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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찾기, 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종합편

이장춘 2015. 3. 12. 08:29

 

 

 

1983년 감동의 인간드라마

 KBS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인류역사에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의 드라마 그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이 있은 지 올해로

 32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전 기획도 없었고 시나리오도 없었으면서

무려 136일간에 걸쳐 453시간 45분 동안 세계 방송사상  유례가 없는,

그래서 기네스 북에 오르고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그 프로그램,

모두가 감격과 환희와 흥분 속에서 펼쳐진 인간 드라마! 눈물의 바다!

환희의 바다! 여의도.   그 시대를 사신 분들은 물론 그 이후에

태어난 분들까지도  현실로,  역사로,  전설로, 한겨레,

한민족, 나아가 세계인들의 기억속에 자리잡았다. 

 

 

이산가족찾기, 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종합편

 

 

2014년 연말부터 휘몰아친 영화

국제시장의 바람을 타고 그 얘기들이 그 때

 기억을 더 생생하게 해주고 그 시대를 살지 않은 분들도

 감동을 받고 있다.    어떻게  방송국에서 드라마도, 음악도,

오락방송도 안하고 그 방송만을 했을까. 의아해 하는 분도 계시지만

 그때는 드라마도, 음악도, 다른 오락프로그램도 모두 뒤로 밀렸다.

그 프로그램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국내는 물론 세계방송사상

그런 경우는 전에도 그 이후에도 아직까지 없다. 분단과

전쟁이 빚어낸 한민족 비극의 표상이기도 했다.

 

 

 

 

 

춘하추동방송에는 글과 영상과

소리로  여러 차례 올렸다. 2015년 초 영화

국제시장의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 하면서 MBN에서

“춘하추동방송”에 올라 있는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자료를 활용

하도록 허락 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임택근 아나운서 자료도 제공해서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제작 방송되었던 일이 있어서 기꺼이 허락 했더니

아궁이 (MBN의 아주 궁금한 이야기 프로 명) 팀에서  정중한 인사와 함께

 프로그램을 보내 왔다.    “춘하추동방송”에서 제공한  생생한 영상이

펼쳐지는 가운데 그때의 이지연, 현장 진행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여러패널들이 생생한 기억을 더듬어 주며서 이끌어간

프로그램을 보다가 32년이 지난 오늘 그때의 그 마음

으로 돌아가 그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동안 생각나는

 대로 여러차례 써 올렸던 글을 사진도 모으고 글도

 정리해서 한 곳에서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어 

글을 쓴다. 오늘 배경음은  아궁이 프로그램「80년대의

 미스터리 이산가족 찾기」부를 사용했고 밑에

연결한 개별 글을 통해서 먼저 올렸던 

음향, 주제곡들을 들을 수 있다.

 

 

 

 

1983년 6월 30일 10시 15분부터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찾습니다.」가 전파를 탔다. KBS는 그때까지

상당기간동안 공산권 대상방송인 북간도 동포에게, 사하린 동포

에게 등의 프로에서 이산가족의 만남을 주선하는 경우가 있었고 제1빙송

오후의 교차로 등에서 캠페인을 벌린 적이 있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텔레비전에서 생방송으로 이산가족의 만남을 주선 해 보겠다는 야심 찬

기획이 실현되어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가  편성

되었다.   그러나 그토록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6.25, 33주년, 휴전 30년을 맞아

1회성 특집방송으로 마련된 프로그램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반향을 불러일으켜

그해가 다 할 때까지 계속 된 것이다. 이 방송이 시작되면서

 가족을 찾아달라는 인파는 모여들고 전국이 아니 전 세계가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 들었. 잃어버렸던 가족을 찾아 달라는 청건이

 7월 1일 하루 만에 무려 14.000건에 달했다. 7월1일 출근길에

 나선 사원들은 달라져버린 내 집 KBS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룻밤 사이에 여의도 모습이

완전히 달라져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텔레비전에서 방송을 했지만

 7월 6일부터는 라디오도 동시방송을 실시해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나 할 것 없이 전 채널은 이 방송으로

