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동우회 사람들

카페 춘하추동방송 동우회 사람들 무선공학의 대가 한영신 선생님 편

이장춘 2016. 2. 6. 09:57

 



1958년!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오늘

연희송신소 사진 한장을 올렸다. 연희송신소는

1973년 소래로 송신소를 옮기기전까지 대한민국 방송을

송출했던 방송의 요람이었다.    이 사진속의 인물 대부분 저

상으로 가셨지만 오늘도 건강한 모습으로 춘하추동방송 카페에서

글을 쓰시는 분이 계신다.    뒷줄 왼 편에 서 계신분 오늘의 주인공

한영신 선생님이시다.      한영신 선생님은 이론과 실무에 능통한

무선공학의 대가로 1970년 출판된 님의저서 "精説•無線工学"

  당시 이 책이 없으면, 국가기술자격시험에  응시하기 힘 들

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고 30판이 인쇄 출판되어

 팔린 배스트셀러였다.      (이하 존칭생략)



카페 춘하추동방송 동우회 사람들 무선공학의 대가 한영신 선생님 편



올해 86세의 노익장 한영신 선생님!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하고 중국어 등에도

말이 통하는 님은 카페에 글을 올리면서 실례지만

일본어로 글을 쓸 경우가 계시다고 했다. 필자는 일본어로

쓰셔도 좋지만 일본어를 모르시는 분도 계시므로 한글 혼용을

하시고 일본어에 관한 해석을 붙여 주시도록 말씀 드렸다. 실무와

이론으로 아날로그 시대 무선공학에 앞장서 오셨던 님은 디지털 새로운

시대에도 쉽게 적응,   여러 일들을 하시고 이 시대를 잘 이해 하시지 못한

분들에게도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야 된다면서 주위 노인분들에게 디지털

시대를 이해 시키는 데 힘을 기울이신다. 님의 아이디「노인컴맨」

이  말해 주듯 80대 중반의 컴과 함께 하시는 분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선생님의

발자취를 간추려 보았다.





1931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출생
1952년 목포방송국에 입문하셔 1953년10월
그시대의 대한민국 방송의 요람! 최고의 무선기술자
들이 근무하던 연희송신소로 옮겨 기술서무를 주 임무로했다.
기술서무란 지금과는 개념이 다르다. 기술과 행정 등 모든 분야에 두루
아는 유능한 분을 소장이 지명해서 송신소 업무를 총괄하도록 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연희송신소내에 설치되어 운영되어온 "연우회" 총무 일도
함께 보셨다. 그때는 이인관선생님이 송신과장으로 있던때다.  지금은 송신소
라고 하지만 그때는 직제상으로 중앙방송국 송신과라고 불리던 시절이다. 송신
과장 이인관은 1953년 부산으로 피난갔던 중앙방송국이 서울로 오면서 직제가
개편되어  6.25 전에 있던 기감자리가 부할되면서 공보실 기감으로 승진,
송신소를 떠나고     전력계장이던  이종훈선생님이 송신소장으로
 승진하던 때다.  이종훈 선생님은 1930년대 방송국에 들어와
중책을 맡아오던 인물로 이때 송신과장으로 승진.
중앙방송국 기술과장과 송신과장을 오가며
오랜기간 활약했던 분이다.





오늘의 주인공 한영신님은 님의 
후배이기도 한 장도형선생님이 (현 방우회
부회장) 부산방송국에서 근무하다가 연희송신소로
오기전에는 6, 25 전란후의 장사동 시장에서 부품을 구해서
송신기를 조립,   외무부, 내무부 등에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한영신 선생님의 뒤를 이은 장도형 선생님은 대한민국
초기에 설립된 모든 송, 중계소에 스스로 만든 국산 송신기를
 설치 하느라 하루에 두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고 일을
 했던 철인이라고 불렸던 분이다. 올해 91세)

연희 송신과장이던 이종훈선생이 1956년
 중앙방송국 기술과장으로 옮기며 성기석선생님이 
연희소장으로 승진 했을때 한영신님은 중앙방송국 기술과
신입사원이던  노익중,  이정규,  이명득 님 등과 함께 정동에 있던 
중앙방송국 스튜디오 건설에 참여하다가 6개월이 지나  다시 연희로 복귀
했댜.   님은 1965년경 연희송신소를 뒤로하고 나와 무선공학자로 발돋음
해서 학원을 경영,  후진을 양성하면서 1,000 페이지에 달하는 무선공학
저서를 출판 30판까지 인쇄되어 팔리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 시절 
이 책은 국가 기술 자격시험을 준비하면서 필수가 되었다. 오늘에도
 님의 기술을 전수한 아들과 함께 이론과 실무면에서 무선공학
발전에 힘을 기울이고 계신다. 님이 춘하추동방송
 카페에 올린 글 몇편을 골랐다.


