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강경화와 방송인들, 정동영 국회의원과 전 국회의원 전여옥이 말하는 강경화

이장춘 2017. 6. 14. 02:14

 



 동영상은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에서

 방송된 내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7년 6월 8일 (목) 오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전여옥 전 의원


아래 영문자를 클릭하시면

글로 된 기사와 기사를 읽는

목소리를 함께 들으 실수 있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79&aid=0002975788&sid1=001





강경화! 강경화는 외교부장관

지명자이기 전에 방송인의 딸이었고

그 자신 방송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국제무대

에서 활동 해 오다가 외교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입

니다. 그래서 방송인들은 강경화에 대해 아는 분들이

많고 또 관심이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강경화를  잘

 아는 방송인들의 글을 모아 올린 적이 있어서    

글이 포함된 "강경화  외교부장관 지명자 삶과 

인생역정'의  글을 연결했습니다.


더 말씀 드릴것은 강찬선 아나운서가 

 살던시대에 아나운서는 공무원으로 그 시대에

 공무원들이 그랬듯이 아나운서 생활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온 공무원 분들은

 이해 하시겠지만   오늘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가실런지 모릅니다. 아나운서 가운데는 생활고로

자살하신 분도 있을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꾸려

갔습니다. 그래서 1951년 강찬선 아나운서와

  동기 아나아운서인 황우겸 아나운서가

쓴 글 한편을 연결했습니다.

 






정동영의원이 보는 강경화






방송과 문화를 주제로 하는

춘하추동방송은 정치와는 무관합니다.

이 글 역시 방송인 강경화에 관한 얘기여서

방송인과 함께 하는 입장에서 사실을 사실대로

알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글임을

 이해 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래 글 역시

강경화를 아는 한 선배 방송인이 보내

오신 글을 인용했습니다.   





대미, 대북, 대중 관계에 관련한

경험과 수행 능력이    부족하단 말에

 어처구니가 없을뿐이다.   정반대다. 그럼

이나라에  어느 누가 대미,  대중,  대북한 외교

경험이있는지 나와보라고 반문해야한다.  어느 누가

미국, 중국, 북한 근처에 가보기라도 했냐 는 말이다. 이미

외무부 국장까지 지냈으며   역대 외무장관 치고 국제관계에

 이만큼 경험과 지식을 축적 한사람 있는가?  이나라에 이만큼

 영어유창한 인사, 세계외교의 본산인 UN에서 다국간의

이해와 선린과 이념,  인권을  고위간  접촉으로나

실무적으로나 이만큼 다루며  경륜을 쌓고
국위를 높인 인사가 있는가 묻고 싶다.


그것도 모든 선진국에서
여성 지도자가 속속 출현, 자국

 이익과 세계평화와 공존을 위해 헌신하는

 이런 시대에 이런 인재를 찾아내기 는 커녕, 잘

일하고 있는 분 힘들게 찾아내 어렵게 모셔온 인재를

전혀 파악 활용도 못하면서       보좌진이 여기 저기서

조사해다 준 자료로 폄하하기만 하는 행태는실망스럽다
그 인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면 적어도
 그가 근무

했던 KBS에  와서 아버지 고 강찬선 아나운서와

강경화 영어 아나운서 겸 pd가  어떤 인재였

는지 물어보라. 시간이 아까워 늘 회사

내에서 뛰어다녔던 후배였다.  




전여옥 전 국회의원의 페이스 북 글

2017년 6월 8일 오후 12:18



정말 이런 글 다시 쓰려고 하지 않았는데--

망설이다가 씁니다.


저로서는 참 드문 일이지요.

어제 강경화후보자의 청문회를 지켜봤습니다.

한 나라의 외교수장이란 워낙 막강한 자리이므로

저로서는 지긋지긋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날선 혹은 흠결잡기 검증까지도 이해합니다.


‘남편과는 경제적으로 분리됐다?’


‘그래도 아버지가 KBS아나운서인데 부모를 부양?’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냐고 청문회장은 물론이고

언론도 여론도 그렇게 돌아가고 있네요.

비난을 듣는 제 가슴이 솔직히 아팠습니다.

저는 타인의 사생활을 존중합니다.

그래서 되도록 입을 다뭅니다.


강경화후보자에 대해서도 사생활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아는 분이 아니고 또 제가 일부 아는 사항도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강경화후보자가 ‘거짓말장이’가 아니라는

사실은 꼭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그녀와 바로 옆부서에서 일했던

80년대 중후반-약 3년동안 저는 그녀를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일종의 제 습관이고 취미였습니다.


제가 캐묻지 않아도 무심코 나오는 말들이 있었어요.

‘남편과 생활비를 절반씩 정확하게 나눠 낸다.’는 말이었죠.

각자 벌어서 생활비를 딱 반으로 낸다는

당시로서는 좀 ‘혁신적인(!) 부부’였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이 좋아하는 오디오를 사는데 그 비용도

반씩 낸다고 했어요.

제가 ‘오디오는 남편이 좋아사는 것인데

왜 반씩 내나요?’했더니

‘그래도 한 집에서 같이 듣잖아요.’라고

답한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때 여자후배로서 남편이 좀 얄미웠습니다.

남편이 더 안정되고 좋은 직장에 있는데 생활비는

가장이 내야하지 않나 싶어서였습니다. ㅎㅎ

왜냐면 보면 알지요. 그녀가 풍족한가,

혹은 사치를 부릴 여력이 있는가를—여자들은 압니다.