채워졌고 모든 사원들은 여기에 힘을 기울였다. KBS의 모든 공간은

이 일을 위해 쓰여 졌다. 방송국주변과 여의도는 온통 이산가족을 찾겠다는

 사람들로 물결을 이루었고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사방에 내 혈육을 찾겠다는

 광고판을 펼치는데 여념이 없었다. 심지어 방송용 자동차에 까지 광고판은

 가득 메워 졌다. 아래 그림이 자동차인얼핏 보면 자동차의

모습은 어디로인지 사라져 버리고 광고만 보인다.

 

 

 

 

KBS의 모든 벽과 주변의 아스팔트 바닥까지

온통 내 혈육을 찾겠다는 광고판으로 매워버린 그 현장!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각 언론사의 시선이 이곳 여의도로 모아졌다.

세계적인 주요통신의 특파원들을 비롯한 방송사 신문사의 눈이 이곳으로

 와서 연일 보도했다. 국내의 일간지들은 많은 지면을 이것으로 매꾸었다.

각 언론사마다 현장에 특별 취재팀이 마련되었고 한국일보사 같은

 곳에서는 신속한 특별 호외를 만들어 현장에서 배부하기도

 했다. 모든 국민은 이 프로그램에서 눈을 때지

않았다.  아니, 땔 수가없었다.

 

 

 

 

잠시 특별 생방송을 생각했던

KBS는 이것을 끝낼 수가 없었다. 낮에도,

밤에도, 텔레비전에서도 라디오 에서도 해야만 했다.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여기에 관심표명을 함과 동시에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나 김상협

국무총리와 각료들도 현장을 돌아보며 격려를 했다.

 

 

 

 

KBS 벽을 꽉 메운 광고판은 인도, 녹지대,

가로수 할 것 없이 공간만 있으면 붙이고 걸었다.

 KBS인력만으로는 일을 감당 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현장에 와 자원봉사를 했다. 접수도, 안내도 해 주고

 광고판도 만들어 주었다. 방송국에서 다소 거리가 있었던 산업은행 터로

예정되었던 9,200평의 땅에 만남의 광장을 마련했다. 사람들의 만남은 물론,

모든 벽에도 광고판이 빈틈없이 붙었다. 적십자사,  이북 5도청은 물론

서울시청, 경찰, 정당, 종교단체, 여성단체 등 모두가 한마음으로

같이 일했다.  대한민국 국민 다 같이 일 했다.

모두 한마음 한 뜻이 되었다.

 

 

 

 

민족 비극의 6.25전쟁을 겪으면서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 이웃들이 뿔뿔이

해여 질 수밖에 없어 1,000만이나 되는 이산가족이

 30년이 넘도록 만나지 못하는 절박한 현실에서 KBS가

벌린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로 혈육의 만남의

 열망과 불길이 타 오르면서 감동의 인간드라마로 모든 방송프로그램은

뒤로 밀렸다. 남북이 가로막혀 넘나들 수 없는 국경 아닌 국경으로 서로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던 시절 이웃에 살고 있는 부모 형제마저 소식

몰라  애태우던 터에 이런 기회를 통해서 혈육을 만나야 한다는

 열망과 함께 이산가족은 모두 모두 모여 들었다.

 

 

 

 

 

30여년을 해어져 살면서 멀리 떨어져 살던

혈육은 물론 곁에 살던 혈육마저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고, 이름도 모르고 살아야 했던 이들, 심지어

 한 직장에서 남매가 함께 일하면서도, 또는 친구의 부인이 된

여동생을 종종 만나서도 그저 남인 줄만 알고 살았던 현실 속에서

 그들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극적으로 만나는 장면이야 말로

글로 말로는 묘사 할 수 없는 감동 바로 그 현장이었다.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환희에 찬 울음은 하늘과 땅을

감동 시켜 산천도 울어 버리고 땅도

울어 버리고 온 세계인류에게

눈물을 자아냈다.

