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

방송 외길인생 이인관선생님(2)

이장춘 2009. 8. 18. 06:27

 

 

 

 

 

 

 

한자리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근무한 공직자도 많지 않을 줄압니다.
 문화공보부에 기감자리가 한 자리밖에 없었으니
1953년부터 계속 15년간 한자리를 지켰고  1968년
7월 25일 KBS에 기감급  자리가 새로생겨  처음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문화공보부와  KBS만 오가며
만 20년간 명실공히 방송기술의 총수였습니다. 

 

 

 

 
1973년 KBS가 공사로 전환되면서
공사 초창기에 다른 분야도 그랬었지만
기술 쪽에 일이  많았었습니다.   KBS종합방송쎈타
 ( 여의청사를 그 때는 그렇게 불렀습니다 )를 건립하고
 김제송신소를 비롯한 많은 송. 중계소를 건립했으며
 지방의 TV방송 실시등과 관련된  지방방송국
청사문제도 해결해야 했습니다.
 
난시청 문제를 조속히 마무리 하는 것도
큰 일이었고요. 그 쌓인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요.    여의도 청사는 그때  기회가 좋았었던 같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남산을 가보니 저런 곳에서 일하던
때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여의도
 개발과 소래송신소 이전이 거의 동시대에
 이루어졌습니다.
 
김현옥 시장이 여의도를 개발 하는데
그 때만 해도 거기에 누가 가려고 했습니까?
땅 한평에 30,000원씩 200평 단위로 분양했는데
 분양이 잘 안됐습니다.  이곳을 개발하고 있던 서울시는
  KBS가 온다니 반가웠습니다,  KBS에는 연희송신소
부지와 교환 조건이  제시 됐지요   이것으로
여의도 개발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KBS도 잘 되었고요.
 
KBS가 여기에 야심찬 건물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21층으로 거창한 청사를 짙게 되는구나
 생각 했습니다.  당시 일본 NHK종합센터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것이 바뀌더군요.
알고 보니 국회 주변의 모든 지역이 고도 제한에
걸려 건축높이가 제한된  것입니다. 지금도 본관 쪽과
별관 쪽은 허용된 고도가 달라서 땅값도 다릅니다. 
 
이때 건립된 김제 송신소도 엄청난
규모입니다.  기계도 엄청나지만 부지가 무려
14만평입니다.     돈도 돈이지만 땅을 확보하는데
 또 기계 들여 오는데 엄청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송신소는 대일 방송을 주 목적으로 했지만
당시는 북한 방송을 막는 것도    큰 목표였으므로
두가지 큰 목적달성을 위하여 세워진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진척이 잘 되었습니다.
 
종합방송건립이나 김제송신소 건립등
 이 나라 방송이 시작된 이래 시설로서는 가장
크고  중요한 시설인데  이런 일들이  1975년과
1976년 사이에 이루워졌고 곧이어 1,500Kw의
당진송신소 건립을 착수했습니다.  
 
부산은 좀 앞서서 TV자체방송을 했지만
다른 도청소재지 방송국은 1978년에  자체방송을
 실시했습니다.  이처럼 여러가지 규모가 큰 일에 온 정력을
 다 바쳐 공직의 마지막을 장식 하면서 1979년 
KBS를 더나시게 됩니다
 

 

 
 공직에서는 떠나셨지만 또 다른 공직
 KBS사우회 구성때부터 참여해서 4년간의
회장직을 맡아 봉사 해 주셨습니다. 방우회 원로회원으로
여러 활동을 해 주셨고 특히  일본에 있는 조방회와
교분을 쌓는일에 기여 해 주셨습니다.
 
두주불사로 알려지신 님은 건강은
타고 나셨지만 2006년 12월 어느날 뜻밖의
사고로 건강에 이상이 생기셔 결국 2007년 3월 23일
 KBS사우회 총회날  세벽에 세상을 뜨셨습니다.
 
선생님은 오직 방송 그중에서도
방송기술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1956년 노창성 방송관리국장이 세상을 뜨셨을때도
그 자리에 오를 수있는 적임자로 지목되었지만  끝까지
방송기술인으로 남기를 바라서그 자리는 다른분이
맡았을 정도로 방송기술만을 생각하며 
외길인생을 사신분입니다. 
 
그분의 뜻을 기리는 후배들은 
선생님의 뜻을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해
스스로 기금을 모아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금곡리
 산 45-1번지 남한강 공원묘원 기념비를 세우고  2009년
8월 14일 많은 후배 방송인들이  선생님의 묘소를 찾아
기념비 제막과 추도식을 올렸습니다.
 
  가신님의 명복을 빕니다.  
 
 

 

 

  

 

 

방후회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산유화 - 조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