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박용기님, 성우 1기 1954년, 효과 맨, 탤런트, 연극무대 등 일생을 방송과 함께

이장춘 2012. 11. 7. 04:57

 

 

1970년대 중반 TBC에서 방송된

“임금님의 첫 사랑”,에서 스님으로 나와 화제가

되었던 주인공 탤런트 박용기님, 연세 지긋한 식당 주인에게

 TBC에서 방송되었던 임금님의 첫사랑 이라는 드라마를 본적이 있는지

물어 보았더니 금방 그 프로그램을 기억에서 떠 올리셨습니다. 박용기님이

 모자를 벗으며 혹시 그때 그 스님 기억나시느냐? 고 여쭈어 보니 깜짝 놀라 웃으며

반기셨습니다. 1961년 KBS라디오에서 방송된 이서구 작 강화도령을 신봉승님이

 TV드라마로  각색해서 방영한 프로그램 “임금님 첫 사랑”에서 주연을 맡으며 겪었던

추억이 많으신가. 봅니다.  첫 방송이 방영된 다음날 아침 이병철회장님이 방송국에

들려 “어제 임금님의 첫사랑"에서  방영된 스님이 실재 스님인지, 탤런트인지를 

물으시면서 화젯거리가 됐었다는 얘기며 또 스님들이 방송국을 찾아와 

항의했던 일 등 그 얘기만 해도 얘깃거리가 많으십니다.

 

 

박용기, 성우로 시작해서 효과 맨, 탤런트 등 방송과 함께 한 인생길

 

 

 

 

6.25로 부산에 피난 갔던 방송국이 서울로 돌아와

얼마 안 있어 1954년 성우를 모집했을 때 25명이 합격해서

 60년대, 70년대까지 라디오 드라마가 안방을 누비던 시절 그 주역을

 맡았던 오승룡, 고은정, 윤미림, 김수일, 이창환, 신원균, 김소원 님등과 함께

 박용기님의 활동이 돋보였습니다. 성우가 되어 첫 작품은 1954년, 이순신 장군의

 얘기를 쓴 “바다의 왕자”였고 생방송 입체낭독으로 방송했던 일이 아직도 머리에 생생

하다고 하셨습니다. 입체 연속낭독이었지만 여러 목소리를 내면서 라디오 드라마나 

다름없이 실감나게 생방송을 했던 시절이라 오후 그 방송시간에 맞추어 정동방송국

스튜디오에서 긴장하던 추억을 얘기 해 주십니다. 그때 출연했던 프로그램으로

 이보라작 연출 “삿갓마을 목련이 피다”가 기억에 남고 공격위주의 대북

방송에서 대한민국의 실상을 전해주는 프로그램도 함께 방송하기

 시작했던 시절의 대북방송 드라마 “행복의 조건” 도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라고 했습니다.

 

 

 

 

1960년대 초 MBC에서 방송된 한운사 작,

최창봉 연출 “골목 안 풍경”에서 백성희, 정애란과

 함께주연을 맡아 12남매를 둔 아버지 최주사 역을 했던

일을 기억에 떠 올렸습니다. 성우활동을 하면서 효과 맨 으로도

 활동을 해서 활동영역이 넓었습니다. 방송의 시작은 KBS이었지만

여러방송국에서 활동을 했고 1964년 "RSB 라디오 서울“이 개국하면서

 RSB의 전속성우가 되어 방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KBS TV방송을 창설

하는 등 방송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오재경님이 1970년 CBS 기독교방송

이사장에 취임하면서CBS 제작 3부장으로 영입되어 CBS. 연예프로그램의

책임을 맡기도 했지만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되면서 그런 일을 더는

할 수 없다면서 현업으로 돌아왔습니다.  TBC에서 방송한 "임금님의

 첫사랑"에서 스님으로 출연했던 것이 이 무렵이고 연극무대와

인연을 맺은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50년을 방송과 함께 하며 국민의

사랑을 받던 박용기님은 2004년 성우 1기 

공채 50년 기념하는 특집 드라마에 출연하는것을

 마지막으로 방송계를 떠나 미국 텍사스 주로 가셨습니다.

1년에 한 번씩 고국을 찾는다는 님 국내에 오시면 그때의 

성우 1기생으로 함께 출발했던 분들과 만나지만 세월이 흐르니

그분들도 이제 김수일, 오승룡, 김소원, 고은정님 등 불과

 몇 분밖에 안 계신다면서 아쉬워했습니다.

 

 

 

 

성우는 아니지만 극작가 박서림님을

 꼭 만나 보았으면 좋겠다고 하시기에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시면서 그 인연을 물었더니 불교방송에서 일하면서

“고승열전”을 방송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자료도 부족하고 어려움도

있어서 쓸 분이 없던 차에 박서림님에게 말씀 드렸더니 심사숙고 끝에

그 작품을 써 주셔서 늘 고마운 마음이고 그런 인연으로 늘 잊지 않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오랜 방송생활을 통해서 인연을 맺어온 방우회

엄복영 이사님과는 각별한 사이여서 국내에 오시면 많은시간을

엄복영님과 함께 하신다고 하시면서 제가 만난 그날도 

엄복영 이사님과 함께 명동 길을 걷다가 옛날과는

달라져버린 그곳을 지나며 옛 추억을

되 살려주시곤 했습니다.