제가 전에 그녀가 맨날 청바지에

 티셔츠차림이었다고 썼지요.

정신없이 돈을 벌기위해서 다른데

외모를 치장할 여유도, 여력도 없는

 것을 저는 눈치챘습니다.


저는 어제 또 하나의 제가 모르던

사실을 알았습니다. 친정아버지의 빚을

떠 안았던 사실을요. 부양해야 했구요.

그 아버님, 방송계에서 빛나던

 원로아나운서였습니다.


그렇지만 방송국에 있던 사람들

진짜 놀랄 정도로 세상물정 모릅니다.

퇴직하고 사기당하는 사람 참 많습니다.

그 아버님처럼 선하고 점잖으신 분 대

상이 되기 딱 알맞지요.


강경화 후보자-결코 불쌍한

 부모봉양하는 효녀코스프레 하는 것

아닙니다. 거짓말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복잡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구요. 아마 남편과

완전 독립된 경제역시 친정부모의 빚가림도

그 원인이 분명 됐을 겁니다.


저는 이 글이 강경화후보자의

 사생활을 드러내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참 최선을 다해 고생하며 살아온 여성인데

거짓말장이라는 말까지 들으니 제가

가슴이 아파서 썼습니다.

그리고 저도 한때 사업이

크게 망한 아버지의 빚을 꽤 많이

갚았던 딸만 있는 집 맏이로서 그녀의

 처지가 공감돼 이 글을 썼습니다.

강경화 후보자---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관련 글 보기



강경화 외교부장관 지명자 삶과 인생역정 

http://blog.daum.net/jc21th/17783175

 

최초의 방송중립화 선언 (1960년)과 황우겸 원로아나운서의 비원

http://blog.daum.net/jc21th/17782556


아나운서 한길로 살다가신 강찬선

http://blog.daum.net/jc21th/17780891

 

강찬선, 임택근, 황우겸  / 1951년 입사 동기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0813

 

강찬선 아나운서의 평양방송 재직시절 회고담

http://blog.daum.net/jc21th/17780931

 

아나운서 강찬선 회고록, 부산방송 피난시절

http://blog.daum.net/jc21th/17780861

 

강찬선 아나운서 방송회고록 / 1964년, 미국의 소리 방송 (VOA) 부터

http://blog.daum.net/jc21th/17780932


아나운서 강찬선의 그 일대기(회고록 종합편)

http://blog.daum.net/jc21th/17780079




강경화 아버지 강찬선 화보




붉은 0안 강경화 10살때

1964년 강찬선 아나운서가 VOA

파견 아나운서로 떠나던때 김포공항에

 환송 나온 아나운서왼쪽부터한사람건너

 김주환, 한사람건너 김정자, 전영우, 임택근,

강찬선, 송한규 그리고 강경화 양을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한

사진입니다.

.




강찬선 아나운서가 그 시절 방송인

 최고의 영광, 1963년 제6회 방송문화상을

받았습니다. 위는 방송문화상 수상자와 김성희

공보부장관이 함께 한 사진으로 1 손석우, 2 박능상,

3 강찬선 4 임성희장관, 5 이운용, 6 고은정, 주태익님

이고 아래는 그때의 아나운서들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1.배덕환, 2.김주환, 4.임국희. 7.이병열, 8.최승일,

9.김인권, 10.전영우, 11.임택근, 12.강찬선,

13.이규영, 14.이팔웅, 15.길종휘,

17. 인주희 아나운서입니다.




부산 피난시절의 강찬선 아나운서


강찬선, 이현숙, 윤영중, 문복순 아나운서



 1.송석두, 2.이현숙, 3.문복순  4.강찬선, 5.민병연, 6.송영필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입니다 





장기범아나운서가 보도부문의

제1회 방송문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날

시상식이 끝난후 장기범 아나운서와 1.최계환,

2.강익수, 3.김인숙, 5.윤길규 방송과장, 7.문복순,

8.민병연, 9.강찬선, 11.이규영, 12.황우겸

아나운서가 함께 한 사진입니다.





1957년 연말특집 아나운서 언파레이드

 마치고 촬영한 사진으로 문복순 아나운서가

입사한후 최초로 촬영한 사진이기도 합니다. 앞줄

오른쪽부터 장기범, 민병연, 강영숙, 황우겸, 김인숙,

최세훈, 송석두, 윤영중, 이현숙, 장금자, 송영필, 뒷줄

왼쪽부터  박종세, 광재, 임택근, 강찬선, 임동순,

문복순,  강익수,  최계환.  하얀색이 1957년

신입사원으로 5명 모두 참여했습니다. 






1958년 연말특집 아나운서 언파레이드를

 마치고 촬영한 기념사진으로앞줄 왼쪽부터 송영필,

강익수, 장기범, 임택근, 박종세, 최세훈, 이규영, 강영숙,

전영우, 황우겸, 유석춘, 강찬선, 김동만, 최계환, 최두헌,

문복순, 장금자, 유창경, 김준철, 최만린, 이현숙, 윤영중,

조영준, 이본, 이광재, 한경희 아나운서이고 아래는

1959년 강찬선 아나운서 지휘를 합창을

하는 아나운서들입니다.





 

강찬선, 황우겸, 임택근, 이수열

 1951년 동기 아나운서다 왼쪽부터  이상만,

 황우겸,  임택근, 강 찬선,  문시형,  이수열,

흥안, 조부성. 김영우님이 함께 한 사진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