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는 얘기는 여러 차례 했습니다. 오늘은 종로 2가에 있었던 그 사옥에 얽힌 사연을 얘기 하겠 습니다. HLKZ가 TV방송을 하던 때의 건물 이름은 동일빌딩 이었습니다. 이 동일빌딩이 처음 지어 질 때는 한일은행 건물 이었고 한일은행은 1906년에 우리 민족자본으로 결성된 은행으로발족해서 여러 번 어려운 고비를 맞았지만 슬기롭게 넘기면서 성장한 은행이었습니다.
최초의 TV방송국 HLKZ사옥에 얽힌 사연
한일은행은 1922년 이 근대적인 건물을
착공해서 1924년에 완공했습니다. 일제가 들어오면서
센 마에 센 가구 (조선은행 삼각형 광장)로 불리는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충무로 명동일대에 일본 상권을 형성 해 나가면서, 우리
민족자본은 종로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 갔습니다. 한일은행이 그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고 뒤이어 1931년에 도로 맞은편에 화신백화점이 들어섰습니다. 종로 네거리라고 일컬어지는 이곳은 옛 부터 보신각이
자리하고 있었고 삼일운동이 일어난 중심거리여서 민족의 거리라고 불리던 자리에 민족자본의 대표적인두 근대적인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1943년 한일은행이 조흥은행에 합병되면서
이 건물에는 조흥은행 간판이 붙었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민족은행, 한일은행도 다 사라졌슴) 6.25때 서울 그 중에서도 종로와 청계천사이의 시설이 모두 파괴되면서
이 건물역시 심하게 훼손되어 옥상의 돔을 철거한 체 수리해서
활용되었고 조흥은행이 삼각동 1번지로 옮기면서 이 빌딩이름이
동일빌딩으로 바뀌었고 여기에 미국 RCA지사가 들어왔습니다. RCA
지사의 사장은 KBS 이리방송국 기술과장으로 계시다가 1943년 단파방송 독립운동으로 부득이 방송국 문울 나선 황태영님 이었습니다. 황태영님이 RCA지사장을 맡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RCA와 함께 이곳 옥상에 TV안테나를 세우고 방송국을 설치한 것입니다.
아세아에서는 네 번째로 설치한
텔레비전 방송국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텔레비전이 생산되지 않을 때여서 전량 수입을해야 되는데 정부는TV수입을 일체 허용하지 않으니 3000대밖에 보급되지 않는TV수상기로는 경영을 이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문을 연지 1년 만에 그 경영권이 한국일보에 넘어갔고1959년 2월에는 화재가 발생해서
방송이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었습니다. 계속 해 봤자손해보는 장사여서 경영진에서도 TV방송을 재건하는데 소극적이었습니다.
1961년 5.16이 일어나고 KBS가
TV방송을 시작하면서 쓸 수 있는 기기는
KBS에서 인수하고 여기서 방송하던 채널 9는
KBS TV가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근무하던 직원들은 대부분 KBS나 MBC등으로 갔습니다. 근대적인건축물의 하나였던 이 사옥은 크게 활용되지 않다가 1970년대 보신각을 확장하면서그 부지로 활용되었습니다. 민족 자본에 의해서 지어진 또 하나의 근대적인 건물 화신백화점 역시 지금은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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