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희씨는 부지런하고 일을 벌이는 성격이어서 1954년 방송국에 들어와 많은 일을 해냈다. 어린이 시간을 15분에서 30분으로 늘리고 무엇일까요, 누가누가 잘하나 등 어린이 공개방송을 새로 신설하고 주제가를 손수 작곡하며 열성을 보였다. 어린이 합창단, 어린이 극회를 새로 조직했다. 어린이 콩쿠르를 새로 주최하기도 하고 중견 음악인들로 하여금 KBS 앙상블을 조직하여. 어린이 음악벌전에 공헌이 컸다. 그러다가 60년대에는 월남방송국 개국, 서울 FM 방송국에도 관여하여, 방송국 개국 공신이 되기도 했다.
한용희 어린이 방송 한국동요 80년 파란마음 하얀마음
1945년부터 이 나라 방송을 지켜온 노정팔선생님의 한국방송과 50년에서 인용한 글이다. 이 글로 한용희가 방송과 맺은 인연을 짐작 할 수 있다. 오늘의 음향 물은 1960년 4.19후처음 맞이하는 어린이 날 특집방송으로 그 시대의 이름 있던 아동문학가 강소천의 작품을 한용희 연출로 방송한 드라마에서 땄다.
1858년 6월호 방송지에 실려있는 한용희사진이다. 한용희는 편성자의 24시간이란 글을 통해서 그때의 하루 하루의 생활상의 기록을 남겼다.
1931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서울로 옮겨 살면서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즐기고 방송국을 출입했다. 그가 방송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6.25전 중학교 (5년제) 때 부터로 방송국 부근의 덕수교회 성종합창단을 지휘 할 때 그 합창단이 방송출연을 하면서 부터다. 지금도 KBS사우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김준호님은 한용희에 관한 60년이 더 지난 얘기를 필자에게 들려주셨다. 한용희는 그 합창단의 지휘를 했고 한 살 아래인 김준호 자신은 반주를 하고 때로는 지휘를 하며 함께 지냈다고 했다. 노정팔 선생님에 따르면 한용희가 종달새 동요회를 지휘하면서 방송에 출연했다고 했다. 이토록 어린 시절부터 특출한 음악적 재질과 부지런함이 있었다.
공개방송을 진행하는 PD한용희와 강영숙아나운서
6.25가 지나고 임시수도 부산에 있던 방송국이 서울로 오면서 1954년부터 중앙방송국에 프로듀서로 들어왔다. 6.25전부터 어린이 합창단을 지휘 해 오던 안병원이 바쁜 일로 어린이 합창단 지휘가 어려워지면서 한용희가 어린이 합창단을 직접 지휘하기도 해서 KBS 제 3대 어린이 합창단 지휘자로 기록되어 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편성하고 제작하며 어린이 합창단을 지휘하고 동요를 만들어 방송을 통해 보급했다. KBS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 무엇일까요, 누가 누가 잘하나가 그로부터 기획편성 되고 제작되기 시작했다. 지금 까지도 널리 불린 "파란마음 하얀마음"은 KBS가 노래 글을 모집 해서 어린이 담당 프로듀서 한용희가 작곡한 노래다.
그 주옥같은 노래가 1957년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하는 국민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지금도 어린이들은 그 노래를 즐겨 부른다. 윤석중 작사 "고향"에 곡을 붙여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 이다. 지금도 그 노래가 국내외에서 널리 불리지만 6. 25전쟁 직후 고향을 떠나 살던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며 이 노래를 불렀다.
1957년 어린이 합창단이 1967는 방송 40주년 특집방송때 다시만나가운데 남자분이 한용희이고 왼쪽 끝 67년의 어린이 담당 PD, 오른쪽 끝 지휘자 유병무, 사진은 박인채님 카페 KBS 어린이 합창단 종집합 http://cafe. daum.net/kbschildrenschoir에 있음
어린이 합창단에 앙상불을 도입하면서 독창적인 장르를 개척 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방송국 스튜디로를 나가 전국을 순회하며 공개방송을 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15분간의 어린이 방송시간을 30분으로 늘려 공개방송, 드라마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 되었고 노래 지도시간 등을 마련 방송을 통해서 동요를 보급 해 나갔다. 그 시대에 어린이 프로그램에 관한 궁금한 사항이 있어서 강영숙, 김인숙 등 담당 아나운서에게 물어보면 한용희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한용희는 그 시절에 어린이 방송에 관한 한 다 방면에 걸친 만능 프로듀서였다.
