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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와 애국가 올드랭 사인 Auld Lang Syne 곡의 조선사람과 대한사람

이장춘 2014. 7. 12. 15:57

 

 

 

 

태극기와 애국가! 한민족 대한민국의

상징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민족이 있는곳이면

 태극기가 걸리고 애국가가 울려퍼진다. 지금 듣는 애국가는

 조선왕조말부터 불린 대표적인 애국가로 해방공간에서 불린 노래를

 재현한 것이다. 앞에 나온 애국가는 1946년 1월 14일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중앙청에 국기봉에 태극기가 오를때 이승만, 조병옥, 여운형

민족지도자들을 비롯, 관련인사들과 학생들이 참여해서 부른

애국가이고 뒷부분은 1947년 8월 고려레코드사가 음반

1호로 내놓은 애국가로 테너 송진혁과 대학교

 합창단이 함께 부른 애국가다.

 

 

태극기와 애국가 올드랭 사인 곡의 조선사람과 대한사람

 

 

조선조 말부터 태극기와 애국가는

상황과 단체 또는 개인이 사용한 수많은

종류가 있다. 독립문역에 가면 그동안 사용되었던

수많은 태극기가 벽에 걸려 있음을 본다. 애국가도 그렇다.

해방되고 정부가 세워진후 오늘날의 태극기, 애국가를 사용하기

 전까지느 그랬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소련군을 환영하면서

태극기를 흔들었고 같은 애국가를 불렀다. 북한이 태극기를

 폐기하고 인공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48년 7월 24일의 일이었다.

 

 

 

 

조전왕조 말부터 해방공간까지

제일 많이 불린  애국가는 지금 들으시는  

노래다.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 (Auld lang

syne)곡조에 우리말을 넣어서 불러오던 노래였다. 이 노래는

 일제강점기 국내에서는 부르기 어려웠지만 해외동포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랬다. 1932년 LA올립픽에 참여했던

우리 선수들이 미국교포들이 마련한 만찬장에 가 처음 태극기를

보고 애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고 했다. 해방되던날

애국가를 부르려고 했지만 가사와 곡을 몰라 그저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가를 불렀다.

  

 

 

 

오늘 듣는 애국가 곡은 같아도 가사가

 앞의 애국가는 "조선사람 조선으로 길이 보전하세"

이고 뒤의 가사는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된 나라에서도 태극기를 우리 마음대로

걸지 못하던 상황에서 중앙청에 처음 태극기가 올라 갔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날인가? 어찌 되었던 1년 여 사이에 가사가 「조선」에서 

대한」으로 바뀌었다. 조선은 500 여년간 이어온 왕조이고 대한은

 고종이 우리나라가 독립국임을 만천하에 선포하면서 국호를

 대한제국이라고 한데서 비롯된다. 해방공간에서도

조선을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46년 4월 그 유명한 정판사 사건이

터졌. 남노당이 위조지폐를 마구 찍어낸

것이다. 그로부터 공상단은 불법화 되었다. 그런데

그 공산주의 자들은 대한 보다는 조선을 즐겨썼다. 여기서

조선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갔다. 조선이라는 말 대신에 대한으로

바꾸어 나간 것이다. 1947년 8월에 취입된 "조선의 노래"가 1948년

정부 수립후 "대한의 노래"로 곡명이 바뀌고 일제 강점기 선우일선이

부른 대표적인 신민요 조선팔경도 대한팔경으로 이름을 바꾸어 남한의

가수들이 불렀다. 그 시절 어린 필자는 조선이라는 말을 쓰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좀 커서 보니 조선일보, 조선호텔 등 조선을 쓰는

 신문사나 큰 호텔등이 있음을 보고 조선이라는 말도 흠이

아니라는 것을 안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남한은 헌법을 제정할때 국호를

대한민국이라고 했고 북한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했다. 이러다보니 남한에서 조선을

 쓰는것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져 갔다.  1946년 12월

12일 입법의원이 개원 되면서 안익태 작곡 애국가가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불렸다. 그래도 사람들은

올드랭사인곡에 익숙해져서 그 노래를

 불렀지만 "조선"은 차츰 대한이라는

말로 바뀌어갔다.

  

이때까지는 우리나라에서

레코드 제작이 어려웠다.  그 시절에는

 방송국에서 이런 행사를 중계방송해도 생방송

이어서 녹음물을 남기지 않아 기록이 없고「조선시보」

 「전진조선보」등에서 만든 영화기록이 있을 뿐이다.  

해방되어 처음으로 레코드를 취입해서 나온것이 1947년 8월

이다. 고려 레코드사가 레코드 1번으로 내 놓은 것이  바로

송진혁과 대학 합창단이 부른 애국가다. 아래사진은

해방후 처음으로 레코드를 제작한 고려레코드

최성두사장과 애국가  지휘자 김성태다.

최성두사장이 피아노반주를 했다.

 

 

 

 

 1948년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를 정식 국가로

채택했지만 그 뒤에도 올드랭 사인의 애국가

 불렸고 지금도  송가로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사인(Auld lang syne)들려 올 때면 그 곡에

맞추어 애국가를 흥얼거리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는 분들이 계신다.

 

 

 

 

  • 들려오는 애국가 가사

   

    *.1946년 1월 14일의 노래는 "조선사람 조선으로" 이고

       1947년 8월에 취입된 애국가는 "대한사람 대한으로" 이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도 처음에는 "보호하사"였던것 같은 생각이다.

 

  • 1.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  2.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  바람이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  

  • 3.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애국가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을 같이 들으며 (Auld lang syne)

http://blog.daum.net/jc21th/17781085

 

태극기! 애국가와 함께 중앙청에 처음 펄럭이 던 날 1946년 1월 14일

http://blog.daum.net/jc21th/17780926

 

 

미국에 사는 우리동포들의 행사장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걸려있는 경우가 많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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