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영은 조선시대에 각도의 관찰사(觀察使:監司)가 정무를 보던 청사로 위는 강원감영 오늘날의 도면이다. 평양, 전주감영과 함께 원주 강원감영은 조선 500년 동안 한곳에 머물러 그 흔적을 고스란히 알 수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원주·전주·평양의 감영을 제외하면 한곳에 계속 있지 않고 소재지의 변천과 도시화 등으로 그 본래의 형태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 이곳은 그 역사적 가치가 높아 2002년 3월 9일 사적 제439호로 지정되었다. 이 강원감영을 KBS사우회 여성위원회 (위원장 이인숙)가 2017년 4월 17일 찾았다.
원주 강원감영 역사탐방 사적 제 제439호 강원감영의 건물들은 1750년대에 편찬된 『여지도서 (輿地圖書)』의 ‘관찰영(觀察營)’ 항목에 건물의 동수(棟數)와 칸수[間數]가 기록되어 있다. 4대문을 각각 하나의 건물로 볼 때, 선화당을 비롯하여 객사(客舍), 포정루 등 총 31동 509칸이었다. 1830년대에 편찬된 『관동지(關東誌)』 ‘강원감영 영지 (江原監營 營誌)’의 기록을 통해서 보면 총 33동 450칸으로 관풍각의 칸수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1875년에 강원감영의 건물은 43동 459칸으로 비교적 정확하게 규모를 알 수 있고, ‘1893년 중기(重記)’의 기록 등을 감안하면 19세기 말 강원감영에 있던 건물은 적어도 50동 670칸 규모인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민속신앙사전: 마을신앙 편, 2009. 11. 12., 국립민속박물관 도면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선 화 당 강원감영 청사로 사용된 선화당은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단층이며 팔작지붕이다. 선화당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원주목사 이후산이 1667년(현종 8)에 완공하였다고 전해진다. 내부는 네 방향에 내진주(內陳柱)를 세워 모두 툇간으로 달았으며,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내 아 길다란 관리사 문(위 사진)을 통해서 들어오면 선화당 옆에 내아가 있다. 온돌방과 창고가 함께 있는 민도리 계통의 ‘ㄱ’자형 목조 기와집인 청운당이 있는데 후대에 옮겨지어진 건물이다. 행 각 현재 사료관으로 쓰이는 건물이다. 위는 행각 앞에서 촬영한 사진으로정문 포정루, 선화당과 내삼문 등이 한눈에 보인다. 포 정 루 선화당의 정문인 포정루는 2층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초익공집으로 팔작지붕에 겹처마이다. 1667년 선화당이 건립될 때 같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6·25전쟁으로 파손되어 다시 보수하였다. 문루(門樓)는 직사각형 초석(礎石) 위에 민흘림기둥 이고 2층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주위에는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돌렸으며 궁창부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내삼문 (징청문) 화 보 감영 안에 새워진 비석들 KBS사우회 여성위원회(위원장 이인숙) 함께 하신 분 이인숙 위원장, 또 원주에 사는 김주혜, 김윤한 아나운서, 신윤규 KBS사우회 강원지회장과 서울에서 간 김규은, 남청점, 문인수, 박창학, 이영수, 이정희, 최명락, 황인우 회우(가나다 순) 관련 글 보기 봄비 오는 날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봄날은 간다. http://blog.daum.net/jc21th/17783146 박경리 토지문학관 탐방 원주 http://blog.daum.net/jc21th/17783147 치악산 구룡사를 다녀오다. http://blog.daum.net/jc21th/17783149 http://blog.daum.net/jc21th/17783150 원주 강원감영 역사탐방 사적 제 제439호 http://blog.daum.net/jc21th/1778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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