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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최무룡 황정순

이장춘 2016. 7. 9. 18:51

 


최은희, 최무룡, 황정순!

같은 시대에 태어나 오랜 세월 같은

 일을 하셨던 분, 두 분은 세상을 뜨셨고 한분은

 올해 91세로 삶을 이어간다. 영화가 대중화되기 전 1940

년대, 1950년대 중반 까지는 방송국 성우로, 연극배우로  활동

하던    이 분들이 1950년대 중반부터 영화가 대중화 되면서 가장

인기 있는 배우로 활약했고 황정순은 팔도강산 등 오랜 세월 TV방송

과도 함께 했다. 오늘날 춘하추동방송에서 이 세분은 아나운서  임택근,

성우이자 탤런트, 영화배우로 활악한 강효실과 더불어   가장 많이

 찾는 이름이다.  그만큼 오랜 세월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국민의

관심 속에 있었다는 얘기다.  오늘 세분의 얘기를 

 한곳에서 볼 수 있도록 요약하고 그동안

 올린 관련 글을 연결한다. 



최은희, 최무룡, 황정순!



최은희, 황정순 (이하 존칭은 생략한다)

 필자는 이 두 분 중 어느 분이 연세가 많으실까?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음을 보아왔다.

  황정순이 1925년이라고도 하고 1926년생이라고도 하지만 공식적

으로는 1925년 8월 20일생이다, 최은희는 실제로 물어보았더니

알려진 대로 1926년 11월 20일이라고 했다. 최무룡이 1928년

2월 25일에 태어나 1999년 11월 13일에 세상을 떴으니

 제일 늦게 태어난 이가 제일 먼저 떠난 것이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얘기다. 경기도에서 태어난 3분

 모두 20세 전부터 연극무대와 방송국 성우로부터 출발한

분들이다. 황정순, 최은희가 연극과 방송극이 불가분의 관계가

 있던 시절에   연극무대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방송 연기를 할 수

있었던 분들이라면 최무룡은 KBS 두 번째 공개모집, 1948년

구 민, 윤 진, 윤일봉, 이춘사 이혜경, 백금녀(본명 김정분),

남해연 등과 함께 방송극 연구생 공개모집을

통해서 들어온 분이다.


이 분들이 방송을 주 무대로 하던

시절에는 방송국에 성우라는 말이 없었다.

1954년 12월에 선발한 성우를 지금은 1기 성우라고

하지만 그때만 해도 성우라는 말이 없었고 1955년부터

1957년 사이에 생긴 말이다. 이 분들이 방송연기를 할 때의

 인기는 대단 했었다. 방송국이 하나밖에 없던 시절, 라디오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이분들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

이던 시절이라 방송국 출연료라고 해 보았자 몇 푼 안 되던

 시절이었지만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방송에 임했다.  





1950년대 중반 영화가 대중화 되면서

부터 TV보급이 본격화되기 전 까지 20년의

 세월은 이분들의 어깨에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았다. 

 사람들의 관심을 가질 만한 영화에는 이분들의 얼굴이

보였다.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분들이었지만

 그 목소리는 성우들의 몫이었다.    이 분들에게는 목소리를

녹음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이 세분가운데 일생동안

연기생활 한길을 걸은 황정순은 세상을 뜨는 날 까지

  어려움 없이 살았지만 최은희, 최무룡 두 분

에게는 시련과 역경의 인생길이었다





연기생활을 하던 최무룡은 더 큰 꿈을

 실현시키려다가 어려움에 처한 후 세상을

뜨는 날까지 그렇게 살아야했다. 최은희는 1978년

납북이라는 천만 뜻밖의 사태에 처해 결국 돌아왔지만

그 깊은 상처는 치유될 수 없었다. 그가 남긴 자서전 ‘고백’은

그 인생 고백서다. 오랜 세월 필자가 살던 방배동에서 살았던

 시절 건강이 괜찮다는 생각을 했는데 2013년에 있었던 옛날

성우 생활을 함께 했던 위진록 아나운서의 출판 기념회에

 나왔을 때는 휠체어에 몸을 싣고 성우 고은정의

 부축을 받고 나왔음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옛 아름다움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방배동에 살던 최은희가

경기도 수지에 있는 요양원으로 옮겨 갔다는 얘기를

 들었고 거기서도 여전히 늘 밝은 모습을 하고 사신다는 얘기를

듣는다. 2014년 11월 보관문화훈장을 받았을 때는 그 아들이 대신

 받는 모습을 보며 두 가지를 생각했다. 시상 장 까지 나오기에는

불편함도 있었겠지만 본인이야 어찌 생각하던 필자가 생각

키에는 훈장을 수여하는 것 까지는 좋았어도 ‘보관

문화훈장’ 이라는 훈 격은 마음에 걸린다. 