그 시절 공개방송을 진행하는 김인숙 아나운서
그가 어린이 방송을 뒤로 한 것은 국제방송국 대공과 연예계장을 맡으면서 부터다. 5.16이 일어날 무렵 부터 1963년 여름까지 연예계장을 하던 한용희가 방송국을 나가 잠시 서라벌예술대학 방송학과에서 강의를 한다고 하더니 서울FM방송이 개국되면서 1965년 방송부장을 맡았다. 그러나 방송국 사정이 어려워져 TBC동양방송국으로 넘어가고 때마침 월남에 주월 한국군 방송국이 생기면서 그 방송국의 국장으로 부임 해서 주월 한국군과 함께 했다.
그때 생긴 주월 한국군 방송국은 영원히 없어졌지만 TBC로 넘어간 FM방송국은 지금의 KBS 제2FM이 되었다. 방송국 현업에서는 물러났어도 그가 일생동한 함께 해온 동요는 그 곁에 항상 같이 있다. 그가 1988년에 펴낸 한국동요음악사와 2004년 한국 동요인회 회장 시절에 펴낸 한국 동요 80년사는 이 나라 동요 역사를 알리는 기본서로 애독되고 있다. 다른 내용들은 한용희가 어린이 합창단을 맡았던 기간 중의 얘기와 한용희 약력을 올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한용희 어린이 합창단 지휘시절 1955년-1957년
어린이 시간 담당자 한용희님이 합창단 지도를 겸하면서 1955년 1월 명칭을 "서울방송어린이노래회"로 개칭하고 재래의 피아노 반주에서 8인조 관현악편성의 서울방송앙상불을 조직했다. 앙상불이란 관현악단을 일컿는다, 이때부터 한층 업그레이드된 동요음악을 전파에 실어 보내기 시작했다. 재조직 강화된 서울방송 어린이노래회는 방송출연 뿐아니라 그해 8월 호남지방(광주, 목포, 군산, 이리, 전주)을 순회연주하였고 이듬해 1956년 8월 영남지방(부산, 대구, 대전)을 순회하는 등 합창단 활동은 전성기에 달했다.
1956년도 최초의 앙상불 멤버
출연프로그램은 1954년 신설된 알아맞추기 공개방송 "무엇일까요?"를 비롯해서 어린이노래자랑 공개방송 "누가누가 잘하나" 1956년 아침시간대에 편성된 "착하고 아름 답게"는 합창단원과 앙상불멤버들이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이른아침 앙상불 반주의 순수 동요 프로그램으로 청취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애창된 동요는 파란마음 하얀마음, 눈길, 바다, 구슬비, 꽃밭에서, 어린이 노래, 푸른잔디, 나비노래, 흰구름 푸른구름 등 서정적인 노래로 환도후 거치러진 어린이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특히 1956년도 합창단 독창자로 쌍벽을 이루었던 서의자님(재미)의 "언덕위에 피는 꽃"과 신기자님(무학여고 음악교사-퇴직)의 "산넘어 산"은 당시 베스트동요중의 하나였다. 권길상님의 "어린이 왈츠"는 그 당시 어린이 시간 신호음악으로 1990년대 라디오에서 어린이 시간이 폐지되기 까지 40여년간 사용된 최장수 시그널이다.
정동에서 남산으로 이전 할때의 단원 1957년
이명학선생님과 이수자, 최영희, 조규수, 박인숙, 차말란, 김혜원, 박경희, 송경란
57년 12월 남산연주소로 옮겨와서
정동연주소에서 뽑힌 56~57년도 단원들이
당시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있었던 라디오 어린이공개방송 "누가누가잘하나"는 1972년 TV프로로 방송되다가 1981년 폐지되어 2005년 4월 20여년만에 부활되었다.