한영신 션생님 카페 글 중에서



回想 회상 (2)


我が著書を 開くたび毎思うかな おのが若き 良き時代 -清渓-

(와가죠쇼오 히라쿠다비고토 오모우카나 오노가와카기 요키지다이)
●우리말로 번역: 나의 저서를 펼때마다 생각나네. 나의 젊고, 좋았던 시절을.....!
●일본의俳句는,5-7-5자가,기본인데 하이쿠와는, 달리

 5-7-5-6-5로,일본의 和歌에 가깝다.


●KBS를 퇴직한 1968~1975년경

 나와, 절친했던 (1968년작고) 김기호군이

설립한, 종로2가 YMCA옆 •크라운제과 빌딩

(당시명칭)3~5층 소재 "한국TV기술

학원"을 맡아, 운영 했었다.






● 위 사진은,1970년, 내가 저술한

 "精説•無線工学" 인데, 당시,이 책이 없으면,

 국가기술자격시험에 응시하기 힘 들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1000 페이지에 가까운, 당시로선, 대형

출판물인, 이 책은,무려 30판까지 再版했었다. ●이때가

나의 전성시대가 아니었나 가끔 회상하곤 한다.
2016.1 (자화자찬 망언사례)


 친구를 얻은 이야기



●빛 가운데를 홀로 걷는것보다,

깜깜한 어둠속을 친구와 걷는것이 났다

(미국의 교육가 헤렌케라)


●光の中を一人で歩むよりも、闇の中を友人と共に歩むほうが良い(日本)。
●I would rather walk with a friend in the dark, than alone in the light( 영어).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밝은 날 혼자걷는것은 쉬운일이다.

그러나  어두운  암야를 친구가 같이

걸어가 준다면 얼마나 든든하랴.

금년봄 나는 극히 우연한 행운으로

좋은친구를 얻었다. 그는 나보다 한살 아래

인데 교수를 정년 퇴직하고 대구에서 부인과 멋진

노후를 보내고있는 李茂永 工学博士 다.

그를 만나게된 계기는
이렇다.

블로그를 이것저것 뒤지다가 우연히

紫陽花(수국화)의 수체화를 발견했다.

 봄 3~4월에 큰 봉우리의 꽃을피우는

 수국화를 좋아해서 내 아파트 화단에

 일부러 심어놓고 좋아한 나다.





전 MBC 시흥송신소장을 지낸

 千光男씨는 나와 같은 고향 해남의 소학교

 1년 선배인데, 내가 말한 수국화 이야기를 듣더니

그림주인 逸泉과 6. 25전쟁때, 같이 전우생좔을 겪어

 잘 아는 사이라는 것이다.그래서 이박사 내외와, 천장로,

우리부부 5인이 "수내역"에서 회동했다. 이런저런

 이야기에 시간가는것도 잊고 환담했다.

천광남장로는 5년전 부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용인의 "노블카운티"에 독거중인데, 마침

 그곳에는 전 HLKA 수무고개 명사회자 이경희씨도 살고

 있었다. 이무영교수는 pro다운 그림솜씨와, 일본어

구사가 놀랄정도인 온화한 노 신사다.


(아래사진 우측 앞쪽이 이무영교수,

그 다응이 부인, 좌단 천광남장로)



            



 8학년들의 소일  



我我は黄昏近き八年生 (清渓)
(와레와레와 다소가레 지까끼 하치넨세이)

우리돌은 황혼길에 들어선 8학년이라네.

 나이가 들수록 옛날친구가 그립고 좋다.


죽마지고우이며, 비슷한 일터에서

 일생을 보내다가, 팔순이 지나버린 우리들이

오랫만에 성수동의 서울숲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환담했다.  사진 좌단부터  공영수, 정용문,

변영규,   한영신  (팔자).





정군과 공군은 행당동에서

소년시절을 보낸 소학교동창생이며,

공군과 필자는 6, 25 전 해인 1949년 무선공학을

함께 공부하던 친구다. 연세대 출신인 공군은 수송전설

사장을 후배에게 넘기고 일본엔까를 취미삼아 노후를 즐기는

멋쟁이인데 나와 1주일에 한번꼴로 만나 커피를 마시곤 한다.
(주)삼성전자 사장을 지낸 정군은 수년전 상처하여 고단한

노후를 독거중인데, 필자가 젊은 시절 근무하던

 마포 서교동의 HLKA송신소의 3년 후배다.


