와 연관이 있어 글을 올립니다. 당시 추진위원장

이셨던 전 농림 해양수산부장관, 김영진 국회의원이 저와 또 고향

(강진)친구 사이입니다. 5,18 이 일어난 해(1980년)에 제가 결혼식을

 했는데, 그 때 김영진 의원이 친구로써 중방을 했습니다. 또 당시

공화당 원내 부 총무를 하셨던 윤재명의원,(집안 아저씨)이

김영진 친구에게 낙선의 고배를 마셨답니다. 종묘대제

소식 감사합니다. 이장춘 사장님!^0^ ^0^ ^0^



저 이장춘은 세계문화유산의 현장을 들릴

때 마다 현장탐방을 해서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서울 종묘, 강화 고인돌, 영월 장릉 (단종릉),

경기도 서오릉, 광주 민주화운동  , 아리랑, 1983년의 

KBS이산가족찾기 생방송 등을 취재 춘하추동방송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아래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셔서 보실 수 있습니다.

 

동구릉 세계문화유산 조선왕조 왕릉 사적 제 193호

http://blog.daum.net/jc21th/17781198


헌인릉 사적 제 194호 헌릉獻陵 인릉仁陵

http://blog.daum.net/jc21th/17782230


  선정릉(선릉) 조선왕조 성종, 중종대왕릉 사적 199호 세계문화유산

http://blog.daum.net/jc21th/17781439


서오릉, 조선왕릉 세계문화유산, 사적 제 198호

http://blog.daum.net/jc21th/17781060

 

효릉봉향제 조선조 제12대 인종대왕·인성왕후 2016 사적 제200호

http://blog.daum.net/jc21th/17783000


서삼릉 조선왕조 태실과 대군·군ㆍ공주·옹주 분묘 (墳墓)

http://blog.daum.net/jc21th/17783001


조선조 제 6대 임금 단종릉, 영월 장릉

http://blog.daum.net/jc21th/17781002

 

융릉·건릉,(정조와 사도세자) 세계 유산 조선왕릉 사적 제 206호

 http://blog.daum.net/jc21th/17781759


김포 장릉 (章陵 - 원종, 인헌왕후) 조선왕릉 사적 제 202호, 세계유산

http://blog.daum.net/jc21th/17782244


수원 화성(水原 華城-사적 3호) 세계문화유산 탐방

http://blog.daum.net/jc21th/17781303


세계 문화유산 창덕궁 사적 122호

http://blog.daum.net/jc21th/17781515 


아리랑 세계문화유산, 민족의 노래 세계 인류의 노래,

http://blog.daum.net/jc21th/17781551


KBS 이산가족찾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합니다. 유네스코 UNESCO

http://blog.daum.net/jc21th/17782636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유네스코 등재 기념식과 기념공연

http://blog.daum.net/jc21th/17782642

        

세계유산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출연 아나운서 좌담 2015년 12월 4일

http://blog.daum.net/jc21th/17782709


강화 역사박물관과 고인돌 공원

http://blog.daum.net/jc21th/17780874

  

광주 민주화 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http://blog.daum.net/jc21th/17781136


세계문화 유산 종묘와 전주이씨 대동 종약원

http://blog.daum.net/jc21th/17780717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동영상, 효령대군과 제 13 회 효령상 시상, 청권사

 http://blog.daum.net/jc21th/17780598

 

종묘 노익중님의 카메라 현장탐방

http://blog.daum.net/jc21th/17782781

 

 종묘제례 1996년




 


 

 

박광희 선생님이 보내오신 종묘 역사탐방을 올렸습니다.


 

 

(40) [歷史探訪] 종묘(宗廟)

    <2016.5.14/竹岩 張錫大> 

 

 

  조선왕실의 사당 

종묘는 유학을 통치기반으로 하여 건국한 조선왕조가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봉행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정전(正殿)을 종묘라 하였으나, 현재는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모두 합쳐 종묘(宗廟)라 부른다.

정전과 여녕전은 장식과 기교를 절제하여 단조로 보이지만, 이는 왈실의 제사를 모시는 공간이

기에 존엄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위한 의도적인 장치이다.

 

정전에는 태조의 신주를 비롯하여 공덕이 있는 역대 왕과 왕비 49분의 신주를 모시고 있고, 영년전

에는 태조의 4대조를 비롯하여 조선의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된 왕과 왕비 34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종묘는 건물과 더불어 제례 및 제례악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유로 종묘는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2001년에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종묘하마비(宗廟下馬碑)

하마비(下馬碑)는 조선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놓아, 누구나 이곳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리라

는 명(命)이 적힌 비석(碑石)이다. 기록에 의하면 태종13년(1413) 2월에 처음으로 예조의 건의에

의하여 종묘와 궐문 앞에 설치하였던 것이 하마비(下馬碑)의 시원(始原)이 되었다. 처음에는 나무로 제작되었으나, 현종(顯宗) 4년(1663)에 종묘전교(宗廟前橋)를 개수하면서 석비(石碑)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하마비(下馬碑)의 전면에 새겨진 내용이 "大小人員皆下馬" 또는 "下馬碑" 라고 한 것이 하마비의 계

 되었다. 이후 하마비(下馬碑)는 종묘 및 궁궐 외에도 문묘, 성현, 명사, 고관의 출생지 등 여러

곳에 세워져 있는데, 이는 선열(先烈)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타고 가던 말에서 내렸음을 알 수 있다.

 

 

 

 

 

 

     종묘어정(宗廟御井)

 

  지정번호: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6호.

