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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 남산 기념관

이장춘 2013. 9. 17. 19:03

 

 

내가 한국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을

 해외에서 풍찬노숙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2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여한이 없겠노라.

 

 

의사 안중근 義士 安重根, 남산 기념관, 안 의사 광장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에서

조선침략의 원흉 이등 박문 (이토 이로부미)를

처단하고 1910년. 3월  26일 여순감옥 형장에서 최후를

마친 안중근 의시기 짧은 일생을 마치고 감옥에서 순국

직전 동포들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었다. 그리고 그로

부터 103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의사의 말씀대로

우리 동포들은 그의 뜻을 이어받아 독립을 이룩

하고  남부럽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필자는 2007년 남산에 있는

안중근 의사광장과 기념관을 찾아 글을

쓴 적이 있고 2013년 7월 6년 만에 또 같은 곳을

찾았다.  6년 만에 기념관도 달라지고 서 있는 동상도

 달라지고 주변도 달라졌다. 안 의사 광장이나 기념관이

있는 곳은 일제강점기 조선신궁이 있던 곳이고 남대문에서

 조선신궁까지 올라오는 길은 그곳의 성을 헐어 그 돌로 쌓은

 384계단의 돌을 이용해서 조성 했다. 6년 전 안 의사

 기념관을 들릴 때만 해도 그 계단을

따라 기념관을 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양도성 남산 성곽 길과

 잔디밭으로 조성되어 연결된 길 따라서 올랐다.

그 더러운 조선신궁 자리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의사

 안중근 광장이 있고 기념관이 있어서 그의 얼과 사상,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었기에 가슴 벅찬 마음으로 기념관을 돌아보았다.

 기념관을 들어서자 의사의 큰 좌상이 늠름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사진촬영이 가능하다. 안의사에 대한 

예를 올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내부는 별도의 승인을 얻어

촬영이 가능 하다고 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안 의사 광장을 비롯해서 촬영이 가능한

부분만 올린다. 내부에 들어서자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영상과 음향 등을 활용, 생생한 모습을 보고 들을 수 있다.

6년 전에 보았던 기념관도 훌륭했지만 이번에 본 기념관은

더 생생한 모습으로 안 의사를 접 할 수 있었다. 오늘

음향은 국가보훈처가 올린 “민족의 큰 별 안중근

의사” 동영상에서 옮겨 온 것이다. 

 

 

 

 

  

 

 

  

 

 

 

  

  

 

 

 

 

 

위는 2007년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주 주변이고 아래 사진은 그때의 안중근 동상,

 기념관에 걸려있던 사진이다.

 

 

 

 

 

 

의거 그때의 상황과 안중근 의사의모습이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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