한용희선생님 약력
1931년 9월 7일 충북 청주 출생
학력
1952 ~ 1960 홍익대 신문학과 졸업
경력
1954 ~ 1961 KBS 서울중앙방송국 어린이 PD 1961 ~ 1963 KBS 서울국제방송국 연예계장 1964 ~ 1966 서라벌예술대학 방송학과 강사 1965 ~ 1966 서울FM방송 방송부장 1966 ~ 1968 駐월 한국군 방송국장 1974 ~ 1986 한국방송협회 기획운영부장 1988 ~ 1991 한국음악협회 이사 1989 ~ 1990 방송위원회 광고심의 위원장 1990 ~ 1991 한국방송개발원 이사 1992.1 ~ 1993.12 방송위원회 연예오락 심의위원 1996 ~ 방송위원회 영화 심의위원 1996.1 ~ 1998.2 방송위원회 영화심의위원 위원 ~ 한국동요인회 회장 ~ 현 한국동요음악연구회 회장
상훈
한국아동음악상/1977 대통령표창(국민개창운동 유공)/1982 대한민국동요대상/1989/서울YMCA KBS동요대상/1990/한국방송공사 반달동요대상/1995/한국 어린이 문화예술원 옥관문화훈장/2004.10
저서 논문
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동요부문집필/1986 한국동요의 역사성과 순수성/한국음악협회 음악인세미나/1987 한국동요의 예술적 가치관/서울YMCA 동요심포지움/1993 한국동요의 역사성과 순수성/부산문화방송TV 명사초청강연/1995
한용희동요작곡집1-봄아가씨 1957 한용희동요작곡집2-파란마음 하얀마음 1959 한용희동요작곡집3-우리는 귀염둥이/현대악보출판사/1963 방송국이야기(소년독본)/배영사/1963 한국동요반세기/세광음악출판사/1973 한용희동요작곡집4-작은새의 열망/세광음악출판사/1978 우리동요365곡집/상호음악출판사/1987 한국동요음악사/세광음악출판사/1988 한국의 동요/세광음악출판사/1994 한용희 애창동요 100곡선집/도서출판한국음악연구회/1998 한용희 동요 80년사 <창작동요 80년>/ 2004년
음반
파란마음 하얀마음(동요CD)/신나라레코드/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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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어린이 합창단의 어제와 오늘 http://blog.daum.net/jc21th/17780324
1960년 어린이 날 특집드라마 그때 그 목소리 강소천, 윤석중, 한용희 http://blog.daum.net/jc21th/17781361
월남파병과 월남 국군방송국 http://blog.daum.net/jc21th/17781714
어린이 방송 글 모음, 모윤숙, 한용희, 박인채, 호기수, 강영숙, 윤영중 http://blog.daum.net/jc21th/17781934
유경환(유카리나)여사님 글
한용희 선생님이 새해에 84세가 되시겠군요.요즘은 80이 지나야 어르신 호칭을 듣는 시대이니, 아직 건강하시면 바쁘게 생활하시겠습니다. 여기에 올라있는 사진의 어린이들 중에서 이 사진을 보고 자기 어린 시절을 찾아 내시는 분들은감개무량하시겠습니다.
이가인보나 선생님 글
한용희 유병무선생님의 젊은시절 활동사진 처음 봅니다 한용희선생님 가까이 모신지 어언 이십년 가까이 되었는데 근래 건강이 좋지 않으시니 마음이 서늘합니다. 유병무선생님께선 2012년 11월 이수인의음악과 삶 음악회에 참석하셔서 미국에 올때 건강하신 모습으로 만나 뵈었습 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이혜자
한용희 선생님과 어린이 합창단
2003년 12월 이혜자가 종로 5가 연강 홀에서 연 동요음악회에서 축하 인사하는 한용희 이때까지 동요인들이 제일 많이 모인 음악회로 기록되었다.
준공을 앞둔 남산 연주소에서 조남사, 김영수, 최요안 작가와 함께 한 한용희
1957년 인천 창녕국민학교에서 위는 공개방송을 진행하는 장면이고 아래는 녹음이 끝나고 촬영한 사진이다 앞에 앉은 오른쪽분이 한용희이고 왼쪽은 교장선생님이다. 뒷분은 왼쪽부터 그때의 아나운서 실장 잘기범, 누가누가 잘하나 담당 아나운서강영숙 성우 이혜경, 염석주, 무엇일까요 담당 아나운서 김인숙이다.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이혜경 염석주님과 김순원, 이옥희, 이흥자 학생이 출연했고 김순원, 이흥자 학생은 1960년대 성인 성우로도 활동했다. 김순원님은 여자 아이역, 이흥자는은 남자 아이역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이 무렵 이상만은 효과 에서 여러 재능을 발휘했다.
KBS어린이 합창단과 깊은 인연을 맺은 분들이 2012년에 만나한용희, 안병원부부, 이혜자, 하얀옷 학부형 최연수 어머니, 권길상 부부 그리고 학부형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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