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을 잠시 끄시고 큰영상으로 아래 동영상을 보셔요
도대체 무엇을 하는 영상일까? 필자는 이 영상을 보는 순간 정말 찾고자 아는 영상 한편을 잦은 기쁨으로 날마다 한펀 이상씩 써올리던 "춘하추동방송" 글도 걸르면서 화면을 두번 클릭해서 전체화면으로 키운 후 화면에 나타난 반복설정으로 이 동영상을 수많이 보았다.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동영상이어서 수많은 화면을 알기쉽게 정지화면으로 잡아 올린다. 지난날 이런과정을 통해서 방송국이 세워졌고 또 이렇게해서 그 시대를 살던 우리국민이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터전을 이룩했음을 보여 주려은 마음에서다. 이 영상을 보고 이 글을 쓰면서 우리 국민들이 살아온 지난날을 돌이키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최초의 남산 TV방송국과 송신소, 육성과 영상으로 보는 시설현장
위는 국립영화 제작소가 설립되기도 전인 1962년 초에 공보부가 제작해서 극장에서나 순회공연을 통해서 상영했던 늬우스 활동사진으로 지금은 KTV 한국정책 방송원에서 사이버를 통해 공유하는 영상이고 아래는 역시 KTV에서 춘하추동방송에 특별히 제공 해 주신 영상이다. 이런 영상을 기록으로 보존 해 주시고 제공 해 주심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좀더 알기쉬운 기록으로 전하고자 여기에 올린다.
남산 방송국이나 송신소를 새울때 얘기는 춘하추동 방송에 여러편의 글이 올라 있으므로 그 글을 연결하기로 하고 영상과 관련된 얘기를 한다.
KBS TV 남산송신소와 남산타워 http://blog.daum.net/jc21th/17781043
TV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얘기 ( 1 ) -TV개국 http://blog.daum.net/jc21th/17780061
TV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얘기 ( 2 )-TV개국 2- http://blog.daum.net/jc21th/17780062
TV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얘기 ( 3 )-게국식- http://blog.daum.net/jc21th/17780063
TV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얘기( 4 ) -TV초기 사람들 http://blog.daum.net/jc21th/17780064
TV 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얘기 ( 5 )-탤런트- http://blog.daum.net/jc21th/17780065
TV방송 그때 그 얘기(6)- 초기 TV방송망과 수상기 보급실상 - http://blog.daum.net/jc21th/17780066
TV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얘기(7)-초기 중계방송 http://blog.daum.net/jc21th/17780067
TV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얘기 ( 8 )-달라진 생활상- http://blog.daum.net/jc21th/17780068
TV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얘기 ( 9 )-쇼를 중심으로 http://blog.daum.net/jc21th/17780069
TV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얘기 (10)-드라마- http://blog.daum.net/jc21th/17780070
오재경공보부장관이 두번째 취임한것은 1961년 7월 7일이고 TV방송 실시계획이 확정된것이 1961년 9월 14일이다. 기자제 계약을 체결한것은 10월 6일이다. 서울 중구 남산동에 대지(垈地) 1,236평에 스튜디오 630평의 건설을 위한 기공식겸 지진제 (地鎭祭)를 가진것은 10월 10일의 일이다. 성탄절 까지는방송을 내 보내야 한다는지상명제가 주어졌다. 오재경장관이하 전 직원 들이 밤을 새며 이 일에 메어 달렸다. 2Kw출력의 송신기 수퍼턴 스타일의 안테나 등 확보된 기재는 모두 비행기로 운반되어 12월 15일까지 도착 되었었다. 그 전에 남산에 정동방송국에서 쓰던첲탐을 남산정상으로 옮겼다. 15일에 들어온 수퍼전 스타일의안테나를 비롯해서 모든 기재를 조립 설치해야 방송을 내 보내는 것이다.
