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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강원감영 역사탐방 사적 제 제439호

이장춘 2017. 4. 22. 05:44

 



감영은 조선시대에 각도의

 관찰사(觀察使:監司) 정무를 보던

 청사로 위는 강원감영 오늘날의 도면이다. 

평양, 전주감영과 함께  원주 강원감영은 조선

500년 동안 한곳에 머물러 그 흔적을 고스란히 알 수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원주·전주·평양의 감영을 

제외하면 한곳에 계속 있지 않고    소재지의 변천과

도시화 등으로 본래의 형태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 이곳 그 역사적 가치가 높아   2002년

3월 9일 사적 제439호로 지정되었다. 

 강원감영을 KBS사우회 여성위원회

(위원장 이인숙)가 2017년

 4월 17일 찾았다.

 


원주 강원감영 역사탐방 사적 제 제439호



강원감영의 건물들은

 1750년대에 편찬된 『여지도서

(輿地圖書)』의 ‘관찰영(觀察營)’ 항목에

 건물의 동수(棟數)와 칸수[間數]가 기록되어

 있다.    4대문을 각각 하나의 건물로 볼 때,

 선화당을 비롯하여 객사(客舍), 포정루

 등 총 31동 509칸이었다.


 1830년대에 편찬된

『관동지(關東誌)』 ‘강원감영 영지

(江原監營 營誌)’의 기록을 통해서 보면

총 33동 450칸으로 관풍각의 칸수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1875년에 강원감영의 건물은 43동

 459칸으로 비교적 정확하게 규모를 알 수 있고,

‘1893년 중기(重記)’의 기록 등을     감안하면

 19세기 말 강원감영에 있던 건물은 적어도

50동 670칸 규모인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민속신앙사전:

 마을신앙 편, 2009. 11. 12.,

국립민속박물관



도면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선  화   당



강원감영 청사로 사용된

선화당은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단층이며 팔작지붕이다.   선화당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원주목사 이후산이

1667년(현종 8)에 완공하였다고 전해진다.

내부는 네 방향에 내진주(內陳柱)를 세워

 모두 툇간으로 달았으며,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내    아



길다란 관리사 문(위

사진)을 통해서 들어오면 선화당

 옆내아가 있다. 온돌방과 창고가

함께 있는  민도리  계통의 ‘ㄱ’자형

 목조   기와집인  청운당이 있는데

후대에 옮겨지어진 건물이다.







행    각



현재 사료관으로 쓰이는 건물이다.








위는 행각 앞에서 촬영한

 사진으로정문 포정루, 선화당과 

내삼문 등이 한눈에 보인다. 



포  정  루



선화당의 정문인 포정루는

2층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초익공집으로   팔작지붕에 겹처마이다.

1667년 선화당이 건립될 때 같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6·25전쟁으로 파손되어 다시 보수하였다.

 문루(門樓)는 직사각형 초석(礎石) 위에 민흘림기둥

이고 2층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주위에는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돌렸으며 궁창부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내삼문 (징청문)







화    보









감영 안에 새워진 비석들




KBS사우회 여성위원회(위원장 이인숙)

함께 하신 분


 이인숙 위원장, 또 원주에

사는 김주혜,윤한 아나운서,

신윤규 KBS사우회 강원지회장과

 서울에서 간 김규은, 남청점, 문인수,

박창학, 이영수, 이정희, 최명락,

 황인우 회우(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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