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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趙芝薰) & 방송인연, 조동탁 승무 파초우 기다림

이장춘 2013. 12. 7. 03:41

 

 

 

이 시대의 마지막 선비로 불린 조지훈!

한국 현대시의 주류를 완성한 청록파 시인,

한학을 공부했던 조지훈이 동국대학교 전신인

혜화전문학교를 나와 한학과 불교, 현대문학을

 어우르는 전통과 선(禪)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결합한 시인이라던 조지훈선생이다.

 

 

조지훈 (趙芝薰) & 방송인연, 조동탁 승무 파초우 기다림

 

 

방송인들이 만나면 그 조지훈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 나라 방송의 산

역사라고 불리는 최창봉 선생은 고려대학교 극회

지도교수로 있었던 시절의 스승이라는 인연으로 1952년 

12월 23일 김지숙과의 결혼식에 선생이 주례를 섰고 또 최창봉이

 동아방송국 개국책임을 맡아 일할때 동아 방송의 사가를 썼다. 김성태

 작곡으로 불린 이 사가는 개국 때부터 1980년 11월말 동아방송의 

깃발이 내려질 때까지 힘차게 불려졌다. 오늘 배경음악은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 정흥숙이 암송한 조지훈의 시

 “기다림”과 동아방송의 사가를 함께 올렸다.

 

 

 

 

국회의원을 지낸 아나운서 출신 이계진은

장기범과 조지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천에서 많은 인물이 났지만 혹자는

‘인천삼절’로 고유섭 선생, 김은호 선생과 함께

방송인 장기범 선생을 서슴없이 꼽는다. 젊은 날의 명성과

생을 통해 변치 않았던 곧은 지조를 아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는 확실히 시대의 선비였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장기범

아나운서는 모교의 위대한 시인이요, 사상가인

조지훈 선생을 흠모하였다.

 

 

 

 

항상「지조론」을 가까이 두고

읽었고 시절이 어수선할 때마다 지훈 선생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이야기’는 ‘과분’이라며

아무 말 없어도 좋으니 약주 한잔 대접하고 싶다고 늘 말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조지훈 선생의 마음속이었다. 어느 해인가

 지훈 선생의 제자인 이규항아나운서가 해소에 좋다는 인절미를

사들고 모교로 스승을 찾아뵈었을 때, 지훈은 ‘공보부에서

인물 한 사람 꼽으라면 장기범 아나운서 하나!’ 라고

했다고 한다. 만난 적이 있을 뿐인

두 선비의 사연이다.

 

 

 

 

방송인 최종채는 그의 자서전

 "전통문화 앞에서" 책 뒷부분에 "은사의 필적"

이라고 해서 따로 올린 부록에서 「조지훈 선생님은

 이 시대의 마지막 선비로 불리었다.」「전통은 창조의

원천이 된다고 했다. 」면서 조지훈의 지조론과

함께 그를 소개했다.

 

 

 

 

KBS가 남산에 있던시절 남산 순환도로가

개설되면서 거기에 조지훈 시비가 섰다. 앞면에 선생의

시 파초우(芭蕉雨)가 새겨지고 뒷면에는 공적이 실렸다. 2013년

 11월 7일에 실시된 대학 수능시험에 교과서에도, EBS교재에도 없는

문제가 출제되었다고 해서 화제가 된 그 시 파초우다. 요즈음이야 시비나

기념관 문학관 등이 여기 저기 서 있지만 그 시절에는 이런 시비를 보기가

쉽지 않던 때라 그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그 시비를 유심히 보고 조지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필자가 근래 그 길을 지나다가 그

시비와 그 주변을 유심히 보았다. 그  시비와 주변의

옛날 모습을 그리며 부근을 촬영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그 부근에 경성신사,

노기신사, 조선신궁이 있어서 이 시비가 있던

부근의 길을 통해서 참배 길에 오르내리던 곳이다.

조지훈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려진 분이어서 이 시비와

 비에 새겨진 파초우 그리고 오늘 정흥숙이 암송한 “기다림”과 

그의 대표적인 “승무”를 약력과 함께 올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시비가 한자로 되어있는 등 읽기에 불편이 있을 수도

있어서 일부를 글로 써 올렸다.

 

 

 

 

 이와같은 그의 다채로운 경력과

수많은 업적은  그의 활동이 얼마나 눈부신

것이었는가를 뚜렷이 보여주거니와 그는 비단 우아하고

청장한 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학과 불교와 근대 문학에 대한

깊은 조예와 문학, 역사, 민속학등 여러분야에 걸친 광범한 관심을 가진

학자였다. 또한 절개의 금도와 풍류에 있어서도 그는 당대에 이름높던 인사

로서 이미 그는 소시부터 민족의식에 투철하여 일제의 질곡아래 그늘진 삶을

살았으며광복직후에는 민족주의 문화진영의 선두에서 예봉을 휘드르던 논객

이었고 대한민국 정부수림 이후에는 역대정권의 비를 과감히 비판하는

 지성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성품은 화사하고 호방하였으며

또한 근실하고 치밀하였으니 실로 예민한 감수성과

높은 지성과 굳샌 실천력을 겸비한 시인이요

학자요충사요 풍류인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뜻에서 그는 빛나는

한국선비의 전통을 전형적으로 구현한

사람이오. 그가 평소에 사모하던 매천과 만해의

전신과 자질을 이어받은 당대에 드문 인물이었다.

