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 100.3MHz, 관악방송과 춘하추동방송 방송역사 이야기 두 번째 시간 위 동영상은 방송내용이고 아래 글은 이성화 아나운서님이 위 방송내용을 글로 담아 님의 블로그 '푸른하늘'에 올려놓은 내용을 옮겼습니다. , 관악방송 안병천 대표
~~~ 인생은 아름다워 ~~~
이(이성화, 이하생략) 오늘 스튜디오에 모신 두 분 이십니다. 춘하추동방송 대표 이장춘국장님과 관악공동체라디오 대표 안병천 님 이십니다. 어서 오세요.
이 : 지난 월요일에 방송 시작 초창기 아나운서 얘기하다가 오늘로 이어 지는데요
이장춘 ; 이옥경 아나운서, 우리나라 최초의 아나운서로 1926년에 시험방송 때 들어와 2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 개국방송을 했습니다. 제 블로그에 가시면 소상히 있습니다. 초등학교때 그림도 있고 아버지 가족, 얘기까지 다 올려놨어요. 이장춘 : 네, 그 내용을 올려놓으니까 사람들이 놀래요. 아버지는 엔지니어로 우리나라 최초 방송국 경성방송국을 세우고 경영으로 돌아 경성방송국 경영의 최고책임자 사업부장을 했고 조선인으로는 최초로 함흥방송국장을 했습니다. 해방되고도 중앙방송국장을 하면서 6.25를 맞았고 전쟁이 끝난 후 공보부 방송관리국장을 하다가 세상을 뜨셨습니다. 어머니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나운서였으니 그 아버지,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월간조선 인터뷰 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이 글을 이옥경 모교 인천여고 총 동문회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수많은 댓글도 달면서 소중한 얘기로 관리되고 있더군요. 이 ; 그럴 거예요. 나와 관련된 옛 얘기는 누구나 흥미를 느끼거든요. 그리고 아마 안병천 대표의 따님도 훗날 이 스튜디오에서 아빠 무릎에 앉아서 장난감 갖고있는 사진보면 재미 있을 거예요. 3년 전이었는데요. 그때 3살이었죠?
안병천 : 네, 지금 6살 됐습니다. 재롱은 지나갔고 욕심 부리고 떼쓰는 미운 6살 하 하 . 이; 제가 사진 찍었잖아요. 엄마가 바쁠 땐 아빠가 돌봐 주는 현장이 좋은 기록이 될 것 같았습니다.
안병천 ; 저는 무심했는데 밖에서 볼 때는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 ; 왜냐하면 아내의 일도 생각해주고 가정 협력 이라는 좋은 사실이어서 순간 기록으로 찍었죠.
이 ; 여기 관악라디오는 기계가 어떤가요?
안병천 ; 아날로그하고 디지털 기기를 혼용해서 쓰고 있습니다.
이 ; 한 3,4년 전까지만 해도 FM전파로만 들을 수 있어서 가청 지역이 관악구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지금은 스마트 폰으로 전 세계에서도 접속이 열리니까 답답함이 사라졌어요.
이장춘 ; 그리고 지역적으로도 그것이 관악공동체 라디오가 하는 역할이라는 점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안병천 ; 지금은 업계에서 인정합니다. 들으시는 분들이 음악이 나오면 어딘지 모르고 듣다가 ‘어디지?’하면서 관악라디오구나 하고 알게 되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장춘 : 그러니까 청취 방법이 다양 해 졌으니 관악방송이 청취자도 늘고 친근감도 더해져 널리 알려졌지요. 그동안 방송 출연자나 조력분들이 얼마나 되시는지 통계가 있습니까. 인원이 많죠?
안병천 ; 12,700분 들이 오셔서 방송 관련 일을 관여 하고 다녀 가시구요. 2만명 정도의 분들이 참여 하셨습니다.
이장춘 ; 그러면 여기 관악구의 인구가 50만 명인데 숫자로는 25명 중 1명은 관악방송을 다녀 간 샘이니 이제 관악구민 대부분이 관악방송을 알 수 있게 되었겠네요.
안병천 ; 그래서 헷갈리는 분들이 있어요. 이거 관악구청에서 운영하는가? 하구요. 저는 옛날 방송에 보면 많은 경험 중에 어떤 것이 방송 에서 중요한지 말씀하신 내용들을 생각 해내고 있어요.
이 ; 이장춘 국장님도 느낌이 있으시죠?
이장춘 ; 우선 관악구민이 ‘우리 방송이다, 내 방송이다’ 하는 생각을 갖고 함께 해가는 방송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받는 방송국, 그러기 위해서 구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방송국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 아, 우리방송 이라는 말씀을 하시니까 제가 옛날 부산문화방송 때 일이 생각나네요. 부산문화방송이 1960년에 일어난 3.15 부정선거 마산 학생 데모 때 HLKU 깃발을 단 문화방송 차량을 보고는 흥분한 시민과 학생들이 에워싸면서 ‘우리방송, 우리방송’했답니다. 그만큼 신뢰와 사랑 받은 것이죠.
이장춘 : 그 방송이 1959년 개국 하고 1960년 3.15 부정선거 때 마산에서의 일인데 말하고 싶은 것은 그때까지 내 방송이라는 것은 없었다는 거예요. 정부가 운영하고 소속된 분들도 공무원이다 보니 정부에 반하는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국영방송은 국민의 방송 이라는 말을 듣기가 어려웠습니다.
안병천 ; 좋은 말씀 듣습니다. 「국민의 방송」,「우리방송」, 「나의 방송」 이런 충실함이 중요한 방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장춘 ; 그렇게 청취자, 시청자가 느끼고 좋아하는 방송이어야지요.