위 영상은 새로 들어온 수퍼턴 안테나를 비롯해서 기자재를 설치하는 과정을 촬영한 동영상이다. 그렇게도 춥기만 하던 시절 12월 말, 새 찬 북풍이 몰아치는 때 급전선 조립, 안테나 설치, 그 위에 수퍼 턴 스타일 (SUPER TURN STYLE)의 안테나를 올리는 문제, 지금처럼 현대적 설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느 것 하나하나가 눈앞이 캄캄했다. 예비품도 없는 기계를 잘 못다루다가 잘못되면 모든게 허사다. 그런데 그토록 중요한 수퍼 턴 스타일의 안테나를 도르래에 끈을 연결해 수십명이 끌어당기는 모습이 보인다. 순간 조금의 실수도 용남되자 않던시절 그때는 그 방법 밖에 없었다. 그 방법을 고안 해 낸 분은 시설 실무책임자, 공보부 한기선이었다. 위 영상에서 도르래에 연결된 큰 끈을 잡고 방한모를 쓰고 노동자 복을 입고 맨 위에서 지휘하는 그 분이 바로 그 주인공 한기선이고 줄을 잡아당기는 수많은 사람들은 한기선의 구령에 맞추어 줄을 당겼다.
모든것이 수포로 돌아가느냐? 성공해서 방송을 예정대로 할 수 있느냐?의 갈림길에서 마침네 성공을 걷우어 12월 24일 부터 하루 두시간씩의 시험방송에 들어갔다. 원래는 12월 24일부터 방송을 한다는 것이었지만 그렇게는 불가능했다.
245미터나 되는 남산 고지에 75m의 철탑을 조립 해 올리고 그 위에 15M의 수퍼 턴 스타일의 안테나를 올려서 남산의 TV방송은 그렇게해서 이루어 진 것이다. 부속품 하나 기계 하나라도 파손되면 안 되던 엄격한 상황에서 TV방송은 1주일간의 시험방송을 내보내고 1961년 12월 31일 첫 방송전파가 발사되었다. 그때 송신소 건설현장에서 일한 분들을 다 올리고 싶지만 위 영상에서는 세분 밖에 확인이 안되어 세분의 열굴을 올렸다. 한기선, 김광식, 강창우, 한기선님은 이미 고인이시다. 김광식, 강창우님은 80줄에 들어선다. 그때의 상황를 말해주는 다른 정지영상은 밑부분에 있다.
위 아래는 KBS와 KTV 자료영상에서 뽐은 정지영상이다. 그날 개국식 중계방송을 했던 임택근 아나운서는 하늘의 별을 보며 연탄난로에 손을 녹이며 중계방송을 했다고 했다. 개국 준비요원이고 KBS TV 첫 아나운서실장을 지낸 황우겸 아나운서는 1월에도 불가능한 개국식을 12월 30일 하루를 앞두고 오재경장관이 전격적 으로 31일에 해야 된다고 결정해서 1961년을 넘기지 않고 TV는 개국되었다고 했다.
TV방송을 하기로 결정한지 불과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연내에 방송을 해야 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받아 드려졌아도 오재경장관은 그렇게 추진했다. 그 터에 있던 한양교회를 이전시키고 그 건물을 헐어낸 뒤 그 자리에 땅을 골라 사옥을 짛고 방송을 해야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누가 그일이 가능 할 것이라고 생각 하겠는가?
개국식장은 남산 TV 제1스튜디오다.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을 비롯해서 송요찬 내각수반, 오재경장관, 외국 공관장등구빈들이 앉아있는 뒷면은 6폭으로 된 광폭 병풍으 가려져있다. 벽이나, 바닥이나 공연장 모두 미 완성임이 역역하다. 두대의 카메라가 있었지만 한대는 사용이 어려웠다고 한다. 행사진행중 정전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해도 KBS개국 역사는 이날부터 시작된다. 영화나 손쉽게 내 보낼 수 있는 방송을 하다가 정규 프로그램이 방송된것은 1월 15일부터이고 국장이하 간부진이 새로 임명된것은 2월 2일 이지만 KBS TV방송역사는 1961년 12월 31일부터 시작된다.
우리 역사는 이렇게해서 한걸음 한걸음 이어져왔다. 흔히 그 시절을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이라고 한다. 그러나 알고보년 50년밖에 안된 역사다. 이제 꿈만 같은 세상이 되었다. 엄연히 겪어왔던 일들을 부정할 수도 지울 수도 없다. 지난날을 바탕으로 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가꾸어 나갸야 한다.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기하면서 아울러 자랑스러운 KBS가 되어줄것을 기원하면서 글을 마친다.
남산 송신소 설치공사 정지영상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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