역시 HLKA 후배인 변영규 공학박사는,

대학교수를 퇴임하고 서울숲 근처에 살고있는데

수년전까지만 해도 보문동의 방우회에 나와 방우회원들과

 마작을 즐긴 사이다. 공군과 변군은 연세대전기과 동문이라는

 인연처럼 우리는 서로 얼키고 설킨 친구들이다. 좌우간 우리들은

 황혼을 맞은 8학년 들이다. 그래서 서툴은 俳句로 우리들

 근항을 써보았다. (2014.9 친절한 젊은이가 촬영)



旧友会合 구우회합 옛 친구만남



나는 1965년경 KBS를 사직하고

종로2가( YMCA옆)에서 한국TV학원을

경영했었다. 당시 친했던 종로학원의 정경진 원장

(현재 종로학원은 그의 장남이 경영. 87세)과, 나의 고교

 동창생인 윤재명군(전 3선국회의원.현재 한일문화친선협회 회장)을

 압구정 현대백화점 중식당에서 오랫만에 회동, 점심후 회고담의 한때를

 보냈다. 우리 세사람 모두 한때 학원과 연관이 있어 고인과 생존한 지인,

친구들의 소식을 전하고, 전해듣곤 했다. 이 글을 쓰고있는 나는 86세의

명 "노인컴멘"이다. (필자 이장춘 주 : 윤재명 선생님은 1979년

우리나라   최초 9시 종합뉴스 여성 앵커이자 명지대 교수와

KBS 이사를 지낸 이병헤 아나운서의 시 아버님이시다.

이병혜 아나운서는 필자와 동만 다를 뿐 

호수가 같은 아파트에 산다.)





回想 회상 (1)



(오래다치와 한토오 미나미노 이나카모노)
우리는 한반도 남단 촌놈 이랑께!



윤군과 나는 1952년 한반도 남쪽

목포의 고교를 졸업한 동창생이다. 尹在明君은

일직이 정계에 투신 하여 약관 36세 때, 강진, 영암에서

강호 김준연씨를 물리치고 당선된(7,8,10대 공화당 국회의원)

 정치가다.  나는 전자공학도로 별 볼일없이 8학년이되고 말았다. 윤군이

(사)한일문화친선 협회를 창설 일본 오사카 히라카타공원에 학성"왕인박사"를

 현창하는 "백제문"을 건립(2006년)하여 한일간 문화교류 사업을 펴고있는데  

나도 이 일에 참여하게되어 그간 꾸준히 유대와 우정을 도모해 온 竹馬之

古友다.우리들 고교동창생중 3인의 유명인이 탄생했는데 그중 톱이

3선의원을 지낸 윤재명군이고, 다음이 한국기독교계의 호시

 고 李万信목사, 와병중인 예비엑 육군대장 윤성민

전 국방장관이다. 아미고스 파라 시엠프레 !

 (友よ! 永遠なれ!)





2015년 김익모선생님 장례식장에 가면서 서울역에서



昨日80代KBSの古友達数人が大田の病院の葬儀場へ

哀悼に出向いた。1955年の春頃だったと記憶が怪しいが、

私が何かの事件に巻き込まれ一時放送局を辞め、  京畿道の

○○局へ勤務する事になり朝早く出かける我輩のため、3歳の幼児を

含め一つ部屋で三人暮らしの若奥様(金翼模兄の妻)が当時珍しかった

鶏焼きをご馳走してくれた事を想い出し、急にとめどなく涙が出てきた。

当時私がオンブして遊んであげた、3歳の英漢君も今年60歳の中老人に

なり、若奥様が87歳の お婆さんになった。苦しく貧しかった

昔が偲ばれる。翼模兄よ!心おきなく安らかに

眠れ!神よ!彼の御霊に加護を与え給え! 





 

1961년 5.16직후 연희송신소 현관 앞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장도형님이 제공해 주셨다. 그때

연희 송신소에 재직 하셨던 장도형선생님이지만 그때의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때 이 교육에 참여

하셨던 우제탁님과 시설과에서교육과 관련한 여러 일을 보셨던

 이용실님의 기억을 더듬어 창여하신 분들의 성함을 올렸다. 성기석

소장님을 비롯해서 고문관 니코레이, 여태흥, 김종순, 김세대, 우제탁,

강기경, 김병기, 송재극, 김준형, 최순용, 고세혁,  이병선,  서구호,

윤은상, 박준병, 박재권, 전재권, 안흥식, 최창섭님 등 그때의

 전국 선임 기술인들이 모두 참여한 사진이고 뒷날까지

 기술에 힘을 기울이셨던 분들이다. 



윤후현(팔방미남) 선생님 글



무선공학의 대가이신 한영신 선생님!

 정말 대단 하십니다. 국가 기술자격시험,을 응시

하려면, 없어서는 안될 필독서, '정설, 무선공학!"책을

저술하여 베스트 셀러,까지 되었다구요. 저는 영어와 중국어는

조금 하는데, 일본어와 베트남어는  완전 초급 수준입니다, 그런데

 그 연세에 일본어를 구사하여 직접 책의 해석서를 써 주신다고 하니

 입이 딱 벌어집니다. 기술분야는 행정분야 보다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데, 공학도의 길을 걸어 오시면서 노고가 정말 많으셨겠습니다.