  시      대:조선시대초기.

  소  재 지:서울특별시 종로구 훈정동 2번지.

 

  종묘 정문인 창엽문(蒼葉門) 앞에 보존되어 있는 우물이며, 조선 역대 왕들이 종묘에 왈래할

  때 이 우물물을 마셨다고 하여 '종묘어정(宗廟御井)'이라고 불리었다. 이 우물의 규모는 지름

  이 1.5m 깊이가 8m 내외이다. 이후 일제 강점기 때에는 이 우물에 콘크리트 관을 묻어 이용

  함으로써, 원형이 훼손되었으나 1983년11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제56호)로 지정하면서 

  우물 지상부분의 없어진 부분을 장대석(長大石)으로 정비해 놓았다.

  지금은 우물로서 기능은 하지 못하나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항상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였으며,

  여름에는 물이 어름처럼 차고 겨울에는 김이 오를만큼 따스하였으며, 물맛도 좋았다고 한다.

  이 우물로 인해 이 지역을 훈정동(熏井洞)이라고 하는 동명(洞名)이 유래하게 되었다.  

   

 

 

 

 

 

 

 

 

 

신로(神路)

 

신로는  종묘제례 의식을 위해 낸 것으로 신(神)이 다니는 길을 말한다.

종묘에는 신로 외에도 신향로(神香路), 향로(香路), 어로(御路), 세자로(世子路) 등이 있다.

종묘 외대문(外大門)을 들어서면 곧바로 거칠고 넓적한 박석이 세가닥 길로 깔려 있다.

가운데 길이 약간 높고 양옆은 약간 낮다. 가운데 길은 혼령이 다니는 신로(神路)와향,죽문,폐백 등 제사 예물이 오가는 향로(香路)가 합쳐진 신향로이고, 오른쪽 길은 왕이 다니는 어로(御路), 왼쪽 길은 왕세자가 다니는 세자로(世子路)이다.

 

 

 

 

 

 

   종묘 교육홍보관

  종묘 교육홍보관은 종묘제례 및 제례악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기 위하여 설치된 전시

  공간이다. 교육홍보관의 제1전시실은 종묘제례 영상물을 상영하며, 제2전시실은 종묘 신실과

  제수진설을 재현하여 전시하고 있다.

 

 

 

 

 

향대청 일원(香大廳 一員) 

 제례에 바칠 향, 축문,폐백(香祝弊)을 보관하고 제례를 주관하는 제관들이 대기하던 곳이다.

 또한 제례에 종사하는 집사들의 집사청(執事廳)도 딸려 있다. 정면 9.5칸의 긴 건물이 앞에는 행

 각이 놓여있어 남북으로 긴 뜰이 만들어져 있다. 남쪽의 맘묘루(望廟樓)는 제례를 지낼 때 임금이

 잠시 머물며 앞선 임금들의 공덕을 기리던 곳이다.

 망묘루 앞쪽에 연못을 만들었고, 뒤쪽에 공민왕 신당을 두었다. 

                                            

 

 

 

 

 

 

 

   재궁 일원(齋宮 一員)

   재궁은 임금이 세자와 함께 제사를 준비하던 곳으로 어재실(御齋室) 또는 어숙실(御

  肅室)이라고 불린다. 북쪽에 임금이 머무는 어재실, 동쪽에 세자가 머무는 세자실, 서

  쪽에 어목욕청이 있다. 임금과 세자는 재궁 정문으로  들어와 머물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후 서문으로 나와서 정전의 동문으로 들어가 제례를 올렸다.

                             

 

 

 

 

 

 

 

 

 

 

 

 

 

  정전 일원(正殿 一員) 

종묘의 중심부분으로 길게 지은 정전의 앞에는 넓은 월대를 두었고, 사방으로 담장을

둘렀다.남쪽 신문으로 혼령이, 동문으로 임금을 비롯한 제관들이, 서문으로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과 춤을 추는 일무원들이 출입했다. 1395년에 신실 7칸의 규모로 창건

했고, 여러차례 증축을 거쳐 현재는 19칸에 이르러 매우 긴 목조 건물이 되었다.

몸체인 신실의 양쪽에는 창고와 부속실들을 마련했다. 거친 월대 바닥과 그 위로 육

중한 지붕이 떠 있는 모습은 숭고하고 고전적인 건축미의 극치를 이룬다.

남쪽 담장 안에는 공신당(功臣堂)과 칠사당(七祀堂)을 각각 동쪽과 서쪽에 세웠으며,

서문 밖에 제례악을 준비하는 악공청(樂工聽)을 두었다.

 

 

 

 

 

 

  영녕전 일원(永寧殿 一員)

 

  정전의 신위를 옯겨 모시기 위해 1421년에 새로 지은 별묘로 건물 이름은 "왕가

  의 자손과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이다. 시설과 공간 형식은 정전 일원과 유사

  하지만 정전보다 규모가 작고 좀 더 치밀하게 지어졌다.

  정전 일원과 유사하게 2중으로 된 월대 주위에 담장을 두르고 동,남,서 세곳에 문

  을 두었다. 원래 6칸 규모였으나. 여러 차례 좌우 협실을 늘려서 현재 신실은 모 

  두 16칸이다. 가운데 4칸은 태조의 4대조를 모신 곳으로 좌우 협실보다 지붕이

  높다. 동쪽에 제사 도구를 보관하는 제기고를, 서남쪽 바깥에 제례악을 준비하는

  소악공청(小樂工聽)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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