 

이것은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신분이나 재력 등 모든 벽을 넘어 마음을

터놓고 서로 도우며 어우러져 깊은 속 얘기를 나누는

융화의 장이기도 했다.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이처럼 이념과

사상을 초월하고 민족의 공감대가 형성된 때는 그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다. 인류 역사에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잠시 하려던 방송은

그해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계속 되었다. 무려 136일간에 걸쳐 453시간

45분 동안 세계방송사상 유례가 없는 모두가 감격과 환희와 흥분 속에서

 인간 드라마가 펼쳐졌다. 이 기간 동안 萬 가족이 넘는 상봉이 이루어

졌다. 방송 기간 중 KBS 주변은 살아있는 반공 교육장이 되었다.

매일같이 수만의 인파가 몰려드는 이곳에는 6.25 상처가

 벽보, 플래카드 등 곳곳에적혀 있었다.

 

 

 

 

방송은 주로 유철종과 이지연 팀, 황인용과

강부자 팀, 신은경과 김동건 팀 세 팀이 바꾸어 가면서

진행 했어도 워낙 방대한 프로그램 이었기에 여기에 힘을 쏟은

 사람도  엄청나게  많아서  이 프로그램에 특별히  누가 큰 역할을

했느냐를 얘기하기 전에 전 국민과 KBS사원 전체가 창조해낸 거대한

작품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하고, 진행하고 또 조정판

앞에서, 송신기 앞에서 밤낮없이 힘을 기울이신 분들도 계셨고

 또 주변에서 도와주신 분들도 계셨지만 모든 사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이루어낸  방송사상

전무후무한 초대작이었다.

 

 

 

 

 

온 겨레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고

세계의 눈과 귀를 집중시킨 인위적으로는

꾸밀 수 없는 살아있는 인간드라마였다. 그로부터

32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세상은 엄청나게 변해 버렸다.

공산주의는 패망했고 굳게 가려졌던 동서의 장막은 걷혔다. 비록

완전한 것은 아니어도  남과 북을  오가면서 혈육을  만나기도 한다.

북한 땅에 대한민국 공장이 세워졌고 남북을 오갔다. 그날의 이산가족

들의 애태움과 열망은 알게 모르게 우리민족이 하나여야 된다는

 절실함의  표출이었고 그로부터  통일을 향한 발걸음이

 때로는  멈추고 다소 후퇴하는 일이 있었어도

크게는 한 발자국식이라도 전진 해 왔다.

 

 

 

 

한반도에서 애국가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아리랑을 몇 소절이라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렵고 힘들 때, 또 일제 강점기 모두가 뜻을 모아

 부르던 아리랑, 그 아리랑을 2003년 평양에서 남과 북의 가수

들과 북한 동포들이 함께 불렀고 전 국민이 함께 들으며 감동을

받았다. 광복 58주년을 맞아 KBS 한국방송과 북한방송이

공동으로 마련한 평양 노래자랑에서였다. 노래자랑

사회 송해님과 북한의 전성희 아나운서가

공동으로 사회를 본 이 프로그램은 

감격어린 장면이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동서

냉전의 벽이 하나씩 무너지면서 새로운 질서가

 형성 되었다. 남북은 다시 멀어졌지만 2,000년대 초까지

 있었던 감동적인 일들이 있었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의 조성,

 남북이산가족의 만남, 남북이 함께하는 체육행사 등이 그것이었다. KBS도

남북을 오가며 취재활동도 하고 행사도 했다. 이 바탕위에서 남. 북이 하나 되어

 통일 조국을 이룩하고 자랑스러운 나라를 세워 자손만대에 길이길이 이어질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이 되어 한겨레 한민족은 물론 세계인이 머릿속에 영원히 기억 될

것이다.放送史에 길이 남아야 할 일의 역사적인 기록에 소홀함이

 없어야 하고 그때의 그 정신을 받들어 나가야 한다.

