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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이종성

이장춘 2015. 1. 24. 05:14

 

 

 

언론인 이종성! 1956년 동화통신

1기 기자로 저널리스트로서의 길을 것기

시작한이래 신아일보 사회부장, 대한일보 동경

특파원,  한국일보 미주본부 주필, 한미방송사장,

KITN사장 등을 거치면서 국내보다도 일본, 미국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며 격동기 현대사의 현장을  체험

으로, 기록으로  남긴 외길인생 언론인이다.

 

 

언론인 이종성!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매체들이

 통신사 기사를 중요취재원으로 삼던 시절

통시사 기자로 4.19, 5.16 등 역사의 현장을 발로

누비며 신속하고 정확한 시각으로 전달했으며 1964년

동경 올림픽에서 그 유명한 신금단 부녀 상봉현장을 취재해서

 전 언론사에  브리핑했고 1972년 삿뽀로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한필화가 그 현장을 찾은 오빠를 끝내 만나지 못한 그

사연들을 국내, 외 언론에 전한 주인공이다.

 

 

 

 

1966년 4개월간에 걸친 유럽을 순회,

취재활동을 하면서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 했을 때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부와 광부를 취재했고 

그 때는 취재라기 보다도 눈물로 맞은 그들과의 상봉이라고 했다.

1970년대 한국일보사 미주본사 주필로 미국에 건너갔을 때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이민물결이 한창이던 시절이었지만 그때까지도 미국에서

 대한민국사람들의, 또 대한민국 사람들을 위한 언론활동은

불모지라고 할 만큼 보잘 것 없는 상황이었다.

 

 

 

 

불모지에서 시작된 그의 언론활동은

한인들의 언론에 관한 이정표를 수립하며

 개척자로서의 업적을 쌓아오면서 자랑스런 한국인

으로 자리매김 했다. 미주 한국일보 본사에서 활동하던

이종성이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일본특파원으로 갔다.

거기서 8년간 많은 활동을 했고 특히 1983년 일본의 최북단

 북해도 와까나이에서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분노를 자아낸

KAL기 격추사건이 일어났을때의 취재추억은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다 현장접근을 불허하던 초기 그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현장취재를 단행해서

 누구보다도 먼저 그 일을 세상에

 알렸던 것이다.

 

그는 언론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사건에 접했고 세계를 순방 했으며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일본의 노밸

문학상에 빛나는 가와나비 야스나리 등을

만났고 그 얘기들을 남겼다.

 

 

 

 

1970년대 언론인으로 겪은 일,

특히 미국이민과과 미주한인사회에 관해

한국일보에 연재하고 그 글을 모아 책으로 발간

되어 미국 이민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많은 책이 

팔려 4판까지 발간되었고, 박정희 대통령도 그

책을 독파하고 고마움을 전해 오기도 했다.

 

 

 

 

 

1930년 서울에서 아버지 이희양선생과

 어머니 이노희여사 사이에 태어난 이종성은

조선조 광해군때인 1614년 이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이라고 할 수 있는 불후의 명저 "지봉유설"을 남겼고 조선

사람으로는 최초로  천주교를 접한   선각자 이수광선생의

16대손기도 하다.  2,000년무렵까지 계속된 언론활동을

 뒤로하고 지금은 LA남쪽, 샌디에고에서 그림을 그리며

 부인 홍선주 여사와 평안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이 얘기들을 미국에서 50년간 방송활동을 한

 우 선생님이 2010년 이"종성의 회고록"이라는

이름으로 35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서 방송하고 그

비디오를 춘하추동방송에 제공 해 주셔서 17분으로 편집

올린 것이다. 지금 그중에 듣고계시는 음성은 그 앞부분

이고 동영상에는 더 자세한 생생한 기록이 있다.

 

 

영상 보기

 

 

동영상을 보시기 전에 음향을 끄셔요.

 

 

 

 

 

 

 

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평생을 통해 한국인으로 한국언론사에

큰 발자국들을 남기신 분이시군요. 그분에 관한

기사들을 모아 편집해서 이종성 회고록을 편집해서

 방송하신 김영우 선생님의 뜻 또한 길이 기록으로 남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이장춘 국장님이 계셔서 이런 자료들이

한군데 모여질 수 있어 더욱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부디 건강 잘 지키셔서, 흘러간 역사를 다시 밝히는

 보람의 날들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윤후현(팔방미남) 선생님 글

 

 

1983년도, 전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일본 북해도 와까나이에서 있었던 KAL기 격추 사건과

 1972년 동계 올림픽 대회때 북한의 한필화 선수를 취재 하셨

구만요.한인들의 언론에 관한 이정표를 수립하여 개척자 로서의

 업적을 쌓으신 자랑스러운 한국인 이종성님!이 또 "지봉유설!"의

 저자 이신 천주교 선각자, 이수광 선생님!의 16대손 이라니 자랑

스럽습니다. 지금은 로스안젤스 남쪽 샌디에고,에서 그림을

그리시면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계신다니 정말 부럽습

니다. 언론인 이종성씨! 소개글   감사합니다. 춘하추동

방송 이장춘 사장님!...연세가 있으니 건강에

항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종성 사장시절  라디오코리아를

이끌어 간 분들 뒷쪽 오른쪽부터 김영우

아나운서, 윤부용아나운서, 권윤기아나운서, 앞줄

왼쪽 6.25전쟁첫방송으로 널리 알려진 위진록

아나운서, 라디오 코리아 사장 이종성님  

 

아래는 라디오 코리아 스텦과 출연진이

함께 한 사진, 이때의 출연진은 위진록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민병수변호사, 전봉자박사, 김영선 내과,

박관우 관광전문가, 주명식, 이인선 박사등

쟁쟁한 인사들로 구성되었다.

 

 

 

 

 

라디오 코리아 창립 1주년을 맞아

한국일보 장강재 사장, 이종성 미주사장,

김영우 방송국장이 참여한 가운데

간단한 기념식이 있었다.

 

 

 

 

 

이종성 경기중학교 시절 미술에 특기가 있었다.

 

 

 

 

이정재가 감옥에 있던시절의 만남

 

 

 

1964년 신금단 선수를 취재 했을때

 

 

 

1972년 한필화 선수를 취재 했을때

 

 

 

 

1966년 서독파견 간호사와 광부상봉 취재

 

 

 

 

 

1967년 일본 기시 노부스케 수상과

 

 

 

1967년 세계적인 태너가수 주세페 디 스테파노와  

 

 

 

 1967년 동경 도시자 미노배와

 

 

 

 1971년 일본 노밸문학상 수상자와바다 야스나리와

 

 

 

1975년 조선조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와

 

 

 

이회창 공군 예편때 민관식과 함께

 

 

 

 

부인 홍선주여사

 

 

 

 

 

 

 

 

 

저서 미국이민과 미주 한인사회

아래는 이종성 스스로 그린 장미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이종성기자.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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