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관 대 선배님 추념(追念)
다음글은 이인관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바로뒤인 2007년 3월 12일에
벽산 우제탁님이 쓴 추모의 글입니다.
우리나라 방송기술의 원조? 라던 한덕봉님의
납북 후, 방송기술의 총수 이인관님,,, 극심한 정치 사회적인
혼란 중에서도 흔들림 없이 우리나라 방송기술총수자리를 장기간
전담해온 실력자중의 실력자 였다, 님은 원래 철저한 장인의식이
강한 기술인,,, ,탁월한 능력경륜, 완고한 외골?
,,90여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특별한 존경 인정을 받아,
1937년부터 42년간의 고위 공직자생활 중에서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공보처 문화공보부 기감에서부터 한국방송공사
초대 기술총국장, 이사 등의 총수자리를 수십 년간, 전담하신
역사? 적으로 전무후무한 거인중의 거인 이였다,
그 어른이 게신 한 그 누구도 그 자리를 넘보지 못했고,
경쟁이 안 되었던 우리 방송기술인의 정신적 지주였다,
해방 후 라디오방송시설도 제대로 안된 우리나라 방송시설,,,
지방방송국 개설, 청사신축, 동양에서 최고라던 대 출력 송시시설,,,
전국 각고지에다 중계소 및 난시청 해소사업 등 오늘의 현대화가
되기까지의 시설 운영의 총지휘자였다,
그 어른도 노령에는 어찌 할 수없는 삶,,,,
90여년의 생을 마감 한 것,,,이제 우리들 후배방송인
모두는 깊이깊이 머리 숙여 전무후무한역사적인 거인?
의 명복을 빌면서,,,회상해본다, 외길,,,철저?,,,어른은 잡담
농담도 일체 허용치 않았고, 언제나 빈틈없는 엄한자세....
그 많았던 연회 주석에서도 한시도 여유를 안주어
주변사람이 긴장을 하게한 어려운 ?,,,,
그리고 언제나 방송관련 업무이야기 밖에
모르시던 어르신 이였다, 언제 어디를 가시던 방송을
들으시고, 업무에 참고, 업무지시를 하시는,,,, 지나친 욕심?
독선?,,,, 이제 이승에 가셔서도 그 같은 일을 잊을 수 있을 것 인지?,,,,
굼 굼 하기만 하다, 거년도, 이제 노령이기에 정신력이 흐렸을
거라 생각했는데 청력이 나빠진 것 외는 정신력 체력 조금도
변함이 없이 정겨운 옛날이야기를 하시던 것,,,
호랑이는 죽으려면 그의 굴에 돌아가서
숨을 거둔다고 했다, 회고 해 보니, 자신의 운명을
사전에예상 했음인지, 특별한 나들이,,, 수십 년간 고락을 같
이하던후배들과 자리를 같이 하고, 정담을 나누시며, 3-40년
후배들까지 손을 일일이 잡아보시고 난후, 그 늦은 밤에
방송시설을 돌아보시겠다고 현장안내 요청,,, 시설현장을
둘러보신 얼마 후, 병석에 눕더니 다시 돌아 올수
없는 영면의 길로 가신 것,,,
당시 방송시설을 둘러보시는데 동행
안내 했던 후배의 말,,,“지금도 현대화된 방송시설에
그토록 관심, 잘 알고 게시고 자세한 말씀에 놀았다 ”
고 한말 잊어지지 않는다,
옛날 김활란박사의 임종을 직혀 보던 측근이
눈물을 흘리니,,,그가 했다는 말,,,,, “ 애야 울지 마라,
나는 이 세상에 태여 나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유감없이
하나님 곁으로 가는데왜? 울어,,,찬송가나 불러 다오,,,”
이인관 어르신은 유감없고, 자랑스러운 삶,,,천수를
다 하고이승으로 가신 것 이라고,,,,
그리고 님은 역사상 있을 수 없는?
수십 년간을 같은 직종의 최고위직의 공직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그 어떤 비판적인 말은커녕,
절대적인 존경 그리고 복종,,,,이도
특기 할 사항이라고 말이다,
이제 전무후무할 방송, 기술에 거인은 가셨다,
이제 우리들 후배들이 잊어서는 안 될 일이 있다고
다짐해야 할일은, 공직사회에서 이토록 모범성실, 존경을
받고, 일생을 살아오시고, 그 공적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이다, 여세 출 이라했던가? 유공자, 훈장을 받은 사람,,, 적과
싸우다 죽은 것만이 국가유공자냐? 공직자로서의,,,사회,
기술발전, 시설개선에 공헌한 사실,,,
이는 분명한 국가적인 유공자 인 것,,,,
1960년에 제3회 방송문화상, 1971년에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도 있지만, 어르신의 인격, 공적, 이모두가 부정 할 수 없는
자랑스러운 삶,,,,, 그간 작고한 선배방송인중, 국가유공훈장 또는
후배들의 추모모임 등,,, 이 모두들 어르신과 견주어 생각해 본다,
모든 방송인들이 자랑스러운 거인 선배,,,,우리들은
국가? 사회적인? 예우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다짐해 본다,
2007, 3, 12, 碧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