남도 항구도시 목포 출신 이군요.글을 보던 중 목포고 동창이신 

 죽마고우 친구, 전 국회의원 "윤재명씨!"를  거론 하시고

두 분이 같이 찍은 사진도 공개 하셨는데,


윤재명씨!는 저의 고향, 강진 도암

 이웃마을 집안 아저씨 입니다. 또 묘한 인연으로

윤재명 아저씨의 친구분인 한영신 선생님,을 알게 되었

군요,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귤동마을, "다산 정약용 선생의

초당"을 지금 거명하신  윤재명 씨의 막내동생 윤동한씨,

(전 강진군수)가 관리하고 계십니다. 한영신 선생님

소식 감사합니다. 이장춘 사장님!...



한영신 (노인컴맨)선생님


윤후현씨 정에 넘치는 댓글 감사합니다.

윤재명씨는 나와 목포 문태고1회 동창생이랍니다.

요즘 약수동 (사)한일문화친서협회 사무실에서 1주일에

 2~3회식 만나 점심먹고 환담한답니다. 지난해10월14일에는

 왕인박사 현창사업의 하나인 백제문건립9주년키념식 거행차

 부부동봔으로 일본 오사카에 다녀왔습니다.오사카 히라카타에

 건립된 백제문은 7,8,10대 국회의원을 지낸 윤재명씨가 국내외

 찬조인사들의 기금을모아 2009년10월에 건립한 한국전통

양식의 축조물이랍니다. 기회있을 때 춘하추동방송

동우회에 여행기를 계재할까합니다.




윤후현선생님의 답글



답글 감사합니다. 한영신 선생님!...윤재명 아제,

만나면 제 이야기 하시면 알 것입니다. 공화당 국회의원 

 후보시절 선거 운동도 같이 하고 다녔습니다. 강진 군청!에서

오랫동안 공무원 생활을 한 집안 조카(강진군 도암면 수양리, 고

윤재인의 자 윤후현)라고 하면 알으실 것 입니다.   만나서 반가웠고,

두 분 생 이 끝날때까지 아름다운 친구로 우정을 나누시면 고맙겠습니다.
나중에 윤재명 아저씨 만나면 한영신 선생님!과 이장춘 사장님!과의 인연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설날이 내일 모래 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구정 명절이

 되세요. 관심과 배려의 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카페에서 다시

만나 뵙기를 소망합니다.☆^^^☆~국민가수 명국환님,

아이돌 가수 송별양, 그리고 나 팔방미남!~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KBS 연희송신소 시절 방송기술인들

http://blog.daum.net/jc21th/17780435


최초의 방송소 연희의 그때 그 모습

http://blog.daum.net/jc21th/17780050


장도형의 방송 역사 박물관 동영상

http://blog.daum.net/jc21th/17780084



한영신 선생님 사진 모음



한이수, 장도형, 한영신, 정관영님



 

항일단파방송연락운동 기념식에서

앞줄 왼쪽부터 (존칭생략)  한영신, 이용실,

 박종세,  전영우, 박경환, 황우겸, 한영섭 (회장) 김성오

(KBS시청자본부장) 이철호, 조성국, 김은구, 오승룡, 성달현,

 (?) 김회정(KBS총무국장), 박민양, 권영원, 황인우, 정근춘,

 이정오, 한이수, 이보길, 계원준, 윤후현, 오승룡,

강창우, 장도형, 정관영, 김영효, 김성배,

정항구, 민흥식, 노익중님




방우회 관악산 송신소 방문의날 기념사진

한영신노익중, 조동근, 정관영, 이시우, 오승룡,

이용실,  장도형,  박경환, 김인태, 한영섭(방우회 회장),

 조찬희(관악산 송신소장), 이철호, 한영수, 박민양, 용규, 

 김기호, 이정오, 정항구, 앞줄 왼쪽부터 이상필, 강창우,

고흥복, 김영효,(아래사진 계원준, 김영일)

 24분이 함께 하셨습니다.




  

2012년 첫 방송 터 참여 해 주신 분들

앞줄 왼쪽부터  안현태, 이치순, 김선초, 권영원, 정항구,

한영섭(회장님), 전영우, 김명희, 황우겸, 최만린, 이철호, 박민정,

둘째줄 : 한영신, 안희전, 장도형, 박경환, 한영수, 박종세, 오승룡, 정관영,

이용실, 깅영숙, 우제탁, 김규홍, 정경래, 조남민, 신정호, 전재만, 최인열,

이정오, 김기호, 이시우  , 박상진, 강정도, 이용억, 황인우, 고흥복,   

 한분건너,   노익중님 참여해 주셨습니다.



2010년 산수를 맞으신 한영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