 

 

 

 

PD 안국정이 남긴 글

  

그때 기획부장으로 이 프로그램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PD 안국정은 그때의

일을 다음과 같은 기록으로 남겼다.

 

뜻밖의 주문이었다.

 몇몇 소집단의 경우라면 몰라도

 몇 십만, 몇 백만에 달할지 모를 이산가족들을

 TV를 통해 만나게 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기상천외한

발상이었다. 성사 여부조차 불투명했다. 그러나 이 사장의

불도저 같은 스타일에 우리는 이미 익숙해 있었다. 즉각 기획회의를

 열었고, 며칠 후인 6월 30일 저녁 이 아이디어는 전파를 탔다.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당초 90분길이 단발성 특집이었다. 이산가족 150명을

초청한 방청석에 1000명이 넘게 몰려왔다. 방송 도중 방송사 업무가 마비될 만큼

전화가 쏟아졌다. 진행을 맡은 유철종, 이지연씨는 이 날 새벽 3시까지 연장방송을

해야 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방송은 계속돼 일요일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했다. 월요일 출근했더니 이 사장이 "1주일만 더하자"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방송이었다. 연장, 또 연장.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들며, 장장 138일간 계속됐다.

KBS 1TV 채널은 뉴스 등 주요 프로 외에는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으로 채워졌다. 진행자로 김동건, 신은경, 황인용, 강부자씨

등이 합세했고, 잠도 잊은 채 마이크를 잡았다. 방송과 별도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벽과 그 앞 광장에는 이산가족을 애타게 찾는 이들이 붙인 벽보가

 어지러이 등장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이 곳서 살다시피 했다. 조금이라도

더 남의 눈에 띄게 하려고 높은 곳에 벽보를 붙이려 경쟁했고,

기발한 문구를 써낸 이들도 눈길을 끌었다.

 

그해 여름, TV시청자들은 밤잠을 설쳐가며

이산가족 만남의 순간을 숨죽이고 지켜봤다.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도 너무 기뻐 웃었다. 한국전쟁 후 생사를 모른 채

33년을 애태우던 남북이산가족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방송이벤트였다.

방송 중 10만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참여해 애탄 절규를 했고, 1만 189명의

 가족이 상봉의 기쁨을 맛보았다. 나는 이산가족은 아니지만, 이 프로를 만들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 드라마도 아닌데, 누가 이 프로를 볼까 했던 당초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지금은 KBS 편성실장으로 있는 이원군 PD, 작고한 방송작가 박명성씨 등

우리 제작팀은 이산가족 사연에 따라 30초, 1분씩 사연을 소개하는 방식을 채택

했고, 상봉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는 가족은 스튜디오에 초대하는 등의

다양한 아이디어로 시청자 눈길을 끌기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운좋게도 첫 날, 기대하지 않았던 이산가족의

눈물상봉이 이뤄졌다.

 

다른 신문, 방송, 해외 미디어의 반응도

놀라왔다.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인 독일 공영 ZDF를

비롯, 일본 NHK, 미국 CBS 등 해외 미디어 취재도 뜨거웠다.

국내에 이어 우리는 중국, 미국, 독일 등 해외교포도 연결해 국제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으로발전시켜 나갔다. 올림픽 주관방송사로서

 KBS의 기술 경험을당시 축적한 것도 작은 성과였다. 방송 후 벌써

16년이 지났지만, 20세기 한국 최고의 휴먼드라마 현장에서

 내 젊음을 모두 바쳐 일했던 기억은 지금도 훈장처럼

 가슴에 남아있다. 아직 분단은 여전하고, 많은

이산가족들의 한은 풀리지 않고 있다.

 

 

안국정 PD (기휙부장)가 쓴

쓴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안국정님은  또 KBS 사우회가 2011년 1월에

발간한 KBS 그때 그 얘기에 자세한 얘기를 썼다,

여기서는 이 글을 요약해서 옮긴다.

