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12월 15일 오후 6시! 최초의 민영방송 첫 방송, 창사 특집드라마와 성경공부, 축하음악회, 어린이시간 등, 이 방송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4시간 30분의 창사 특집방송이 울려 퍼졌다. 최초의 민영방송 기독교 방송 HLKY (2-방송 편)KBS에서 활동하던 박화목을 교양과장으로 이보라를 연극과장으로 영입 하면서 출발한 CBS 기독교방송은 종교방송을 주축으로 하면서도 수준 높은 드라마와 음악방송을 편성 신선한 충격을 주면서 청취자들의 관심을 끌어 시청률을 높여 나갔다. 창사특집 편성표 창사특집 박학림 작 귀로에 이어 창사 때부터 드라마에 역점을 두어 1955년의 대원군, 1957년부터 방송된 한운사 작 “이 생명 다 하도록” 조남사작 “수정탑”등의 멜로드라마는 청취자들의 마음을 끌었고 특히 KY에서 출발한 주태익은 KY성격을 잘 보여준 「루터런 아워」등 수많은 명작으로 KY 위상을 높이며 대작가가 되었다. 이보라, 민구(윤인자 남편) 등 연출가가 활동했고 복혜숙, 윤인자, 장민호 등 연극, 영화, 방송에서 두각을 보여준 원로성우들이 출연하면서 자체 성우도 선발 양성 해 나갔다. CBS초기 두 명의 성우를 뽑는데 200여명의 지원자가 모여들 정도로 인기가 있어서 정은숙, 임옥영, 맹관영 (뒷 날 TBC, KBS 명 아나운서) 등은 타 방송사에서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성우를 배출했다. 위 조남사 작 민구연출, 서월영 윤인자 출연 수정탑 아래 왼쪽부터 김범석, 윤인자, 주상현 위 강효실 아래 전원주 위 : 1957년 KY 일일 연속극 이 생명 다 하도록 작가 한운사, 출연 백민, 김성원, 김영배, 유기현 아래 : 윤인자, 주상현, 천선녀, 임옥영 위 : HLKY 초기 성우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 들이 함께 한 사진이다. 좌로부터 정건우, 맹관영, 임옥영, 한경돈, 정은숙 , 김영배, 연출 : 홍석진 아래 왼쪽부터 전원주, 두분 넘어 임옥영, 맹관영 한분건너 연출 : 이보라 KY가 80회 또는 120회의 연속 멜로드라마를 방송하면서 KBS드라마와 함께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라잡기 시작, 1960년대의 또 다른 새로운 민영방송이 출현하고, 라디오방송 전성시대를 맞으면서 드라마는 방송의 꽃으로 불렸다. CBS 출신 성우 김성원, 이우영, 유기현, 김영배, 정은숙, 천선녀, 유병희, 서계영, 임옥영, 나옥주, 맹관영 (위) KY 뮤직홀 내부, (중) 개소때의 뮤직홀 (아래) 음악 스튜디오 KY에서 단연코 많은 비중을 차지한 방송은 음악이었다. 국내에서 레코드 제작이 어려웠던 시절 미국에서 질 좋은 대량의 LP판을 들여와 청취자들의 호응을 받으면서 음악 프로그램 60%를 넘을 때도 있을 정도로 중시되었고 제한된 시간의 방송만으로는 청취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웠기에 국내에서는 최초로 대규모 뮤직홀을 세워 수준 높은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KBS가 LP 레코드를 직접 만들어 보급 하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위 창경원에서의 공개방송 아래 KY 국악의 향기 초창기의 KY뉴스는 KBS를 받다가 1958년부터 동화통신 등 타 언론사와 제휴 하는 한편 미국 VOA를 중계 방송하다가 4.19가 일어나자 KBS가 국영방송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KY는 바른 보도를 통해서 전 국민의 사랑받는 방송국으로 발돋움했다. 종로 2가에 자리하고 있던 KY건물에서 바라다 보이는 광화문과 종로의 시가행진 모습을 보면서 모든 직원들은 뉴스현장으로 뛰었고 통신이나 신문 등을 방송 그 속보성을 바탕으로 청취자를 끌었다. 발음이 정확치 않아도, 문 법이 틀려도, 방송에 잡음이 실려도 급변하는 소식에 목말라하는 국민들은 이 방송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이렇듯이 4.19는 KY위상을 한층 더 높였고 60년대 민영방송 경쟁대열에서 기독교를 배경으로 한 KY 보도는 돋보였다.. 보도방송의 진가를 알게된 CBS는 1962년 방송부에 보도실과 아나운서실을 신설하고 뉴스를 정기적으로 방송했다. 그러나 재정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 오기 시작했다. 미국 뉴욕에 있는 RAVEMCO. 방송 전도담당 매스컴 위원회 지원으로 운영 되었지만 60년대 들어 지원이 감소 된대다가 민방의 출연으로 청취자까지 잃게되자 광고방송을 추진해서 1962년 9월 12일 광고 허가신청서를 제출 받아들여져 1963년 4월 12일부터 전체방송시간의 30% 이내로 광고방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위 : 어린이 동화대회에서 우승컵을 주고있는 오재경 이사장 아래 : 70년대에 KY 가 배출한 두 세계적인 음악가 정경화 : 조수미 외국인이 방송국 대표가 될 수 없다는 법률개정에 따라 감의도님이 방송일선에서 물러나고 잠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1970년 들어 경영과 방송을 겸비한 오재경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무보수 특별봉사를 표방하고 노력을 기울임에 따라 KY는 국민 곁으로 한 발자국 더 다가섰으며 보도 논평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많은 보도기자를 새로 뽑고 내용이 쇄신되었으며 유신독재 하에서 언론들이 숨죽이던 때도 KY는 갈 길을 갔다. 보도방송시간도 50분대의 10분간의 방송에서 30분대의 30분간의 방송으로 늘렸다. 그러나 1970년대 말의 10.26과 5.18을 지나 신군부의 독재가 강화되면서 1980년 11월 언론 통폐합의 물결에 휩싸이고 모든 방송이 KBS로 일원화되면서 KY의 보도기능도 상실되었다. 1980년대 후반의 민주화와 더불어 KY의 보도기증도 회복되어 1988년 1월부터 보도국이 부활되고 뉴스방송을 실시했으며 6월부터는 스포츠 방송도 다시 시작되었다. CBS 관련 글 더 보기 영문자 클릭감의도 디켐프(Edward Otto DeCamp), CBS 기독교방송 창설자 http://blog.daum.net/jc21th/17782139 최초의 지역 민영방송 CBS 대구 기독교방송 HLKT 개국 그때 그 얘기 http://blog.daum.net/jc21th/17780936 CBS 기독교 초기 방송역사 다큐멘터리 (1) 루터란 아워 다이얼 Y를 돌려라 http://blog.daum.net/jc21th/17782140 CBS 기독교 초기 방송역사 다큐멘터리 (2) 노익중님 http://blog.daum.net/jc21th/17782141 CBS 기독교방송과 오재경 전 공보부장관
방송작가 주태익 이것이 인생이다. 판소리 성서 박서림 이희복 김광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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