이 ; 방송 철학을 생각하게 하는 대화로 들립니다. 노래한곡 듣고 하겠습니다. 희망곡을 주시지요.
이장춘 ;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윤심덕의 사의찬미를 듣고 싶습니다. 흔히 윤심덕 하면 ‘사의 찬미’를 생각하는데 윤심덕은 그 시절 최고의 성악가로 나이 30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음악활동을 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일본에 건너가서 취입한 곡이 ‘사의 찬미’인데 돌아오면서 현해탄에 빠져 세상을 떴지요. 그래서 윤심덕이 세상을 뜬 뒤 발표된 노래는 윤심덕의 마지막 곡이기도 합니다.
이 ; 제가 젊은 시절 아나운서 할 때 많이 들었습니다. 이장춘 춘하추동방송국장님은 역사를 살피시면서 많은 자료를 올리시는데 그런 작업시간에 언제 주무십니까? 희망곡 듣고 얘기하겠습니다.
사의 찬미 - 윤심덕
이장춘 : 저는 외국과도 수시로 접촉, 소통하는데 미국이나 유럽은 우리와는 밤과 낮이 반대 아닙니까? 한번은 영국에서 새벽에 카톡이 왔어요. 거기는 낮이니까 보내고 나서 아차, 시간대가 반대지! 생각나니까 곧 전화가 왔어요. 미안하다고요. 잘못 갔다고요. 그래서 그럴 수 있다고 하니까 얼른 끊으려고 하기에 ‘아니라고, 전화는 돈이 많이 드니까 와이파이를 이용해서 하자고 한 시간 넘게 통화한 적도 있고요.
이 ; 이장춘 국장님은 기술 범위를 넓게 아시니까 즉각 방향을 잡으셨네요. 그런 방대한 방송 역사 자료를 모아 주셔서 KBS사우회 30주년에 감사패를 받으셨지요.
이장춘 ; 네, 제가 모은 자료를 빌려달라고 해서 기한 없이 조건 없이 가져다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이 ; 안병천 대표님도 더 발전적 생각을 하시겠어요.
안병천 : 네 , 국민의 입장, 관악구민을 생각하는 ‘우리들 방송’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하고 올해는 이런 스튜디오를 주민들에게 더 다가가는 노력과 . . 그래서 밖에서도 주민들을 만나고 힘써야죠. 이장춘 : 구청에서도 행사가 있으면 참여해서 페이스 북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생방송으로도 참여하고. 공개방송도 하고...
이 ; 비영리 방송이라서 봉사인원 동원에도 한계가 있는 애로사항이 있으리라 여겨지는 부분도 짐작되네요.
안병천 ; 말씀 듣는 중에 몇 가지가 마음에 크게 와 닿습니다.
이장춘 ; 앞으로 차곡차곡 쌓아 가시면 될 것이고요. 잠간 KBS사우회가 운영하는 사이버박물관 얘기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 신문박물관, 철도박물관 등 다른 박물관은 많지만 방송은 역사박물관이 없어요. 그래서 30년 된 사우회가 제 춘하추동방송 블로그를 기반으로 지난 6월 1일부터 사이버 방송 박물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어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이성화’ 치면 줄줄이 나오고 ‘안병천’ 치면 또 줄줄이 나오고 하는 것이죠.
이 ; 제가 그런 면을 생각해서 관악공동체 라디오 안병천 대표와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국장님의 음성도 담고 싶었습니다.
안병천 ; 네, 아까 말씀 하신 내용들 소중히 기억하면서 나아가겠습니다.
이: 오늘 두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다음 월요일은 단파방송 이야기를 듣기로 하겠습니다.
희망곡 듣습니다. 빈센트- 돈맥클린 오늘의 끝노래는 봄날은 간다 - 김윤아 이정부 아나운서님 글
관악FM이 모처럼 마련, 만시지탄이 있으나 한국 방송의 묻힌 사료의 재발견(사이버 박물관)에 앞장서고 계신 이장춘 방우회 이사님이 초청 출연하시고, 방송을 통해 지역민의 행복을 찾아주고자 영일이 없는 안병천 관악방송 대표님이 자리를 함께하신 가운데 마이크와 함께 한국 방송의 주요 역사를 써오신 이성화 아나운서 대 선배님이 진행하시는 듣고 보기 힘든 역사적인 방송 "인생은 아름다워(6월10일자)"...지난 6월 관악의 아담한 스튜디오에서 나누신 흥미와 유익을 겸한 대화를 오늘에야 접하고 진한 감동에 젖습니다.
정말로 한자리에서 말씀 나눠야 할 분들이 만나셨다는 느낌입니다., 웃음속에 나누신 짧지만 심금에 와닿는 내용은 " 이것이 방송이로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을 갖게 합니다. 아담한 스튜디오에서 머리를 맞대고 나누신 경쾌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씀 가운데, 세살 박이 어린 따님을 안고 출근, 아기를 보며 방송사 대표 업무를 지휘하신 일은 한국 최초, 아니 세계최초의 방송역사로 생각됩니다.
그 한가지 일로만 미루어 봐도 관악공동체 라디오가 지향해 갈 아름다운 내일을 짐작할 수가 있겠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세 분께 마음으로나마 감사드립니다.
어제 관악을 다녀와서
10월30일 아나운서 南草 이정부 드림 관악방송과 춘하추동방송(1) 출연 안병천·이장춘·진행 이성화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3375 지금까지 기획, 진행 이성화 기술, 편집 김우신 프로듀서였습니다..
이 방송은 방송진흥위원회와 시청자 미디어재단의 후원으로 제작됐습니다. . . ~~~[출처] ~~ .
2019년6월10일.이장춘.안병천님 출연.FM100.3Mhz관악공동체라디오. 쾌지나 청춘|작성자 푸른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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