 

 

1983년 6월 30일. 이산가족 찾는 사람들을

아서 전국의 이산가족들에게 TV로 보여 주자. 적십자와

 협의해 경찰 컴퓨터-중계차, 전화 연결, 사연 듣고 연락하게 하라.

(1983년 업무일지 메모 중에서)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 KBS

1TV를 통해 첫 방송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이렇게 간단한 콘셉트로

 시작되었다. 전쟁의 포성은 사라졌지만 전쟁으로 상처 인간의 비극은 강산이

세 번 변한다는 30년이 지나도록 아물지 않았다는 현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예상하지도 못했던 엄청난 반응 속에 ‘이산가족 찾기’ 방송은 장장 138일간

 계속되었다. 하나같이 어둡고 생활에 찌든 얼굴들이 나와서 되새기고

 싶지 않을 아픈 사연들을 쏟아내는 장면이 거듭되었지만

시청자들은 TV 앞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는 6·25의

생생한 아픔이, 그 황망했던 시련이 깔려 있었고

이따금씩 터지는 상봉 장면은 이 세상의 어떤 드라마도

따라갈 수 없는 감동을 전해주었다. 그때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어있었다. 이산가족이든 아니든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숨을 죽이며,

한 가족이라도 더 만날 수 있도록 가슴을 조이곤 했다. 어쩌다 한번씩

 옷을 갈아 입으러 집에 가면 울어서 눈이 통통 부운 아내를 보았던 기억도

난다.   138일간 453시간 45분의 마라톤 방송으로 기네스북에 ‘세계

최장 시간 생방송’ 기록도 남겼다.  또 5만 3162건의 이산가족

사연 소개 중 1만 189건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으니

어찌 그냥 숫자로만 기억할 수 있겠는가?

 

 

 

 

유애리 아나운서의 추억

 

 

이 방송 첫날 저도 원종배 아나운서와

한조가 되어 가족을 찾는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황인우 손석기 조와 나누어 가족 사연 특징 담은 팻말

소개하고 인터뷰도 했습니다. 그러다 가족을 찾은 경우는 메인

엠시에 화면이 넘어가 감격적인 화면을 만드는 식으로 진행했는데

새벽이 되자 사람들이 몰려들어 사연을 적은 종이를 들고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죠. 가족을 찾겠다고 몰려든 사람들의 절규로 방송을 멈추기 어려웠습니다.

항의와 하소연하는 이들이 본관으로 들이닥치고 엠시들은 재빨리 몸을 피해야할지경

 이었 습니다. 그리고 건물 사방으로 가족을 찾는다는 벽보가 빈틈없이 붙었죠. 영화

 길소뜸에 그 장면이 나옵니다. 전 그해 삼월에 결혼한 새댁이었는데 11월

 생방송이 끝날 때까지 가족소개 보조 엠시로 주말마다 밤늦은 방송

하느라 신혼을 반납했답니다. ㅠㅠ 방송의 위력을 가장 크게

느꼈던, 보람도 컸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주제곡

  

 

드라마 남과북,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주제가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 1964년

KBS에서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한운사작 드라마 남과 북

그리고 그 드라마가 영화화되어 상영되면서 그 영화의 주제곡으로

불렸던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1983년 여의도를

눈물바다로 만든 생방송 이산가족 찾기 주제곡으로 불리면서 이 노래는 또한번

세상 사람들의 심근을 울리면서입에 오르내렸고 지금도 이산가족 찾기를 생각하면

 이 노래가 생각납니다. 언제나 들어도 정겨운 노래입니다. 1964년 드라마가

방송되고 드라마가 상영되던 그때는 인기가수 곽순옥이 이 노래를

불렀지만 1983년 이산가족 찾기를 할때는 곽순옥이 홍콩으로

간 뒤여서 곽순옥의 동료이기도 했던 패티킴이 불렀다.