 

 

 

 

"인생 끝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고 하셔서 들어 보았습니다. 1954년 그때 처음에는

"성우 공채시험 합격자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어요. 시험은

잘 보았는데 웬일일까. 며칠을 생각하다가 그때의 중앙방송국

송영호 방송과장님을 찾아서 그 이유를 었습니다." 

송영호 과장님 말씀이  “시험은 잘 보았지만 

이야기하기 어려운 결함이 있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생각 해 보니 장애자를

채용하지 않던 시절에 장애자인 본인을 합격 시킬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다시 한 번 편지를 올려 보자는 마음으로

 송영호 과장님께 중국 고사 "한신"의 경우를 인용해서 편지를 썼습니다.

“여자 가랑이 밑을 오가던 한신을 누가 알아서 써 주었느냐? 그를 썼기에 한신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었습니다.” 라는 요지로 긴 글을 써 올렸더니 답신이 왔습니다.

와 보라고 해서 갔더니 3개월 소정의 연수를 마치고 채용 여부를 결정 하겠다고 했고

 3개월 연수가 끝나고 나는 성우로 채용되었습니다. 송영호 선생님의 사람 보시는

덕목으로 저는 50년간 성우 생활을 했습니다. 사람의 겉만 보고 평가하는

세태와는 달리 송영호과장님의 사람보는 덕목으로 박용기의 일생

동안 헌신 할 수가 있었음을 생각하며 지금도 그 분의

 생각은 지워버릴 수 없습니다.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사람을 겉으로만 보지 말고 내면까지

보아야 하며 길게 넓게 보고 판단해서 채용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위 아래 사진은 박용기님의 고별무대라고

할 수 있는 KBS 공채 성우 1기 출범 50년기념

특집방송에서 그때의 동기생 성우 오승룡, 박용기,

 고은정, 김수일님이 열연하는 장면입니다.

 

 

 

앞줄 왼쪽부터 박용기, 복헤숙, 이향자, 이혜경, 윤미림, 박병호, 구민, 심영식,

고은정, 최옥정, 장서일, 강문수, 김소원, 김정옥, 박순옥, 주상현, 김수일, 오정한,

유병희, 장민호, 박신호, 오승룡, 남일우, 이창환, 최길호님 입니다,

 

 

1950년대에 박용기님과 함께 활동했던 성우들입니다.

1 오정한, 2 오승룡, 3 남성우, 4 고은정, 5 정애란, 6 김영수,

7 신 카나리아, 8 장서일, 9 이상만, 10 서계영, 11 신원균, 12 주상현,

13 홍두표, 14 윤일봉, 15 유근필(효과), 16 문혜란(文蕙蘭), 17 박용기,

 18 구민, 19 최형래 (효과) 20 임옥영,21 강수강 22 김용환님입니다.

(서계영님은 서항석님의 따님으로 방송문화 연구실에도 근무한적이

 있고 문혜련님은 영화배우였으며 강수강님은 CBS성우로

연출가 민구님의 부인이기도 했습니다.)

 

 

 

엣날의 추억을 되세기며 명동 거리를 거니시다가 옆에서

사진 촬영하는 팔자를 바라보며 혼잣말로 "이제 80이 되었으니 

이 사진 촬영이 마지막이 되겠지" 라고 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어찌 마지막이 되겠습니까. 내년에도 오시고 또

세월이 지나서도 오실 터인대..... 

 

 

 

 

"문화예술인들이 찾았던 은성터"

검은 돌에 세겨진 비석을 보다가 골목길로

 들어가시더니 빌딩 안을 가르키며 "저기에 은정주점

 있었지, 탤런트 최불암 어머니가 운영했는데

여기서 회포를 풀었어... 이곳에 오면 정겨운

분들을 모두 만날 수 있어어 자주

 들렸지...벌써 옛일이야...

 

 

 

 

한 고물상 상점을 들리자 점포주인이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40년간이나 드나들며

시계를 고쳐 온 집이라고 미국에서 부터 좀 이상이

 생긴 시계를 봐달랜다. 미국에서 120불 주고 샀다고 하자

 이곳에서는 30만원가는 시계라고 귀띰한다. 같이 동행한

방우회 엄복영 이사님도 이 집을 자주 들린다면서 긴 회고담을

들려주시기에 기념사진 한장을 더 촬영했다. 그리고 보니

이 집이 꾀 유명한 집인가 보다. 조선일보에서 이 집

사연을 기사로 실어 주어서 붙여 놓았다기에

그 글을 읽고 발길을 옮겼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성우 1기 50주면 목탁새.mp3


 

성우 1기 50주면 목탁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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