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방송인들을 만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언론기능을 수행했다고 평가되는 방송사, 부산 MBC HLKU개국의 실무주역으로 보도과장을 지낸 전응덕, 취재기자 김능화, 프로듀서 최광민, 아나운서 이성화 각분야에서 일했던 분을 만나다 보니 그때 그시절 얘기는 물론 일생동안 겪은 수많은 지난날의 추억이 필름 돌아가듯 얘기에 얘기의 꼬리를 물었다. 들으시는 음향은 이날의 얘기중 전응덕님께서 부산 MBC HLKU 틴셍의 방송사적 의미를 들려주시기에 그 부분을 편집해서 올렸다.
부산 문화방송 HLKU 탄생의 역사적 의미와 초기방송, 전응덕, 최광민, 김능화, 이성화
부산 MBC가 개국 된것은 1959년 4월 15일이다. 자유당은 대통령과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독제로 일관하며 국민은 도탄에 빠져들었지만 정파의 이익과 사리사욕에만 눈이 어두웠다. 영구집권을 꾀하던 자유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 부통령 선거를 비롯한 각종선거를 부정으로 치루워 가던 중 3.15 대통령선거에서 그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아무리 눈과 귀를 가려도 국민들은 이를 알고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 불길이 마산에서부터 일었고 이때야 말로 독재의 연속이냐? 민주주의를 찾느냐? 그 갈림길에 섰다. 그때 부산 MBC는 방송의 현장감과 즉시성을 바탕으로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발벗고 나서 모든 社力을 여기에 쏟아부었다.
초기 부산 문화방송 얘기를 들려주시는 전응덕 당시의 보도과장
사람들은 부산 MBC에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성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마산에서 시작된 독제정권에 저항하는 시위는 부산, 서울을 비롯해서 전국적으로 번져나갔다. 그때 방송국은 KBS와 기독교 방송이 있었지만 KBS는 국영방송이고 CBS는 종교방송이어서 언론기능을 수행한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을때 부산 MBC가 용기를 발휘했다. 물론 부산 MBC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서 세운방송국이고 일정기간마다 재 허가를 받는등의 제약이 있었어도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 모든것을 초월했고 마침네 그 뜻을 이루어 민주주의가 실현되어 국민의 뜻에 따른 정부가 수립되고, 부산 MBC는 그 새로운 정부로부터 공을 인정받아 표창을 받았다.
부산문화방송을 모체로 해서 세워진 서울문화방송, 또 DBS 동아방송, TBC동양방송 등등 그 뒤에 세워진 대한민국 민영 방송사에 본보기가 되었다. 전응덕님은 오늘의 지상파 방송을 비롯해서 CATV. 위성방송, 종편방송 등에 이르기까지 그 부산 문화방송의 성공이 동기가 되었고 그 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역설힌다.
부산 MBC의 기자와 아나운서를 총괄하는 보도과장은 전응덕님이었고 김능화, 이상철, 조재필, 박재영, 강광윤 5사람의 기자와 이성화, 윤미자 등 아나운서가 있었다. 3.15 부정 선거로부터 4.19가 성공을 거두기까지 언론기능을 수행 할 수 있었던 대한민국의 유일한 방송국, 그 방송국은 부산에 있었지만 중앙방송국이라는 일념으로 방송에 임하면서 때로는 프로듀서도 아나운서도 현장을 찾아 취재도 하고 현장 생방송도 했다. 그 시절의 얘기를 이성화 아나운서가 쓴 부산 문화방송 사우회에서 발행한 책 "빛과 소리"에 실린 글의 일부를 인용했다.
"빛과 소리" 책에 실린 내용
이 성화 ; 기자는 몇 분이었죠?
김 능화; 전부 다섯사람이었습니다. 이 상철, 조 재필, 박재영, 김 능화, 강 광윤 등이었습니다.
이 성화 ; 그 적은 인원으로 뉴스 교양 스포츠 등을 다 카바했어요..그렇죠?
프로듀서 최광민
최 광민; 아 그래서 마산 의거 때는 음악 PD인 나도 차출 되지않 았습니까? 그 때 4월 중순이니까 진해에 벗 꽃이 만발 할 때였어요. 공개방송을 진해에 가서 하고있는데 정 환옥 전무님이 급히 나를 찾는다는거예요.
“네, 최 광민입니다.”
“채(최) 강(광) 미(민)이야?”
“네, 접니다.”
“지금 가수 몇 명 남았어?”
“두 명입니다.”
“니 지금 빨리 중단하고 마산으로 넘어 가레이_!”