 

 

 

 

 

(남과 북)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한운사 작사

박춘석 작곡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의 빛나는 눈

고운 마음씨는

달덩이 같이

이세 상 끝까지 가겠노라고

나하고 강가에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부드런 정열의 화사한 입

한번 마음 주면 변함이 없어

꿈 따라 임 따라

가겠노라고 내품에 안기어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이때 불린 노래로 특별히 기억되는 노래가 있다.

 

 

설운도가 부른 잃어버린 30년이다.

박 건호 작사 남국인 작곡 이 노래는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로 유명해진 노래다. 설 운도는

날이면 날마다 모여드는 이산가족들과 함께 하며   그 현장

에서 틈만 나면 생방송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 설 운도는

노래로 일약 대 스타가 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그리웠던 삼십년 세월

의지할 곳 없는 이 몸 서러워하며

그 얼마나 울었던 가요

우리 형제 이제라도 다시 만나서

못다한 정 나누는데

어머님 아버님 그 어디에 계십니까.

목메이게 불러봅니다

 

내일일까 모레일까 기다린 것이

눈물 맺힌 삼십년 세월

고향 잃은 이 신세를 서러워하며

그 얼마나 울었던가요

우리 남매 이제라도 다시 만나서

 못다한 정 나누는데

어머님 아버님 그 어디에 계십니까.

목메이게 불러 봅니다.

 

 

 

 

아래는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을 하던시절

KBS 홍보실에서 일했던 정규벙님이 열심히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는 모습다. 정규봉님은 엄청난 

 양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 일부를 생전에

 춘하추동송 제공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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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유네스코 등재 기념식과 기념공연

KBS 이산가족찾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합니다
http://blog.daum.net/jc21th/17782636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 동영상 모음
http://blog.daum.net/jc21th/17782477 

산천도 울어버린 인간드라마 83, KBS 이산가족 찾기 (1)

http://blog.daum.net/jc21th/17780719

 

산천도 울어버린 인간드라마 83, KBS 이산가족 찾기 (2)

http://blog.daum.net/jc21th/17780721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30년, 소리로 듣는 남북화해, 통일을 향한 마음 

http://blog.daum.net/jc21th/17781799

 

PD안국정님과 생방송, KBS 이산가족 찾기, 1983년

http://blog.daum.net/jc21th/17781019

 

남과북 드라마와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주제가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

http://blog.daum.net/jc21th/17780827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1983년의 인간드라마

http://blog.daum.net/jc21th/17780132

 

아리랑, 평양 노래자랑에서 남과 북이 함께 불렀던 민족의 노래

http://blog.daum.net/jc21th/17780980

  

남북이 함께했던 2002 KBS 교향악단 연주와 1990, 송년음악회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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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유애리 아나운서의 방송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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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의 최초 생방송 뉴스, 이정석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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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찾기, 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종합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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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보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이 때는 정말 전국민이 잠 안자고

설쳐가며 함께 울고, 만남이 확인될 때 기뻐

하고, 아닐 때 안타까워하고.......전국이 너와 나의

 구별없이 한마음이 되었던 때였어요. 이렇게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뜨거워질 수 있는 Event가 또 있으면 좋겠군요.
영화 국제시장의 줄거리에서도, 미국에 사는 여동생과는

 만나게 되어 다행이였어요. 국장님의 춘하추동방송이

 소중하고 역사적인 방송사료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계시는지  많은 분들이 알고계셔서  흐뭇

하시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윤후현 (팔방미남) 선생님 글

 

고향과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눈물과
애환을 낳게한 KBS의 이산 가족 찾기 생 방송 실황!...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곽순옥의 노래가 울려 퍼질때면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는 한 곳으로 집중 되었습니다.. 당시 방송

 관계자들,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고 있던 가족들, 눈물 흘리며 들었던

 시청자들, 삼박자가 어울러진' 민족 드라마 방송 이였지요. 좋은 소식

너무 감사하며, 퇴색된 사진밑에 보이는"춘하추동방송! 여섯 글자,

자료 보관도 잘 하셨습니다.이 방송 화면을 내 보내기 까지

물심양면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춘하추동방송

 이 장춘 사장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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