여기 그의 생전의 벗들과 제자들이 뜻과 힘을 모아

 그의 시 「芭焦雨」한편을 새기고 그의 행적과 풍모의

일단을 적음은 이러헌 그의 빝나는 시아 생애의

 정신을 길이 후세에 전하기 위함이다.

 

 

시비 뒷면 전문

 

 

 

  

 

 

 

지훈 약력

 

1920년 : 12월 3일(음력) 영양군 일월면 주실에서 조헌영과 유노미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출생.

1939년 : 《문장》3월호에 <고풍의상>, 12월호에 <승무>가 추천됨. 동인지 《백지》발간.

1940년 : 《문장》 2월호에 <봉황수>가 추천됨. 김난희와 결혼.

1941년 : 3월 혜화전문 졸업. 4월 오대산 월정사 불교강원 외전 강사. 12월 상경.

1946년 : 3월 전국문필가협회 중앙위원. 4월 청년문학가협회 고전문학부장.《청록집》간행.

1948년 : 고대 문과대 교수

1952년 : 첫 시집 [풀잎단장] (창조사) 간행

1953년 : 평론집 [시와 인생] (박영사) 간행, 평론집 [시의 원리] (산호장) 간행

1956년 : 시집 [조지훈 시선] (정음사) 간행 자유문학상 수상

1959년 : 시집 [역사앞에서] (신구문화사) 간행 고대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

1961년 : 벨기에에서 열린 국제시인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가.

1962년 : 수상집 [지조론] (삼중당) 간행

1963년 :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 《한국문화사대계》 기획.

1964년 : 시집 [여운] (일조각) 간행, 수필집 [돌의 미학] (고대출판부) 간행, 평론집 [한국문화사서설] (탐구당) 간행

1967년 : 한국시인협회 회장.

1968년 : 5월 17일 영면.

1971년 : 남산에 조지훈 시비 건립.

1973년 : [조지훈전집] (일지사) 전7권 간행

1982년 : 경북 영양군 주실에 지훈 조동탁 시비 건립.

 

 

  조지훈 시

 

   파초우(芭蕉雨) 

 

외로이 흘러간

한 송이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성긴 빗방울

파촛잎에 후두기는 저녁 어스름

창 열고 푸른 산과

마조 앉어라

 

들어도 싫지 않은

물 소리기에

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아

 

온 아츰 나의 꿈을

스쳐간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승무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아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기다림 

 

고운 임 먼곳에 계시기 

내 마음 애련하오나 

먼 곳에나마 그리운 이 있어 

내 마음 밝아라. 

 

설운 세상에 눈물 많음을 

어이 자랑 삼으리. 

 

먼 훗날 그때까지 임 오실 때까지 

말 없이 웃으며 사오리다. 

 

부질없는 목숨 진흙에 던져 

임 오시는 길녁에 피고 져라. 

 

높거신 임의 모습 뵈올 양이면 

이내 시든다 서를리야...

  

어두운 밤하늘에 

고운 별이.

 

 

관련글 보기

 

 

국회의원 이계진님이 쓴 장기범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0163

 

전설의 방송인 최창봉님과 방송의 역사 (1)

http://blog.daum.net/jc21th/17780350

 

방송의 역사 살아있는 전설, 최창봉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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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최종채님 초대 한국 민속박물관장, 전통문화 앞에서

http://blog.daum.net/jc21th/17781748

 

일제강점기 조선신궁, 이토오신사비, 황국신민 서사비

http://blog.daum.net/jc21th/17781691

 

 

 

유경환 여사(유카리나)

 

 

조지훈 선생님은 너무도 유명한 분이시지만
이렇게 그분에 관해서 자세히 읽을 수 있는 기회는

적었다는 생각입니다. 한 시대를 거치면서 시인으로,

학자로서 많은 자취를 남겼지만오늘 뜻밖에 이 기사를

읽으면서 새삼 그분에 대해 공부하게되어 감사드립니다.
어린시절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승무'뇌리에 단단히

 박혀 있으나 중간중간 잃어버린 부분들 선명히

 복원되어 반가움에 다시 적어 법니다.

 

 

 

 

 

 

 

경성신사 뒤에 바위절벽이 있었다.

오늘날의 그 부근 모습을 촬영 해보려고 했더니

모습도 달라지고 산림이 우거져 그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그 적벽위로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고 날씨 좋은 날은 북악산,

 인왕산, 낙산의 한양도성 성곽으로 둘러사인 서울이 선명하게

 보이지만 이날은 스모그로 선명치 않아 옛 님신빙송국 모습만을

담았다. 파란색 지붕 남산 라디오 연주실은 일제강점기 총독부

자리였고 TV방송국은 동대원사 절터였다. 노오란 건물이

오늘날 리라초등학교로 일제강정기 그 부근에

경성신사 노기신사가 있었다.

 

 

 

 

 

 

조지훈 기다림 동아방송국가.wma

 

 

조지훈 기다림 동아방송국가.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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