그래 허겁 지겁 마무리하고 마산으로 갔죠. 진해에서 마산은 많이 먼 거리는아니고 그 때 가보니까 학생들 소요 사태가 폭동으로 변하고 있었어요. 김 주열 학생의 눈에 수류탄이 박혀서 물 위로 떠 오른 것을 시민들이 보고 너도 나도 뛰쳐나와 학생들 의거에 합류하는 현장이었어요.
전응덕 보도과장
전 응덕; 그 때 그런 현장의 모습이 생방송으로 나가니까 당국에서는 당황했고 “누가 문화방송을 허가 해줬느냐고 책상을 쳐봐도 뒤 늦은 일이었고 당국도 3.15 4.19를 겪으면서 방송이 언론의 역할을 하는 것을 깨닫게 됬죠.
최 광민; 그 때 정 환옥 전무님이 진두 지휘 할 정도로 윗 분들이 소신있게 밀어주었고 안 성수사장님도 정의감을 갖고 뚝심있게 열성을 갖도록 격려해 주었습니다. 않그렇더라면 아무리 하고싶어도 모두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을겁니다.
기자 김능화
김 능화; 네 그렇죠. 4.19당시 자유당 독재정권의 최후 발악을 저지하는 방송을 계속한 것은 누구보다 안 성수 사장님과 정환옥 전무님 그리고 전응덕 보도과장님이 뒷받침 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만일 이분들이 경찰 검찰의 협박에 넘어갔더라면 우리나라 정치 상황 또는 역사는 달라졌을겁니다.
전 응덕; 내가 보도과장으로서 역할을 다 할 수있었던 것은 부하들이 잘 따라주었기 때문이고 언론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죠.
프로듀서 김영효
김 영효; 오늘 날 부산 MBC가 존재 하게 된 것은 60년 마산 3.15와 4.19혁명을 성공 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점입니다. 그로인해 아까 말씀하신 바와같이 방송이 언론기관으로 확실히 자리를 굳히게 되었지요.
아나운서 이성화
모처럼의 만남, 이야기는 끝날줄 전응덕님으로 발하자면 1954년 부산 KBS 아나운서로 출발1959년 부산 MBC 개국 보도책임자로 대한민국 격변기에 방송사의 보도책임을 맡았던 전응덕님은 4.19 첫 발원, 마산의 학생데모로부터 부산 일원의 3.15부정선거 규탄시위의 역사적인 현장취재, 서울 MBC창설 보도책임자, RSB, TBC보도국장 등 격변하는 시대에 방송사의 보도 일선에 섰고 세차례에 걸친 KBS이사, 광고단체 연합회회장 등등 20대에 시작된 방송인생이 80대 중반에 이르도록 쉼없이 이어왔기에 할 얘기가 많으시다. 오늘 참여 해주신 최광민 프로듀서, 김능화기자, 이성화 아나운서, 그로부터 50년이 훌쩍지나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오늘의 얘기들 실로 감개 무량하다. 이미 써 올린 글은 연결 했고 못다한 얘기는 또 써 올릴것이다.
이날의 모임에 참여 해주신 오른쪽부터 최광민, 전응덕, 이성화 김능화, 네분이 기념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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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화 아나운서, 글 황인우 아나운서 한국 아나운서클럽회보 줌인
사진으로 본 최초의 라디오 상업 방송 부산 mbc 문화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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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후현(팔방미남) 선생님 글
한국 최초의 민간 방송인 부산 MBC의 의거 당시 마산에서 시작된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시위와 부산 서울등 전국 곳곳의 상항을 상세히 보도하여 받으셨군요. 당시의 생생환 상황을 전해주신, 대담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면서, 소식 전해주신 춘하추동방송,
김영우 (미국) 선생님 글
MBC 부산문화빙송 초칭기 방송인들의
소개 고맙습니다. 이성화아나운서와 전응덕보도국장님등 기억에 새롭습니다. 특히 전응덕 선배님은 참으로 고마운 분인였습니다. 중계방송 초년생인 저에게 권투 중계 방송을 많이 가르쳐 주셨지요. 당시 KBS의 임택근과 이광제 아나운서등 쟁쟁할 일류 Sports 캐스터들이 있었건만 언응덕 보도국장 MBC문화방송 챈널을 통해 당당히 멋진 권투 중계방송을 했섰지요. 전 선배의 용기에 갑탄했던 기억 이 납니다. 존경하는 전 선배닙께 인사드리고 십습니다' 이국장님 건강하시고 수고 많이 하십시오. 김영우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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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접수되는대로 보완하겠습니다.
TBC보도국장시절 왼쪽부터, 박종세 아나운서, 전응덕국장, 박노설 차장, 봉두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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