 금관 문화훈장이야 살아생전에 받기

어려운 훈장이라고 하지만 최은희에게 보관문화

훈장을 수여한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들다. ‘훈장’

 얘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만 더 얘기한다. 2011년 제2회 대중

문화 예술상에서 ‘유호’ 에게 역시 보관문화훈장이 수여 되었을 때

유호선생님도 시상식장에 나오지 않았었다. 그 시대를 살아온 분들

에게는 아무래도 최은희, 유호 이런 분들에게 보관문화훈장을 수여

 한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고 생각한다.     오늘 말씀드린 분 중

가신 분의 명복을 빌고 생존하신 최은희 선생님 더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다 가셨으면 합니다.  더 자세한

 얘기는 이미 올린 글을 연결하

것으로 대신합니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최은희




영화배우 최은희 근황, 그 시절 방송인들의 만남, 상록수,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최용신과 심훈 그리고 상록수와 최용신 기념관

http://blog.daum.net/jc21th/17780431



황정순


황정순, 1943년부터 방송, 연극, 영화, 뮤지컬과 함께 한 배우

http://blog.daum.net/jc21th/17782050


영화 팔도강산과 방송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 배우 김희갑 황정순

http://blog.daum.net/jc21th/17781637


방송, 연극, 영화로 일생을 살아온 황정순

http://blog.daum.net/jc21th/17780299

 

장편 일일 연속극 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

http://blog.daum.net/jc21th/17781337




최무룡



영화배우 최무룡 崔戊龍

http://blog.daum.net/jc21th/17782247


강효실 최무룡 최민수(아들)

   http://blog.daum.net/jc21th/17781830

 

전옥, 항구의 일야 강홍식 강효실 최민수 최무룡

http://blog.daum.net/jc21th/17781640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영화감독 이강천 李康天 아리랑 피아골

  http://blog.daum.net/jc21th/1778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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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김진규 金振奎! 김보애 김진아

http://blog.daum.net/jc21th/17782245

  

영화배우 조미령(趙美鈴-조제순)

http://blog.daum.net/jc21th/17782225

 

영화배우 주증녀 朱曾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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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할머니 복혜숙님!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배우, 성우

http://blog.daum.net/jc21th/17780442

 

배우 전옥, 항구의 일야 강홍식 강효실 최민수 최무룡

http://blog.daum.net/jc21th/17781640


배우 윤인자 “나는 대한의 꽃이었다.”

http://blog.daum.net/jc21th/17781798


영화배우 신영균

http://blog.daum.net/jc21th/1778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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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서, 희극배우(코미디언)

http://blog.daum.net/jc21th/17781517

 

 방송작가 김석야, 꿈은 사라지고, 1958년 주제곡 나는 가야지 문정숙

http://blog.daum.net/jc21th/17782064


영화배우 노경희 盧耕姫, 제1회 금룡상(錦龍賞)

http://blog.daum.net/jc21th/17782231

 

일제 강점기 심훈님이 쓴 조선 영화인 언파레드-1931년

http://blog.daum.net/jc21th/17781177




화      보







위 사진, 1950년대 방송에 출연했던 분들의

만남이니 벌써 반세기가 넘어 60년의 세월이 흘렀

습니다. 그날 같이 만난 윤영중 1950년대의 여성 아나운서는

 최은희님을 만나 1956년 최은희님이 연속낭독 "장미부인" 에 출연 하던

 그때 그 추억을 떠 올리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앞줄 왼쪽부터 음악가 이상만,

성우 유병희, 최은희, 뒷줄 왼쪽부터 유병희님의 딸 조호영,  아나운서 윤영중, 

성우 고은정,  천선녀님이  함께 했습니다.   천선녀님은 미국생활 38년만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필자가 그 성함을 대며 부르자 깜짝 놀라며 기억 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십니다. 필자가 40년이 더 지나 만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아 쉽게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윤영중님도 아나운서였지만 때로는

성우영역의 연속낭독 등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어서

분야에 남다른 관심이 있습니다. 어느분께 천선녀님이

 그 자리에 나오셧다는 얘기를 했더니 "나 옛날

 친했는데 만나고싶다"고 하셨습니다.




앞줄 왼쪽부터 고은정, 위진록, 최은희, 김규홍

뒷즐 왼쪽부터 한분 건너, 천선녀, 이상만, 이혜옥,

황인우, 채영신, 박민정님입니다. 1940년대, 50년대,

60년대, 70년대에 방송을 했던 분들의 한 자리에서의

만남, 얼마나 반갑고 의미있는 일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